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에서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가 자기에게 주려고 놓아둔 김밥을 아버지가 먹은 것이 시비가 되어 아버지를 찔러 죽였다는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망연자실 앉아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들의 간식을 장만해 놓고 직장에 가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그 간식을 남편이 먹어치워서 밉살스럽다는 이야기들은 전에 남편이 직장에 나가는 것이 당연하였던 것만큼이나 자유업이나 실직이 흔한 현대의 가정의 주부들 입에서 흔히 회자되는 가벼운 수다의 한 소재입니다.
남편보다는 자식을 더 살갑게 생각하는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먹을 반찬이나 간식을 남편이 먹어 치워서 속상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고 더우기 그 자녀가 입시생이거나 또 그 남편이 빈둥거리며 집에서 지내는 실업의 상태라면 그 불만의 강도는 더 심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흔히 일어나는 일상사의 가벼운 갈등이 근친간의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증폭되기 까지는 그 가정의 망가진 질서와 자녀교육의 붕괴, 신뢰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들이 얽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가정의 보이지 않는 영적구조가 깨지고 그 가운데서 상처 받은 아버지와 아들의 분노가 김밥이라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소재를 통하여 드러난 것뿐입니다. 더구나 이런 일은 실업과 명퇴가 범람하는 이 시대의 어느 단란했던 가정의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가 온순하여서 아버지를 수용할 수가 있고 또 아버지가 더 기가 팍 죽어서 아내와 자식들의 일에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한 이런 사건은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좀 내성적일뿐 온순하고 공부도 상위권에 드는 아이였다고 하는데 그 마음 속에는 자기도 몰래 간직해온 상처 받은 자아 즉, 언제나 기회만 되면 튀어 나아 자기와 이웃을 해칠 수 있는 숨어있는 짐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평생을 아버지를 죽인 죄의식을 가지고 살 그 아이와 남편이 실직 중인 가정에 자식을 위한 간식을 준비해 놓고 직장에 다닐 정도의 평범하고 착한 엄마가 가지고 살아야 할 회한과 아픔을 생각하면 우리가 우리의 내면을 다스리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할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라는 말씀이 있는데 과연 남을 배려하지 못한 것까지 죄라고 할 때 날마다 무심한 나의 태도에 상처받았을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도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