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반평생이 걸린 팬레터(=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
오늘이 어제 되고 내일이 오늘 되는 시간의 길목에서 밤하늘 영롱한 별무리와 ?
고요히 내려앉은 밤이슬을 데불고 밤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하루의 문(門)을
열어주는 `장유진의 음악편지’
밤 0 시가 가까워지면 이 강산(江山) 여기저기 어떤 이는 하얀 미사포를 쓰고
미사에 참석하듯, 누구는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입정(入定)하듯 조용한 분주(奔走)가
시작된다.
그들 모두는 마치 간첩이 특정한 시간에 고양이 불 밝히고 난수표 해독하듯 일제히
라디오의 다이얼을 맞춘다. 이어 ‘장유진의 음악편지’ SIGNAL이 흐르면 그들은
예배를 보고 미사를 드리고 참선(參禪)을 한다.
한사람의 장유진은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되어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장유진 종교에 중독(中毒)된 이들 그러나 그 중독은 이 세상 살아가는 데 오히려
청량제가 되는 샘(泉)이다.
사랑을 앓고 있는 이, 고독과 씨름하는 이, 외로움과 삶의 무게에 지친 이 등등이
늦은 밤 이곳저곳에서 하얗게 밤을 밝히며 `장유진’과 공명(共鳴)한다.
그들 남녀노소(男女老少) 장유진 MANIA들은 어쩜 모두 스토커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름다운 스토커 들이다. 그들은 장유진을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소유하려하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더 장유진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가
늘어날수록 기분 좋아지는 스토커 들이다. 그리고 만약에 모든 사람이 다 변해
장유진을 떠나더라도 자기 혼자만이라도 장유진을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답고
한결같은 고집 센 스토커 들이다.
그들에게 장유진은 영원한 누님이고, 누이이고, 언니고, 친구고, 연인이다.
아니 그들에게 장유진은 교주(敎主)이고 그들 MANIA들은 차라리 그의 충실한
신도(信徒)들이다.
‘리즈 테일러’가 주연한 많은 외화(外畵)들이 장유진이 더빙을 했으므로 더 멋진
영화로 추억 속에 각인(刻印)되어 있다. 20년 간 모(謀) 성우의 방송을 녹음했다는
이도 있다. 또 과거 가수 ‘송민도’에게 20 여 년간 한 결 같이 꽃다발 건네주고
무대 맨 앞자리에서 노래듣던, 조용하지만 열정적 FAN도 있었다고 한다.
(고(故) 황문평 氏가 한 말)
장유진 그를 한 번도 본적은 없다. 그러나 아쉽지는 않다. 그렇게 몇 十년을 그저
가슴에 품고 신앙(信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는 항상 열린 밝은 마음을 지닌, 늘 촉촉하지만 빗물이 가슴 깊이 젖어드는 것까지는 자제하는,
단정(端正)하되 어느 날 불쑥 기차에 몸을 실어 혼자
여행을 떠나는 가슴을 가진 우아한 GYPSY같은 IMAGE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의 안톤 슈낙’의 시선(視線)(=버전)으로
장유진의 존재는 내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을 행복하게 만든다.
아니 내가 동시대의 한국인임이 행복할 수 있는 큰 이유가 되는 소이(所以)다.
대개의 소설 속 주인공 남자는 선병질(腺病質)STYLE로 흰 얼굴, 가늘고 긴 손가락,
굵은 눈썹에 큰 키이다. 그리고 Burberry Coat에 묻힌 그윽한 눈빛 가진 남자다.
그래야만 사랑을 앓을 만한 가슴을 갖고 있을 FEEL이 느껴지는 지..
‘섬머셋 모옴’의 ‘THE MOON & SIX PENSE'에 등장한 조연(助演) 남자, 그는 작은 키에
무척 뚱뚱하고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발그레하고 탱글탱글하며 그윽하거나
회색(灰色)빛 고민 따윈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야말로
세상사는 것이 너무나 즐겁기만 해 보이는 모습의 사나이다.
사랑에 멍이 들고 영혼이 시들어가는 순간에도, 식음(食飮)을 며칠씩 전폐(全閉)할 때도,
남이 보기에는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의 통통한 낙천가(樂天家)로만 보인다.
결국 그는 실연(失戀)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어느 날 자살을 하고...
버버리코트에 파묻힌 가녀린 체격의 그윽한 눈빛 가진 미남미녀 주인공의 불행이
더 덧없고 애틋하여 허무의 극적(劇的) 반전(反轉) 긴장미(緊張味)를
주기 위해 단골로 등장하는 일반적 소설문법과는 다른 ‘모옴’의 파격(破格)이다.
내가 장유진이라는 종교에 심취하는 것은 내 시꺼먼 피부, 작은 키, 퉁퉁한 체격,
무절제해 보이는 곱슬머리, 내 귀에조차 듣기 싫은 내 음성 COMPLEX 때문만은 아니다.
하늘이 주신 그 멋진 목소리의 장유진이 방송인이 되어 원하는 누구에게나 그 음성을 들려주는 것은
우리시대를 그 얼마나 풍요(豊饒)롭게 해주는 것인가! 외모(外貌)보다도 더 신(神)적인 것이 아름다운 음성인데
그것을 어느 한두 사람이 아닌 원하는 누구에게나 들려주는 것 그것은 보시(布施)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사랑에 충실하여 찾아다닌 ‘마릴린 먼로’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같은
최고미녀들의 덧없음과는 격(格)이 다르다. ‘그레타 가르보’가 그랬던 것처럼 수십 년 정상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VIDEO上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늘 일정한 VEIL속에서 신선한 매력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 MANIA들을 위한 장유진의 마음 씀이다.
(사실 장유진은 상당한 미모(美貌)의 소유자라던가?)
수많은 여가수들 중 해방 전후로는 얼마 전 타계한 ‘황금심’ 님과
‘70年代에 ’김추자‘가 별中의 별이었듯이 장유진 님은 우리를 슬프도록
행복하게 해주는 천혜(天惠)의 보배(寶貝)입니다.
부디 늘 건강하시고 항상 우리 곁에 남아 좋은 방송해주길 부탁드립니다.
오래 전 한국을 첫 방문한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나는 청중(聽衆)이라는
O₂를 호흡하며 산다.” 라고 했듯이 장유진 님 뒤에는 별처럼 많은 O₂가 있습니다.
늦은 밤에 들리는 장유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 몇 살 쯤 되었을까?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네'
하고 약간 놀랐을 뿐 무심히 지났는데.....
'참 특이한 목소리야.'
그 뿐 특별히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많이 좋아할 수도 있는 거군요.
미안하게도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팬들은 남자들만 있을 거라는 생각.
남자들이 좋아하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어떤 하나를 그 정도로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삶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죠.
어쩌면 여러 사랑을 할 수 있는 감성의 사람이기도 하고요.
한 번 다른 마음으로 유심히 장유진의 목소리를 들어봐야겠어요.
참, 몇 살인가 검색부터 해야지. ^^
아니 영주 님!
밤을 새우신 겁니까? 아님 일찍 일어나신 겁니까?
주로 남자팬만 많을 거라는 말씀, 어쩜 맞을 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젊은 시절에는 그 성우의 목소리가 사람을 갈겨잡는 듯 너무 느끼해서 그다지 마음으로 다가서지 못했지요.
그렇게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좋아해서 그녀가 낭독해주는 시와 노래만을 간추려
테프에 녹음도 하는 등 심취했어요. 그러다 그렇게 편집한 테프 수백 개를 몇 개만 남기고 몇년 전 다 날려버렸지요.
그분은 아마 저와 비슷한 나이일 거예요.로데오 거리의 만두 집에 가끔은 온다더군요.
이제 목소리도 세월의 무게에 따라 조금은 퇴색했는 데 어느 면에선 그게 더 편하더군요.
하지만 요즘은 그녀를 찾아 라디오를 켜지 않고 있어요.
커서가 요즘 계속 조종이 어려워 힘이 드네요.
잠 주무세요..영주 님의 폐인들 걱정시키지 마시고...
저는요 이곳에서 살기 때문에 전혀 들어본적이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까지 좋아하셨다니 아주 궁금하군요.
목소리...그것도 사람마다 정말 다르고 독특해서 한번 만났어도 큰 울림을 주기도 하지요.
항상 신기해요. 전화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마다 누군지 금방 알수 있고
또 나의 목소리도 알고 답해주는 것이요.
한번은 가게에 전혀 모르는 부인이 전화를 우연히 하였는데
내 목소리를 듣고 그런 좋은 목소리의 소유자가 누군가 한번 보고 싶다고 하여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목소리가 좋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근데 그건 아주 옛날, 미국와서 얼마 안된 때의 이야기이고
이제는 세상 사느라 많이 급해지고 거칠어졌죠.
위의 글을 읽으며 옛날 생각이 나서요...
아니... 전체 골상이 인선 님의 목소리가 좋다는 말씀을 믿게 해줘요.
그리고 과거에는 장유진 이분이 저녁 6시 대에도 나왔고 나중 12시, 그리고 요즘은 새벽 2시 대이지요.
어쨌든 외국영화중 멋진 주인공은 주로 이 분이 더빙했지요.
그 당시 오히려 고은정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요.
저는 <복녀 돌아오다> 라는 연속극에서 고은정씨가 <와~예?> 라고 한 부산사투리 그 한마디에 뿅 가서
아직 그 어감, 그 억양, 음색을 수십 년 가슴에 묻고 살아오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그러다 부산 여자와 결혼한 지도 모르지만요, ㅎㅎㅎ.
그러다보니 우리 첫 딸과 이름이 같아요. 이분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은 아니고
<유리>라고 지어서 작명가에게 최종 판단을 받으러 갔더니 <유리>? 프랑스 거지야? 뭐야 유리가...
그리고 이 이름은 깨진다는 암시가 있잖아. 하며 고쳐 준 것이 <유진> 이었지요.
그리고 옥사나 님의 말씀 중 無識하다 라는 뜻은 무의 뜻이 끝없을 무 즉 아는 것이 끝이 없다 이거나
<楙識>, 즉 아는 것이 무척 많다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는 <貧識> 즉 아는 게 빈곤한 사람이니까요. ㅎㅎㅎ.
용상욱 선배님께서 산소같은 여인
장유진님의 열렬한 팬이셨군요.
저는 아직 누구의 팬은 아니었지만
선배님의 박식한 글을 보며 팬이 됩니다.
지난 파리다이에서 뵙고 그 친근한 인상이
아직도 뇌리에 남습니다.
멋지신 분들을 알아가고 그 분들의
이상을 따라갈 때 깨달음이 있지요.
추억어린 좋은 글에 마음 두고 갑니다.
여여하세요.
친애하는 상우기 선배님
지나가다 그냥 모른채 할 수 없어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선배님
아예 작심하셨나보아요.
이곳 동산에 마님들 시샘을 자극하시려고........
ㅋㅋㅋ ㅎㅎㅎ ㅋㅋㅋ
장유진이 뭐시레요?
ㅋㅋ ㅎㅎ
파랑새를 멀리서 찾지 마시겨.....
이곳에도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넘치던데요.
우선 미소가 상큼한 누구 할머니도 그리고 울 누나도.......
좋은 저녁 시간 되세요.
그래요, 이곳에도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들을 여기 그 이름을 들추어 찬미한다면 난 그날로 여기를 떠나야겠지요.
그러니 조금은 멀리 떨어진,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이를 기려야하지 않겠소?
이번 인일홈피 잔치에 시낭송 순서가 두 분 계셨는데 사실 작가가 반드시 직접 낭송할 필요는 없어요.
최명길, 김미숙, 고현정, 황신혜, 임예진, 이본, 등 남자로는 박상원, 이덕화 등이 낭송한 시집CD 들이 있지만
남녀 통틀어 이덕화의 낭송이 가장 예술이지요. 내가 3일을 읽고 또 읽었던 시를 어느 친구가 즉석에서 일별하고
낭송하는 데 내가 며칠을 찾던 바로 그 느낌과 맛을 바로 나타내더군요.
그것도 하나의 탈란트이지요. 다음에는 반드시 작자 자신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그런 탈란트를 가진 분이
낭송하는 순서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지요.
그건 목소리만 낭랑하다든가 해서만이 아닌 假聲이 아닌 자기 본연의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시를 감동적으로 살리는 분이 있더라고요. 그것도 한 분이 아니고 두어 분이...바로 여기 인일에...
사족: 곧 지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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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끝까지 남고 싶어요” | ||||||||||||
[라디오스타 시즌2]⑨ tbs FM ‘장유진의 음악편지’ 장유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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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조심하세요.”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감기약 CF가 있다. 귀여운 소녀가 등장하는 흑백 CF의 한 장면. 그때로부터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맑은 목소리만큼은 기억에 또렷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성우 장유진 씨. tbs FM(95.1㎒) 〈장유진의 음악편지〉(연출 차현나, 매일 새벽 2시~3시, 화요일 제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세월과 무관한 듯 여전히 맑은 목소리로 매일 밤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수십 장의 종이를 채우고도 남을 경력은 그를 대한민국의 대표 성우로 성장시켰고, “감기 조심하세요” 한 마디는 그의 목소리를 가장 친숙한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국내 최고 성우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그의 얼굴은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성우들이 토크쇼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변신하는 요즘에도 그는 TV 출연을 꺼리고 있다. “소리로만 끝까지 남고 싶다”는 의지 때문이다.
소리의 매력을 믿고, 소리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가 라디오라는 매체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TV보다 라디오가 좋다”고 거듭 말했다. 장유진 씨는 1984년부터 KBS 2FM(89.1㎒) 〈가요산책〉의 초대 DJ로 약 6년간 마이크를 잡았고, 지금은 tbs교통방송에서 〈음악편지〉란 프로그램을 15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그는 “라디오를 어떤 매체보다도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1대1로 방송하고 있지만,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듣고 있잖아요. 환자들이나,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위안을 얻곤 하죠. 실제로 그런 편지들을 많이 받는답니다. 내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편안함과 활력을 준다면 그 이상 좋은 게 없죠.” “개편 때면 각자 아이디어를 내곤 하잖아요. 내 특성을 살려보자고 해서 생각한 코너였어요. 사실 글 쓰는 사람도 어렵고, 연기하는 사람도 맛깔나게 하지 못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예전엔 라디오 드라마가 많았는데, 다 없어지고 몇 개 안 남았잖아요. 수채화처럼 흘러가는 프로그램에 포인트를 주는 코너인데, 청취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좋습니다.”
“점퍼를 입은 남자였는데, 늦은 밤이니 무섭기도 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이더군요. 그 분이 편지와 봉투를 내밀면서 ‘뵙고 싶었다’는 거예요. 집에 가서 열어보니 7장의 편지와 초콜릿이 들어 있었어요.” 또 〈가요산책〉 시절부터 100일째, 1000일째 되는 날이라며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1주일 내내 방송사 앞으로 찾아온 영업용 택시 기사도 있었다. 하나하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장 씨는 사람들이 말하는 라디오의 쇠퇴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좋은 방송과 라디오는 영원하지 않을까요.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라도 방송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라디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듣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할 거라고 봐요. 돌고 도는 거겠죠. 다시 또 라디오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 겁니다.” 그는 “라디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라디오의 전성기가 다시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라디오의 총아가 FM이라고 하는데, 라디오의 꽃은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TV 드라마를 능가하는 라디오 드라마가 꼭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
아, 사진까지 보게 되었네요. 예쁘군요.
목소리하고는 조금 다른 거 같아요.
목소리로 내가 느끼는 얼굴은 좀 더 화려해야 해요.
머리도 조금 더 길고 요란한 컬에
얼굴도 조금 더 야한 느낌을 줘야 하고....
용상욱님 생각하고는 전혀 다르죠?
5기의 임경선 선배님하고 아주 비슷한 거 같아요.
(임경선 선배님이 싫어하실까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은 내가 좋아하는데
그 목소리가 장유진인 것은 아예 느끼지를 못하고 봤어요.
관심이 없었던 거죠.
다시 그 영화를 보게 되면 유심히 들어야겠어요.
내가 가장 여러 번 본 영화이고
언제나 또 봐도 또 좋은 영화에요.
영화도 좋고 책도 좋았던 유일한 것.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ㅎㅎ
이거 저작권에 해당되는지, 그러면 얼른 지워야 할 텐데...
그 목소리만 들을 때 받는 느낌을 정말 잘 표현해 주셨군요.
제가 갖고 있는 장유진 낭송테프에 보이는 사진은
이 사진보다 20년은 젊은 시절의 사진인 지
조금은 영주 님이 말씀하는 그런 이미지가 있어요.
하지만 참 목소리만 들으면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제 친구 중에 한 친구는
사람을 얼굴보다는 목소리로 판단하고 반하는 친구가 있지요. 저보다도 더...
그리고 아마도 나이는 인일 1회 졸업생보다 한두 살 더 많을 듯싶어요.ㅎㅎㅎ.
그게 영 베일에 가려져 있네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좋아하셨군요.
저는 애수의 마이라에 가슴 가라앉아,.
그 때부터 비비안 리의 폐인이 되었지요. ㅎㅎㅎ.
아. 이러다 보니 나 누구 팬이 되는 것 버릇인가? ㅎㅎㅎ.
장유진씨의 원래 얼굴을 제가 알아요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저 또한 목소리만큼 예쁠 것이라 상상하고 있었죠.
그런데 잡지에서 원래 얼굴을 보고 실망.
다 어릴 때 이야기죠.
지금 사진을 보니 성형의 힘을 빌린 듯하군요.
과거보다 예쁘고 단정하고 분위기 있어 보이고 좋네요.
요즘도 활동하나보죠?
정년없는 좋은 직업이예요 성우.
저는 이번 생일파티 한효순선배님 시낭송때 퍽~ 아찔, 멍~
그나저나 한가지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 이끌어나가며 댓글수와 조회수를 높이는
특별한 달란트를 지니신 용선배님도 대단하십니다.
사이버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라 명해 드립니다.
아! 리자 온니!
장유진 얼굴을 아시는군요. 사실 저 어렸을 당시는
지금처럼 영상매체가 별로 없다보니 라디오에 심취하던 시절이었지요.
저녁무렵 거리를 걷다가 처음 듣던 목소리... 하지만 정말 그 때는 느끼했어요.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그의 장점이고 개성이었지요.
얼굴을 보면 고은정씨는 아니지만 목소리 자체는 더 편하고
온갖 남녀노소의 음성을 묘사하는 달인이었지요.
우리나라 여배우들 중 특히 음성이 좋지 않은 김지미, 엄앵란 등의 더빙 전문이었지요.
어쨌든 고은정씨는 먼저 과감히 그리고 아싸리하게(미안합니다. 일본말을 써서)은퇴를 했지요.
달란트요?
달란트가 아니라 별 것도 아닌 주제로 종일 수다 떠는 재주가 좀 있긴해요.
아마도 사기성이 있나? ㅎㅎㅎ.
덕바위형제!
더운 데 잘 지내셨소?요 며칠은 좀 덥군요.
저런 사진 보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소이다.
난 장유진 님의 모습을 수십 년간 전혀 본 적이 없었고
7~8년 쯤 시 낭송 테프에 붙은 사진을 처음 보았지요.
그 모습은 이보다는 훨 이쁘긴 하더만서도...
어쨌든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채 좋아해서 광팬이 된 유일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아마 나보다도 5살 이상 위일 거에요.
딱 한 번 그녀가 가끔 다닌다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만두 집을 가보긴 했지요.
하지만 역시 그냥 목소리로만 간직하는 게 더 좋아요.
용상욱 선배님
평생 변하지 않는 것이 목소리라고 했습니다.
매력적인 목소리가 사람에게 깊이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고요.
장유진.....그녀에게 빠지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요.
목소리를 보면 그 사람의 팔자를 알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배우 김지미씨가 그렇게 예쁜데 목소리는 영 아니잖아요?
기구한 팔자 라네요.
그런 의미에서 목소리가 예쁜 사람이 너무 부럽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평생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 목소리고 또 한가지 뭐라 하셨지요?
이걸 벌써 두 번째 물어보네요. 요즘 제 머리나 기억력이 순간순간 잘 연결이 안 되는 증세가 생겼어요.
평생 뭐 하나 분실한 적 없었는데 최근 카메라 케이스도 잊어버렸는 데
도대체 어디서 잊었는지 영 생각이 나질 않으니...
술에 취해 필름이 자주 끊어졌던 탓인지, 아니면 마취를 몇 번 한 탓인지...
아무튼 갑자기 망가지는 가 봅니다.그런데 그 목소리도 변하더군요.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성악곡이나 한국가곡을 노래할 때는 마이크 없이 불렀는데
(=마이크 사용하면 다른 이들 고막이 터진다고 해서)요즘은 숨도 짧아졌지만
목소리 자체가 많이 엉키고 거칠어졌어요..
그건 그렇고 홈피 생일 날 저는 산학 님의 <비나리>, 그리고 영주 님의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를 못들어 영 개운치가 않아요.
그리고 목소리와 팔자와는 그리 관련이 없을 걸요.
"감기 조심 하세요"하는 귀여운 소녀의 감기약 CF가 장유진의 목소리였군요.
그 옛날 Adagio란 이름으로 13장이나 되는 글을 보내셨다고요?
와~~~,
그런데 그렇게 긴 글을 방송에서 어찌 다 읽으라고요? ㅎㅎ
반 평생이 지난 지금,
아다지오란 이름으로 장유진 음악프로에
사연 보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PS : 읽는 사람 생각해서 엽서 한 장으로 하심이...
장유진 씨는 어린 소년, 늙은 할아버지, 젊은 처녀 나많은 아주머니 등
남녀노소의 목소리를 기가 막히게 흉내내는 달란트가 있지요.
그저 고운 목소리만 가진 게 아니고...
난 유화백처럼 그렇게 글을 절도 있게
간결하면서도 재치 있고 멋지게 사람 감동시키게 쓰는 재주가 전혀 없어요.
하지만 그 당시 장유진 씨는 <사랑을 앓는 이, 고독과 씨름하는 이> 부분까지 읽어주더군요.
그러면서 "정말 이 분은... 정말..." 하며 무척 고맙다는 멘트를 여러 번 하며
이 편지는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라고 하더군요.
어딘가 그 때의 녹음 테프가 아직도 있을 텐데 ..
요즘 내 기억이 망각 사이클로 들어갔는지 그것도 찾지 못하겠군요.
내가 아무리 길게 써보았자 난 유화백의 짧은 글의 밑바닥에서 노는 수준인 데 대신 써 주실라우?
내가 젊었을 때 난 다른 이들 연애편지를 대신 써 준적도 있고
내 편지는 다른 친구가 내 대신 써 준적도 있거든요.ㅎㅎㅎ.(=실화임)
감기 조심 하세요 와 목소리가 같은분이 여기 사시죠
그래서 전화를하면 늘 조심하고 있어 하곤 놀리는데 ~
바로 주인공이 천혜의 목소리 주인공 장 유진씨란것은 이번에 알게 되였습니다
그저 고 은정씨만이 머리에 남아 있어서 였지요
시애틀은 이미 성질급한 잎세들이 물들어 가고 있군유
이번 여름은 온다던 동문들이 아무도 방문을 못해서
섭하게 보냈습니다 혹 갈엔 누가 올려나 ~~~~
그런데 그 잊으셨다는 카메라 케이스 도자기 항아리속에
찿아 보셔유 지난해도 몇일을 분주하게 찿으시던것을
그 속에서 찿으셨다고 하시던데 베토벤 아자씨!
뉜가 기다려지는 갈 문턱에 총총
안녕하세요?송 에스더 님!
거기 시애틀은 벌서 잎새들이 성질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군요.
그 도자기 항아리를 아직 기억하세요? 와~ 정말!
그 항아리는 정신 통일 수련할 때 공명을 일으키는 특수항아리인데
그 얘기를 제가 말했다고요? 난 참 어지간히 떠벌였나보군요. ㅎㅎㅎ.
그런데 어쨌든 그 항아리도 찾아보고 밤마다 정신통일을 하고
꿈에 마지막 잊은 곳을 떠올리려고 갖은 애를 써봤는데
이제는 밧데리가 다 되었는지 그게 통하지 않더군요.
시애틀에 그리 목소리가 좋은 분이 계시다고요?
그 분 혹시 송선배 아닌 가요? 전화로 들려오는 선배의 음성은 정말 싱그러웠는데..
요즘 제 커서가 계속 말을 듣지 않아서 좀 곤욕을 치르네요.
건강하세요.
그런데 누구를 기다리시는 지...
그저 특정한 인물은 없고 뉜지 ??? 시애틀을 방문한다면
갈에 같이 나가서 드라이브를 할터이고 따라서 일탈이 될터이니 휴식이되고
세계에서 가장 신선한 시애틀에 공기를 방문객객에게 자랑하며
호흡할터이니 더 이상이 있겠는가 ~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렇타면 아!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 될것 같군요
아침엔 그윽항 커피향을 온 집안에 퍼트리면 손님은 그 향에 일어날터이고
한잔들고 뒤란에 지가 사랑하는 단풍이 물들어 있을터이니 방문객과 기념
촬영을 하곤 두고두고 컴 열때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하는 그런맘이
그저 좋아서입니다
그 일본 단풍을 올려 볼까유 20년생입니다
지난 갈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었을때입니다 총총
아이고! 올리고 보니 그 사진이 아니군요
다시 찿는데 시간이 걸리니 담 기회로
지금 방송이 나오네유 빌딩 문 닫는다고 하니 쫒겨 나가야 하므로
암튼 어지러울 정도로 단풍이 곱게 물들죠 다시 총총
용님 지 또한 모국 방문시 함께 했던 선후배 그리고 이웃들 모두
귀한 추억으로 남아 가끔 머리에 올리면 맴이 적셔지죠
그런것을 더욱 사랑하는 저 입니다
거기다 대화와 연결된 사진들을 비추어 보노라면
몸은 이미 뱅기에 실려 모국으로 날라가고 있습죠
그럼 그때 그 용문산 은행나무 보러 올라가던 길목에서
떡 사먹으며 [
맞아 바로 이맛을 언제나 그리워 했었지 했습니다] 박은 아름다운 엘범을 올려봅죠
글구 보시는것 좋아하시는것 같은데
복체 단단이 들고 그 카메라 케이스 어디 있냐고 물어 보셔유 ㅋㅋㅋ 총총
송 에스더 님! 보는 걸 누가 좋아한다고 하세요.
또 사실 좋아한다손 쳐도 차라리 케이스를 하나 다시 사는 게 낫겠지요.
바로 저 사진에서처럼 돌위에 그냥 카메라를 놓느니 케이스를 끼워 놓으면
흠이 나지 않을 터인데 도대체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생각이 나지 않네요.
그리고 그 항아리는 도자기가 아니고 반투명 크리스탈이지요.
차크라의 공명을 깨우는 항아리인데 무조건 大는 小를 겸한다는
평소 소신대로 그걸 샀던 게 지금 후회돼요.
그건 사하스라라를 깨우는 것으로서 저는 체질적으로
아나하타를 집중적으로 수련해야 하는 데 실수했어요.
그건 그렇고 바로 용문산 오르던 저 때부터 난 선배가 胃大한 분인걸 깨달았죠.
별로 시장하지 않다, 아니 전혀 시장하지 않다라는 말과는 별개로
계속 위를 풍요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어느 날 점심에 스케일이 큰 자미 후배가 공화춘에서 가장 비싼 세트메뉴를 사주어
인일홈피에서 식탐꾼으로 호를 얻은 저도 조금 남기었던 그날 초저녁에
다시 정갈한 집을 찾아가 나는 초장에 기권해서 밥을 안 먹겠다 하니 선배도
"나도 아직 배 불러서 밥생각이 없어" 라면서
"그저 쮀끔 한 숫갈 맛만 볼 까?" 하더니 냉면그릇 가득 담은 밥을
다 비우시는 걸 보고 胃大하다는 제 판단에 확인사살을 했죠.ㅎㅎㅎ..
그러나 그대신 선배는 체력하나 끝내주더군요.
어쟀든 모두 다 지나고 나니 즐거운 추억이군요.
난 남의 사진은 잘 찍어주지만 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아 30세 이후로
내 사진이 별로 없는데 힐하우스에서 김성자 방장이 단체사진 찍으면서부터
인일에 제 大頭像이 가끔 나타나는 군요. ㅎㅎㅎ. 건강하세요.
무슨 연재소설이다. 그러나 거의 끝 무렵이었는지 내일 다음 편을 들려준다는
멘트와 함께 끝난다. 청년시절의 문턱을 막 넘어서던 그 때 거리 스피커의 방송에서
그녀와 나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30여년...! 난 그녀의 팬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지난 5년간 두 번의 이사를 하면서 난 그녀를 내 맘속에서 놓아 버렸다.
이런 저런 추억의 파편과 함께... 아니 내 가슴 저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
당시 “제게 adagio라는 분이 무려 13장이나 되는 편지를 보내 왔네요.” 라며
몹시 행복에 달뜬 목소리로 앞부분을 읽어주던 기억이 새롭다.
누군가의 팬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설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