자유게시판
3회 송영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동창들이 몇명이나 있을까?
내 기억속에 또렷이 생각나는 동창들이 몇명 되지 않으니 나를 기억하는 동창들도 몇명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1971년 뉴욕에 온 이후로 나 송영신은 곽영신으로 열심히 살았고 이제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 I love New York "에 환호하고
야구씨즌이 오면 뉴욕의 상징인 양키즈팀에 열광하고 그리고 9.11 사태때엔 그 침울하고 통탄하는 냄새도 직접 맡았고 뉴욕커로
잘 살고 있다.
서 순석 선생님은 같은 한인 성당에 다니고 아주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모르고 지내다가 기적적인 만남을 가진후 사제간의 존득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지난 10월 23일 함께 단풍놀이 다녀왔다.
선생님께선 아직도 우아하고 아름답고 천사같은 모습으로 곱게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한국과 같이 4계절이 뚜렷한 뉴욕은 기금 가을로 가득차 있다.
모든 동창들 건강하고 행복하길 빈다.
정우야 네소식 호문이를 통해 들었다. 좋은 곳에 살구나 늘 몸 건간해라.
송영신!!!New Yorker!!!
난 정순자!!! 영신이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구먼,,,,,,
누가 나를 기억하랴???
나는 너의 이름뿐만 아니고, 그 동그란 복스런 얼굴이 탁 떠오른다.
숙자말이 그때는 다 고 키순서대로 고 주변만 친구로 사귀었잖냐고,,,
나도 너와 같은 떄에 들어왔어,,,,,말 다르고 풍습다른 곳에서 고생 싸게싸게 했지비,,
유순애 교수님 글을 보니, 40년도 아니고 45년 만이네???
나는 뉴욕은 한번도 안 가봤어,
그대로 칸츄리 걸인셈이야. 작고 작은 도시로만 돌았으니까..............
나는 너와는 반대로 군중속에 뛰어들어 얭키팀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곳이면 오히려 피해서 아무도 없는 곳을 배회함을 더 즐기는편,
테레비에서 최고의 촟점을 맞추어 확대해 보여주는 테레비의 중개를 보는 편???
운동중계보다는 서부활극,,,,,,,,,,,,여행채널,,,,동물의 왕국,,,,,,,,,역사채널,,,
현실이나 세상을 잠사 떠날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즐겨보지,,,,,,,
영신아!!! 우리에게 너의그 귀중한 산 목격자의 911사건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또 뉴욕은 얼마나 멋지니????그런 많은 이야기들도,,,,
서선생님과 이번 엘에이 동문회에서 볼수 있는지 모르겠네???
암틑 반갑고, 우리방에서 자주 만나자구 잉???
영신아,
기별계시판만 열심히 들여다보고 찾아봐도
안보이드만,
여기에 소식을 실었구나,
거기는 거기대로 모임도하고
즐겁게 지낸다니, 외롭진 않겠구나,
기별계시판에도 글 올리렴,
난 섬에서 산지 어언 5년이 된다
섬하고 인연이 있는지
내 전화도 한번 할랑께
영신 선배님,
지난 9월 초순, 뉴저지 모임에 서 선생님 모시고 오셔서
얼마나 고마왔는지요.
3회 선배님들이 여러분 오셔서 든든했었고요.
2회 선배님 한분은 그 다음날 전화를 주셨어요.
급한 일로 참석치 못했다고요.
내년에 우리 동기 한혜련이 좋은 모임 마련할 거예요.
다시금 고맙습니다.
송영신 선배님, 안녕하세요?
알지 못하는 선배님이지만 글 읽으면서 선배님께 가는 제 마음이 아주 따뜻한 것을 느꼈습니다.
'송영신은 곽영신으로 열심히 살았고' 이 말엔 왜 또 제멋대로 내 마음이 짠해졌나 몰라요.
인일홈피를 통해서 아주 많은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시기 바래요.
자주 이름 보여주셔요.
송영신 드디어 홈피에 나타 났네. 나는 김숙자 이고 너나 나나 이름만 서로 알지
서로의 대화는 없었지만 나도 1971 년에 미국 드러왓고 뭐 그동안 사는것이 묻지 않어도
서로 비슷 비슷하니까, 이곳에서 45 년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네.
그럼 뉴욕 친구들과 서선생님 예기도 자주 들려주기를 바라며, 3기 계시판에서
영신이를 열심이 기다리니까 거기서 다시 만나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