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 하는 곳에 곱게 늙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셨다

할아버진 지팡이에 의지하셨고 할머니는 그분의 보호자로 제법 젊어 보이는 할머니셨다.

멀리 본 두 분은 우리약국에 처음 오신 분들이시다.

그 분의 처방전을 받아들고 조심스레 감기약을 지어. 드릴때, 그분의 이름을 보니 낮 익은 이름이었다.

나는 이름을 보고 얼굴을 보고, 다시 이름을 보고 얼굴을 보고를 3번 반복하였다.

나는 그분 얼굴에서  40년전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얼굴을 읽었다.

"혹시 선생님 하셨어요?"하고 여쭈니 "ㅇㅇ여고 나왔어요" 하신다.

나는 뛰어 나와" 선생님 저 ㅇ ㅇㅇ 이예요"하니 선생님도 낮익은 얼굴이라 생각했다 하신다.

고등학교 졸업후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선생님을 우리약국에서 뵙다니...........

그 동네에 사시지도 않는데 이렇게 오시다니........

정말 죄송스럽고 놀라운 일이었다.

퇴근 후 교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선생님은 위암말기로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나 안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어찌 할바를 몰랐다.

선생님의 연세가 80이시니 쇠약해질때도 됐지만.........

 

내가 고등학교때의 선생님은 정말로 깔끔하셨고 젠틀하셨다.

너무 깍쟁이 같았고, 무섭기도 했고,쌀쌀 맞기도 했고 냉정하셨다.

딴 짓을 하거나 졸면 어김없이 백묵이 날라온다. 그야말로 졸면 죽는다.

영어선생님이었는데 어찌나 요점정리를 잘 해주셨는지 강의는 명품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영어 단어와 귀절은 선생님께 배운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때의 선생님의 나이는 40세.

내가 기억하고 있던 곤색양복을 말끔이 차려 입은 선생님은 간데 없고

암투병중이라 모자를 쓰고 여위고 지팡이에 의존한  노구의 80 할아버지셨다.

동창들의 좋은 소식만 전해드리고,쇠약해진 선생님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저 세상으로 가신 선생님들의 소식은 모른체하고.....웃는 모습을 보이니 선생님도 웃으신다.

선생님은 단발머리의 순수한 여학생은 간데 없고 60을 바라보는 중년의제자를 보신 것이다.

나는 선생님을 보고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였다.

한편 선생님부부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20년후의 나와 나의 남편모습이 떠올랐다.

곧 20년이 흐를테고 ..........

우리는 선생님처럼 깔끔하고 곱게 늙고,선생님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할텐데.........

나중에 다른일로 잠깐 들른 며느님 말에 의하면

선생님은 주님을 영접하시고,체험하시고, 천국의 확신을 갖고 계시다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남은 여생을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고 가실 선생님을 생각하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나 또한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고, 1분 늦어 기차 놓친 기억을 되살리며 시간을 아끼고 

 좋은 만남과 좋은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