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굿굿함은 고독한 군인이요

알기에 유연함은 정다운 문인이요

느끼기에 순수함은 지고한 철인이라

 

재직중 남긴 헌신과 노력에 감사드리며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빕니다.

 

 

  

 

윗글은 남편이 육군사관학교 교수부를 떠나 국방부 정책기획관실로 옮길 때, 오래 몸담고 있던 육사 철학과의 동료교수님들께서 기념패를 만들어 써주신 글이다.  이 글만 보면 서방님은 완벽하게 멋진 분이건만 실제는 박사부인을 평생 부관으로 부리는, 어찌보면 좀 무서운 구석이 있다. 아니 군인은 무서운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DJ께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평양에 우루루 사람들을 몰고 가셨을 때 서방님은 유일한 현역군인이었는데 (당시 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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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이에게(우리 집에서 북쪽의 그를 부르는 말) 절대 고개 숙임이 없이... '지금 그 자리에서' 라는 명령만 있으면 시해할 수 있었다

하는.... 진짜 군인이다. 평양 한복판에서 말이다.

 

실험실에서 햇빛도 못쬐고 청춘을 보낸 후, 나이 서른이 되어서 결혼했는데, 그때까지 '착한 딸' 노릇밖엔 할 줄 몰랐고, 누가 나더러

'니가 착하긴 뭘 착해'라고 대들면... 마음이 혼미해지는 바도 없잖았다.  그래서 결혼하자 서방님께 이런 연약함, '넌 실은 착하지 않아'

라는 사람들이 두렵다는 고백을 했더니, 서방님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 서방님이 네게 이 말만 전하래. 서서 죽을래, 앉아서 죽을래?

맞아 죽을래,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래?  넌 이밖엔 선택할께 없대'라고 말하라 했는데, 이 말에 어찌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편 이 말은 은근히 내 맘에 힘이 되어 주었다. 드뎌 딸이 커서 아가씨가 되었을 때, 내가 딸에게 해준 말도 이 말이다.

네가 정말 물리적 힘이 딸리고 도저히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땐 이 말만 해, [우리 아빠가 말야   네게 이 말만 전하래. 서서 죽을래, 앉아서

죽을래? 맞아 죽을래,쥐도새도 모르게 죽을래?  넌 이밖엔 선택할께 없대'라고 말하라] 했더니 딸도 배를 잡고 덱떼굴 구르며 웃는다.

 

서방님이 예편한지 여러해가 지났다.

호통치며 거느리던 운전병이나 부관들, 비서여직원들이 없으니... 이빨빠진 호랑이 같다.

군인들은 항상 나라 걱정이다. 지금같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며, 모여서 연구제목들 정해서 발표하고 또 토론한다.

내 생각엔 우리나란 지금 위기가 아니라... 점점 잘 살을 일만 있는것 같은데.... 어제도 그제도 또 내일도 나라가 위기에 처할까봐

미리서들 염려하는 것이다. 미리들 대비하는 것이다. 

 

[우리 서방님이 이 말만 전하래. ~~~~~] 이 말은 좀 섬뜩한 구석도 있지만,  어리디 어리고 어리석기조차한  당시의 내 맘을

담대하게 만들어준 말이었다. 아가씨가 된 딸을 담대하게 해준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