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7_8014_8?1159346538.jpg<피카소 `팔짱 낀 여인`>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때에 맞춰 먹던 음식이 몇가지 떠오른다.

음력 정월 대보름 호도, 잣,  2월에  깍아먹던 시원한 맛의 무우,

사월에서 오월에 걸쳐 쪄 먹던 꽃게,동지 팥죽...

이외에도 설날 떡국,추석 송편,비오는날 부친갱이도 있지만 요즈음에야

사시장철 각종 음식을 해먹을 수 있으니

특별한 때 먹는 음식의 추억도 빛바래진 감이 있다.

그래서 싱싱한 꽃게 정도가  제철 음식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 같다.

냉동된 것으로야 언제라도 먹을 수 있겠지만 살아서 벌벌 기어가는 꽃게를 사서

쪄먹는 철이 요즈음이다.

 

꽃게가 특히 많이 잡힌다는 사리라든가 조금이라든가 하여간 그날 ㄷ포구로 꽃게를 사러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게를 사려고 북적이는데 우선 놀랐다.

우연한 귀동냥으로 꽃게 사는 날을 알게돼 멀뚱히 따라간 나는

때 맞춰 꽃게를 살 줄 아는 그들의 생활감각에 일단 주눅이 들었다. 

 

때(timing)를  맞추는 것이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겐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상 께름직하면서 집안을 너저분하게 하고 사는 것도 못말릴 게으름 때문이요

공부해야할  때 전력투구하지 않은 것도 게으름 때문이고

인간관계로 철옹성을 쌓을 수 있었던  수많은 `때`를 흘러보낸 것도

결국은 내 안에 많이 부족한 기름기랄까 넉살이랄까  하는 것을 보충하는 노력이 하기 싫었던

게으름 때문이었다.

내 취향의 좋은 단어와 쉽게 사귀고 상대어에 대한 적대감과 화해하지 못하는 기질도

실은 좁은 속을 넓히는 훈련에 투자하는 시간을 내기 싫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 오늘 내가 `때`에 대한 일고(一考)를 한다고 앞으로 `때`맞춰 영리하게 살 자신이 없음도

살아온 습관을 고치는데 필요한 노력이 싫기만한 게으름 때문이리라.

그러니 어쩌랴

익숙한 게으름으로 소재삼을 무슨 좋은 구실이 없을까 찾는 일밖에.

마침 느리게와 게으름이 그래도 귀퉁이 색깔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를 만들어본다.

모두가 빨리빨리 약게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의 게으름을 무기삼아 느리게 느리게 마음의 근육을 키워간 것이

결국 나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지는 않을까  겨우 생각해 본다

 

와글와글 시끌벅적한 게사는 사람들 속에서 얼이 빠진 듯 더 주세요라는 말도 못하고

얼마예요 라고만 말하는 내가 오늘따라 더 바보 같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