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옥 사모의  출판기념회



막 환자 검사가 끝날 무렵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근무 중에 거의 켜 놓는 일이 없는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속에서 들리는 반가운 목소리 “ 나 정옥이야,
다른 게 아니고 나 책 냈는데 출판 기념일에 오라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해 냈구나, 드디어 그녀가..

근데 피곤해서 인천까지 못가고 대신 집으로 책이나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금요일 밤에 배달된 책을 토요일 아침에야 봤습니다.
한 두장 읽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내가 아는 그녀의 삶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전화했습니다. 그러나 영 무통..
바쁜 토요일 오후,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오후 내내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출판기념일에 너에 대해 뭔가 이야기 하고 싶다고,
가능하냐고 떼를 써 순서에도 없던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유정옥 사모와 난 주일학교 시절부터 친구입니다.
영애, 현애 다른 두 친구와 4명이 초등학교 때 4총사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차디찬 교회 마루바닥에 방석 깔고 엎드려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기도의 제목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똑똑히 기억나는 것은
바로 내 옆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 유사모의 이상한 말소리..
말로만 듣던 바로 그 방언 기도였습니다.
그것도 초등학생이..
우린 마귀가 시키는 거라는 둥 이상하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녀는 신앙생활면에서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가 계셨고 언니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보다 하나님과 조금은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꿈 많던 여중, 여고 시절이 지나고, 뿔뿔히 대학 진학을 하고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할 때
그녀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청계천에서 장사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물어 물어 찿아 갔더니 수영튜브가 가득 쌓인 점포에
머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야만 하는 작은 골방을 만들고,
삶이 곤고한 시장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선교지에 낼 글이라면서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시험지를 빽빽이 메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근육병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면서..
우리는 자기일 하나 하기도 벅차하던 때라  
전 이런 많은 일을 하는 그녀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나이 많은 남편을 신학 대학생으로 만들고,
드디어 그가 전도사가 되고,
어느 날 시장선교를 한다고 평화시장 앞 12층에 교회를 세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 갔었습니다.
너무 어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땐 경제적으로 힘든 때라 도와주지도 못했습니다.
마음만 안타까웠습니다.

나는 얼마 지나 힘든 근무로 목 디스크에 걸려 모교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나에게 면회 오는 유일한 존재는 그녀뿐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전혀 맞지도 않는 이야기로 이렇게 하면 좋데 저렇게 하면 좋데 하면서
의사인 나에게 훈계를 하면서 간호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특징입니다.
남의 말은 안 듣는,
어디서 들은 소린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마구 밀어 부치는,
의사인 나도 포기하고 다소곳하게 만드는..
외모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그 카리스마..

어쨌든.  
성경책도 들 수 없는 나를 위해 빚을 내어 성경과 찬송가 테이프를 사다주었습니다.
13년 전, 그때 돈으로 수십만 원이었으니까 그녀의 형편으론 엄두도 못 낼 큰 돈이었는데 ..

난 그 후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보물처럼 이것들을 가지고 다닙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환자를 보면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왠지 귀한 친구를 주는 것 같아 차마 주지 못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퇴원하는 날 ,
앉아 있기도 힘든 나를 목욕탕에 데려가 온몸의 때를 정성껏 밀어 주었습니다.
남편은 교회 성도가 하는 음식점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먹여 주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 하듯이 그들은 나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난 아무 것도 그들에게 해 준 게 없는데..

며칠 후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에도  나오는 대성리,
그 산에 있는 기도원으로 날 데리고 갔습니다.
이틀 동안 최집사님과 나를 위해 양쪽에서 금식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유난히 흰 피부의 작은 체구 ,
도대체 어디에 그런 큰마음이 들어 있는지.

그녀가 어렵게 교회 일을 해 나가면서 , 여러 번 금전 적으로 힘든 고비가 있었습니다.
가끔 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제가 해결 해 주긴 너무 벅찬 규모였고,
거의 시간이 임박해서 부탁을 했기 때문에 손을 쓸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힘없이 돌아서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이렇게 뇌이곤 했습니다.
“니가 그렇게도 철썩 같이 믿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달라고 해 보려무나, 주실거야.”
그러면 영락없이 며칠이 지나 깔깔 웃는 소리로 일이 잘 됐다고 전화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걸 누가해주니?”하고 물으면 늘 “우리 아버지가 ”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던 그 딸을
주님은 한번도 버리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 위험한 중국선교로 도깨비처럼 밤배타고 정신없이 다닐 무렵
전 그녀와 멀리 있었습니다.
그녀의 세계에 내가 들어 갈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늘 멀리서 하나님께 그녀를 위한 기도만 드릴 뿐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굶고, 금식기도 때문에 굶고, 먹기보다 굶는 것에 더 익숙해 있던 그녀..
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일들을 기적처럼 이루어내는 그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전부 다 거짓말 같은,
전혀 믿기지 않는 일들..

너무 커서 선뜻 가까이 하기엔 너무 껄끄러운 그녀..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제일 힘들 때 너를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걸까?
두 달 전 갑자기 복부 통증이 있어 초음파를 해보니 쓸개에 커다란 돌이 2개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갖는 휴식시간이라 조용히 병실에서 성경이나 읽어야지 생각하고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시간이 가까워 오니 왜 그녀가 생각나는지
“네가 내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전화 했더니 하루 종일 안 받더군요.
그 날 전화 받지 않은 게 괘씸해서 그녀의 전화 받자마자 섭섭함을 털어놨지요.
수년 동안 보지도 못하고
연락도 없고 잘 지내겠지 하고만 있던 그녀를 의사인 내가,
환자에게는 “그거 쉬워요, 수술도 아니예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쉬운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면서 왜 그녀를 찾았을까?
마치 주님을 찾듯이 난 그녀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를 아는 모든 이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여자.
기도를 통해 편안함을 주는 여자.
남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주는 여자.
자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에게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그녀가 뭔가 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자.
그것도 모자라 이제
그녀는 또다시 글을 통해 나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사람답게 사는 건지.
어떻게 사는 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인지,
늘 고민하고 방황하는 나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녀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 밤 맘껏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장하다, 유정옥!!

이영도 목사님 ,부모님들, 그리고 그녀 옆에서 기도로 힘쓰며
물심양면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친구로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2004년 9월 2일
정옥이의 출판 기념회를 기뻐하는
소꼽 친구  한 순임.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10-01 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