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아,

 

올 수 있으면 오렴.

순호도 올 수 있나? 아예 귀여운 손주랑 오면 안될까?

엄마/아빠가 놓아주질 않겠지?

 

그래 나이가 들면서, 이처럼 가슴 털어놓을 수 있는 벗들과 장소가 있는게 고맙지.

이 나이에 숨길 것도 없잖아. 숨겨봤자 답답하기만 하지 뭐.

 

방금 내 상관이 점심 사준다고 해서 전철타고 당신이 사는 근처 브로드웨이 103가에 있는 인도식당에 다녀왔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애인으로 꼽는 <쥴리 앤드류스> 처럼 눈이 해맑은 부인이랑 동석을 했는데

둘이서 처녀/총각으로 아프카니스탄에 선교사로 일하다가 만난 경우지.

모처럼 브로드웨이에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이 예기 저 예기 곁들인 식사 .

 

그러다가 예전 생각이 나더라고.

 

16년전 찬 바람이 쌩쌩부는 12월이었어..

브로드웨이 어떤 작은 식당에서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며 홀로 커피 마시고 있었어.

 

창밖 양측 차길 가운데 앙상한 나무 아래 걸인이 두 사람이 오돌오돌 떨고 있더니

한 사람이 길 건너 내가 있는 식당으로 들어오더라.

커피 한잔을 시켜 다시 거리로 가 제 자리에 않는거야..

"나 한모금, 옆 친구 한모금"... 

커피 김이 모락 모락, 쌍바람에 곧 살아없어지는데...

그 모습이 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으면서... 충격적이었어.

 

그 시기 참 힘 든 때였어.

아이들 아빠가 위암 수술 후 얼마나 더 사실런지 긍긍할 때였는데 

조금 낳아지셨다 싶으니까 일하는데 까지 운전해 달라 해서

뉴욕시에 들어왔다가 기다리던 중이었어.

 

그런 처지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장면이 나를 팍친거야.

 

그 해 성턴 전야 설교를 <가정이 없는자에게 ... (<he Homeless...> 라는 주제로... 요지는 대충 다음처럼.

그 두 걸인이 보여준 커피 한잔의 나눔은 

그들이 비록  건물 집은 없어도, <houseless>는 될지언정

<Homeless>는 아니라고, 가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멋지고 크고, 대궐같은 집에서 사는 우리들 가운데 

옹그라든 가슴을 따스한 차 한잔 서로 한모금씩 나누어 녹일 수 없는 집에서 산다면 

우리가 바로 <Homeless>라고.

 

아기 예수의 탄생은 바로 우리, Houseless에게 Home의 은총을 경험하게 하는 거져받는 선물... .

 

왜 그 설교가 기억에 생생한고 하니,

12월 26일날 남자 교인 한분이 날 찾아왔어.

한뜻이랑 동갑내기 (당시 7학년)인 딸이 자기가 바로 <homeless>라고 고백하더라며 집에 와서 울더래.

부부가 다 교사인데 자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자식에게 너무 무심했었는데 ... 고맙다고... .

 

그래,

살다보면 돈도 잃고, 직장도 잃고, 병도 앓아.

하지만, 나눌 수 있고 작은 것으로도 풍요로운 가슴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린 행복한 거지?

 

인일 홈피가 바로 힘든 우리들이 <인일인의 가정> <Inil Home Sweet Home>을 이루어 서로 힘을 얻는 곳이잖아.

너의 진솔한 이야기로 "나 만이 아니구나" 라며 힘을 얻는 사람들이 하나만 있어도 귀한 삶이라고 말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