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병어회
박찬정
열세평 아파트 부엌 문턱에
엊그제 시집 온 새색시가
오도카니 앉아있다
권커니 잣거니
방안의 세 남자는
그녀의 존재를 잊었다
병어 이천원어치 사서
남자가 부엌에 섰다
도마 위에 대가리와 지느러미만 남고
한 접시 소복히 담겼다
부엌일 어설픈 새색시는 뒷전에 서 있다가
상에 수저만 놓았다.
‘제수씨도 한 점 같이 하시죠.’
‘오셔서 같이 드시지요.’
‘저 사람은 생선회 안 좋아해.’
권하는 두 사람의 소리와
가로 막는 한 사람의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나도 병어회 좋아하는데.
나도 소주 맛 아는데.
저녁상에 병어회를 먹으며
삼십칠 년 전 필름을 또 돌렸다
‘그 한 맺힌 얘기 왜 안 나오나 했다’
차마 상머리에 끼어 앉을 수 없던
수줍음 타는 새색시
닳고 닳도록 되감아 보는
젊은날의 궤적
후련하게 털어낼 이야기방을 열으셨네요 ㅃㅉ는 공짜로 받았지만 사양하지는 않습니다 간판에 있는 저런 모습으로 앉아서 속 시원히 풀어내요
우아~ 멋진 방이열렸네요. 어느덧 칠십이 넘어버렸으니 한맺힌 이야기 들이 많을텐데 성격상 그때 그때 풀어버린 때문인지 얼른 기억이 안나네요. 그리고 기억력도 없어지고 가끔 멍때리기도 하고~ 동생들 이야기 듣다보면 생각나는 일이 많겠지요?
태풍이 점점 가까운 바다를 지나가는지 비바람이 거세집니다.
엊그제 배추모종 심었는데
그 여린 것이 이 비를 다 맞고
이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휘둘리고 있겠지요.
태풍 지나가고 나면 배추포기를 꼭꼭 눌러 토닥여 주겠지만
그래도 죽을 건 죽고 살건 살겠지요.
그렇다고 배추가 뒷끝을 두고 태풍에게 한을 품을 리야~
8남매로 손위 시누님 넷, 윗동서님 셋인
시아버님, 시어머님은 시집 오니 이미
칠순을 넘어서 팔순잔치를 논하는집
여덟번째 막내아들의 안사람은 아니지
아닌건 아닌거야를 몰랐을까요?
아님, 이왕이면 팔자라기보단 운명적이라..!
아는게 없으니 시집살이인지도 설움이지도
모르고 그저 언니랑남동생과의 단촐했던
친정식구들과의 명절에 비하니 시끌벅적
사람소리가 좋기만 했네요, 일은 서투러
퉁박을 받아도.
~~~^^~~~
유월에 결혼해서 석달 뒤 처음 맞은 추석.
그때 우리 시부모님은 부산에 살고 계셨는데
큰댁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시가에서는 따로 명절을 쇠지는 않았지요.
'내려 갈 표(기차표나 고속버스표)가 없어서 추석에는 못 가고
한달후 아버지 생신때 가겠습니다.'
내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남편이 부모님께 통보했어요.
남편이 그런 상황 정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잘 합니다.
그때는 명절 귀성 기차표나 고속버스표 어느 날 예매한다고 공지하면
새벽부터 역이나 터미날 매표소 앞에 줄 서서 기다렸다가 표 사던 시절입니다.
엊그제 시집 온 며느리를 도로 내쫓아버린다 해도 귀성표 사려고 줄 서는 노릇은
할 수가 없었어요.
시부모님도 속으로는 섭섭했는지 몰라도 '그 고생하면서 올 일 없다' 하셨지요.
아이 두 살되던 해 차를 한 대 샀습니다. 포니 엑셀.
자가용 차도 있겠다 씽씽 달려 단숨에 부산까지 갈거라는 계산은 빗나가
그해 추석에도 못 갔습니다.
추석 전날 새벽같이 출발했는데 길이 어찌나 막히는지
목동아파트에서 톨게이트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데 12시간 걸렸어요.
만남의 광장에서 차 돌려서 도로 집에 왔어요.
핸드폰도 없던 시절인데 새벽같이 떠난 아들네 식구가 해가 저물도록 안 오니
시부모님은 노심초사해서 안절부절하셨고
귀성객 세식구는 도로에서 작은 차에 갇혀 죽을 지경이었지요.
도로에서 열다섯 시간 보내고 가는거 포기하고 귀가.
잊을 수 없는 귀성 미수 사건입니다.
세상에~ 맞아~그땐 그랬었지. 시댁 멀리 있는 사람은 다 고생했겠구먼. 우린 지금 내가 살고 있는곳이 부모님 고향이니 그런 고생은 안했네 그려~ 기다리시던 시부모님이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셨을꼬~
저의 시부모님이 명절에 귀성하는 우리 기다리느라 목 빠진신 건 그때만이 아닙니다.
우리 애 네살쯤 설 귀성때입니다. 일찍 퇴근해서 초저녁에 한숨자고 한밤중에 집에서
출발했어요. 휴게소에 들어가 쉬고 어물쩡하다가 또 길에 갇힌다 싶어서 내쳐 달려
추풍령 휴게소까지 무사히 갔습니다. 거기까지 가면 이제 크게 길 막힐 일은 없죠.
부산 시가에 들어가기에는 좀 이른 시간(정오도 안될테니).
옆길로 새서 경주로 갔습니다.
지금은 명절이면 휴가로 생각하고 여행 계획 짜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닙니다.
경주 그 넓은 곳 어딜가나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였습니다.
섣달 그믐날 날씨인데 얼마나 따듯하고 화창했는지요.
세 식구가 갔는데 사진엔 두 명씩만 있어요.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 할 사람이 눈 씻고 봐도 없어요.
포석정앞에서 찍은 사진에만 세식구가 같이 있습니다.
어둑어둑해서야 시부모님 목 빠지게 기다리시는 시가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에게 경주에 갔다 온 것 할머니한테 절대 말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린 아이 입을 믿을 수 있나요.
일찌감치 제 입으로 다 불었습니다. 어머니는 잘 했다 잘 했다 하셨지만
내가 어머니 속에 안 들어가 봤으니 속으론 무슨 생각하셨을지.
어머니도 대단하신 분이네.
종일 기다리셨을텐데, 이왕 갔다온거 참자 ~하셨을라나.
온거만도 다행이니 참자~ 하셨을라나~ㅎ
지나고 보면 철없는 짓도 많이 한거 같아.
신혼여행(한려수도)에서 돌아오던 마지막날...
친정에서는 신랑을 달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남편이 집에 돌아가는 차편이 없다고...
결국 마산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면서 친정에 전화를 했지요.
차편이 없어서 갈수가 없다고..
집에서는 진수성찬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다가 그만 ~
성질급한 아버지는 엄청 화나셨었다고ㅎㅎ
그바람에 신용을 잃은 남편은 장인에게 미움을 사고 ㅎㅎ
신랑을 달아먹겠다고 벼르던 사촌오빠들은 벙~~하고 ㅋㅋ
약삭빠른 남편이 그것을 눈치채고
차편이 없다고 속이고, 난 그대로 믿고만 멍청이
해서 두고두고 미움을 사게된 남편땀시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서 눈치보다가
사시가 되어버린 나의 눈 ㅎㅎㅋㅋ
명절 연휴 마지막날
지금쯤이면 봄님들은 다들 뭘 하실까요?
어제 구름 속을 들팍날팍 하긴 했지만 보름달 구경은 다 하셨을테구요.
인선 언니는 올해도추석 차례음식 장만해서 시부모님 차례,
친정 아버지 차례지내느라 동분서주하셨겠지요.
저는 올 추석 다과상 차리듯 간소하게 차려 지냈더니
일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앞으로 명절엔 그러기로 했어요.
찬정동상은 복받으실껴~~
남편은 수제 멥쌀막걸리 맛나게 담그고,
식혜에 나박물김치에 전들을 만드느라 며칠동안
몸이 분주했었구먼여.ㅎㅎ
어제 오전 열 시경에 시부모님께
모시송편과 색색꿀떡으로 차례지내고는 설거지 수북하게 쌓아놓고는
토론토 친정아버지를 위한 간소한 차례준비해서,
오후 1 시에 신경전문의 약속에 거의 2 시간을 허비하고는
엄마한테 달려달려 ~~물론 운전은 남편의 왼손으로다가 ㅋㅋ
아파트문을 두드려도 문이 안열려서 엄마한테 뭔일이 나셨나? 걱정도..
티비에선 추석이라고 연실 떠들어도 뭔날이냐고 되묻는 엄마.~
"둘째 덕분에 얻어자시는구랴 ~~"
셋이서 둘러앉아 차려놓은 음식으로 초저녁식사를 하고 치우고는
또 부랴부랴 '비의 은총' 을 받으며 내려왔지요.
오늘 오전엔 남편의 거의 한달만에
수술이 잘되었다고 안와도 된다는 좋은결과를 듣고왔지요.
어제오늘은 꽤많은 비가 종일내려서
환한 보름달은 구경포기..ㅎㅎ
지금 예쁘고 작은 노란호박을 삶는 중...
그놈으로 차례식혜 다시 끓이면서 '호박식혜'로 만들려구요.
호박식혜가 그냥식혜보다 훨씬 맛나네요 ~~
하긴 차례상이
원래는 다과상이나 비스끄름하다는거 같더구먼요?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시부모님께 차리는 상을
같게 만들어드려야 자식된 도리로 맘편해 할거같아서리...
암튼 모두들 한가위를
잘 보내셨으리라 믿습니다!!!
찬정이랑 인선이 모두 차례지내느라 애썼구먼.
난 추석 이틀전에 딸네식구 수목장으로 와서 연도 드리고 점심은 오는길에 먹고 헤어졌어.
선물도 주고 받고 봉투도 주고 받고~ㅎ
지들은 추석이라 용돈 주고 난 손녀들 용돈 주고 ~
오랫만에 보는 손녀들이 어찌나 예쁜지 누가 따라다닐까봐 걱정~
물어보니 아무도 안따라온다네~ㅋ
추석날은 남편가고 첫번 맞는 명절이라 이것 저것 장만해서 집에서 제사를 지냈구먼.
성당에서 합동 연미사 할라 했더니 여동생들이 첫번이니 힘들어도 집에서 해드리라고~
형부가 기웃 기웃~ 식사하시러 오셨다가 그냥 가시면 섭섭하다고~
그럴듯해서 이번엔 집에서 차렸구먼.
인선이 남편분도 좋아지셨다니 다행이네.
그저 이젠 어디 덜 아프고 내몸 편히 누울데 있음 그만이지~
화림언니 ~
추석이면 늘 떠오르는 표어가 있어요.
이왕지사 맞는추석 웃으면서 전부치자
올해 저는 왕새우전 한가지만 웃으면서 부쳤어요.
새우 등을 갈라서 내장 빼고 잘 펴가지고
밑간 살짝 해서 녹말 조금 묻히고 계란물 입혀서 구워 놓으니 맛있네요.
빨강 초록 고명 위에 얹으니 색감도 좋고요.
암튼 추석이 잘 지나갔어요.
한해가 다 가는 느낌이에요
그때 아버님 모실때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 힘이 드니 그런 표어도 생각났나봐.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좋으신 분이었는데 것두 힘들다고 투덜거렸으니~ 가시고 나니 다 후회되고 그립다. 목공반이 오늘 다시 시작해서 3시간 흠뻑 빠져보려구~
시집(구미, 금오산자락 아래)간 첫해 성탄전야...
현장(여천 화학단지)에 가있는 남편은 오지도 않지요,
시어머닌 시외할머니랑 나만 남겨두고 대구 딸네집으로...
에구 ~~시외할머님과 시아버님께 뭘 해드려야하지?
궁리끝에 제일 자신있는 콩나물김치국을 끓였지요.ㅎㅎ
아버님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 ~
"아구야야 ~~느그 시어마씨는 애뱃을 때 싫다고 하던걸 여적지 싫다고앙카나 "
시어머니 일박이일 어디가면 콩나물김치국 끓이라고...
이렇게나 좋아하시는데도 안끓여드리는 시어머니가 다시보여지더라니까요. ㅋㅋ
아주 대~~단하셨던 시어머니시지만
내 남편인, 맏아들앞에선 더없이 순한 양???ㅎㅎ
콩나물 김치국 ~ 잘했군 잘했어.
세월이 가면서 느낀건데 남이 원하는 건 될수 있으면 들어주는것이 한이 안 남더라구~
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란 단서가 붙지만~
어제 몇달 쉬었던 목공반이 다시 열렸는데 내 바로 밑 여동생이 재탕 중급반 진급을 해서 이번엔 같이 배워게 됬어.
미대를 나와서 감각이 남다른 동생 덕에 난 너무 좋고 동생이 많이 도와주니까 더 좋아.
동생은 일년쯤 배웠는데 이젠 거의 샘 조수격~ㅎ
시간이 5시에 끝나서 동생과 같이 저녁먹으며 어릴적 이야기 많이 하고 왔어.
초급반은 샘이 정해주는데로 드라이버나 톱질등 다루는법 배우는거고 연필통 만들고 조그만 소탁 하나 만들고 중급반은 본인이 디자인해서 만들고 싶은 거 만든거임.
난 식탁위에 뭘 자꾸 늘어놓게 되서 식탁위에 조그맣게 정리찬장을 만들기로 했음.
요즘 파는것도 많지만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몰두할수 있는 시간이 좋아서~
또 하나 초상화 배우고 싶은데 아직 이것 저것 정리할게 많아서 그건 좀 나중에~
초상화 배워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려서 선물로 주고 싶어.
옛날에 맨날 예쁜 영화배우 그렸거든~ㅎ
지금은 초급반 신청이 마감됬고 한달후면 또 모집 할꺼야. 근데 싸이트로 들어가서 본인이 직접 신청합니다 ~ 라고 인적사항을 써야해. 6명 모집이라 하루에 끝나버려. 주향이 손재주 많아서 배우면 아주 잘 써먹을거 같네. 일단 싸이트 알려줄께. 인천대학교 무한 상상실 (032 835 4151)
남도는 안개에 젖어 있습니다.
간밤에 비도 많이 와서 뒷산 길에 밤이 제법 떨어졌을텐데
안개가 좀 걷히면 나가려구요.
전에 우리 시어머니 하시던 말씀이
가을 산에 가는 것이 없는 친정 가는 것보다 낫다.
얻는 것이 많다는 얘기지요.
산속으로 들어가면 이런 저런 거 많겠지만 우리는 길로만 다니니까
알밤이나 다래 떨어진 것만 주워요. 매일 아침 한 주머니 불룩하게 주워 모은 것은
냉장고에서 숙성시켰다가 송편소도 하고, 약식도 하고 삶아먹기도 하지요.
밤의 값어치보다 줍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아침이면 뒷산에 올라가는 사람이 대여섯 명 있어서
앞서 간 사람이 주웠을텐데도 내가 주울 것은 또 있다는 게 늘 신기합니다.
그렇게 산 가까운곳에 사는것이 복 많은거더라구~ 산의 정기를 느끼고 산길을 걸으면서 묵상하고 결실도 한아름~ 부럽다. 안개낀 산자락을 걸으며 밤 줏는 찬정이 모습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지네.
장승포에서 거제대학교 조금 지나 지세포쪽으로 오다가 보면 옥림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곳 길가에서 바다쪽으로 보면 대마도가 잘 보입니다. 맑은 날 거길 지날 때면
대마도에서 자전거 타고 지나는 남자가 보인다느니
점심 먹는 사람 벤또에 든 우메보시가 보였다느니
허풍을 칩니다.
지난 화요일 밤 지나다 보니 그쪽 바다 불빛이 훤합니다.
요즘 거기에서 갈치잡이를 많이 한다네요. 갈치는 야행성이라서
밤에 잡는대요. 밤바다 불빛이 보기에는 가깝게 보이지만 사실은
일본수역과 거의 경계까지 나간거라고 합니다. 20여 키로 나갔다고 봐야겠지요.
밤 새워 조업하고 새벽에 입항해서 경매하고 오후 서너시면 미끼와 주낙을 준비해서
어두워지면 또 바다로 나가고.
어촌 사람들 참 부지런히 삽니다.
(수필)
사그락사그락
박찬정
실금이 가 있다.
들었다 놓을 때 마다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난다.
귀에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어디선가 자주 들어 본 소리다. 자배기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테두리에 감겨있는 철사가 녹슨 걸 보니 금이 간지도 오래되었나 보다.
사연 있는 이 장독대에 나이 먹지 않은 것은 없다.
큰 독, 작은 독, 멸치 젓국 냄새가 배어 있는 독과 소래기, 자배기, 구석에 숨겨둔 약탕관까지
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나이를 먹었을 게다.
간장 수십 독은 퍼냈음직한 아름드리 장독에서는 여전히 진한 짠내가 난다. 대가족 둘러앉은 밥상 냄새가 거기에 있다.
도시로, 외국으로 돌다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외가 가까운 동네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어릴 때 방학이면 외가에 와서 지낼 때가 많아서 외가에 대한 추억이 소복하다.
시외가는 한 때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었으니 부엌살림의 규모도 컸다.
외조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시고 외사촌들도 결혼하여 따로 일가를 이루었다.
식구가 단출해졌어도 살림은 줄지 않았다.
같이 먹던 밥상을 따로 먹을 뿐이지 간간하고 감칠맛 나는 장이며 젓국이며 장아찌는 다 그 장독대에서 퍼내갔다.
시외숙모님이 수술을 받고 큰살림 건사가 어려워졌다.
살림살이를 단출하게 정리하기로 하셨다. 장독대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들어있던 내용물을 다 퍼낸 빈 독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거추장스런 짐으로 남았다.
모두 아파트에 사니까 갖다 놓을 곳 없다는 말이 이해는 된다.
평생 식구들 세 끼니의 원천이었던 장독을 헌신짝 내버리듯 할 수 없는 외숙모님은 혼자 애를 태웠다.
“너희 집 울안이 넓으니 항아리들 가져갈래?”
솔깃했다. 내 살림에 소용될 리 없지만 장독대가 탐났다.
우리 집 마당 양지바른 곳에 단란하게 놓일 항아리들이 흐뭇하게 그려졌다.
큰 독이 세 개, 중간치 네 개와 올망졸망한 작은 항아리들, 소래기, 자배기, 크고 작은 시루 등
대가족 장독대 일습이 트럭에 실려 왔다.
장독이 놓일만한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마당 한쪽에 기우뚱, 엉거주춤 부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제 자리를 찾았다.
두 식구뿐인 살림에 우람한 독을 채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항아리 하나를 골라 밑바닥에 주먹만 한 자갈을 깔고, 솔잎을 두툼하게 깐 위에 굵은 소금을 채워 두었을 뿐이다.
장독대는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터 잡고 있던 것처럼 그럴 듯했다.
장독대만 보면 대가족이 사는 집으로 보일 터이니 방범 역할로도 한 몫 톡톡히 할 것 같다.
콩나물을 키워보려고 가장 작은 시루를 집어 들었다.
그것 역시 오랜 동안 쓰지 않고 볕 바른 장독대에서 잠 들어 있었던 터라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충격을 주면 깨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다뤘다. 쓰는 사람이 조심하여 다루기만 하면 시루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자배기도 실금에서 나는 소리가 났지만 밖의 수돗가에서 쓰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물기를 머금으니 신기하게 실금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자배기가 말짱하게 생기를 찾은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묵직한 소래기는 장독뚜껑으로 쓰고 자배기는 밖의 수돗가에 두고 쓰려고 한다.
쓰다가 보면 턱에 이가 빠지기도 하고 오래가지 않아 못 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줄창 장독대에 두어 햇볕에 삭는 것보다 쓰임새 맞추어 사용하는 것이 옹기 자배기에 대한 걸 맞는 대접 아닐까.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역할을 잃는다는 것은 점점 존재 의미도 사라지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치매로 여섯 해를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가 아흔두 살에 돌아가셨다.
처음에는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형편이 죄송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어머니는 점점 역할을 잃어갔다. 어머니의 하루 일과는 한 평도 안 되는 침상위에서 다 이루어졌다.
먹는 일, 자는 일, 배설의 일까지.
치매 앓는 어머니를 보면서 사람이 생존의 기본 역할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하는 것 같아서 두렵다.
내 나이 예순 중반이 되었다. 아직 신체나 정신이 멀쩡하다고 큰 소리 치지만 실은 삐걱거린다.
자배기 실금에서 나는 사그락사그락 소리가 나의 몸 여기저기에서도 나는 것 같다.
흙으로 빚은 옹기의 실금 소리가 사람 몸에서 날 리 없지만 조심해서 다루라는 신호인 것은 확실하다.
일인 다역으로 혹사하던 시기는 지났고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역할도 줄었다.
욕심을 부려 무리를 하면 몸이 먼저 알고 앓는 소리를 낸다. 쓰기와 쉬기를 잘 나누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자배기는 많이 쓰다가 실금이 갔고, 시루는 너무 오래 쉬다 보니 햇볕에 삭아서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
내 몸을 적절히 사용하는 일은 의사가 할 일도, 가족이 할 일도 아닌 나 자신이 할 일이다.
살아있는 동안 챙겨야 하는 쉽고도 어려운 숙제다.
이웃집 아저씨가 새벽에 뒷산 다녀 오면서 알밤 몇 알을 장독대 위에 두고 갔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두 주머니 주운 것중 한 주머니 것을 털어놓고 간듯 합니다.
가끔 있는 일입니다. 어느 날은 다래, 어느 날은 땡감
그리고 어쩌다 한번씩 그 냥반이 취미로 기르는 오리의 알도 서너개 놓고 가지요.
봄날 카톡에 알밤이 놓인 장독대 사진을 올렸더니 장독대가 정감간다고 하는 봄님이 계셔서
올봄에 쓴 글 한편 올려놓습니다. 나의 지엄한 후배 이 ㅈㅎ 의 명도 있고 해서.
지엄한 후배가 한 엄명이
지엄하네요
잘 읽었어
몸도 사그락 소리 내기 전에
조심히 사용하려고요
찬정이는 소금을 항아리에 담아서
기르는구나
사그락거리는 정겨운 장독대가 그립습니다.
막걸리 담는데는 살아 숨쉬는 항아리가 좋다고해서,
한국식품에서 파는 작은항아리가 반가워 가격을 보니 만만치않네요.
남편은 고만됐다! ㅎㅎ와인담는 두터운 플라스틱통을 이용하지요.
'함께해요 맛나요리'를 보면 자배기에서 모든것을 해결하데요.
아고 ~저 자배기 하나만 있으면 좋겠는데...
자배기가 아니고 장독항아리 뚜껑같기도하고?
그옛날 외할머니댁의 장독대를 보고있는 느낌이네요.
외숙모가 열심히 닦아대시던 장독대에 낑낑 올라가서
항아리주위를 요리조리 다니면 행여라도 깨질세라 노심초사하셨던
젖도 안떨어진 나를 데려다 가마솥 밥물로 나를 키우셨다는
외숙모가 나의 엄마인줄로 알고 자랐던 나 ~ ~
외숙모의 판판한 젖가슴에 녹두알 한알 올려져있던것 같은
외숙모의 젖가슴을 만지면서 자랐던 세월이
어느새 내가 외숙모만큼이나 나이들어버려
보고프고 그리워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네요.
지엄한 ㅈㅎ후배님의 대 ~~단한 위력!?!?
찬정이의 장독대 이야기가 지나간 추억을 되살리네.
몇십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홀로 되신 아버님을 사시던 집과 자동으로 끼어있는 장독대를 헐값으로 작은댁 형님한테 몽땅 물려주고 우리집으로 모시고 오게 됬다.
어머니가 종가집 며느리이셔서 장독대의 크기와 숫자가 대단했다.
그땐 철이 없고 살림도 뭐가 뭔지 모를때라 ~된장에 구데기가 슬었다고 산밑에 가서 항아리까지 몽땅 버리고 줄행랑쳐 올때 였으니~항아리 귀한줄도 전혀 몰랐다.
나중에 다시 남편의 고향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항아리가 아쉬워져 가까운곳 형님댁으로 갔다.
그 형님댁이 바로 남편이 낳고 자란곳이다.
형님, 항아리 몇개 주세요.
밭도 있으니 아무래도 김장도 해야하구요.
했더니 욕심 많기로 소문난 형님은 다 뭐가 담아있다며 조그만 항아리 두개를 주신다.
실은 우리꺼 도로 내놓으라는 소리인데~ㅎ
그래서 약이 올라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오르는것을 참고 할수 없이 중간 항아리를 사려 했더니 어찌나 비싼지 놀라서 자빠질뻔했다.
동생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 사지말고 있어봐. 울동네 사람들 아파트로 이사가면서 다 버리고 가."
주택에 사는 동생 덕에 제법 큰 항아리 두개를 가져오게 됬다.
이거 하나에 십만원도 넘겠다 하면서~
속으로 이런 맹추 ~ 늘 이렇게 뒷북치고 뭘 몰라 당하고 ~ 싸다 싸 ~ 하면서~
찬정이 글 읽으니 그냥 옛이야기 생각나서 써 봤네.
그리고 내 몸에 실금 벌써 갔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항아리 다루듯 살아가야겠네.
언제나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찬정이글 너무 좋고 잘 읽었어.
일찍 겉자란 나의 몸집이 지금과 변함이 없었나보다.
키로나 몸집으로나 작은 네 살터울의 단 하나인 언니(3기),
언니옷은 대물림이 못되고
서울사는 이종사촌 언니옷을 얻어와서 입곤 하였다.
그옛날 부평시장 한가운데서 태어나고 성장했던 나...
시골에서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농사지은것이나 나물들을
소쿠리에 들고나와 주루룩 앉아서 팔던 시절이 구수했다.
어떤땐 엄마가 뭘 사러 나가시면 얼른 쫒아갔었다.
행여나 뭐라도 하나 먹을것 얻어건지려나 ~~하는 속내로 ㅎㅎ
20살 연상의 엄마를 큰언니쯤으로 여겼던 소쿠리, 함지박장사 아줌마 할매들...
물론 동네상가 사람들은 모녀간으로 알고들 있었지만.
항상 엄마가 재봉틀로 만들어주던 간따꾸에 식상해서
상점에 높이 걸려있는 예쁜 원피스 하나 사달라고하면
매몰차게 거절했던 엄마가 밉고 원망스러워 씩씩대면서도
동생들처럼 떼도 안쓰고 일찌감치 포기를 해서인가?
지금도 포기를 너무 잘해서
끈기와 열정이 없는 할매가 된것은 아닌지???
어제 피곤해서 일찍 잤더니 오늘 새벽같이 눈이 떠진다. 어제의 일이 또 꿈결같다. 우쨋든 지나간 시간은 만져지진 않고 기억속에 저장만 되니 꿈 꾼거랑 거의 비슷한 느낌이다. 오랫만의 만남이라 반갑고 미리 오라며 재워주고 갈때도 재워보내는 봄님들의 그 성의가 너무 고마워 가슴이 뭉클하다. 여행사 사장님은 사진도 잘 찍고 안내도 시원시원, 감성 풍부한 맨트에 마지막 앤딩까지의 스토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냈다. 다큐감독으로 도전해도 손색이 없을듯~ 날이 흐려 낙조는 못봤지만 해질녘 사위어가는 연꽃밭의 운치를 느끼며 걷는 산책은 압권이었다. 어째서 해질녘은 그렇게 사람의 혼을 설레이게 만들까?
남편이 만든 수제막걸리가 조금 남아서
술빵 만들려고 반죽해서 지금 담요로 덮어놓고 발효중예요.
옛날, 어른들이 증편을 드시는것을 보면 이해가 안되었었지요.
저런 술떡이나 술빵이 뭐가 맛나다고...하면서 ㅎㅎ
이제 칠순이 되고보니 가끔 그런것이 그리워지네요.
시판막걸리로는 만들수가 없다지요?
생막걸리가 아니라서...가 그 이유라네요.
날씨가 을씨년스러워지니 뜨끈한 콩나물국도 그리워져서
부랴부랴 메주콩 불렸더니 양이 너무 많다고 넝감이 푸념을 ~~
해서 엊저녁엔 반틈으로 흰콩자반을 만들구요.
드디어 오늘은 남편이 콩나물시루 대신에 사용하는 통에다 앉혀줬어요.
콩이 무럭무럭 자라서 콩나물도 무쳐먹고 국도 끓일거고...냠냠냠
밖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어요.
아 ~~이게 안개비구나!
쓰레기수거일 때문에 늦저녁에 밖에 안나갔으면 안개비맛도 못볼뻔했지요.
며칠동안 비가 내린탓에 골프장도 문을 며칠동안 안열더니
오늘은 열어서 모처럼 갔더니만
숲속엔 버섯이 만발이네요.
하지만 어떤것이 먹는건지 모르겠고, 제 눈엔 모든것이 독버섯처럼 보이데요.
계란후라이처럼 생긴건 처음 보았어요.
모처럼 걷고오니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상쾌하네요.
어젠 남편이 수술한 손으로 이것저것 할까봐, 잠깐 오수에 든 동안
저혼자 데크에 놓인 테이블과 의자들 창고로 씩씩거리며 집어넣고,
그사이에 일어난 남편이 보고는 놀래서 "어디서 이런 힘이 ~~?"
걸어주는 발동으로 잔디도 깎고...
저는 요즘 뒤늦게 '수퍼할매'가 되었답니다!
제가 코로나 때문에 수도권 접근을 삼가하다가 별러서 서울에 다녀온 사흘동안
김장 배추와 무가 쑤욱 자랐어요. 탁구공만하게 맺혔던 호박도 따야 할 만큼 컸네요.
서울은 계속 비가 찔끔거렸어도 여기는 비 한 방울 안 와서
오늘 물을 주면서 대파 모종을 한단 심었습니다. 겨울 동안과 내년 봄까지 먹을 대파입니다.
인선 언니가 만든다는 술찐빵은 제가 어릴 적 우리 엄마가 늘 만들어 주던 간식입니다.
한창 자라는 고만고만한 자식들에게 세끼 밥만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고
주전부리를 줄창 사서 먹일 경제적 형편은 안되니까 엄마가 막걸리 찐빵을 쪄주셨어요.
주로 겨울 간식이었지요. 빵 반죽에 넣을 막걸리 심부름은 세째인 내가 주로 했습니다.
주전자를 가지고 술집에 가면 땅에 항아리 목까지 묻힌 술항아리에서
자루가 길고 큰 국자로 막걸리를 휘휘 저어 한번 퍼담아 줍니다.
나는 오면서 주전자 아구리로 가장 긴 손가락을 넣어 찍어먹으며 오지요.
술맛을 알아 찍어먹었겠습니까. 그냥 들고 오기 심심해서.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아랫목에 묻어 놓으면 잘 부풀었어요.
우리가 까불고 장난 치다가 빵반죽통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덮어놓은 처네이불에
반죽이 늘어붙어서 총채자루 매타작을 당한 적도 있지요.
반죽이 잘 부풀면 거기에 삶아 으깬 팥소를 넣고 아이 주먹만한 빵을 만들어 쪄놓지만
먹고 싶다고 아무때나 먹을 만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서너 시쯤에 엄마가 하나씩만 나누어 줍니다. 더 먹고 싶었지요.
엄마는 더 먹으면 저녁밥맛이 없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하나씩만 해도 다섯개, 두개씩이라면 열개, 드는 돈과 품이 만만치 않아 그렇게 둘러대셨겠지요.
그래도 겨울 방학이면 늘 빵 반죽통이 아랫목에 묻혀있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렇게 감질나던 막걸리 찐빵, 지금은 얼마든지 사 먹을 수는 있어도
그 옛날 맛은 아닙니다.
우리집 아랫목엔 대가리 꼬리 다 뗀 콩나물과 갱엿을 담은
스텐 찬합이 담요를 둘둘 두르고 따뜻하게 묻혀 있었어요.
거기서 나오는 물이 기침에 효과가 좋다고 해서
환절기에 감기가 오락가락 할때면 늘 상비약을 만들었던 것이죠.
엿이 묽어진 맛이라고나 할까...
콩나물 줄기에서 물이 다 빠져나와 엿 녹은 것과 섞이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맛이 됩니다.
잔병을 달고 살던 나는 그것도 약 같아서 먹기가 싫었는데
세살 아래 내 동생은 엄청 건강하고 먹성도 좋았어요.
그게 먹고 싶어서 하루에도 몇번 뚜껑을 열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제지를 당했죠.
약이라니까 억지로 기침을 해야 한숟갈 얻어 먹었고요. ㅎ
정작 아플 땐 먹기 싫어하던 나도 동생이 먹을 땐 덩달아 한입 꿀꺽 ~
이렇게 형제들이 어우렁 더우렁 함께 자란 것도 감사해요.
오늘 이곳 캐나다는 '추수감사절' 공휴일이지요.
항상 우리집에서 모두들 모여서, 칠면조굽고 요리해서 먹고 마시고 했었는데,
이젠 그것도 귀찮아서 모른척 지나고 있네요.
아들네랑은 일 주일 전에
우리집에서도 아니고 중국식당에서 만나서,
남편생일겸사해서 둘째손녀의 생일카드도 미리 건네주고는
"너희가족끼리 땡스기빙데이 가져라 ~~" ㅎㅎ
해서 우리부부와 전에 우리가게에서 일해주셨던 부부랑 함께
월남식당에서 점심에 만나서 국수먹고 맥커피 마심서 놀다가 헤어졌지요.
집에 와서는 씨뿌려서 키운 도라지도 캐내어서 뽀얗게 씻어놓구요.
며칠전에 두세 뿌리 캐낸 도라지로 오이랑해서 무침하니까
얼마나 맛나던지 또 캔거예요. 아직도 밭에 많이 남아있어요.
꽃들을 다~뽑아내고 도라지밭을 만들어놓으니 훨씬 영양가 있네요.ㅎㅎ
어떤이들은 놀라더라구요.
도라지씨를 뿌려도 나오느냐구요.
그러면서 씨가 나오면 달라고도...
씨도 엄청 많이 맺혔어요.
'오징어게임' 드라마 본 후에,
엊그제 국자에 '달고나' 도 만들었는데 ㅎㅎ
누름판이나 모형이 없어서(쿠키컷터도 없고) 그것까진 못하고
대충 눌러서 나혼자 먹었는데 ~~
'달고나' 의 맛은 변함이 없더라구요.
어려서 '달고나' 만들어서 동생들 해주고난 후, 태운국자 땀시롱
엄마한테 두들겨맞을 뻔 했었지요.ㅋㅋ
이젠 탄 국자를 내가 처리하니
그럴 염려는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ㅎㅎㅋㅋ
탄 국자를 우리가 처리해도 되니 맞을 염려는 없지만 ~ㅎ
거기에 따른 부모로서의 막대한 책임감 ~힘들때는 엄마 소리가 듣기 싫을때도 있더라구
한비야처럼 혼자 여행이나 다니며 살면 좋았을껄~하고
하느님께서 망각을 선물로 주셨기 망정이지 힘들었던거 일일히 다 기억하면 못살꺼야.
아기 낳을때 절대 또 안나을꺼야 하지만 자식이 주는 기쁨에 맘이 풀어져서 또 낳잖아.
오징어게임 ~다들 이야기 하길래 몰아서 다 봤는데 어째 그렇게 잔인하디야~
하다하다 그런 영화까지 만드는게 싫더라구~
원작자의 심오한 뜻~돈보다 중요한것을 알려주려는 뜻은 알겠는데 우쨋든 이젠 그런드라마 싫더라구~
돈이 필요불가결인것은 틀림없는데, 가까운친구가 돈때문에 인성이 조금씩 나빠지는것을 보는 아픔~
돈이 많아 부자가 되니까 오히려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고 더 지독해지는 모습~
여러가지 모습을 보면서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지만 나라고 뭐 그리 특별날까?
암튼 오징어게임 보고나니 넘 씁쓸해.
사람의 심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듯한 영화가 좋아.
그렇지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여우야 ~여우야 ~ ~ 뭐 하니?" 하면서 놀던 게임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자비하게 변한 게임이 되었는지 첨엔 못보겠더라구요.
해서 '갯마을 차차차' 같은 순한 드라마가 훨씬 마음 편하게 보게되더라구요.
여긴 올 가을엔 얼마나 비가 자주 내리던지,
해서 단풍도 늦게 들고있고, 모든것이 칙칙한 느낌?
내일저녁부터 또 비가 내린다네요.
10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고...
요즘 왜그리도 시간이 빨리 지나는지 모르겠어요.
테스오라버니는 알랑가모를랑가???
저도 잔혹한 이야기는 보기 싫어요.
따스하게 스며드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슬프고 아픈 이야기는 내가 겪은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나요?
오징어게임은 유투브에 요약해 놓은 15분짜리 영상으로 봤어요.
대강 스토리만 파악한 것만으로 족해요.
요즘 유행하는 것이니 대화에 끼기 위해선 대충 알아야 되니까요.
저도 그런 류의 드라마나 영화 별로예요.
우리 유년의 추억만 뺏긴 느낌이예요.
그래~ 내가 뭔가 표현 못하는것을 춘선이가 딱 찝어주네.
추억을 뺏긴 느낌~ 실제로 드라마 다 보고나면 더 그럴꺼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나 뽑기에 얽힌 아련하지만 어릴적 추억이 따스한 느낌으로 남아있던것을
잔인한 뭔가에 유린당한기분~움직이면 다 죽어버려~어째 그렇게 잔인한 드라마를 만들수 있는지
또 무엇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며 다 본다는지~미래가 더 암울하게 느껴질 뿐~
돈 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다른 방법으로도 알릴수 있는데 말야.
첫아기를 임신하고 시루팥떡이 땡기더라구요.
아직 남편은 한국에 있고,
시할머니 모시고사는 언니집에서 저는 얹혀살고 있을 때였지요.
떡이 먹고싶으면 사먹으면 되지않나? 하시겠지만
그당시만해도 한국식품은 토론토도 꽤나 떨어진 곳에 한군데 밖에...
언니의 시할머니 눈치도 보이고 또
그렇다고 언니에게 말할 처지도 못되고 꾹 눌러참았었지요.
ㅎㅎ그래도 태어난 아들은 짝눈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
그때 못먹어 섭섭했던 시루팥떡은 두고두고 껌딱지처럼 붙어다녀서
남편은 나중엔 짜증을 내더구먼요.ㅋㅋ
해서 아직도 한국식품에 가서 시루팥떡이 눈에 띄면
얼른 한팩을 집지요.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뜯어먹으면서
"으 ~음~ ~ 꿀맛 !오매 조은거 ~~~"
"그래 니혼자 실컷 묵으라!"
헌데 우리아들은
바람떡이 좋다고 하네요???
인선 언니는 어릴 때 집에서 떡 방앗간 하셨으니
떡을 물리도록 잡수셨을텐데도 떡을 좋아하시네요.
저는 지금 약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몇명이 하루 나들이를 가는데
아침 일찍 떠나기 때문에 아침 요깃거리로 준비하지요.
약식은 생각보다 참 쉽습니다.
불려 놓은 찹쌀은 보를 깔고 푹 찐 다음 찐 찰밥에
생율과 대추를 저며 넣고 흑설탕과 진간장을 넣어 간과 단맛이 들도록
한두시간 재워두었다가 한번 다시 찝니다.
다 되면 잣과 참기름과 계피가루(기호에 따라)넣어 골고루 섞으면 끝.
요즘은 다른 견과류도 넣고 건포도나 캔 완두콩을 넣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밤 대추와 잣만 넣습니다.
섞을 때는 주걱보다 속에 면장갑끼고 일회용 장갑 낀 손으로
살살 섞어야 덩어리지지 않고 고루 섞입니다.
말로만 나불 나불 아는 척 하지 말고 맛도 보이고 싶은데
원체 멀어서 원.
ㅎㅎㅎ떡방앗간집 딸이라고 싫컷 떡을 먹을수는 없지유.
직접 떡을 만들어서 파는 곳이 아니고,
가져온 쌀을 빻아서 떡을 만들어주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설날의 가래떡을 뽑는 날이면
기계속의 떡반죽은 맛나게 뜯어먹던 기억이 새롭네요.
첫째 손님은 두번째로 온 손님한테 온전히 기계속의 떡반죽이 가니까 ~
손해를 보게되고, 마지막 손님은 떡방앗간에 떡반죽을 뺏기는 셈이 되어서 손해를 보지요.ㅎㅎ
그러니까 첫번째 손님도 되지말고 마지막 손님도 되지 마세요.
하긴 요즘은 아예 다 만들어서 팩으로 포장되어 나오니까(?)
그럴 염려는 없겠지요?
몰랐어요, 약밥을 두번 쪄서 만드는 줄은...
약밥도 요즘에 시도해 보았지 전엔 한번도 해보질 않았었으니...
찬정님처럼 다음엔 한번 도전해 볼게요.
해서 실패하면 물어줄라나?ㅎㅎㅋㅋ
위에 올려 놓은 것은
주제가 있는 놀이터, 1. 우리집 별미 이야기에
명옥 언니가 올려 놓으신 약식 레시피를 복사해 온 것이에요.
저도 이대로 따라해 봤는데 아주 맛있어요.
계량은 밥솥에 따라 온 컵으로 하면 됩니다.
저는 압력솥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찜솥에다 쪄서 먹어요.
도시락에 담는 다는 말은 소분해서 나눠 줄 때 일회용 도시락을 사용하신다는 뜻이에요.
조런 비율로 만드는 거군요 톡방에 올라온 레시피나 정보는 보다가 나에게 톡방에다 보내 저장하는데 요 레시피도 어디 있다는 걸 기억하기로 했어요
코스코 온라인을 검색하던 남편이 "여기서 관 판다!"
설거지를 하다가 값이 얼마냐고 물었지요. 4천 달러라네요.
좀 싼건 없느냐, 천 달러 아래짜리는 없느냐 ~~하면서 계속 설거지를 했지요.
"싼거 있으면 뭐할라꼬?"
하나 주문해서 사다놓게..ㅎㅎ
새해가 되면 값이 오를것 아닐까?
관이 오면 통짜일까 아니면 조립식일까? 그것도 궁금하다하니
"관을 판다고 말 꺼낸 내가 죽일 놈..."
하나 사다놓고 매일 그안에 드러누워 죽음연습해도 좋을것 같은 생각이 드네 ~ ~
"아마 넌 그 안에 누우면 1분도 안되서 코를 드렁드렁 골것 같다!"
낄낄대면서 장차 들어가 누울 '관' 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있던 난 엽기녀???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자고
간판을 이렇게 달고 새 방을 열었습니다.
그냥 묵혀두면 옹이기 박여 계속 아프게 하는 젊은 날의 속앓이 기억들
여기다 모두 풀어내고 후련해지길 바랍니다.
= 앞의 방 정리합니다. =
* 댓글상 -------------- 인선 언니
* 방이름상 ------------ 찬정이(로열티), 현숙이
* 대문상 -------------- 춘서니
이 방에서 속 시원한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