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란은 천주교,개신교,불교 빛사랑으로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각 카테고리에 맞게 선별하여 글을 올리시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첫 글을 올릴 때, 너무 맘이 바쁘고 아파서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서 정말 저의 고민상담은 그냥 멀어졌군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제가 목요일마다 말씀을 전하러 가는 소년원에 있던 아이이고, 말씀을 통하여변화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소년원을 나오게 되고나오자마자 또 이 일로 인해 법대로 조처하면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야하는 상황이어서 많이 아팠어요! 저의 고민은 핸폰 하나 훔친 것으로 아이를 감옥에 보낼까 말까하며 용서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랑이 저에게 필요한 것이냐 였는데.. 급하게 몇 자 적다 보니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깟 핸폰이야 당연히 또 다른 것을 쓰면 되지요.
저희 쎈타에서 날마다 점심을 해서 먹이는데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이 없어져서 한달에 두 번씩 새 칼을 사야 하는데, 그래도 모든 스태프들이 모두 묵묵히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진정 회개하고 돌아 올 날을 기다리며 주께 나아갑니다. 칼을 다달이 사다 주면서.. 물론 그 칼은 아이들 사이에 흉기로 사용되어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벌써 지난달만 해도 저희가 쎈터에서 잃어버린 핸폰이며 카메라며 현찰등, 수 없이 많은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다르게 역사를 하시고 계시지요.
잃어버린 핸폰 두개는 경찰에 가서 찾아 왔고, 카메라는 아이가 저희모임에 와서 말씀을 듣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서 우리에게 고백을 하고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였기에 3월에 가져간 카메라를 판 상점에 가서 5월에 다시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성령의 역사하심이지요. 너무나 보람된 일이라서 눈물로 기쁨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제가 섬기는 Safina(방주) 선교회는 독일선교사들과 팀 사역을 하는데 외국인이 5명, 현지인 스태프가 7명 모두 12명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사역을 결정하지요. 다 저보다 선배들이고 진정 저들을 사랑하는 선교사들이고 현지인 스탶들입니다. 저들이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하면 저는 아파도 보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은 거의 정확하기에, 그리고 또 기도하고 결정하기에. 그래서 오늘 아침 제가 용서하자고 할 때 저들이 반대하면 내가 설득할 그 무엇이 있어야 했는데 제게 전혀 그것이 없어서 잠을 설친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감옥에 보내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보내 놓고 가서 3년을 썩고 나와라 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면서 그 시중을 다 드는 것이지요, 오히려 쉽게 용서하고 거리에 다시 나 몰라라 내버리는 것보다 훨씬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냥 무조건 일흔 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하자 라고 말하면 용서를 하는데 어떻게? 라는 질문이 따르고 한국이나 뉴질랜드처럼 부모가 집에 있어서 돌려보내면 누군가가 그를 보호해주고 사람을 만들어 줄 기회나 환경이 주어졌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많은 경우에 부모형제도 없고 돌아 갈 집도 없기에 거리에 그냥 ‘방치’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쎈터로 오라하고 또 온다하고 약속을 천만번 하고 보내도 본인이 오기 싫어서 안 오면 억지로 데려 올 수 없고 또 그를 찾으러 온 거리를 헤매기에는 인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용서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에따른 고백이 따를때 용서가 성립되지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용서가 아니라 방관이 되고 말지요. 아 아이는 두 경찰을 데리고 자기가 가져다가 판 상점이 기억이 안난다 하며 하루종일 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경찰이 "너 총쏴 죽인다" 라고 말하게 만든 아이...
실제적으로 아이마다 케이스가 다르고 결국은 용서를 하고 주의 사랑을 베풀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지만 그 방법은 다 각각이거든요. 어떤 아이는 감옥에 안 가게 하는 것이 사랑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가게 하는 것이 사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경우에는 자유가 박탈되는 감옥에 보내기에는 너무나 측은한,, 그래서 어떻게 좀 해 보고 싶은 인간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여 제 안에 요동함이 있었습니다.
에고 왜 이렇게 설명이 어려울까요? 여기 상황은 정말 와 보지 않고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 또한, 제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래라서 표현력이 많이 떨어져서요, 또 남편이 한국분이 아니다 보니, 한국말 할 기회도 잘 없어서,,
하여간 저는 그 아이 때문에 요 며칠 한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아이를 바라 볼 때,, 그 떨고 있던 그 모습이 바로 내가 주 앞에 섰을 때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밟아 온 길을 되돌아보면 정말 감히 얼굴을 들고 주를 바라볼 수조차 없는 내 자신,,, 수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임재를 부인하고 그 분의 능력을 부인하고 그 분의 살아 계심을 부인한 사실이 내 앞에 보여질 때, 그래서 주 앞에 너무나 송구스러워 저 아이처럼 고개도 못 들고 말더듬이로 떠듬떠듬 한마디씩 내가 잘못한 일들을 변명하려 할 때에,
내가 저를 그냥 꼭 끌어 안아주고 싶었던 것처럼. 주님은 이미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보시며 함박웃음을 짓고 계실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마음.. 조건 없는 사랑.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난 왜 저 아이를 사랑하나?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저가 거리의 아이들 중에 한명이라는 사실, 주님이 내게 부탁하신 아이들 중에 끼어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그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장이 외국선교사들이 오히려 아이들 버릇을 나쁘게 들인다고 질타를 한다 해도 그런 것쯤 얼마든지 들어도 괜찮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거리에서 만나서 주님을 소개하고, 또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그래서 데려다가 학교도 보내고 기술도 가르치고 하면서 한 집에서 한 식구처럼 2-3년을 데리고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싸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 일은 저희에게 참으로 배신감과 아픔을 주었지요. 그래도 누구하나 잡아서 버릇을 고치자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 아픔을 참으며 묵묵히 용서하기로 하고 주 앞에 찬양을 올렸지요. 우리도 주님을 배신할 때마다 주께서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가 얼마 후 다시 돌아 왔고, 저희는 너무나 기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받아 들였고, 얼마 후 그는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식구가 모두 울었습니다. 다시 배신을 당해서가 아니라 이제 저가 스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 너무나 그 영혼이 불쌍하고 안 되서 찬양하면서도 아파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를 체험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저들의 무지함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당신이 겪는 아픔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무리를 바라볼 때 너무나 가엽고 측은해서 무리를 위해 기도하실 수밖에 없었던 주님!
눈물로 밤을 지새우실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 땅에서의 날들.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주님!
하나님의 두 성품
절대 공의하심과 절대 자비하심이 서로 팽팽하게 공존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으셨던...
오 주님,, 오늘도 제가 십자가 앞에 서 있나이다.
여러 사역 중에서 중심 되는 공동체 사역. 저희가 지금 데리고 사는 아이들이 3공동체 합해서 50여명, 그들 중에서 다들 배신하며 떠나간다 해도 그 중 10%만 진실로 주를 따르는 제자로 남는다면 저희는 행복하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맡겨진 일들을 기쁨으로 해 나갑니다.
아니 1%만 남는다 해도 우린 오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며
골고다에서 흘리신 선명한 주님의 피는 저들을 위해서도 흘려지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리려 그 크신 십자가 사랑을 알리려
오늘도 우리가 여기 주님이 있으라 명하신 곳에 서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내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내게 알게 하신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제가 첫 글을 올릴 때, 너무 맘이 바쁘고 아파서 제대로 상황 설명을 하지 않아서 정말 저의 고민상담은 그냥 멀어졌군요! 왜냐하면 그 아이가 제가 목요일마다 말씀을 전하러 가는 소년원에 있던 아이이고, 말씀을 통하여변화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는 소년원을 나오게 되고나오자마자 또 이 일로 인해 법대로 조처하면 감옥으로 다시 들어가야하는 상황이어서 많이 아팠어요! 저의 고민은 핸폰 하나 훔친 것으로 아이를 감옥에 보낼까 말까하며 용서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랑이 저에게 필요한 것이냐 였는데.. 급하게 몇 자 적다 보니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깟 핸폰이야 당연히 또 다른 것을 쓰면 되지요.
저희 쎈타에서 날마다 점심을 해서 먹이는데 부엌에서 사용하는 칼이 없어져서 한달에 두 번씩 새 칼을 사야 하는데, 그래도 모든 스태프들이 모두 묵묵히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진정 회개하고 돌아 올 날을 기다리며 주께 나아갑니다. 칼을 다달이 사다 주면서.. 물론 그 칼은 아이들 사이에 흉기로 사용되어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벌써 지난달만 해도 저희가 쎈터에서 잃어버린 핸폰이며 카메라며 현찰등, 수 없이 많은데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다르게 역사를 하시고 계시지요.
잃어버린 핸폰 두개는 경찰에 가서 찾아 왔고, 카메라는 아이가 저희모임에 와서 말씀을 듣고 스스로 죄책감을 느껴서 우리에게 고백을 하고 경찰에 가서 신고를 하였기에 3월에 가져간 카메라를 판 상점에 가서 5월에 다시 찾아오기도 했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성령의 역사하심이지요. 너무나 보람된 일이라서 눈물로 기쁨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제가 섬기는 Safina(방주) 선교회는 독일선교사들과 팀 사역을 하는데 외국인이 5명, 현지인 스태프가 7명 모두 12명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사역을 결정하지요. 다 저보다 선배들이고 진정 저들을 사랑하는 선교사들이고 현지인 스탶들입니다. 저들이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하면 저는 아파도 보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판단은 거의 정확하기에, 그리고 또 기도하고 결정하기에. 그래서 오늘 아침 제가 용서하자고 할 때 저들이 반대하면 내가 설득할 그 무엇이 있어야 했는데 제게 전혀 그것이 없어서 잠을 설친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감옥에 보내는 것도 우리에게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보내 놓고 가서 3년을 썩고 나와라 하는 것이 아니고, 들어가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면서 그 시중을 다 드는 것이지요, 오히려 쉽게 용서하고 거리에 다시 나 몰라라 내버리는 것보다 훨씬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냥 무조건 일흔 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하자 라고 말하면 용서를 하는데 어떻게? 라는 질문이 따르고 한국이나 뉴질랜드처럼 부모가 집에 있어서 돌려보내면 누군가가 그를 보호해주고 사람을 만들어 줄 기회나 환경이 주어졌다면 문제가 다르지만 많은 경우에 부모형제도 없고 돌아 갈 집도 없기에 거리에 그냥 ‘방치’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쎈터로 오라하고 또 온다하고 약속을 천만번 하고 보내도 본인이 오기 싫어서 안 오면 억지로 데려 올 수 없고 또 그를 찾으러 온 거리를 헤매기에는 인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용서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에따른 고백이 따를때 용서가 성립되지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용서가 아니라 방관이 되고 말지요. 아 아이는 두 경찰을 데리고 자기가 가져다가 판 상점이 기억이 안난다 하며 하루종일 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경찰이 "너 총쏴 죽인다" 라고 말하게 만든 아이...
실제적으로 아이마다 케이스가 다르고 결국은 용서를 하고 주의 사랑을 베풀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지만 그 방법은 다 각각이거든요. 어떤 아이는 감옥에 안 가게 하는 것이 사랑이고 어떤 아이에게는 가게 하는 것이 사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경우에는 자유가 박탈되는 감옥에 보내기에는 너무나 측은한,, 그래서 어떻게 좀 해 보고 싶은 인간의 생각이 나를 지배하여 제 안에 요동함이 있었습니다.
에고 왜 이렇게 설명이 어려울까요? 여기 상황은 정말 와 보지 않고는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너무 많다 보니.. 또한, 제가 한국을 떠난 지 오래라서 표현력이 많이 떨어져서요, 또 남편이 한국분이 아니다 보니, 한국말 할 기회도 잘 없어서,,
하여간 저는 그 아이 때문에 요 며칠 한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서에서 아이를 바라 볼 때,, 그 떨고 있던 그 모습이 바로 내가 주 앞에 섰을 때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밟아 온 길을 되돌아보면 정말 감히 얼굴을 들고 주를 바라볼 수조차 없는 내 자신,,, 수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임재를 부인하고 그 분의 능력을 부인하고 그 분의 살아 계심을 부인한 사실이 내 앞에 보여질 때, 그래서 주 앞에 너무나 송구스러워 저 아이처럼 고개도 못 들고 말더듬이로 떠듬떠듬 한마디씩 내가 잘못한 일들을 변명하려 할 때에,
내가 저를 그냥 꼭 끌어 안아주고 싶었던 것처럼. 주님은 이미 두 팔을 벌리고 나를 보시며 함박웃음을 짓고 계실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마음.. 조건 없는 사랑.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난 왜 저 아이를 사랑하나?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저가 거리의 아이들 중에 한명이라는 사실, 주님이 내게 부탁하신 아이들 중에 끼어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그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장이 외국선교사들이 오히려 아이들 버릇을 나쁘게 들인다고 질타를 한다 해도 그런 것쯤 얼마든지 들어도 괜찮습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거리에서 만나서 주님을 소개하고, 또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그래서 데려다가 학교도 보내고 기술도 가르치고 하면서 한 집에서 한 식구처럼 2-3년을 데리고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싸가지고 도망갔습니다. 그 일은 저희에게 참으로 배신감과 아픔을 주었지요. 그래도 누구하나 잡아서 버릇을 고치자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다 아픔을 참으며 묵묵히 용서하기로 하고 주 앞에 찬양을 올렸지요. 우리도 주님을 배신할 때마다 주께서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가 얼마 후 다시 돌아 왔고, 저희는 너무나 기뻐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받아 들였고, 얼마 후 그는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식구가 모두 울었습니다. 다시 배신을 당해서가 아니라 이제 저가 스스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 같아서, 너무나 그 영혼이 불쌍하고 안 되서 찬양하면서도 아파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를 체험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저들의 무지함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당신이 겪는 아픔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무리를 바라볼 때 너무나 가엽고 측은해서 무리를 위해 기도하실 수밖에 없었던 주님!
눈물로 밤을 지새우실 수밖에 없었던 많은 이 땅에서의 날들.
하나님의 본체이셨던 주님!
하나님의 두 성품
절대 공의하심과 절대 자비하심이 서로 팽팽하게 공존하여
스스로 십자가를 지실 수 밖에 없으셨던...
오 주님,, 오늘도 제가 십자가 앞에 서 있나이다.
여러 사역 중에서 중심 되는 공동체 사역. 저희가 지금 데리고 사는 아이들이 3공동체 합해서 50여명, 그들 중에서 다들 배신하며 떠나간다 해도 그 중 10%만 진실로 주를 따르는 제자로 남는다면 저희는 행복하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맡겨진 일들을 기쁨으로 해 나갑니다.
아니 1%만 남는다 해도 우린 오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은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피조물이며
골고다에서 흘리신 선명한 주님의 피는 저들을 위해서도 흘려지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리려 그 크신 십자가 사랑을 알리려
오늘도 우리가 여기 주님이 있으라 명하신 곳에 서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내가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유입니다.
그것을 내게 알게 하신 주님을
이 시간 찬양합니다.
2005.06.14 01:59:22 (*.252.155.7)
선배님! 날마다 울 일이 있네요..
어쩌면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까요?
사모님 울고 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되서 지금도 눈물이 줄 줄..
거리에 나 앉은 아이들 보면서
다 데려다 먹이고, 다 데려다 돌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도 않아서 늘 맘이 울고 다니는데...
아무리 아무리 상담을 해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본드를 입에 물고 가다가 우리를 보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터지는데...
누가 에이즈로 죽어 무덤을 파아 할 때는 더 싫은데...
오늘처럼 누가 전화에 대고 울면 전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요? !! ㅠ ㅜ
저는 분래 남이 아픈 것을 보면 내가 더 아픈 사람인데
하나님 왜 저를 여기다 놓으셨을까요?
심장이 터지나 안터지나 보시려고 그러시진 않으셨을테고...
선배님 아파요,,
오늘 많이 아프네요...
눈이 아파서 글도 쓸 수가 없네요..
선배님! 댓글 달아 주셔서
이렇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니 감사해야지요!
어쩌면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까요?
사모님 울고 가시는 모습이 너무나 안되서 지금도 눈물이 줄 줄..
거리에 나 앉은 아이들 보면서
다 데려다 먹이고, 다 데려다 돌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도 않아서 늘 맘이 울고 다니는데...
아무리 아무리 상담을 해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본드를 입에 물고 가다가 우리를 보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터지는데...
누가 에이즈로 죽어 무덤을 파아 할 때는 더 싫은데...
오늘처럼 누가 전화에 대고 울면 전 정말,,,
어찌해야 하는지요? !! ㅠ ㅜ
저는 분래 남이 아픈 것을 보면 내가 더 아픈 사람인데
하나님 왜 저를 여기다 놓으셨을까요?
심장이 터지나 안터지나 보시려고 그러시진 않으셨을테고...
선배님 아파요,,
오늘 많이 아프네요...
눈이 아파서 글도 쓸 수가 없네요..
선배님! 댓글 달아 주셔서
이렇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니 감사해야지요!
나도 10여년 이상을 산동네에서 특수목회하면서 수 없이 겪었던 경험이 있기에 공감하는 바도
컸지요. 어린 딸(3살)과 함께 자살을 시도했던 여인이 혼자만 살아 남아서 살인죄로 옥살이를
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 일일히 찾아 다니며 도장 받아가지고 탄원서를 제출하여 특별케이스
로 석방되게 했던 일, 결손 가정의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본드 마시고 방황할 때
맛있는것 사먹여가며 수 없이 타이르고 함께 기도 했던 일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숱한
사건들을 만나며 그때마다 배신의 아픔을 톡톡히 겪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배신이라고 여기며 아파하고 실망하면서 나 스스로 그만큼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져 가고 있었던 것임을 이제와서 깨닫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겠지요.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 어떠한 결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기도한 눈물의 씨앗이
언젠가는 결실을 거둘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양육한 결과 뒤늦게
깨닫고 돌아온 사람들의 고백 속에서 왜 그 때는 깨닫지 못했는지 미련했었노라고 용서를
구하더군요. 내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용서는 주님께서 하실 일이지요. 그들 속에 아주 미약하나마 말씀의 씨앗이 움추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발아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믿고 힘내세요
주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신 후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
듯이 용서와 가르침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길 밖에 없는듯 합니다.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며 사람의 마음을 변화 시키시는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겠지요. 이러한 특수목회는 장거리 마라톤과 같아서 꾸준히 자신의 템포를 유지하며
힘을 조절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처음부터 의욕만 앞서서도 금방 지치게 되고
자신의 건강에도 유의하지 않으면 병을 얻을 수도 있지요(내 얘기랍니다)
무엇보다 주위의 중보기도가 필요할 것 같군요. 공동체 사역의 어려움은 기도 지원이 일반목회 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 지원을 요청해 보세요.
저도 후배님의 사역을 위해 오늘 부터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성령충만 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