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스님, 만취하면 스승인 만공스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다.

“만공? 그게 도인이야? 알기는 뭘 알아!”

하루는 만공스님, 고봉스님 방 앞을 지나가다가 이 험담을 들었다.

만공스님, 문을 벌컥 열고 외쳤다.

“고봉! 자네는 왜 내 욕을 하는가!”

고봉은 놀라서 답했다.

“스님, 제가 왜 스님에게 무슨 욕을 했습니까. 왜 스님을 욕합니까. 저는 만공을 요한 것이지 스님을 욕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만공.

“그럼 만공과 나는 같은가? 다른가?”

고봉

“할!”

만공 미소 지으며 ‘허, 많이 취했군, 어서 자지’ 자리를 펴주고 돌아가셨다.


가야할 길 구만리에서 겨우 문고리 잡고, 문을 연 나로서는 선사들의 말씀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어록을 가지고 혼자서 종일 즐겁게 지낸다. 선가의 보전 한 권이면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

“저는 만공을 욕한 것이지 스님을 욕한 것이 아닙니다.”

이 대목은 읽는 재미로 치자면 압권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변명하는 것처럼 보여 재미있다. 그러나 스스로 덫에 걸렸다.

본래무일물을 알고 있었다면, 아니 본래무일물을 깨닫고 자신의 것이 되어 있었다면 아무리 취했다손 치더라도, 스님과 만공을 그렇게 갈라놓겠는가.

뒤늦게나마 스님과 만공이 ‘같으냐? 다르냐?’는 질문에서 할!로 수습이 되었다.

잠자리를 깔아준 만공스님.

이 문답은 너무 유쾌하다.

그렇지만 이 문답 끝에 ‘그렇다면 할의 무게는 몇 근이냐?’는 질문에 도달하면 명랑해진 마음은 간곳이 없고, 다시 눈앞에는 갈길 구만리다.

* 내가 좋아하는 임현담.
어느 날 책방에 가서 이리뒤적, 저리뒤적이다 만난 책제목
'텅빈 인도'
그래서 만나게 된 임현담(그 책의 저자).

나도 그렇게 고승들의 선문답을 읽으면서
(세상의 언어 밖얘기)
그냥 재밌고 통쾌하고 그랬었어.
고승들의 어록을 가지고 종일 즐겁게 지낸다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 퍼 왔다.

선선해지는 이 가을,
세상 안에서 세상 밖을 쳐다보며
내 온 마음이 기쁠일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