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유난히 반상을 가리는 유교집안이며 교육자가정이었습니다 외가는 철종의 부마이신 박영효 가문으로 집에는 대한제국시대의 태극기를 간직하고 있었으며 어릴 때부터 나라사랑에 대하여, 특히 외세를 경계해야 하는 것을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교육받으며 자랐습니다 나라의 양반만 다녔다는 경기여고 출신인 할머니는 제가 이화여대에 갔을 때 천민이 다니는 학교에 갔다고 속상해 하실 정도로 보수적이고 전통을 중시하는 가문이었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예수교는 서양 사교요 나라를 망친 외세자본주의 열강의 압잡이 종교로 생각하고 은근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회 다니는 친구들에게서 특별한 도덕적 미덕이나 매력[charisma]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온 일가친척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장로의 딸이고 이화여대를 나오신 외숙모조차 할머니의 영향으로 점을 치고 절에 다니게 되었으며 저의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 때도 절에 모시고 불공을 드리러 온 가족이 매 달 절을 드나 들었습니다
이화여대에 들어 갔을 때도 불교학생반인 언니[유일한 개척멤버인 이은영 권사]를 따라서 저도 불교학생회에 들어가서 당시 유명한 스님들의 설법을 듣고 성당 다니는 아이들을 설득하여 불교학생회에 가입하게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다 아시기에 좋은 대학 나와서 시집이나 잘 가자는 세속적인 아이들과는 좀 다른, 참 진리에 대하여 목마름이 있었던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은총의 시작인지 설법을 전하는 큰 스님들의 말이 공허하게 들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한 것[색즉시공]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내세가 없다는 깨달음이 확연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침 그 때 조계종 교권다툼으로 깡패같은 승려들이 서로 절을 빼앗으려고 매일 각목 들고 싸우는 것이 날마다 신문의 일 면을 장식하는 것이 유독 눈에 거슬렸습니다
물리학 특강을 들으며 질서정연하게 이 우주를 운행하는 누군가의 손길이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도 이상스레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우선 교양을 위하여, 그리고 서양사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라도 성경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교 3학년말부터 졸업까지 스무 번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지금도 우리 집 책꽂이엔 그 때 읽었던 닳아서 헤어진 낡은 성경이 십 여권 꽂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때 대학부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체계적인 성경공부도 하게 되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엡3:19]에 대하여 알아 가는 기쁨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기에 신경질적이고 우울하던 저의 얼굴은 밝은 표정으로 변화되고 늘 두통에 시달리던 깡마른 저의 모습은 건강한 밝은 모습으로 변화되었고 졸업후 에는 성경주석을 번역 출판하는 성서교재간행사의 편집부에 취직을 하여 장로교 감리교의 유수한 목사님들을 만나고 그 분들의 경건한 삶의 모습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에게 남편을 소개해 주시고 지금까지 영적으로 학문적으로 이끌어 주시는 그 당시 편집 고문이셨던 현 성서공회 총무[성서공회는 하나님을 회장으로 하는 세계적인 성경번역기관입니다]민영진 박사님이 남편에게 “ 이 아가씨는 아직 사모로서의 정체성은 부족하지만 아내로 맡으면 평생 웃으면서 살 수 있을 걸세”라고 하셨을 만큼 하나님께서는 저의 모든 어두운 부분을 수술하시고 속 깊은 상처까지 치유해 주셨읍니다 그리고 수가 높으시고 치밀하신 하나님께서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개척교회를 창립하게 하셔서 기도와 연단을 통하여 사모로서의 덕성을 쌓아가게 하시고 온 일가친척을 구원하게 하셔서 믿음의 명문가문을 이루어 가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인일13회 이평숙
(옥토교회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