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서 머무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는데"민10:11~13

동쪽 유다 진영(유다 잇사갈 스불론)->성막을 거두어 멘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남쪽 르우벤 진영 (르우벤 시므온 갓)->성막을 멘 고핫자손->서쪽 에브라임 진영(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북쪽 단 진영 (단 아셀 납달리)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할 때에는 그들의 군대를 따라 나아갔더라"민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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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녀들이 여호와의 군대를 따라 전진하듯이 오늘날의 자기 백성들도 구름 같이 우리를 에워싼 십자가의 군대를 따라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살다보니 정작으로 십자가 군대가운데서 양육시켜야 할 제 아들을 잘 돌보지 못해 어느새 여호와 군대(교회 공동체)의 궤도에서 벗어나 버린 현상을 볼 때 마치 길 잃어버린 양을 보는 듯하여 늘상 가슴이 짖눌려 부르짖게 됩니다

근데 민수기 10장에 기록된 행진 수순과 민수기 2장에 기록된 행진 수순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수순이 바꿔지게 된 것일까요? 

들려진 말씀을 현실 속에 적용하는데에는 지혜와 명철이 절실히 요구됨을 깨닫게 됩니다.

기록된 민수기 2장엔 동쪽의 유다 진영 뒤에 남쪽의 르우벤 진영인데 

실제 현장에서는 동쪽의 유다 진영 뒤에 세번 째 수순인 레위 진영의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두번 째 수순으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레위인(고핫 게르손 므라리) 진영은 세번 째로 출발 할 것인데 고핫을 뺀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앞서 출발하는 원인은 

성막과 성물의 거룩성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고핫인들이 취급하는 성물들은 그들조차 보거나 만지면 죽습니다 
심지여 성소안을 잠시 들여다 보기만해도 죽임 당합니다. 
때문에 제사장들이 먼저 성소에 들어가 해달로 덮고 성물에 따라 청색 홍색 자색으로 덮고 해달 덮개로 덮은 후에야 체에 꿰어 어깨로 메고 운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하니 성막 판대기들과 천들이 앞서 가서 구름이 멈춘 곳에 성막 텐트를 치게 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러하면 시간 차를 두고 네 번째로 도착하게 되는 고핫인들이 성물들을 맨 땅에 놓는게 아니라 성막 안에 놓게 됩니다
자연히 백성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예방하게 됨으로 거룩한 여호와로부터의 진노를 면하게 하라는 직무를 이행한 셈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앞 뒤 수순을 바꾸어 행진한 현장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 따라 했다고 저술하셨습니다(민10:13)

말씀을 문자대로 적용한다는 것과 말씀이 지향하는 바 그 속 뜻을 알아차려 적용한다는 것은 이렇듯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는 말씀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또한 구름으로 얼마든지 진영의 행군과 멈춤을 통솔하실 수 있는 여호와께서 굳이 사람으로 은 나팔을 만들게 하사 제사장이 부는 그 나팔 소리를 통해 인도함에도 여호와의 갈망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이 곧 지혜와 명철이라 여깁니다

이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진정 운명을 같이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과 함께 쉬거나 함께 행군하는 운명체라는 걸 분초마다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팔이 내는 소리와 그 소리의 어떠함에 따라 행군 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인지, 절기를 지켜야 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나팔은 성물로써 성막 동쪽에 진을 친 제사장들이 대대로 불도록 율례로 정하셨습니다
그들의 진영은 성막의 구름을 가장 가까이서 보기에 또한 구름의 동태를 가장 신속히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려 하심에 당신 혼자 일하시지 않고 나팔 부는 제사장들과 그 나팔 소리에 일제히 성막 텐트 말뚝과 각각 자신들의 진영 텐트의 말뚝을 빼는 레위인들과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시는 분이라는 걸 보여 주십니다.

"자기 길"을 가려면 이렇듯 각각 일사분란하게 장막 말뚝을 빼야했기 때문에 "자기 길"이란 말의 어원이 장막 말뚝을 빼다에서 나왔다합니다

우린 자꾸만 안주하려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군대는 나그네 길 위를 행군하는 자들로 뒤로 물러서 침륜에 빠지는 자들을 기뻐하시지 않는 여호와를 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 공동체를 향하여 가는 것도 일상의 말뚝을 빼고 여호와의 군대로 행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성막 구름의 동태를 제사장들이 잘 분변하여 광야 교회 성도들에게 은 나팔 소리를 정확하게 불었듯이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들인 우리도 여호와의 영광과 임재의 구름 덩어리인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전해야 합니다.

모세가 장인에게 여호와의 복주심에 근거하여 함께 갈 것을 권합니다. 
자기 친족고향으로 가겠다해도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간하는 말을 들어 보면 모세가 자신의 체험을 지극히 객관화 시킨 상태에서 그 사람의 눈 높이로 권면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여호와의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성도조차 자기 친족 자기 고향에 안주하려는 성향을 삭제시키지 못하니 그 누구를 붙잡고 본토 친척을 떠나 하나님 나라 군대가 되여 함께 가자고 강권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예외없이 자기 고향 부모 형제 친족들의 끌어당김에 쉽게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중력처럼 작용하는 본토 혈육의 힘을 말의 힘줄을 끊듯 끊어야 들어 갑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가는 나라이기에 모세는 여호와의 복과 은혜에 근거하여 함께 가면 우리를 후대해주시대로 후대해주겠노라고 간청합니다

이웃과 함께 하는 것과 이웃을 의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는 자는 이웃과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갈 수 있는 지혜와 명철이 생깁니다

결국 사사기 1:16절에 보면 겐 사람 후손들이 유다 지손과 함께 언약의 땅인 종려 나무 성읍에 올라가서 거하게 되는 걸 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궤가 삼 일 길을 앞서 인도하여 이스라엘이 안식 할 곳을 찾아 주었는데도 악한 말 곧 원망하는 말로 여호와의 진노의 불에 불 붙게 된 것을 봅니다.

홍해 건너 광야 삼 일 째 마라에서 원망했던 그 모습이 반복됩니다.
어쩜 그리도 징하게 반복되는지요?
솔직히 사람인 나도 반복되는 악한 원망 불평의 말이 듣기 싫고 심지여 그런 사람 곁에는 가기도 싫습니다.

첫 번째 원망시에는 나무를 던져 치유해주셨지만 이번에는 벌을 주십니다.
이젠 무리들이 아닌 여호와의 군대로써 훈련 중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담 더 성막과 증거궤와 함께 하는 거룩한 진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불시련과 나팔 재앙이 없다면 자신에겐 아직 여호와의 증거궤와 성막이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빨리 발견하는게 좋을 것입니다.

그저 냉큼 냉큼 단 물 주시고 고쳐 주시고 위로만 해주시는 하나님만 알고 있다면 아버지께 간절히 구하십시요.

아버지!
불로 연단한 금을 사게 하소서
흰 옷을 사게 하소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이게 하소서
무엇이 불로 연단된 금인지 디베랴 여정에서 배우게 하소서.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라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 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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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 민10:1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