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니는 살아 계셨을적에 '나는 자는듯이 죽는게 소원이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이 듣기싫기는 했어도 뭐 정말 그런 일이 있을수 있을까 하고 무심히 넘겼다.

어느해 겨울 '어째 오늘 몸이 으시시하고 기운이없네' 하시며
잠깐 눈을 붙이신다고 자리에 누우시더니 정말 주무시듯 돌아가셨다.  

그때가 12월이 였는데 오빠의 연락을 받고 장례식 참석을 위해 급히 한국을 나갔다오고 난뒤,
해마다 거리에 크리스마스츄리가 반짝거리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서 차를 길옆에 세워놓고 한참씩 통곡을 하다 다시 운전을 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어머니가 미국에 와서 계실때 가장 친하게 지나시던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김복년 권사님이시다.  
두분은 키도 똑같이 작고 잘웃으시고 명랑하셔서
같이 앉아계시는 것을 보면 귀여운 소녀 두명이 재미있게 노는 것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할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신경통이 있어서 앉아 계실때는 주먹으로 무릎을 치시며  구부렸다 폈다 하셨었다.
이곳 뉴져지에도 한국식 싸우나가 생겨서 갔었는데,
어머니가 살아계셨을때 모시고 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며
나는 너무 뜨거워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한증막을 공연히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언제 김복년 권사님을 어머니 모시고가듯 한번 가야지 늘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지난 토요일 자유로운 휴일을 맞게되었다.  

권사님을 모시고 겨울 날씨 답지않게 청명한 하늘아래 쭉- 뻗쳐진 95번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유, 뭐 이렇게 먼데를 나를 데리고 간다고 그래?'
즐거우신듯 밖을 내다 보시며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셨다.
  
'그집 딸이 몇살이지?'  우리 딸을 묻는것이다.
보청기를 하셨는데도 잘 안들리셔서 차속이 떠나가도록 큰소로
'스물 넷이요' ,    
'아이구, 올해 시집가면 딱 좋은 나이구만!'
  
한 10분 쯤 조용히 계시다가 또 물으셨다.  

'딸이 올해 몇 살이지?'
'스물 넷이요'
'아유,  올해 시집가면 딱 좋은데!'

하시더니 외출 준비를 하시느라 피곤하셨는지 고개를 앞으로 숙이시고 잠이 드셨다.

혼자 아들을 공부시키시며 초인간적으로 살아오신 이 강한 어머니의 분주한 세월이 잠드신 얼굴에 짙게 포게져 있었다.

얼마를 주무시고 나시더니

'그러니까 그집 딸이 올해 몇 .... ?'
'스물  ... '
'아이구,  올해 시집  ......  '
내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권사님은  멋도 모르고 따라 웃으셨다.

혹시 한증막을 들어가시고 싶어하실까 해서 여기가 한증막이예요 가르켰더니
나는 못들어가 하며 돌아스셨다.

우리는 피라밋방과 소금방에서 땀을 뺐다.
권사님은 미국에와서 별구경 다 했는데 이런 것들은 처음 보네 하시며 주위를 둘러 보셨다.

'천장에 매달린 저게 뭐요?  바위야 ?'
'아니요,  소금요'

5분후에 다시

'저기 천장에 매달린게 뭐요,  바위야 ?'
'아니요, 소금요 '

우리는 똑같은 대화를 또 반복하였다.

그곳에 앉아 있던 아줌마들이 같이 웃으며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
우리 엄마 같으시네,  살결도 고우셔라, 하며 손도 잡아보고, 뺨도 한번씩 만져보기도 했다.  
어떤 아줌마는 이것 좀 할머니 드리세요 하더니 쥬스 한잔을 사가지고 오셨다.  권사님은 뭔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유쾌한 분위기가 좋으신지 계속 미소를 지으며 애기같이 앉아 계셨다.

점심을 먹은뒤 팟빙수를 후식으로 사다드렸다.  한참을 드시더니
'이거 가지고 가면 안될까 ?   맛 있는데'  물으셨다.
'아유,  녹아서 안되지요'
그러자 안 믿어진다는 듯이  그럴까?  하시며 녹아내린 팥얼음물을 들여 마시셨다.

저녁 늦게까지 있으면서 책한권을 다 읽어야지 하고 정연희의 '내잔이 넘치나이다'를 빌려가지고 갔었는데
미처 첫장을 펴기도전에 이제 가야지 바쁜데 하시며 일어스셨다.

나는 95번을 되돌아 운전해오며 권사님께 여쭈었다.
'뭐 하시느라 바쁘세요 ?   낮에 무엇으로 소일하세요?'
'응 ? '
'바쁘지  .... , 운동도하고,  성경도보고,  기도도하고,  하면 시간이 모자라,
우리 아들이 맨하탄으로 일 다니는데,  거기 얼마나 차가 많이 댕겨 !?
그래 늘 길 건너 다니고 할때 차사고라도 날까 그게 걱정이야'
(권사님 아드님은 60 이 넘으셨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아드님이 차 안보고 길 건널까봐 그것이 걱정이시다.)
우리 며느리는 얼마나 힘들고,  그 바쁘게 직장생활하고,  교회일하고,  
몸이 열개라도 모자라는 사람이여,  수진(손녀다) 이도 시집 가야하는데,  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은데  지가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이게 어디 다 우리 힘으로 되나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지.

그리고 또 다른것 하나는 우리 교회도 사람 좀 많이 모였으면 좋겠어,
아파트에 다른 교회 버스가 와서 할머니들을 한 차씩 싣고 가는 것을 보면 부러워 죽겠어,  
그래서 나 죽기전에 사람들이 교회당안에 꽉꽉 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게 내 일과야 '
말씀을 마치자마자 또 피곤하신지 곧 잠에 빠져버리셨다.

교회가 꽉꽉차면 원이 없겠어  .......
얼마나 아름다운 기원인가 ?   나를 오래오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도 아니요,
부자로 살게 해달라는 기도도 아니다.
믿지않는 영혼들이 교회로 찾아와 기쁨을 얻으며 ,입으로 전하고 전하여
이 큰 아버지의 집이 꽉꽉차기를 염원하는 기도다.
부흥은 이렇게 깨끗한 마음의 영혼들의 정성어린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지 않는가 ?

하루종일 기도하는 권사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딸이 몇살이냐고,  시집가기 좋은 나이라고 똑같은 질문을 세번이나 하시던 것처럼
하나님께도 10분전에 기도한줄 까맣게 잊어버리고 ,
하루에 몇번씩 교회가  꽉꽉 차도록 매번 떼를쓰며 기도 하실것이 분명하다.
하나님도 나중엔 나같이 큰 소리로 웃으시겠지, 그리곤,  그래 그래 하시며
그 기도를 들어 주실것이다.

나도 머지않아 권사님과 같은 연세가 될때는
이렇게 바쁘게 교회를 위한 기도를 하며 살아야지 하는 깨달음도 주셨다.

도로변에 서있는 앙상한 겨울나무들에서 신록의 봄을 엿보듯이
우리교회에 다가올 부흥의 기쁨을 음미하며 권사님을 깨울까  조심조심 차를 몰아 집으로 내려왔다.
  
오래만에 가져본 풍성한 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