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서 대피훈련을 하고 와서는
“엄마, 엄마, 글쎄 Ruhi가 엉덩이를 치켜들고 복도에 쪼그리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알아?” 하면서 키득거린다. 자기 포즈 또한 만만치 않았을 거면서..
모슬렘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학교 앞 정문 근처에 고랑을 하나 파서 모슬렘이나 무장 강도들이 차를 밀고 바로 학교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든 지 오래지 않아서 또 커다란 원형 시멘트 볼을 만들어 늘어세웠다.  그리고 Knight Support, 회사에서 나온 경비원들이 줄을 서 있고,  
그것도 모자라서 학부모들에게 조그만 주황색 스티커를 하나씩 주어서 차 앞에 붙이게 하여 그것이 없으면 학교를 들어갈 수가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교문이 두개인데 늘 한쪽만 열어서 내 차는 작은 스즈끼인데도 간신히 들어갈 만큼만 열어 놓는다.

예전에 우리는 방공훈련을 했다.  싸이렌이 불면 금하게 대피해야 했던,
비상경보, 공습경보.  그 싸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언제나 난 가슴이 졸아들곤 했다.  
이 훈련은 뭐라 부르나?  방모슬렘 훈련?  방강도훈련?

아프리카로 부모가 선교사로 오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그냥 학교를 다녔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쓰러워졌는데, 그러나 이것은 곧 딸이 받을 상급에 속한다는 생각에 위안이 되었다.  

선교사 자녀 학교!  그래..  그냥 그 타이틀 자체가 모슬렘의 추적 대상이 되겠지.
그 중에는 학생이 많이 모자라서 입학시킨 현지 아이들도 많은데
그들도 거의다 기독교인들이니 말이다.  
아침 묵상을 마치고 모슬렘을 놓고 기도하려는데 이라크나라 생각이 났고,

갑자기 먼저 간 선일이가 사무치게 생각이 났다.  
벌써 일년 전 일이 되었다.  
내가 지인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좀 아쉬운 표현들을 한다.
왜 좀 예수를 믿는 자답게 당당히 떳떳이 주님을 증거하지 못했는가 하고 말이다.
“글세 저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지금은 용감하게 순교할 것 같을지 모르나, 막상 닥치면 저는 더할 거예요”  말하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 변기 속으로 뱀이 들어와서 앉아 있었다는 어떤 사모의 말을 듣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화장실 갈 때마다 가슴을 조리며 가던 내가
총칼이 눈 앞에 있으면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할까?

눈, 그리고 가슴이 젖어서 ...
작년에 한국으로 보냈던 편지를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사랑하는 선일아. -

네 긴급 기도요청소식을 듣고 한참 당황하였는데,

아직 기도를 마치지도 못하였는데

이젠 아주 천국입성을 하였구나.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너와 함께 마주 앉아서 먹던 김치찌개가 마지막 식사가 될 줄이야!


내게도 천국 문에 들어 갈 수 있던 기회들이

그렇게나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에게는 잘도 피해가더니만,


가끔 나는 뭐가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남겨 두시나 하고

섭섭하기도 하더니만,

아버지가 너를 끔찍이 사랑하셔서

나보다 일찍 불러 주셨구나!


통역사가 되기 위해 그렇게나 열심히 공부하였는데

이제 멀리 부모형제를 떠나

주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는데


순교를 위해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형제여!

주님은 이미 너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구나.

주께서 너를 위해 준비하신 면류관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던 너의 모습이

광나루 자취방에서 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밤새 공부하던 너의 삶이

지금 이렇게도 내 가슴을 치는구나!

삼계탕을 만들어 주겠다고 시장을 보러 간다던 것도

끝내 가슴이 저리고 ㅠ ㅜ


선일아!

네가 늘 간직하고 기도하던 냉장고에 붙이는 우리기도 스티커 사진은

비록 이 땅에 두고 갔지만

그 밝은 곳에서도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한 중보는 쉬지 말거라.


기드온은 주님을 영접하고

이제 더 이상 패거리들과 어울려서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가

송곳으로 머리 한가운데를 찍혔고

아스만은 도둑질 하다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도록 맞아서

결국은 팔다리를 절단하고 무힘빌리 병원에 누워 있고.

세게레아 감옥에서 한 아이가 사망해서

또 관을 짜고 무덤을 파야 했다.


평화의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이 땅에 분쟁과 싸움은 그칠 날이 없구나.

(오 주여 속히 오소서!)


자랑스러운 선일아!

오랜만에 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네가 많이, 아주 많이 보고 싶구나...

우리 다시 만날 때,

너의 겸손한 얼굴에 피었던 활짝 피었던 여드름이

그때까지 있을까 궁금하다. ^^


이제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곧 다시 주님의 품 안에서 만날 때에

내 몫에 태인 십자가 세상 짐을 다 내려놓고

기쁨으로 승리의 할렐루야를 외칠 때에


우리 함께 손잡고 노래하자

이라크 땅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빚으시고,

그 넓은 가슴에 품으신

구원의 하나님을.


< 네가 중보 하던 아프리카 땅에서, 너를 사랑하는 이미경 선교사가

주님 품에 먼저 안긴 너를 부러워하며 이글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