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회 - 게시판담당 : 김성자
오늘 걸레를 빨다가 문득, 돌아가신 시 외할머님이 생각났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 외할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85세 되신 그분은, 걸레를 정말로 백옥같이 빨아 놓으셨다.
특별한 표백제를 쓰는 것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삶는 것도 아니신데,
누런 빨래 비누 한 장으로 행주보다 더 깨끗하게 빨아놓으시곤 하셨다.
할머님은 하얀 걸레에 엄청난 집착을 보이셨다.
사용안한 걸레도 틈만 나면 빨아놓으시고 흐믓하게 쳐다보시며 감시를 하셨다.
걸레 사용 후 시원찮게 빨아놓는다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우리는 할머님 계실 때는 걸레를 사용할 엄두조차 못냈다.
걸레가 아니라 아주 상전이었다. ㅎㅎ
그래도 내게는 후한 편이셨는데,
그건 장바구니 속에 얹혀온 할머님의 간식거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열 여섯에 시집와서, 고급으로 먹고 살던 내가......."로 이어지는 같은 레퍼토리를
도망가지 않고 들어드린 공로 때문이었을까? ㅎㅎ
오 년 후 분가하면서,
철없는 손주 며느리는, 서툰 일에서 해방된다는 것,
특히 뽀얀 걸레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할머님의 서운함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할머님은 운명하시기 전, 내 손을 잡으시고 힘들게 말씀하셨다.
"에미야, 복 받거라."
아,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부족한 손주며느리를 사랑으로 챙기셨던 분,
이제 그분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그저, 할머님 성품 닮은 뽀얀 걸레만이 기억될 뿐이다.
"할머님, 제가 빤 걸레 영 맘에 안드시죠?" ㅎㅎ
제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보다는 사실 엉망이에요.
이상하게 모든 사람들이 아주 모범생으로 보시더라구요.
단월드에 등록했을 때도, 교회에 등록했을 때도
아주 영재취급을 해서 특별관리를 하려고 드니 결국은 다들 실망하시게 되지요.
사실 전 그리 자유스럽지가 못하거든요.
내탓인지 남의 탓인지 우리 엄마 영향인지 집안 팽개치고 뭘 못해요.
집안관리는 대충하면서도 일단 집안에서 죽치고 있는 타입이에요.
그리고 내 사생활 간섭하려는 사람들은 아주 끔찍하게 싫어하니까 저에게 기대를 걸어봤자 뭐가 생기겠어요?ㅎㅎㅎ
전 장남은 장가 보냈지만 둘째는 지 아버지 공부 끝내고 낳은 애라 아직도 학생이에요.
둘이서 9년이나 차이가 나거든요.
그녀석 장가 보낼 일이 숙제이긴한데 그래도 함께 사는 아들이 있어서 무척 든든해요.
얼마 안남긴했지만요.
컴에서 문제 생길 때가 제일 요긴하지요. ㅎㅎㅎ
전에 장남 떠나보내고 둘째는 군에서 돌아 오기 전에 한 3개월 공백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 정말 답답한 일 많았어요.
언니 조금 기다려보세요.
손주 생기면 해줄 일이 너무 많고요. 고 녀석들이 얼마나 할머니 사랑을 좋아한다고요.
지금이 제일 편한 줄 아세요. ㅎㅎㅎ
명옥후배도 아들만 둘이군요.
옥순이도 나도,
난,그래도 딸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한번도 안 들었어요.
지금이 편한줄 잘 알고 있답니다.
선배님(할머니)한테 하두 많이 들어서~~~~~~~~~~
한번도 안 들었어요"
언니 이말씀 맘에 드네요.
저도 그래요. 주위에서 요즘은 아들이 어쩌니 딸이 어쩌니 하는 소리 많이들 하시는데
참 그것처럼 부질없는 얘기도 없지요.
아들 둘 주셔서 일단 시집에서도 좋아하셨고 친정에서 다행스러워 했고
전 제가 시끄러워서 그런지 상대방은 조용한 게 좋더라구요. ㅎㅎㅎ..
실제는 어쩐 가 몰라도 아들들은 장가가도 내식구다 싶으니 든든해서 좋고
며느리는 내가 사랑해주면 되니까 시댁눈치 보지 않아 좋고 ~~~~~~~~~~~~~~~~~~ㅎㅎ
며느리들은 그래도 시어머니 눈치보기 때문에 일 뒤집어 씌우는 건 안해요.
아직은 받을 나이도 받을 생각도 없어 그런가 전 이대로가 좋네요.
언니들하고 공통화제가 생겨서 너무 좋당!
주위 사람들을 밝고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다.
근데 난 가끔 살가운 딸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팔짱 끼고 시장도 돌고, 목욕탕에도 가고, 미장원에도 가고,
여자들 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기도 하고,
지는 지 신랑 흉 보고, 나는 내 신랑 흉보며, 뭐 그러고 싶을 때가 있어.
내가 언니도 동생도 없는 사람이라 그럴까?
그래, 그래도 어깨 떡 벌어진 아들만 하겠니?
ㅎㅎ 이렇게 위안해 본다.
전 긍정적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보다
제가 친정엄마에게 전혀 도움이 안됬다는 게 더 커요.
그야말로 걱정만 시켜 드렸지. 살갑게 쇼핑을 같이 가나 (가면 제 꺼 사서 얻어 입고 왔고)
힘드실 때 따뜻하게 밥한 끼를 해드리나 (친정가면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와요. 지금도)
핑게야 있지요. 입맛 까다로우신 아버지 식성 못맞춰드리니까 아예 손 안댄다고.
저희집에 오시면 잘 해 드릴 수 있지만 10년 간은 남의 나라 살아 못 오시고(지금과는 세월이 달랐으니까요)
그다음에는 가물에 콩나듯이 몇 번 오셨는데 사위가 학생생활 오래 해서 쉽게 자리잡지 못하는 거
안타까워 하셨고 이제 좀 살만하니까 아버지 편찮으셔서 꼼짝 못하시거든요.
그래도 그 당시 한번 씩 오시면 "니네집이나 와야 편한 밥상 받아본다" 고 그러시긴 했어요.
그래서 전 저같은 딸 나올까봐 아들이 좋아요.
운나쁘게 별난 시댁이라도 만나면 열받쳐서 어쩌나 싶구요. ㅎㅎㅎ
전 딸까지도 안바라고요.
드라마 보면 무슨 일 생기면 친정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친구가 막 찾아 오고 하쟎아요?
그런 거 보면 무척이나 부럽고 나도 한번 저렇게 살아봤으면 싶어요.
몇 년 전에 수술했을 때 그런 행복이 있었지요.
친정식구들 떼거리로 몰려오고 우리 친구들이 막 몰려왔거든요.
게다가 우리 봄날의 후배들까지~~~~~~~~~~~~~~~~~~~~~~~
부산에 살면서 수도 없이 손님 치르고 했지만 정작 제손님이 온 적은 거의 없었는데
우리 옆지기가 놀라고 감사해했어요.(아마 속으로는 좀 겁먹었을꺼에요)
명옥 후배는 자식 교육도 암팡지게 시킬 듯싶네.
장가 못간 늙은 우리 아들 녀석들은
이미 내 손을 떠난 듯해.
에미는 아직도 보살피고 싶지만.....
우리 나이가 되면,
사랑을 못 받아 슬픈 것이 아니고,
사랑을 주려해도 받아 줄 상대가 없어 슬픈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