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집에 와서 사흘을 지내면서 보니 손자가 엄마만 찾는둥
미운 다섯살 처럼 구는 것이었다.
특히 잠 자고 일어나서 엄마가 안 오면 꼼짝도 안 하고 엄마만 애타게 부른다던가
잠자러 들어갈 때도 아무도 가까이 못가게 하고 엄마만 찾는다.
그동안 아빠를 무진장 좋아 했었는데 아빠도 안 부르고 물론 하무니(나)도 싫다고 한다.
동생을 보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민히 굴기도 한다지만
그동안 멀리 살아서 많이 돌봐주지 못한 죄로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이다
하루는 밤에 세번 꺠어 악을 쓰며 울었는데 온 동네에 들릴 정도의 큰소리로 엄마 오라고 고함을 질러 대는 것이었다.
만삭인 엄마가 운신하기 힘들 것 같고 피곤한 아빠도 밤에 일어나기 힘들 것 같아
내가 빨리 올라 가면 상대도 하지 않고 계속 울어 제쳤다.
버릇 나빠질까봐 최대한 오래 그대로 놔두자는 수를 쓰지만
집안 내에 모니터가 있어서 그 아이 소리가 크게 확성되어 들리는데
이거야 정말 고역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아이 버릇을 잘 길렀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딸 집에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다행히 낮에는 멀쩡하다.
책을 읽어 주면 내 발음을 고쳐주기도 하고
무엇이던지 잘 알아 듣고 말도 잘하고 혼자 잘 놀고 잘 치운다.
너무나 똑똑히 말마다 반응을 하고 의견도 분명하게 말할 줄 알고
그렇게나 말이 잘 통할 수가 없는데 이게 웬 복창 칠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어쩔수 없으니 지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 밤마다 편히 지냈는데
글쎄, 어제 밤이 닥친 것이었다.
두째 아기를 낳으러 두 사람이 병원에 가고 나와 어린 손자만 남은 밤!
저녁에 빕을 먹고 집 앞에 나가서 날마다처럼 시카고 강 가를 산보 할 때까지는 참 좋았다.
돌맹이 하나 가지고 그렇게 오래 놀수가 있을까?
공같이 튀면서 뒹굴면서 깔깔대면서 아이가 노니까 그애랑 있으면 하루 백번 웃는 과제 달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
건강하기 위해 하루에 한번 해야할 것, 열 번 해야 할 것, 백 번 해야 할 것, 천 번 해야할 것,
그리고 만 번 해야 할 것이 있다는데
그중에 백변할 것이 웃어야 하는 것이란다.
혼자서 백번 웃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아이랑 행동을 같이 하기만 하면
반 나절이 못되도 초과 달성이 쉽다.
밤 7시 가까이 되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며 집에 들어가기 싫어 하는 아이를 억지로 꼬여서 데리고 들어왔다.
매일 밤 일정은 7시에 화장실에 가서 똥을 뉘고 목욕을 시키고 이를 닦고 물을 먹인 뒤
책을 읽어 주어 8시 쯤에 잠을 재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영 잠자러 들어가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끔찍히 거부하는 것이었다.
하도 철저히 잠을 시간 맞추어 재우니 그렇게나 싫어하게 된 모양인지도...
그냥 잠자기 전의 모든 일정을 다 제쳐놓고 한도 없이 책만 읽어 달란다.
아무리 말을 해도 노! 소리만 하고 말을 안듣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내가 화를 조금 내는가 싶으니까 자기가 먼저 울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것이아닌가!
마미!!!! 마미!!!! 마미!!!!
자기가 낼 수 있는 제일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데 도저히 귀가 떨어질 지경이고 큰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놈이랑 어찌 이 밤을 지낼꼬 보통 갑갑한 일이 아니었다.
목욕도 노! 똥도 노! 엄마만 예스!
그래서 어찌 할까 궁리를 하다가 나도 같이 목소리를 내서 소리를 질러 대었더니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그참에 나는 단호히 이야기를 했다.
"얘야, 니가 그렇게 말 안듣고 소리를 지르면 나는 내 집으로 가야겠다.
우리 집에 가면 아무도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도 없고 우는 사람도 없다.
아주 완벽히 조용하단다.
자 나와 약속을 좀 하자.
네가 울지 않고 소리 지르지 않고 말 잘 들으면 내가 여기 너와 함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집에 가야 겠다. 약속 할래? 안 할래?"
그랬더니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조금 끄덕대었다.
얼른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는데 그 뒤부터는 고분고분 일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가!
먼저 똥을 누라고 했더니 한참을 책만 읽고 아무일이 없다.
자기 속에 똥이 없단다." I have no pooo inside me."
그래서 목욕부터 시키고 물을 마시우고 자기 방에 데리고 가서
매일 밤 엄마 아빠가 하듯이 책을 여러권 읽어 주고 잠 자라고 하고 불을 꺼주고 나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밤에 똥을 누지 않으면 내일은 변비가 될것 같아 다시 한번 변기 위에 앉혔다.
다시 한번 해보겠다...I will try again..라고 하니 얼마나 귀여운지...이제는 말을 잘 하니까 참 재미가 있다.
나보고는 나가라고 하고 책을 달라서 주었다.
혼자 한참을 앉아 있게 놔두고 10여분 있다가 갔더니 똥을 한 바가지 잘 싸 놓았다.
딱딱한 것을 보니 그 밤에 뉘인게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지만 다시 방에 넣고 내려 오니 더 이상 떼를 쓰지 않고 혼자 조용하다.
할머니가 가버릴까봐 말을 잘 듣기로 마음 먹은 것이 분명하다.
모니터로 조용히 무슨 소리가 한참 나오더니 잠시후에 홀로 잠이 든 것 같다.
옳지 이놈! 이 하무니가 한판 승리했다!
이래뵈도 넷이나 키웠으니 니가 나를 당하랴?
앞으로는 문제가 없으렸다! 하하하! 하고 나도 아래층에서 잠이 들었다.
사실 아이들도 어른을 시험해 보는 것 같다.
아이들 넷을 키울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절대로 애들에게 얕잡혀 보여서는 안된다.
요즈음 젊은 부모 중에 아이들에게 이리저리 우왕좌왕 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많은 선택권을 주는지!
먹는 것도 무얼 먹을꺼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만들어 주는 따위는 딱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무엇이던지 해 놓으면 감사히 먹고 안 먹으면 배를 곯리기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행동해야 아이들도 어른대우를 해준다.
한번 했던 말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거나 일관성이 없다거나
마음이 약하거나 인내심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부모로서 아이들의 존경을 사야 하고 조부모는 조부모 대로 아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사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날은 손자가 하무니 최고! 라는 말을 베이비 싵터에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면 큰 성공을 한 셈이 아닌가!
흡족한 미소를 날린다.(2009년 9월)
(아참, 무얼 한 번 하고 열 번하고 백 번하고 천 번하고 만 번하는지 아세요?
한번은 변을 보고, 열번은 음식을 먹을때 열번 이상 잘 씹고,,
백번은 웃고, 천번은 단어를 천개 이상 읽고, 만번은 만보를 걷는 것이랍니다.
오늘 실행해 보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날 되세요!
우리 딸은 그날 밤에 자기를 꼭 닮은 딸을 무사히 낳았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
인선이 멋져!
좋은 교훈이 될 것 같아서 우리 새애기에게 복사해서 보냈단다.
양희 키우는 데 참고로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