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도 불어 정례가 좋은 집을 사서 이사 간 것을 말미로
고교 동기 동창들이 그 집에 모이기로 하였습니다.
이사간 집 근처의 허드슨 강변의 나무들이 그때쯤엔 단풍으로 갈아 입을 것이라고
산책하다가 산딸기를 무궁무진 발견했던 정례가 오라고 유혹을 했지요.

그리고 최근에 만나 뵙게 된 옛 중학교 국어 선생님도 모시고 온다는 것이었어요.
서순석 국어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좋았던 나는 무리를 조금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끼리만 모이면 열 명 남짓인데 근방에 사는 연락이 닿는 선후배도 모두 불렀더라구요.
그래서 토요일 추석날 그 집에 가 보니 집에 가득, 스물 다섯명이나 모였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선생님을 뵙고 모두 얼싸 안고 반가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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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17 년쯤 더 앞서신(아무리 생각해도 4-5년 차이 밖에 아닌 것 같음) 선생님은 

어찌나 총명하시고 옛날 기억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가지고 계신지 너무나 반갑기 짝이 없었어요.
저를 보시더니 "얘, 그래, 인선이, 나는 너 알아. 너는 예뻐.."
그리 말씀 해 주셨는데 그 말씀은 중학교 때도 제게 해 주셨던 말씀이었거든요.

누구에게 그런 말 별로 못 들어 보았던, 납작 코에 두툼한 입술의 보통의 표준인 저는
가끔 선생님과 같이 찍은 수학 여행 사진을 보면서 그 말씀을 기억해 내고 미소 짓곤 했어요.
나에게만 그런 표현을 하셨다고 믿고 싶지만
사실은 선생님에게 우리는 모두가 하나하나 예쁜 아이들로 기억이 되는 모양이었습니다.


학생 하나 하나를 이뻐해 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쁘신 것이죠.
자신 감을 북돋아 주는 말에 굶주렸던 우리 세대에 그런 긍정적인 눈을 가진 선생님은 축복이었어요.
선생님 자신이 고우시고 소녀 같은 모습과 자태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계신 것이 놀라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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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중학교만 같이 나온 정숙이를 44년 만에 처음으로 만났던 것도 재미난 일이었어요.
기억력이 좋은 정숙이 이야기로는 나와 두번이나 같은 반을 했더라구요.
그리고 시카고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던 3 회 진희 선배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뉴저지로 4 년전쯤 이사 오셨다고 하네요.

3회 언니들이 많이 오셨고 7회 후배들도 여럿 되더라구요.
처음 뵙는 선배님들도 공연히 어디서 뵌듯하고 반갑고
후배들도 친 동생들같이 정답고
고교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한 추억의 자락을 공유한다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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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 친구는 해외 장기 출장으로 그 전 날 돌아와 피곤하고 청소만 하기도 벅찼지만
부근에 사는 덕실이랑 수인이랑 혜자랑 인숙이가 일찍 와서 함꼐 음식을 준비하였대요.
애초에 워낙 음식에 자신이 없는 정례에게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해 준 착한 덕실이 때문에 가능하게 된 모임이라고
정례는 모든 덕을 덕실이게 돌리더군요.

 

비빔밥이 주 메뉴였지만 선후배님들이 가져온 추석 떡, 녹두 전,  케잌, 사과 배 포도등의 과일과

영숙이가 가져온 찰 옥수수, 화정이가 가져 온 오이 김치등 푸짐하고 맛이 있는 풍성한 잔치를 하였어요.

포도주로 축배도 빠짐 없이 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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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흥분한 김에 앞으로는 좀더 자주 모이자고 다들 의견을 모았답니다.
총무와 회장을 뽑았는데 총회장에는 예쁜 혜련이가 하기로 했구요.
총무는 시간이 많다면서 자원한 13회 막둥이 선숙이가 하기로 했어요.
혜련은 이번 모임을 주관하면서 리더십을 자타가 공인하도록 인정 받았는데
아무래도 모두를 위해 한 해 더 일해줘야 하겠다고 마음을 모아서 부탁하였답니다.
돕는 것은 다들 열심히 하기로 약속했구요.

이번에 이렇게 모여지는 것을 보고 자기도 놀라웠고 흐뭇했다고
좀 더 힘을 써 보고 싶은 생각도 은근히 들었다 하니 예비된 회장감이었어요.
그래서 내년의 여름의 모임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하나 둘씩 가시고 5기 우리들만 남았는데 
무사히 잔치를 치러내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우리끼리 앉아 이년에 한번씩 가는 여행 갈 이야기들을 의논하였어요.
이제 하나 둘씩 백수가 늘어가는데 현실적인 것을 생각하여 너무 비용들지 않는

미국내 국립공원들을 주로 가자고 했어요.

끝까지 남은 여섯 명은 정례네 집에서 잠을 자기로 하였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늦게 잠들었는데 아침이 되니
우리의 회장 혜련이 그러지 말라고 사양을 했어도 베이글과 커피와 도넛을 사가지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날 점심 때 신혼여행 갔던 아들 부부가 집으로 점심 먹으러 온다는데 틈을 내어 다시 온 것이랍니다.
덕분에 근사한 아침을 먹고 한바탕 또 웃으며 이야기 했어요.
인숙이는 이야기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 마다 모두가 폭소를 터뜨리면서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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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례가 다니는 교회에 다녀온 다섯명은 남은 음식으로 또 푸짐히 잔치를 하고
그동안 정례가 자랑했던 허드슨 강변 파크로 나갔습니다.
함께 못한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할 정도의 아름다운 산책길이었어요.

강을 끼고 절벽이 나무로 뒤덮여 있고 그 비탈길을 내려 가며 펼쳐지는 그 풍경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멋있었는지요..
저 멀리 죠지 와싱턴 다리가 보이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강에는 오리들도 놀고 새들도 빠르게 왔다 갔다 하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알맞은 날씨에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참 행복하더라구요.

아직도 못다한 말이 많은 우리는 그 길을 한시간여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하였고
나와 수인이는 사진을 연방 찍었고 노래를 부르며 산책을 하였습니다.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이 있었어요.
한 두주일 후면 얼마나 더 멋있게 단풍이 질까 마음속에 상상만 하기로 하고요.
수인이가 하도 붙잡아서 영숙이와 인숙이는 네시 반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어요.

여행 뒤 끝의 피로가 몰린 정례는 낮잠을 깊이 자고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셋이서 시를 함께 읽고 친구들 이야기도 또 하고...

그 나머지는 상상에 맡깁니다.

동창들 때문에 행복한 날들이 진행형으로 계속 되고 있으니까요..(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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