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동서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의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엘리트여성입니다
60년대에 여자를 서울까지 유학 보내고 더구나 연세대학을 나왔다면 그 가정도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동서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였을 것입니다 서울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맏딸인 동서는 부산 집에 내려가 있다가 부도가 나서 부산에 피신 가있던 저의 시아주버니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시아주버니 역시 시골에서[경남 산청지리산 자락] 거의 독학으로 고려대학교를 들어간 영민한 분이지만 착하기만 하고 현실감 없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돈을 벌어서 세상을 주무르고 싶은 야망이 많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아주버님은 작은 동네에서 추켜 세워주는 시골수재들이 서울에 와서 흔히 겪는 좌절을 다 겪으며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저의 동서를 만났고 동시대에 연고대를 나온 동질감에선지 곧 결혼을 하였습니다[그 당시 연고전은 지금 월드컵 이상 가는 열기였음]  
지식 없는 소원[zeal without knowledge]이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이 그릇 행한다고[잠19:2] 꿈은 크나 성실성과 인간관계가 따르지 못하였던 아주버님은 잠시 사업이 잘 될 때도 있었으나 결국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였고 그 모든 이유를 세상 탓, 부모 탓으로 돌리는 비뚤어진 사람으로 되어 갔습니다
원래 좋을 때에도 동생들에게나 아내에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성품인데다 사업의 실패로 더욱 포악해진 남편과 그 때는 신앙도 없던 여러 시누이들과 강한 시어머니와  함께 시집살이하면서 받았던 상처로 인하여 말수가 적은 동서는 더욱 더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하여 갔고 저 역시 믿음 하나 가지고 결혼을 하여 보니 시댁의 암울한 그림자와 생소한 가정 분위기에 열 살이나 많은 동서와 따뜻한 대화 한 번 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개척교회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친정은 물론 아주버님을 제외한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은 목회자 가정을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십 여년의 연단과 은혜 속에 교회도 건축하고 작년에 시어머니가 새 아파트를 사신 것을 마지막으로 시댁과 시누이의 가정들이 다 형통하게 되고 셋째 시누이의 기도응답으로 온 가족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동서의 상처치유와 구원에 큰 목적을 두었던 것입니다
순례를 통하여 역사의 현장마다 개입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동서가 온전히 체험하기를 기도하였고 시누이들도 올케에게 최대한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버스로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지 못하였던 동서에게 복음의 진리를 하나하나 설명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라는 것, 우리는 각각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원은 거저 받지만 축복은 행위의 결과이므로 성도는 믿음을 갖은 이후로 계속해서 성화를 향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진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오늘이 있게 하신 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서는 수 십 년 동안 꼭꼭 닫아 걸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계3:20]  무표정 하였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마치 어둠의 세력이 지나간 듯 환한 얼굴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은혜의 생수를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 시누이는 몇 번이나 곁에 와서 “큰 올케 얼굴 좀 봐 저렇게 예쁜 얼굴 처음 봤어”하면서 감동하였고 저 역시 빛과 표정에 의하여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과연 얼굴은 내면의 얼[영]을 담는 그릇임에 확실하며 그러기에 나이 든 사람은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나  



저의 동서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서울의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엘리트여성입니다
60년대에 여자를 서울까지 유학 보내고 더구나 연세대학을 나왔다면 그 가정도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동서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였을 것입니다 서울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 맏딸인 동서는 부산 집에 내려가 있다가 부도가 나서 부산에 피신 가있던 저의 시아주버니를 만나 결혼을 합니다 시아주버니 역시 시골에서[경남 산청지리산 자락] 거의 독학으로 고려대학교를 들어간 영민한 분이지만 착하기만 하고 현실감 없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인하여 돈을 벌어서 세상을 주무르고 싶은 야망이 많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아주버님은 작은 동네에서 추켜 세워주는 시골수재들이 서울에 와서 흔히 겪는 좌절을 다 겪으며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을 때 저의 동서를 만났고 동시대에 연고대를 나온 동질감에선지 곧 결혼을 하였습니다[그 당시 연고전은 지금 월드컵 이상 가는 열기였음]  
지식 없는 소원[zeal without knowledge]이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이 그릇 행한다고[잠19:2] 꿈은 크나 성실성과 인간관계가 따르지 못하였던 아주버님은 잠시 사업이 잘 될 때도 있었으나 결국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였고 그 모든 이유를 세상 탓, 부모 탓으로 돌리는 비뚤어진 사람으로 되어 갔습니다
원래 좋을 때에도 동생들에게나 아내에게도 따뜻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성품인데다 사업의 실패로 더욱 포악해진 남편과 그 때는 신앙도 없던 여러 시누이들과 강한 시어머니와  함께 시집살이하면서 받았던 상처로 인하여 말수가 적은 동서는 더욱 더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하여 갔고 저 역시 믿음 하나 가지고 결혼을 하여 보니 시댁의 암울한 그림자와 생소한 가정 분위기에 열 살이나 많은 동서와 따뜻한 대화 한 번 해볼 엄두도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개척교회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친정은 물론 아주버님을 제외한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이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것은 목회자 가정을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였던 것 같습니다 십 여년의 연단과 은혜 속에 교회도 건축하고 작년에 시어머니가 새 아파트를 사신 것을 마지막으로 시댁과 시누이의 가정들이 다 형통하게 되고 셋째 시누이의 기도응답으로 온 가족 성지순례를 하게 되었을 때 우리 모두는 동서의 상처치유와 구원에 큰 목적을 두었던 것입니다
순례를 통하여 역사의 현장마다 개입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동서가 온전히 체험하기를 기도하였고 시누이들도 올케에게 최대한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버스로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 해보지 못하였던 동서에게 복음의 진리를 하나하나 설명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책이라는 것, 우리는 각각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원은 거저 받지만 축복은 행위의 결과이므로 성도는 믿음을 갖은 이후로 계속해서 성화를 향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진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의 오늘이 있게 하신 이 하나님을 받아들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동서는 수 십 년 동안 꼭꼭 닫아 걸었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계3:20]  무표정 하였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마치 어둠의 세력이 지나간 듯 환한 얼굴이 되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은혜의 생수를 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둘째 시누이는 몇 번이나 곁에 와서 “큰 올케 얼굴 좀 봐 저렇게 예쁜 얼굴 처음 봤어”하면서 감동하였고 저 역시 빛과 표정에 의하여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과연 얼굴은 내면의 얼[영]을 담는 그릇임에 확실하며 그러기에 나이 든 사람은 세월의 흔적이 스며든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나  

ps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