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걸레를 빨다가 문득,  돌아가신 시 외할머님이 생각났다.

대가족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시 외할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85세 되신 그분은, 걸레를 정말로 백옥같이 빨아 놓으셨다.

특별한 표백제를 쓰는 것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삶는 것도 아니신데,
누런 빨래 비누 한 장으로 행주보다 더 깨끗하게 빨아놓으시곤 하셨다.

할머님은 하얀 걸레에 엄청난 집착을 보이셨다.
사용안한 걸레도 틈만 나면 빨아놓으시고 흐믓하게 쳐다보시며 감시를 하셨다.
걸레 사용 후 시원찮게 빨아놓는다고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우리는 할머님 계실 때는 걸레를 사용할 엄두조차 못냈다.

걸레가 아니라 아주 상전이었다. ㅎㅎ

그래도 내게는 후한 편이셨는데, 
그건 장바구니 속에 얹혀온 할머님의 간식거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열 여섯에 시집와서, 고급으로 먹고 살던 내가......."로 이어지는 같은 레퍼토리를
 도망가지 않고 들어드린 공로 때문이었을까? ㅎㅎ

오 년 후 분가하면서,
철없는 손주 며느리는, 서툰 일에서 해방된다는 것,
특히 뽀얀 걸레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어찌나 홀가분하던지
할머님의 서운함 따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할머님은 운명하시기 전, 내 손을 잡으시고 힘들게 말씀하셨다.
"에미야, 복 받거라." 

아,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부족한 손주며느리를 사랑으로 챙기셨던 분,
이제 그분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그저, 할머님 성품 닮은 뽀얀 걸레만이 기억될 뿐이다.

"할머님, 제가 빤 걸레 영 맘에 안드시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