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을 같이 하며 친구가 하는 얘기가
얼마전 작년에 산 아들의 新車를 타고 나갔다가 1.5초간의 부주의로 삼중 추돌 사고를 냈대.
천만다행으로 사람은 안 다치고, 앞차와 앞차의 앞차를 우그러뜨려서
수리 비용이 만만찮게 나올테지만 보험으로 해결되니 일단 접어 두고,
보험 수가가 올라가는 건 헐 수 없다 치고,
놀랜 가슴이야 내 혼자 문제니 참고 시간가면 나아질테지만,
제일 난감하고 아득한 게
아들한테 이 일을 우째 털어놓나 ~
저녁에 들어 온 아들에게
' 저기 ~ 내가 오늘 ~ ' 더듬 더듬
옆에 있던 남편이 말을 거들어서
차량 세대가 우그러지기만 했지 사람은 안 다쳤는데 그래도 구급차 불러
병원에 가 진찰 받게 하고, 경찰도 현장에 부르고, 보험 회사에 연락 조치했다고.
다 듣고 난 아들이
' 휴 ~ 다행이예요. 다친 사람 없으면 됐어요. 내차는 나중에 고치지요 '
우그러진 차를 보면 속도 상하고 원망도 하고 싶을텐데
그렇게 말해 주니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 모르겠더라고.
그 얘기를 들으며
난 남편에게서 들은 케케묵은 오래전 얘기가 생각났다.
학교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갔다대.
하필이면 제대한 때가 우리 큰시숙이 사업을 하다 부도를 낸 때였다나.
부도를 낸 사람은 어디로 피하기도 했거니와 돈 나올 구멍 없는 사람은
찾아 봤자 소용없다 생각한 빚쟁이들이 우리 시부모님 집으로 쳐들어와
생떼를 쓰고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는데 (결국 우리 시어머니가 그 뒷정리를 거즈반 다 해줬대)
그 와중에 군대 제대해 온 차남. 그러니까 우리 남편
이미 제대 앞두고 취직해서 바로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그 난리 속이니
돈을 달라 할 수가 있겠어.
부산발 서울행 통일호 기차표 한장 사고, 겨우 겨우 한달간 버틸 돈만 마련해서 올라 왔다데.
첫달 월급 탄 거 부터 생활비만 쓰고
어머니한테 보내며,
'엄니가 모아서 몫돈 만들어 장가 밑천 해 주세요.' 했대. 요새 애들이야 상상도 못하지만
그땐 거의 다 그랬어. 직장 다니는 자식들이 엄마한테 봉투째 갖다 주고 용돈 타 쓰고,
엄마들은 그걸 여득천금으로 모으고, 또 그걸 큰 효도라고 생각하던 때였잖아.
울 엄니도 객지에서 버는 피 같은 ' 아들돈 ' 을 한푼도 축내지 않고
꼬박 꼬박 적금도 들고 곗돈도 붓고해서 삼년간 알토란 같이 모아 오백만원 만들었대.
(그때 구반포 주공아파트 한채가 천만원전후 할 때에)
이자 받는 맛이 쏠쏠해서 믿거라 했던
친한 친구에게 맡긴게 화근
홀랑 떼어먹혔다.
앓고 누우셨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간 아들에게
다 돌아가실 지경이 된 목소리로 털어 놓은
눈물 콧물 닦은 무명쪼가리 같은 이바구를
참을성있게 다 듣고 난 아들
"그냥 다 잊어 버리세요. 별 도리가 없잖아요 . 그러다 돌아가시겠어요 ".
" 돈이 아무리 중해도 엄니 만큼이야 중허것소 "
말은 그렇게 해도 그 쓰라린 속마음이야 오죽 ~
찬정씨 안녕?
오랜만~~ 반갑네.
방 북적이지 않아도 친구들 잘만 있으면 되지 뭐.
에구...... 잔정도 많으셔.
운동 잘 하고 있어요?
방학도 얼마 안 남고 그래서 어제 좀 너무 심하게 했더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거 같네.
있잖아요, 내가 아주 좋은 한증막을 알고 있는데 30년 된 곳인데 얼마 안 있으면 헐릴 거라는데 참 좋은 곳이에요.
한증막 매니아인 울 큰언니 데리고 갔더니 딱 말하더라. 여기 최고다.
어젠 거기서 그냥 자고 싶더라.
거기도 눈이 별로 안 왔구나. 하긴 거긴 우리보다 따듯하니까 눈이 별로 안 오지요?
실은 여기도 그렇게 큰 눈이 오지는 않았어요.
나 그리고 저번 12월에 거제도 다녀 왔어.
혼자 간 여행이 아니고 우글우글 가는 여행이었어.
좀 몸이 불편한 애들과 그보다 두 배는 되는 도우미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어요.
나중에 우리도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누릴 수 있는 그곳이 어디 쯤일까 하고 자꾸 주위를 둘러 보았지요.
생선 매운탕도 맛있게 먹었고 생각보다 훨씬 고요한 바다에서 아이들과 연도 날리고.
다음에 다시 올게 생각하며 아쉽게 돌아왔지요.
은제 올겨 도대체?
방학이 끝났어요?
지금이 무슨 방학?
여기는 지금 3학기지요. 3월 20쯤 봄방학에 들어갔다가 4월 6, 7일경 신학기 시작이니까.
요즘 아는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국여행간다고 난리예요. 엔고 덕분(?)에.
화장품 사고, 루비똥 가방 사고, 브랜드 옷 사고, 맛사지 받고, 맛있는 거 사먹고. 요기까지가 기본 패턴.
거기다 드라마 촬영장소 가 보는 사람도 있고, 삼청동 가회동 한옥촌 거리를 둘러보는 사람도 있고,
아는이가 3월쯤 한국 갈려구 여행사 찌라시 들여다 보고 있으니까 남편이
' 이번엔 나도 쫌 같이 가자 ' 고 끼어들어서 할 수 없이 동행하게 생겼는데 한 걱정을 해요.
즐겨 본 드라마 촬영장소 갈려구 하면 거긴 뭣하러 가느냐구 1차충돌,
쇼핑 많이 하면 짐 많다고 꿍시렁 꿍시렁,
루비똥가방 산다고 한마디하고, 옷 산다고 잔소리하고
에스테(맛사지)가면 두 세시간 걸릴텐데 길바닥에 세워 놓기도 뭣하고, 이래저래 골치 아프다길래
맛사지 가지말고 찜질방이나 한증막가면 같이 갈 수 있으니까 좋지 않냐고 했는데 모르지요.
일본 아줌마들도 남편 엄청 구찮아 해. 남편 앞에서 껌벅 죽던 일본 부인들은 메이지시대에 끝났어요.
우째거나 한국은 요즘 일본 여행객 특수라지요.
한국간다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돈 많이 들고 가서 펑 펑 많이 쓰고 오라고.
일본 경기는 괜찮냐구요?
안괜찮지요. 직장 잃는 사람이 얼마나 수두룩하게 많고,
전후 가장 심각한 때라는데.
부자가 망해도 삼년은 간다니까
찬정아~!
오쩌다가 옛생각을 했느뇨?
그어머니 맘은 오직 하셨겠니.
그래도 니네 신랑이 효자다.
엄니를 감싸드리고....
힘들다 힘들다 해도 6,25 때만 하것니.
우린 6.25때 엄니등에 업혀 피난 댕기든 세대 아니것니?
소래다리 기찻길 사이로 등에 업힌애가
여기저기서 떨어졌다는데....
덩치도 조막만하고 중2인 우리 삼촌은
이우량아를 자기등에 꽁꽁 싸맨채 엉금 엉금 기어서
그다리를 건넜단다.
에고~ 왜 갑자기 이야그가 나오나?
찬정이가 갑자기 옛날야그를 해서 그런가?
우좌지단간....
건강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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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 언니
나두 참 발칙한 메누리지요?
옛날 고릿적 시엄니 돈 떼멕힌 소리나 까발리구 있으니.
나 시집가기 전 일이라 얘기로만 들었는데
아깝고 억울하지 않았냐니까
잘 해 보려다 그렇게 된 걸 분통이 터진들 어쩌것냐구.
스므해를 넘게 같이 살면서 보니 이 남자는
' 자알 해 보려다가 ~ ~ ' 에 엄청 관대하더라구요.
인옥아
잘 지내지?
재미난 일 니들끼리만 하지말고(그럴 리는 없지만) 여기다 광고도 좀 치고 그래.
먼 데 사람들도 좀 보게스리.
한동네는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는 한국인 가족이 산다.
나 보다 한참 젊은 그집 부인
붙임성도 있고,
남의 딱한 사정도 잘 봐주고,
한국에서 공수되어 오는 먹거리를 잘 나누어 주어 나도 종 종 덕 본다.
근데 어찌된 노릇이
사람을 길게 사귀지 못하고, 뭔일을 끈질기게 못하는 지병(?)이 있다.
가만 보면
그이는 사람 (주로 한국인)만나 통성명했다 하면
단김에 쇠뿔 빼기로 형님 아우가 되기도 야,쟈가 되기도 일사천리로 정리
금새 엎어져서 죽고 못 살고, 네집 내집 수시로 드나들고,
하루가 멀다하고 어울려 반찬꺼리 쇼핑이라도 같이 가야 하고,
남편이고 애들이고 몽조리 한차에 태워 나들이를 가고,
숨 넘어 가게 빠르다.
그러다
그 해가 다 가기도 전에 토라져서
뜨악해지더니
서로 흉을 보고 발길를 끊는 걸로 쫑.
또 중학생인 아이의 친구 엄마(일본인)와 사귀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경쟁이 어른의 경쟁이 되다가
스트레스로 발전
진절머리를 내고 상종 못할 인간 판정후 엔딩.
도와주고 욕 먹고,
힘들여 돈들여 좋은 소리 못 들으니
사람은 괜찮은 사람인데 참 이상하네.
인복이 없나, 소심한가? 시샘은 좀 많은 것 같아 피곤하긴 하지만
변덕스러운 사람보다야 낫지.
나 하고야 그냥 저냥
나이차도 제법 있고,
우리 애가 그집애들 또래도 아닌데다
' 나 ' 란 사람은 원래 사람한테 엎어질 줄 모르니까
어제 본 사람에게나
십년을 사귄 사람한테나 무심덤덤하기가 맨날 그 타령이라 손뼉이 마주치질 않았는지.
내가 들은 그이의 사람 멀미는
일일이 열거만 해도 정신 사납고 종잡을 수가 없다.
아르바이트도 몇달하다 작파하기 서너번
'그러지 말구
운동이나 다른 취미에 마음 붙여 보면 어떠냐? ' 구 했네.
마음은 있는데 선뜻 엄두를 못 내어
쉽게 배워 익힐 수 있는 실내 스포츠 인디아카로 정해
클럽도 물색하고
견학도 시키고
혼자 멋쩍을까봐 내가 같이 해 주며 단단히 일렀지.
누가 무슨 소릴해도 신경 쓰지 말구,
연거퍼 실수를 해도 기 죽지 말구,
비웃어도 상관 말고,
처음엔 잘 안되니까 스트레스 쌓여도
꾹 꾹 눌러 참고 일년만 죽을똥 살똥 하다 보면
느그들 보란듯이 잘 하게 될거라고.
그런데 아 ~ ~ 이런
일주일에 두번하는 건데 이주째 안 보여.
재미있다더니, 계속 쭈욱 할거라더니
처음부터 잘 하는 게 세상에 어디 있냐 말야.
때려치우는 병이 또 도졌는가
다 큰 어른을 마음에 부담 줄거야 뭐 있나 싶어
가만 놔 두는데 우짜까나 . . . . .
그이가 일본인이라면 내가 미쳤나 이런 신경을 쓰게
내 동포 한국인니까 마음이 쓰이지
그리구 내 나라에서 내 부모 형제 득씰 득씰 둘러싸여 살면 내가 알게 뭐야.
그냥 내비두까
그래도 한번 더 손을 잡아 줘야 할까
우짠 영문이든 주저앉고 싶을 적에
누가 소매자락이라도 잡아 끌어 주던가
지나가던 바람이 등이라도 떠밀어 주면
한발짝 떼기에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닌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싫은 소릴 들으면 새기질 못해.
참고 견딜 힘이 필요치 않았던 온실속에서만 자랐나봐.
쓰다 보니 너무 장황했네. 미안.
그만 수다 떨고 일어나서 빨래 걷고 밥 해야것다.
찬정아,
쪽지 보내고 나서 보니 네 글에 답글을 달 수가 있구나.
아직 일본에 살고 있었네.
네 일상을 알 수 있는 반가운 글을 대하니 마음이 푸근하구나.
너무 오랜만이라 무슨 얘기부터 해야할지 마음만 바쁘다.
우리 13기 홈지기인 명구가 네 편지를 복사해 보내주면서 소식을 전해줄 때
기쁘고 반갑던 마음에 당장 소식을 전하고 싶었단다.
3년 전에 보낸 편지를 이제야 받았으니
그간 혹시라도 나의 무응답에 마음이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도 되더구나.
아직도 교편을 잡고 있어 틈 날때만 13기 사이트에 잠시 들를 뿐이라
총동창회에 올린 글을 볼 수 없었던 점 이해하고 혹시 오해가 있었으면 풀도록해라.
아이디 찾느라 며칠 걸린 얘기는 쪽지로 전했지만
그 며칠동안 틈 날때 마다 네 생각 많이 했단다.
우리 남편도 명동에서 너에게 칼국수 얻어 먹었던 일을 기억해 내며 무척 반가워하더구나.
어떻게 너와 연락이 끊어졌는지 조차 생각이 안나던데
이렇게 다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게 신기하고 벅찰뿐이다.
가평까지 다녀갔던 일도 모르고 있었네
명동에 갈 때마다 찬정이 네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잘 지내길 기원했던 것도 생각난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추기경님 조문 드리러 명동에 갔다가
많은 인파에 할 수 없이 미사로 대신하고 오던 날도
네 생각을 했었단다.
먼 곳에서나마 건강하게 지내며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정말 좋구나.
늦은 시간에 앉았더니 컴퓨터 급한 아들 녀석이 자꾸 귀찮게 한다.
다시 소식 전할게
정말 반갑다. 찬정아.
승애언니가
총동문회 행사 사진에서 언니를 보고 너무 반가워서 13기 게시판에 짧은 글 하나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게 벌써 3년이나 되었어요?
그때 기다리긴 좀 했었지만 마음 상하긴요 뭘. 내가 어린앤가요. 쪽지 보내셨다고 해서 암만
찾아 봐도 없네요. 아마 오다가 현해탄에 퐁당 빠졌는지 ~
가평에 계실때 갔던 얘기는 그후에 만났을 때 안했을지도 몰라요.
언니가 괜히 미안해 할까봐서 갔다 온 척도 안 했겠지요.
토요일 오후에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평에서 내려
어른 주먹만한 참외를 한봉지 사 가지고 택시를 타 학교 이름을 대니
난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깊숙한 곳으로 데려다 놔 줬는데
" 선생님 오전 수업 마치고 인천 가셨어요 " 그 말에
그 택시 다시 타고 되집어 왔어요.
사 가지고 갔던 참외는 오다가 가평역 홈의
뚜욱 떨어진 벤치에 혼자 앉아 허탕친 심사를 달래며
껍질도 안깐채 우적 우적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명동 성당에서 영세받는 저의 대모가 되어 주셨던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좀 착실히 ~ ~
올 봄에는 우리 방이 좀 북적 북적하고
따듯해질려나?
오늘은 노는 날인데 비가 오락 가락해서
집에 있으며 한가를 즐기네.
봄비겠지?
겨울이 다 가도록 눈이 한번도 안 온 채 벌써부터 매화가 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