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나 좀 살려 주세요!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나 좀 만나 주세요!”

그녀는 이 세 마디를 계속 반복하며 울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자초지종을 말해 보라고 해도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그녀를 만나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추석 연휴로 고향 찾아 가는 차량이 길마다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토요일 오후에.
내일이 주일이어서 나로서는 잠시의 시간 여유가 없는 날, 토요일 오후다.

그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부른 곳은 김포시 대곶면 거물대리라는 곳이다.
처음 가는 길이고 추석 귀성차량의 홍수속에서
서울에서 1시에 출발하여 그 곳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녀가 집 약도를 제대로 알려 준 것을 보면 정신질환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전화로 한 시간 이상 몇 마디의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도 또한 아닌 듯 하다.
남편은 주일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토요일 오후로 잡아 놓은  
나의 무모한 약속때문에 잠간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말기 암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람의
절박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나의 마음을 좋게 헤아려 이곳까지 동행해 주었다.

길 어귀마다 묻고 또 물어 찾아 간 그녀는
집 앞마당에 나와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우리에게 어린아이처럼 매달리는 그녀의 나이는 70이 다 되어 보였다.

방안에 들어서니 비집고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온통 재판 서류더미였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애절한 호소는 4시간이 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그녀의 이름은 신효숙이다.
나이는 56세였는데 오랜 지병으로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70이 다 되어 보인 것이었다.
그녀는 흥분하거나 기분이 울적하면 곧바로 거품을 물고 허우적대는 간질환자였다.
그녀는 재벌에 가까운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딸이었다.
그녀의 형제는 아버지의 전처 소생으로 오빠가 둘,
후처인 그녀의 어머니 소생으로 남동생 하나와 여자 형제가 넷이다.

그녀는 자신의 간질 질환의 원인이 남동생에게 있다고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동생이 전처 소생인 큰 오빠를 장이 파열되도록 때리는 장면을 목격한 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그 때부터 마음의 평정을 잃으면 간질 증상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의 소녀 시절은 간질로 얼룩졌다.
다른 형제들은 전부 이화여대에 진학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중앙대학에 진학했다.
그녀는 지금 살고 있는 김포시 대곶면으로 시집을 갔다.
시아버지는 의사였고 전남대 상대를 나온 남편은 그곳의 상호신용금고 부사장이었다.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던 그녀에게 감당 할 길 없는 재난이 왔는데
그것은 IMF의 재앙이었다.

신용금고 이사장이 고객들이 위탁한 돈 50억을 횡령하여 외국으로 도망감으로써
부사장이었던 그녀의 남편이 돈을 탈취당한 고객들에게 뭇매를 맞은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자가 되어 아무 일도 못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간질 증세가 더욱 악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복막에 수도 없이 번진 많은 암 덩어리에서 계속 피를 흘리고 있는 말기 암 환자가 된 것이다.
소녀 시절부터 간질을 앓아온 딸을 불쌍히 여겨
다른 형제보다 많은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그녀의 부모님은 2001년에 돌아가시기 전
9억 5천의 유동 재산과 개포동에 넓은 땅을 유산으로 남겼다.
개포동 땅은 지분으로 나누지만
유동 재산에 대해서는 형제간의 싸움이었다.
똑똑한 다른 형제들은 1억씩 유산을 분배해 가져갔는데
남편은 정신질환자이고 본인은 간질환자에 말기 암 환자인 까닭에
그녀만 배분되는 유산을 받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말기 암 환자이다.
치료를 받기 위한 돈이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동생과 상속에 관한 재판이 진행되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남동생도 오죽하면 병든 누나에게 배분되는 유산 상속의 돈을 주지 않고
재판을 하고 있겠는가?
그 사람만의 고충이 또한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죽어가는 병자이고, 누구 하나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아닌가?
방안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판서류는
그녀가 피를 쏟으며 부러진 팔로 어렵게 쓴 탄원서였다.
비뚤거리며 쓴 A4지 600장의 탄원서.
그러나 그 탄원서는 휴지에 불과하다.
변호사 수임도 없이 언듯 보면 정신환자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는
그녀의 호소에 누가 귀를 기울여 줄 것인가?

나는 그녀보다 더 무력한 사람이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는 그녀의 발노릇을 해 주고
그녀가 자신의 가슴에 있는 말을 다하지 못하고 간질 증세를 보일 때
그녀의 가슴에 한을 다른이에게 전해줄 수는 있지 않은가?
나는 아무 힘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래야만 아주 조금이라도 그녀가 안심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녀는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마태 엄마야! 그 목사님과 사모님이 우리집에 오셨다.
마태 엄마야! 나는 이제 살았어!
하나님이 나를 살려 주시려고 저 분들을 보냈어!“

동생이 전화를 바꾸라고 했다면서 흥분한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니! 언니 말이 정말이예요.
미친 사람같이 횡설수설하는 우리 언니의 말을 듣고
서울에서 그 곳까지 오셨단 말이예요?
그것도 토요일에...
그것도 추석 연휴로 정신이 없는 이 때에...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친언니인데도 시간을 내주지 못했는데요.
그동안 누군가 언니를 진정한 마음으로 도와줄 사람을 찾았어요.
변호사비도 보내 줄 수 없었어요.
언니와 형부가 정상인이 아니니 돈을 보내도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요?
사모님! 우리 언니를 도와주세요.
소송에 필요한 돈을 제가 다 드릴께요.
저에게 전화하시면서 일을 해 주세요.
제가 할 일인데 이렇게 미국에 있으니 아무 일도 해줄 수 없었어요.
우선 얼마를 부치면 될까요?“

“아니요. 1원도 필요 없어요.
형제들끼리 싸우는데 싸움을 말려야지 제가 누구 편에 서서
싸움을 더 크게 확대시키면 안되잖아요.
저는 법조인이 아니고 목회자예요.
두 사람을 화평케 해야 하는 사람이지요.
싸움을 말리는데,
화목케 하는데 쓰이는 도구는 돈이 아니에요.
그러니 돈은 필요 없어요.
그러나 언니를 사랑하는 동생의 아름다운 마음만은 기쁘게 받을께요.”

그녀는 자신은 간질 환자여서 가슴에 하고 싶은 말이
남으면 쓰러진다고 계속 우리 부부를 붙드는 바람에
10시가 넘어서 그곳에서 나올 수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설교준비로 밤을 꼬박 새웠고
나는 주일날 성도들이 먹을 음식 준비로 밤을 꼬박 새웠다.

그녀의 전화는 하루에도 수 없이 온다.
몇 년을 재판하고도 지리멸렬한 그 사건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녀의 전화를 한 번도 소홀히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까지 그녀의 소리를 무시하면 그녀는 호소할 곳이 이 땅에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내내 그녀의 반복된 전화를 받으며 내가 터득한 일은
전화를 받기 전에 가스 불을 꺼야 솥이나 냄비가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때 작동되고 있는 모든 기구의 스위치를 꺼야만 한다.
아니면 한 번 통화에 두 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그가 전화하지 않는 시간 틈틈이
나는 그의 사정을 써서 헌법재판소에 낼 서류를 만들었고
받지 않는 그녀의 남동생 핸드폰에 수없이 전화해 보고
재판 때  그녀의 남동생 측 수임변호사에게 전화를 하고
그 어떤 것보다 그녀를-죽음으로 가고 있는 불쌍한 누나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그녀의 남동생이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유산 상속의 분배로서가 아니라
동생이 누나에게 댓가 없이 주는 사랑의 나눔이 있기를
주님에게 간절히 간구한다.
재판으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형제의 화평과 사랑으로 그녀의 마지막이 행복해지기를
나는 주님께 무시로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