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럼'<안녕> 한마디에 따뜻하게 미소짓는 나라, 이란

 

살벌한 사전 정보에 겁먹었지만 사진 촬영 뭐라 않는 테헤란 공항
이방인과 수박 나눠 먹고 차 대접… '코레'란 말에 반색하고 손 흔들어
알코올 없어 오히려 즐거운 여행… 그 밝은 얼굴들, 오래 기억될 것

 

 

두 주 전 이란 여행을 떠나기 앞서 함께 갈 일행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여행자 보험을 들려고 알아봤더니 이란에 간다니까 보험사들이 가입을 거절하더라는 얘기였다. 다른 일행이 보험사 한 곳을 찾아냈지만 보통 몇 천원이면 되는 보험료로 3만원을 요구했다. 결국 일행 중에 여행사 사장이 단골 보험사를 졸라 1만3000원짜리 보험에 가입했다고 알려왔다. 찜찜한 생각이 들어서 여행자 보험을 생전 처음으로 샀다.

 

일행끼리 주고받은 이란 여행 정보도 살벌했다. 입국할 때 달러와 카메라, 노트북을 신고하지 않으면 압수당한다. 술은 한 방울도 들여갈 수 없다. 관광지 아닌 곳에서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체포된다. 외국인이라도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자는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긴 옷으로 팔다리를 감춰야 한다. 남자도 반바지와 민소매 윗도리를 입지 말라. 옷차림이 '불량'하면 경찰서에 끌려갈 수 있다….

 

이란은 1979년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 혁명' 이후 반미(反美) 이슬람 신정(神政) 일치 체제를 이어 온다. 서방(西方)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받은 지도 30년이 넘었다. 핵 개발을 밀어붙이면서 7월부터는 EU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다. 이란 사람들이 이방인을 보는 눈길도 차갑겠거니 했던 선입견은 테헤란 공항에서부터 깨졌다.

 

 

입국 심사대로 걸어가면서 여자 일행은 서둘러 머리에 스카프를 썼다. 한 명만 스카프를 준비해오지 않아 맨머리인 채였다. 비행기에서 함께 내린 이란 여인들이 다가와 서로 이슬람 머릿수건 히잡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한 여인이 손가방에서 여벌 히잡을 꺼내 미소와 함께 "선물"이라며 건넸다

 

 

입국하면서는 출입국 신고서는커녕 세관 신고서도 없었다. 입국 심사대 직원은 질문 하나 없이 도장을 찍어줬다. 짐 검사도 큰 가방만 검색대를 통과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일행이 공항 사진을 찍어댔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입국장에서 지나가는 이란 미인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선선히 응했다. 사람들은 시끌벅적 플래시를 터뜨리는 한국인 열댓 명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14세기 솔레이먼왕이 여덟 아내를 거느리고 살던 이스파한의 궁전은 널따란 정원과 숲에 에워싸여 있었다. 그곳 풀밭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앉아 쉬고 있었다. 어느 가족의 사진을 찍자 소녀가 영어로 "차를 마시고 가라"고 했다. 궁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들르겠다고 했더니 소녀는 길목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열다섯 살 보테미는 근처 아흐마밧이라는 동네에 사는 고교 2학년이었다. 이슬람 주말인 목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나와 차를 마신다고 했다. 보테미는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엄마·이모, 두 외삼촌을 차례대로 소개해줬다. 아버지는 수퍼마켓에서 일하느라 빠졌다고 했다. 소녀는 가스버너 위에서 끓는 차를 따라 호박씨 구이와 함께 대접했다

 

보테미는 "우리 가족은 이란 중산층"이라며 "가족·친척과 즐겁게 지내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대학을 가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소녀는 "이란 사람은 손님을 좋아한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고 했다.

 

 

열흘 여행길 내내 이란 사람들이 먼저 인사해줬다. "친(중국)이냐, 저폰(일본)이냐" 묻고는 "코레(한국)"라는 대답에 반색했다. 젊은이들은 곧잘 "하이"라고 영어 인사를 했다. 거리를 걸을 땐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차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어줬다.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물어 왔다. 사진을 찍으면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무표정하던 사람들도 "살럼(안녕)" 한마디에 낯빛을 풀었다. 타브리즈의 전통 시장 바자르를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한 사내가 "CIA 스파이"라고 소리친 것이 유일한 '박대'였다

 

 

이란 여행 정보는 대부분 과장되거나 잘못된 것이었다. 이슬람식 옷차림도 이란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도 술을 구경할 수 없는 금주(禁酒) 국가라는 것만은 정확했다. '무(無)알코올 여행'도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술기운에 해롱대는 명정(酩酊)이 아니라 명징(明澄)한 머리가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이란에선 찡그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모두가 밝고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 얼굴들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며, 살아가는 나날 문득문득 따사롭게 떠오를 것이다.

 

<2012, 6,27 일자   조선일보 오태진 수석 논설위원   사내 칼럼 에서  가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