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막 아우성치며 쏟아지고 있다.
아파트에 개나리,진달래 한창이더니 어제 기온이 확 올라가서인지 꽃망울 미미했던 벚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날씨 화창하고 아릿다운 꽃들이 만개하며 눈짓하는데 꽃과 어울리지 않는 나이 탓일까 뭔가 세상과 겉도는 쓸쓸함에 이 봄볕 쏟아지는 날에 겨우 어제 본 영화나 되짚어보고 있다.

원제 `The reader`
영화는 현재와 과거, 과거의 과거 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1958년 독일 15세 소년 마이클은 37세의 여인 한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전차의 검표원,직장과 집을 오가는 게 인생 자체인 무미건조한 여인이다.
자기를 찾아 오는 소년 마이클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읽은 그녀 한나는 소년에게 성을 가르치며 즐기는 역할을 한다.........................................................

희로애락에 표현이 전혀없는 한나는 마이클이 읽어주는 책, 소년의 글읽는 소리를 들을 때에 비로소 인간다운 표정이 생기며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책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다.
마이클에게서  학교에서 배운 라틴어를 들은 한나는 멋지다고 칭찬하며 그들의 관계 전에 책 읽어주기를 요청한다.온갖 고전 문학이 마이클에 읽을거리로 등장한다.

어느날 성실한 그녀에게 사무직으로 옮기라는 영전 통보가 오지만 문맹인 그녀에겐 조금도 고맙지 않은 제안.
한나는 마이클에게 한마디도  없이 짐을 싸들고 사라져버린다.

몇년 후 마이클은 하이델베르그 대학 법대생이 되고 재판을 참관하게 되는데, 
피고석에 한나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한나는 1943년 경인 20대 초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게 문제된 전범 재판이었다.
그녀가 문맹인 것만 밝히면 무죄도 가능했으나  서명조차 할 능력이 없는 한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감옥으로 들어간다.

감옥에 들어간 한나에게 마이클은 문학작품을 낭독해서 녹음한 테이프를 끊임없이 보내준다.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영화를 보면서 한나라는 여인의 음울한 生에 눈길이 간다.
그녀의 친척이라든지 知人 관계에 대해 설명은 없지만
한나는 주변이 없이 철저히 혼자 사는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것도 검표원이라는 단순하달 수 있는 직업에 충실한 성실한 생활인.
마치 루이제 린자의 책 `생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니나의 분위기를 닮았다.
남의 눈치 안보고 묵묵히 자기 生을 고집스레 살아가는 여인들.

이쯤해서 궁금해진다.
그들도 꽃철이면 관광버스로 꽃놀이 가고 할까? 단체로 즐거움을 찾아 다닐까?  하는.
행복의 기준이 우리처럼 몇가지 컬러로 선명한지도 궁금하다.
한나의 비상식적인 애정놀음(육체놀음이라 해야 할지..........)도
우리 정서 `노세 노세 젊어 놀아`와는 다르게 비춰진다.
아유슈비츠에서 지옥을 봐버린 경험이  한나에게 그녀 나름의 生의 裏面을  확실하게 알게 한 것만  같다.
그 음울하고 뿌연 눈초리라니...결국 여배우(케이트 윈슬렛)가 연기를 잘한 것이지만. 

그녀가 문맹을 감추고 싶어 하지만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것과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생을 바라보는 자세에서 문제점을 찾아야할 듯하다.
한나가 문맹인걸 증명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마이클,
 재판당시 20대 初로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밝힐 용기가 없는 나이가 아닐까
법대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딸 하나를 얻고 곧 이혼하는 마이클의 인생도 음미할만하다.
변호사가 돼 경제적으로는 유복하지만 유년 시절에 한 여인에게서 받은 낙인 같은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성인이 된 딸을 데리고 40여년 전 한나와 갔던 시골을 찾아가서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한나의 영향력을 떳떳이 인정하며 드디어 벗어나기도 하는 것 같은  장면이 감동이다.

이 화창한 봄날 행복하지 못한 아니 다른 행복이라고 인정해야  될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읽으며
균형을 찾아 부유하는 존재의 가벼움에 무게를 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