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선배님 방에 들려보니 빨간 전등 빛이 꺼져있기에 등을 밝히는 심정으로
선배님들과 동갑내기로 축현국민학교,인천중학교,제물포 고등학교 12기인
오빠의 5살때 모습을 빛바랜 가족사진에서 부분을 옮겨와 올려 봅니다.
모두 요런 어린시절이 있으셨지요?
제가 초등이나 중학교 다녔을때,
오빠가 중 고등시절이었으니까
오빠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문학서적을
시간이 없어 못보면
그때 뜻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도 제가 대신 완독했었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저스스로 성장해가며
저절로 문학에 심취하여 대학도 그방면으로 가려고 한적도....
오빠를 사랑도 하지마는
또한 오빠와 지냈던 시절을 더 그리워 하는게 아닐까 싶고요
비엔나 근교에 오빠나무를 심어 놓고서
부모님 추도일이나 한식 추석등등 시시 때때로 찾아가지요
절기마다 한국으로 성묘 못가서 안타깝던 마음이
요즘은 시공을 초월한 느낌으로 자유로와요
오빠나무를 심었어요?
참 그런 방법도 있군요.
저도 송림 출신이라 옥인 후배의 오빠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이런 누이를 가진 오빠는 행복한 분이네요.
옥인후배는 어떻게 비엔나로 갔는지 궁금합니다.
한번 풀어보세요.
불도 밝힐겸! ㅎㅎㅎㅎ
5년전에 알프스 산맥 초입에 있는
친지의 전원주택에 오빠나무를 심었는데,
해마다 추운 겨울을 지나 새순이 돋아나는 것을 볼때마나
가슴이 환해지고 큰 위안이 된답니다.
오빠와 저의 관계는
부모님이 우리남매를 놓고 한사람을 결정해야만 하는 중요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오빠가 저를 위해 양보해 주었어요.
제가 언젠가는 모두 보답하리라 결심 했었는데,
그 기회가 오기전에 총총 가버려서
제 맘이 더욱 아펐지요....
지금은 오빠가 저 높은 곳에서
다 이해하리라 생각하면서
마음의 편지를 종종 쓴답니다.
원래 어머니가 저를 다른곳으로
대학졸업후 곧바로 유학을 보내려 하셨었는데
졸업하자마자 결혼하면서 무산되었다가
10여년이 지난후
한 3년목표로 비엔나에 공부하러왔었지요..
그랬던 것이 이곳에 반해버렸구요^^
동행했던 어린 딸래미가 여기서 유치원, 초등학교를 입학하게되자
제공부 마치더라도 그냥 귀국하게 안되는 사정이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20년 넘게 지금까지 살게 되었어요.
소상히 쓰려면 장편소설분량이라 오늘은 이정도까지만요 ㅎㅎㅎ
오빠나무라니!
오빠에 대한 사랑이 크게 느껴집니다.
옥인후배같은 동생을 가진 오빠는 행복한 분이군요.
명옥이 말대로 비엔나스토리가 기대되네요.
그런데 부모님께서 참 열린사고를 하셨나봐요.
우리집만 해도 오빠랑 경쟁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외국유학을 놓고라면 아예 상대도 안됬지요.
집안에서도 서열이 다 있었어요.
아주 큰 거 외에는 비교적 민주적이긴 했지만요.
비엔나에서는 무슨 공부 하셨나요?
웬지 음악은 아닌 것 같고.................................................................
다음 스토리 기대되네요.
아버지가 일본에 14살부터 유학하셨고
어머니도 중등부터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공부하셨기 때문에
아들딸 구분 안하시고 키워 주시며
5살 어릴적부터 저를
피아노,고전무용,미술 화실까지 뒷받침 해주셨어요
지금도 많이 감사한답니다
좁은지면으로는 오빠와 저중에 저를 선택한 부분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호호호~~~
왜 제가 음악공부 안한것 같을까요?
저를 여기서 처음보는 사람들은 거의가 "음악 하셨죠?"라고 묻는데요 ^^
저는 한국의 음악대학에서 작곡 전공했고
여기와서도 콘서바토리움에서 피아노 전공하다가
비엔나 대학에서 음악학으로 전공을 바꾸면서
부전공으로 철학,비교문학,미술사를 종합하는 것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와의 학과과정이 달러서 어떻게 하나로 딱 말하기 어렵지만,
박사과정까지 하면 "음악학 박사"가 아니라
"철학박사" 학위가 수여되는 공부랍니다.
신상명세서 쓰는 기분 ^^
저는 1993년부터 오스트리아 작곡가 협회 회원이에요
여기서 한 5년간 앙상블활동할때 가입했었지요...
이곳에 장기체류조짐에 진입하면서
모든것이 처음 계획하고 달러져서
마지막 과정은 못마치고
다른 오스트리아 국가 공인 직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저의 직업적 일이 한가한
가을 부터 봄까지는저를 위한 개인 여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곳 현지 친구들이 저보고 " 여행가" 아니면 " 영원한 나그네"라고 한답니다^^
요즘,저의 일상을 세세히 볼수있는 하늘나라 계신 분들이
어떤 느낌일지 가끔 궁금하기도 ^^
내가 음악은 아니라고 느꼈던 건 비엔나하면 당연히 음악을 떠올리쟎아요?
전혀 음악에 대한 언급이 없길래,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음악인들과는 체취가 좀 달라서요.ㅎㅎㅎ
얼핏이지만 느낌이 사고의 폭이 넓다고 할까?
옥인후배의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가네요.
저도 피아노 전공이었는데 피아노는 좋아했지만 사실은 음악사나 음악학 같은 거 하고 싶었어요.
그당시는 우리나라 음대 사정이 전혀 그런 걸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이 아니어서(게다가 집에서도 전혀 안 밀어주고)
그냥 ~~~~~~~~~~~~~~~~~~~~~~~~~~~~~
대학 다닐 때 아주 기초적인 것만 했지만 음악 이론이며 음악사가 아주 흥미로왔고 좋은 점수를 받았어요.
근데 그 분야는 아무래도 작곡 전공 학생들에게 밀리고
피아노실기에서 거의 최고 성적을 받았으므로 계속 피아노만 치다 말았지요.
다른 오스트리아 국가 공인직업이 뭘까요?
꼬리에꼬리를 물고 궁금증이...................................ㅎㅎㅎ
뷔엔나 특파원 옥인후배가 5동에 들렀군요.
자세한 얘기 잘 읽었어요.
오빠나무를 심어야했던 후배를 생각해 보네요.
명옥언니~옥인후밴 확실한 뷔엔나 통신원이예요.
언니랑 音樂徒로서도 잘 통할 것 같아요.
얼마전 비엔나 garden club에 갔었는데,
5기선배님 연배의 회원들과 환한 꽃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면서
제맘속으로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지요
5기 선배님들~
여름의 중턱에 이르는 요즘 안녕하세요
비엔나 근교에 있는 화원개원 60주년기념잔치에 다녀왔어요
선배님들과 동갑내기죠.....그러니까 또 선배님들 생각이 저절로 나더라구요^^
60회 생신 맞으시는 선배님들!
이 사진과 더불어 모두 축하 드려요~~~
앞으로도 삶의 불꽃이 활활타오르기를 .....
회원 개원 60주년 기념 잔치에서도
우리 5기를 생각해, 격려 해 주시는
옥인 후배, 완전 땡큐예요.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삶을 이루어나가는 옥인씨의 삶도 아름답고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겠지요.....
5기 선배님들~아름다운 가을이 깊어가는 즈음 안녕하세요?
10월8일 오빠 환갑일에 다녀온 근교에요 ... 아름다운 가을색들을 잡아보았어요.
기념으로 ,
"Herbst-Zeilose-추수선"을 20개 심었어요.
내년에는 무리가 지어서 더 이쁘리라 생각하니 지금 부터 기뻐요.
독일산인데, 겹꽃이에요...
아름다운 가을철에 태어났던 오빠를 추억하면서 심었지요.
10월에 환갑 맞으시는 선배님들 모두 생신 축하드려요~!
요즘처럼 어떤결정을 스스로 할 영역을 떠나
내밖에서 결정되는 것을 기다리며 맘조릴 때마다 오빠가 많이 그리워져요.
맘 터 놓고 대화라도 할수 있을테니까요.
오빠도 하고 싶었던 것일 경우라든가 제가 생각하기에 '오빠도 그럴거야' 할 경우는 더 그렇지요.
세상을 떠난사람보다 살아 남아있는사람이 더 안타깝다고 느껴지는 때가 바로 요즘이에요.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걱정근심떠나 여유롭겠지요?
옥인~!
오빠를 절절히 그리워 하는맘
잘 이해합니다.
난 오빠가 둘에 남동생 둘틈에서
총칼 휘두르며 자랐지요.
내옷은 따로 없었어요.
기냥 엄마가 아무케나 만들어주신
남자같은 옷을 입고 자랐지요.
남자형제들은 그래도 여자라고
날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완전 내세상이었지요.
그러다가 10살때 막내 여동생이 생기면서
그귀여움 받는것이 모두 동생에게로 갔지요.
그래도 내존재는 컷지요.
난 좌청룡 우백호로 남자형제들을 거느리고
자랐다고 늘 얘기 했는데 5년전에 작은오빠가
떠나신후 그 그리움은 이루 형용할수 없답니다.
있을땐 몰랐는데 없으니 왜 그리 허전한지.....
나도 삶이 바빠 잊혀질듯한데
혈육에 대한 정은 영원히 안잊혀 지나봐요.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저 가끔 생각나는데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더라구요.
집안행사에 빈자리도 너무크고...
조카들을 봐도 가슴 아프고 ...
내가 이럴진데 옥인은 오죽할까요?
그마음 이해해요.
그러나 하늘에서 오빠가 늘 옥인을 지켜주고 있으실테니
너무 애쓰지 말아요.
홈에서 늘 건강하게 보이는 모습이 좋습니다.
오늘도 힘내시고 잘지내세요~
김순호 선배님~!
용기 주셔서 고마워요.
며칠간 노심초사하던 일이
어제 오빠글 올린지 4시간후 해결되어서
어젯밤은 오랫만에 푹 잠을 잤어요.
그사이에 선배님이 들리셨군요.
조카와 올케분에게 잘해주세요. 물론 잘하시겠지만,,,
저의 오빠는 결혼을 안하고 평생 소년같은 영혼으로 지냈었어요.
무지무지 독서만하면서 ...책속에 오빠의 세상이 존재했을거에요.
이제는 오빠의 흔적을 세상에서는 보기 어렵지요.
손때 묻은 책들만이 ...
그래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맘속에는 영원히 살아 있어요.
점점 깊어가는 세모에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래요.
오빠를 많이 사랑하시는군요.
오빠의 어릴적 모습이 아주 귀엽습니다.
제가 알면 얼마나 반갑겠습니까마는
나는 신흥 출신이고
중고 시절엔 길에서 오다가다
지나쳤어도 모르겠지요.
아마도 축현출신 동창이 알지도 모를텐데....
이곳에 글을 남겨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