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트를 한것을 밑 부분에,,,, 안 한것을 첫 부분에 구분되어 올렸으니 

읽으시기 편한 대로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여섯째날


3:15-29 율법과 은혜의 언약


구약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인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는가 하면 

신약은 이 율법인 참것 즉 예수님에 의해서 받은 은혜에 대한 언약을 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언급합니다.

15절부터 24절까지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서 더욱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변론은 

어떤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왜 하나님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 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박할 경우를 위해서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다시 세분해보면 세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읍니다.


(1) 15절-18절: 율법이 복음의 약속을 헛되이 하지 못한다.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먼저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음을 헛되게 못한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복음의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

    우리가 15절부터 18절까지 읽어보면 사도바울은 율법보다도 은혜가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며 

    그 약속을 헛되게 못하리라" 이 언약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읍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아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 신약시대의 믿는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읍니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혜아래 있었읍니까? 

    아니면 율법아래 있었읍니까?

    지금 여기서 성경이 하시는 말씀이 이들도 은혜아래 있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아요?

    은혜의 약속이 언제 확실히 주어졌읍니까?

    아브라함 때 부터,,,,,그래서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아브라함을 불러주셨읍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을 읽어보면 아브라함도 우상숭배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찿아주셨읍니다.

    그리고 불러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도록 명령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였읍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찿지도 않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먼저 찿아 주셔서 구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이유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읍니다.

    아마 장막을 공부하신 분들은 잘 아실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생활 때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며 원망했던가를,,,,,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리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율법을 줄 것인데 가서 백성들에게 물어보아라 하셨읍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그 백성들에게 물어보니 무엇이라고 대답했읍니까?

    예에,,,,우리가 받을 뿐만 아니라 다 지키겠읍니다,,,,라고 장담함을 볼 수 있읍니다.


    19장 7절 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더 읽어보시면 이들이 율법을 받기도 전에 율법의 제 일 계명을 범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엄격한 율법의 재판장으로 등장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법을 파괴한 범법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심판관으로 

    이들 앞에 늘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혜 아래 있었을 때에는 그 은혜의 고마음을 알지 못 했읍니다.

    그런데 심판없이는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법이 딱 주어지고 나니까

    그떄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 즉 사랑을 꺠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이 율법으로 통치되는 집안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그 자녀들은 늘 불안과 공포에 떠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은혜로 지배되는 가정만이 평화가 있음을 아십시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집안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를 자주 저지르지요? 

    그래서 무엇을 합니까? 가정규칙이 세워지게 되지요?

    자식들에게 밤 몇시까지 들어와야한다. 

    또는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몇번을 누가 해야한다 하고,,,


    그래서 하나님도 이 율법을 주시는 목적이 있읍니다.

    로마서 3:19-20절에서 그 정의를 주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셍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꺠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꺠달을 뿐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꺠닫는다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율법을 우리의 힘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사백삼십년 후에야 이 법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떄가 정확히 언제부터냐?

    잘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야곱이 이집트로 이주하던 때 부터 일 것이라고 

    믿는 성서학자들이 많읍니다(창46:1-3).


    다시 15절 부터 읽어 봅시다.

    사람의 약속도 폐하지 못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정하시 약속을 폐하시겠는가?

    16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창세기12: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신 말씀은 

    후대에 오직 한 자손 즉 예수 그리스도가 너로 인하여 태어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으십시다.

    즉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약속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중에 주신 율법이 앖에버릴 수 있겠는가? 

    결코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실 떄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자기 죄를 꺠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십계명 율법을 바라 볼 때마다 

    자기들은 하나님이 '하라'라고 한 법은 결코 하지 못했고, 

    '하지말라'라고 한 법은 다 저질러버린 범법자임을 꺠달았던 것입니다.

    

    결국엔 우리 인간 죄인은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꺠닫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기의 죄를 꺠닫고 하나님께 구원의 손길을 내밀 때,

    즉 하나님의 때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아래 낳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다시 은혜 아래 있게 하셨읍니다.


    이 율법은 인간에게 

    ---인간은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라는 것을 알게하는 교육의 기간이였읍니다.

    그리고 죄는 내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으므로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요, 구원자 되심을 꺠달았읍니다.

 

(2) 율법은 복음의 약속보다 결코 위대하지 못하다(갈:19-21).

    율법은 누구로 부터 말미암아 주어졌는가 하면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졌읍니다.

    갈:3:19절과 20절에서 율법은 결코 복음의 언약보다 위대하지 못 하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첫쨰로 율법은 일시적인 것입니다.ㄴ

    전 시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은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유효합니까? 영원히,,,

    그러나 율법은 예수님이 오실때까지,,,라고 말씀드렸읍니다.

    예로서 율법시대는 하나님이 특별한 장소(장막)에서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 임시적인 방편이였읍니다.

    이것은 율법시대에민 행해졌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읍니다.

    또한 이 율법시대에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을 열어 주셨던 것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병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절 "그런 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여기서도 율법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법함으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율법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영원히 떠나가시고

    (창6:3):?여호와꼐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우리는 마귀의 지배 아래에서 배운 것이 남을 짓밟고 일어나려는 악한 마음 속에서 

    법 없이는 살수 없기 떄문에 

    '중보의 손을 빌어' '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보의 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모세,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이 오실떄까지(히8:13)

    약속한 자손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니라 

    (사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참 많읍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은혜보다 위대하지 못 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범법자라는 것을 꺠닫게 해 주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생활의 지침서를 주고,

    자기의 죄를 꺠닫게 해 주고 등등 참 많읍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 합니다.


    율법 그 자체는 참 좋은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입니다(히10:1)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그 영광스러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은혜는 율법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의롭다 칭하시고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주셔서

    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도 지킬 수 없었던 율법을 지켜지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17을 통하여 말씀하시길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서2:8에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이 진짜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는 모두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타락한 부패성 떄문에 결코 지킬 수 없는

    그러나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법입니다.

    그런 즉 우리는 아무도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읍니다.


(3) 율법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한 다음,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된다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또는 법을 무시하고 살아도 된다 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 율법주의자는 아닙니다.


    말씀들인 바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를수 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거룩성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읍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를 꺠닫지 못했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치려고 조목조목 적어주시면서    

    우리의 행함을 법에 비추어 보도록 주신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라야 했읍니다만 죄성에 사로 잡힌 인간에겐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읍니다.

    이 율법은 은혜 속에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은혜를 받아 살지 못했지 때문에     

    우리 앞에 노출되어 보여진 것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율법과 복음은 반대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21절에서 언급합니다.

    이 두가지는 상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호하는 것이라고 피력하십니다.


    23절에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읍니다.

    우리가 몸이 더러운지 꺠끗한지 어떻게 알수 있읍니까?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듯이 

    행동거지가 어떤가를 알려면 율법에 미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내 행동에 대한 거울입니다.

    율법에 비추어 보아야 내 행함의 죄를 볼 수 있읍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율법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나의 추악함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 세상의 거울은 우리의 추악함을 보여 주기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깨끗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우리의 죄를 보여 스스로 씻을 수 없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하고 말씀하시지요.


    몽학선생이란 그 당시 로마 풍습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란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정교사란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자라고 나면 떠납니다.

    자랐다는 말은 가정교사가 없어도 가정교사가 가르쳐준 모든 것을 알고 행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바로 이 율법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가르쳐 주고 이제는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 완전히 알게 되니까 떠나면서 

    인간에게 깨끗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로 가서 그 분을 믿고 꺠끗함을 받아라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진실로 이 율법을 꺠달은 사람은 자기는 도저히 지킬수 없는 무능력함을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오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지금도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이 율법의 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읍니다.

    이 율법을 꺠달았다면 기필코 주님앞에 나와 자기의 무능력을 호소하고 그 분을 믿고

    의롭다라는 칭을 받고 깨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에게 무거운 짐이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 나와 에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라는 칭의를 받을 때

    나에게 지어진 무거운 짐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이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지킬 수 없었던 율법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5절 이하 29절에서는 은혜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가를 말씀합니다.

    

    첫째로 26절에서 너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율법 아래에서는 우리는 죄인이였는데 이 은혜의 주인공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어찌 된 말입니까?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니,,


    저는요 예수님 없이는 일초도 견디지 못 할 같읍니다.

    나를 다 알고 위로 해 주시는 분,

    나의 모든 죄도 깨끗이 치유 해 주시는 분, 

    내가 그 분께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한없는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분,

    이런 분이 이 세상에 또 있읍니까?

    저는 예수님이 너무 너무 좋아요.

    다시 한번 26절을 낭독해 봅시다--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둘째로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리스도와 합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이것이 바로 성령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해,,,물침례의식이 예수 믿기로 결단한 것을 세상에 공포하는 예식이라면

    성령침례는 내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구세주이며

    나를 주관해 주실, 나의 삶의 전부라는 깊은 꺠달음으로 내 가슴을 칠때

    얻어지는 성령의 감화감동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때야 비로서 진정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여기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 라는 이 옷은 옛날 이스라엘 풍속에 성년식떄 입히는 옷을 말 합니다.

    이 옷은 통으로 되었는데 즉 장막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새로 얻은 영원한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거하게 됩니다.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꼐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가 타락하여 주님밖으로 나오면 우리의 새 생명은 주안에 남아 있고 

    나는 옛 육신의 생명을 쓰고 세상을 다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28절에서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다.

    영광스런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국경을 초월해서 

    다른 민족도 형제간의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누구에게도 벽이 없이 한 예수님 안에서 형제자매의 의식을 갖읍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말을 해서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만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좋은 복음을 방관하며 세상의 달콤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쌓아 놓은 공로를 망쳐버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인간을 참으로 자유케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은 복음외에 아무것도 없읍니다.


    넷째로 29절에서 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유업을, 즉 영생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유업을 우리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여섯째날


3:15-29 율법과 은혜의 언약


구약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인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는가 하면 

신약은 이 율법인 참것 즉 예수님에 의해서 받은 은혜에 대한 언약을 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언급합니다.

15절부터 24절까지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서 더욱 명백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변론은 

어떤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면 

도대체 왜 하나님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 또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박할 경우를 위해서 이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다시 세분해보면 세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읍니다.


(1) 15절-18절: 율법이 복음의 약속을 헛되이 하지 못한다.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먼저 하나님이 약속하셨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음을 헛되게 못한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복음의 약속을 폐기할 수 없다,

    우리가 15절부터 18절까지 읽어보면 사도바울은 율법보다도 은혜가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며 

    그 약속을 헛되게 못하리라" 이 언약은 은혜의 언약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읍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아래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이 신약시대의 믿는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읍니다.

    그런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혜아래 있었읍니까? 

    아니면 율법아래 있었읍니까?

    지금 여기서 성경이 하시는 말씀이 이들도 은혜아래 있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아요?

    은혜의 약속이 언제 확실히 주어졌읍니까?

    아브라함 때 부터,,,,,그래서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아브라함을 불러주셨읍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을 읽어보면 아브라함도 우상숭배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찿아주셨읍니다.

    그리고 불러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도록 명령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은혜였읍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찿지도 않았던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먼저 찿아 주셔서 구해 주셨읍니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란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이유없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을 했읍니다.

    아마 장막을 공부하신 분들은 잘 아실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생활 때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며 원망했던가를,,,,,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올리십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길 율법을 줄 것인데 가서 백성들에게 물어보아라 하셨읍니다.

    

    모세가 내려와서 그 백성들에게 물어보니 무엇이라고 대답했읍니까?

    예에,,,,우리가 받을 뿐만 아니라 다 지키겠읍니다,,,,라고 장담함을 볼 수 있읍니다.


    19장 7절 이하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더 읽어보시면 이들이 율법을 받기도 전에 율법의 제 일 계명을 범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엄격한 율법의 재판장으로 등장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법을 파괴한 범법자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혜의 하나님이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심판관으로 

    이들 앞에 늘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사람들은 은혜 아래 있었을 때에는 그 은혜의 고마음을 알지 못 했읍니다.

    그런데 심판없이는 용서를 받을 수 없는 법이 딱 주어지고 나니까

    그떄서야 비로서 하나님의 은혜, 즉 사랑을 꺠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이 율법으로 통치되는 집안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그 자녀들은 늘 불안과 공포에 떠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도 은혜로 지배되는 가정만이 평화가 있음을 아십시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집안의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를 자주 저지르지요? 

    그래서 무엇을 합니까? 가정규칙이 세워지게 되지요?

    자식들에게 밤 몇시까지 들어와야한다. 

    또는 집안 청소는 일주일에 몇번을 누가 해야한다 하고,,,


    그래서 하나님도 이 율법을 주시는 목적이 있읍니다.

    로마서 3:19-20절에서 그 정의를 주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셍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꺠달음이니라."

    

    율법으로는 죄를 꺠달을 뿐입니다.

    율법이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죄를 꺠닫는다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율법을 우리의 힘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사백삼십년 후에야 이 법이 생겼다고 했는데 그 떄가 정확히 언제부터냐?

    잘 알수는 없지만 아마도 야곱이 이집트로 이주하던 때 부터 일 것이라고 

    믿는 성서학자들이 많읍니다(창46:1-3).


    다시 15절 부터 읽어 봅시다.

    사람의 약속도 폐하지 못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정하시 약속을 폐하시겠는가?

    16절에서 하시는 말씀은, 창세기12:2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 하신 말씀은 

    후대에 오직 한 자손 즉 예수 그리스도가 너로 인하여 태어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17절을 다 같이 읽으십시다.

    즉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약속을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나중에 주신 율법이 앖에버릴 수 있겠는가? 

    결코 없앨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실 떄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자기 죄를 꺠닫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십계명 율법을 바라 볼 때마다 

    자기들은 하나님이 '하라'라고 한 법은 결코 하지 못했고, 

    '하지말라'라고 한 법은 다 저질러버린 범법자임을 꺠달았던 것입니다.

    

    결국엔 우리 인간 죄인은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꺠닫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죄인은 자기의 죄를 꺠닫고 하나님께 구원의 손길을 내밀 때,

    즉 하나님의 때에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하시기 위해서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율법아래 낳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다시 은혜 아래 있게 하셨읍니다.


    이 율법은 인간에게 

    ---인간은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라는 것을 알게하는 교육의 기간이였읍니다.

    그리고 죄는 내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으므로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요, 구원자 되심을 꺠달았읍니다.

 

(2) 율법은 복음의 약속보다 결코 위대하지 못하다(갈:19-21).

    율법은 누구로 부터 말미암아 주어졌는가 하면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졌읍니다.

    갈:3:19절과 20절에서 율법은 결코 복음의 언약보다 위대하지 못 하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첫쨰로 율법은 일시적인 것입니다.ㄴ

    전 시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은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유효합니까? 영원히,,,

    그러나 율법은 예수님이 오실때까지,,,라고 말씀드렸읍니다.

    예로서 율법시대는 하나님이 특별한 장소(장막)에서제사를 지내도록 명령하셨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 임시적인 방편이였읍니다.

    이것은 율법시대에민 행해졌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읍니다.

    또한 이 율법시대에도 이런 방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구원을 열어 주셨던 것 역시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병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절 "그런 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여기서도 율법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법함으로 더하여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이 율법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영원히 떠나가시고

    (창6:3):여호와꼐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우리는 마귀의 지배 아래에서 배운 것이 남을 짓밟고 일어나려는 악한 마음 속에서 

    법 없이는 살수 없기 떄문에 

    '중보의 손을 빌어' '약속한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보의 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모세, 모세를 통해서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이 오실떄까지(히8:13)

    약속한 자손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이심이니라 

    (사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율법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참 많읍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은혜보다 위대하지 못 합니다.

    율법은 우리가 범법자라는 것을 꺠닫게 해 주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고,

    생활의 지침서를 주고,

    자기의 죄를 꺠닫게 해 주고 등등 참 많읍니다.

    그러나 이것을 우리는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 합니다.


    율법 그 자체는 참 좋은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입니다(히10:1)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문제는 그 영광스러운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인 것입니다.

    

    은혜는 율법을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의롭다 칭하시고 성령을 우리 마음속에 주셔서

    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렇게도 지킬 수 없었던 율법을 지켜지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5:17을 통하여 말씀하시길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에베소서2:8에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이것이 진짜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우리는 모두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타락한 부패성 떄문에 결코 지킬 수 없는

    그러나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법입니다.

    그런 즉 우리는 아무도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읍니다.


(3) 율법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영접한 다음,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된다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또는 법을 무시하고 살아도 된다 라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많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 율법주의자는 아닙니다.


    말씀들인 바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를수 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평화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거룩성이 무엇인지 조차 몰랐읍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죄를 꺠닫지 못했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치려고 조목조목 적어주시면서    

    우리의 행함을 법에 비추어 보도록 주신것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따라야 했읍니다만 죄성에 사로 잡힌 인간에겐 

    이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읍니다.

    이 율법은 은혜 속에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은혜를 받아 살지 못했지 때문에     

    우리 앞에 노출되어 보여진 것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율법과 복음은 반대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21절에서 언급합니다.

    이 두가지는 상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호하는 것이라고 피력하십니다.


    23절에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죄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읍니다.

    우리가 몸이 더러운지 꺠끗한지 어떻게 알수 있읍니까?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듯이 

    행동거지가 어떤가를 알려면 율법에 미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내 행동에 대한 거울입니다.

    율법에 비추어 보아야 내 행함의 죄를 볼 수 있읍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율법속에 들어가면 갈수록 나의 추악함은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인간 세상의 거울은 우리의 추악함을 보여 주기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깨끗게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은 우리의 죄를 보여 스스로 씻을 수 없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하고 말씀하시지요.


    몽학선생이란 그 당시 로마 풍습에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란 뜻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정교사란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아이가 자라고 나면 떠납니다.

    자랐다는 말은 가정교사가 없어도 가정교사가 가르쳐준 모든 것을 알고 행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바로 이 율법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가르쳐 주고 이제는 우리가 죄가 무엇인지 완전히 알게 되니까 떠나면서 

    인간에게 깨끗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로 가서 그 분을 믿고 꺠끗함을 받아라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진실로 이 율법을 꺠달은 사람은 자기는 도저히 지킬수 없는 무능력함을 발견하고 

    예수님께로 오지 않을수 없게 됩니다.


    지금도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이 율법의 참 뜻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읍니다.

    이 율법을 꺠달았다면 기필코 주님앞에 나와 자기의 무능력을 호소하고 그 분을 믿고

    의롭다라는 칭을 받고 깨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에게 무거운 짐이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십자가 앞에 나와 에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라는 칭의를 받을 때

    나에게 지어진 무거운 짐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이 무거운 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지킬 수 없었던 율법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바울은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25절 이하 29절에서는 은혜의 축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가를 말씀합니다.

    

    첫째로 26절에서 너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율법 아래에서는 우리는 죄인이였는데 이 은혜의 주인공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어찌 된 말입니까?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니,,


    저는요 예수님 없이는 일초도 견디지 못 할 같읍니다.

    나를 다 알고 위로 해 주시는 분,

    나의 모든 죄도 깨끗이 치유 해 주시는 분, 

    내가 그 분께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한없는 평안과 기쁨을 주시는 분,

    이런 분이 이 세상에 또 있읍니까?

    저는 예수님이 너무 너무 좋아요.

    다시 한번 26절을 낭독해 봅시다--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둘째로 2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리스도와 합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이것이 바로 성령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해,,,물침례의식이 예수 믿기로 결단한 것을 세상에 공포하는 예식이라면

    성령침례는 내 자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요 구세주이며

    나를 주관해 주실, 나의 삶의 전부라는 깊은 꺠달음으로 내 가슴을 칠때

    얻어지는 성령의 감화감동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때야 비로서 진정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여기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 라는 이 옷은 옛날 이스라엘 풍속에 성년식떄 입히는 옷을 말 합니다.

    이 옷은 통으로 되었는데 즉 장막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새로 얻은 영원한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거하게 됩니다.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꼐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가 타락하여 주님밖으로 나오면 우리의 새 생명은 주안에 남아 있고 

    나는 옛 육신의 생명을 쓰고 세상을 다시 방황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28절에서 모든 인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다.

    영광스런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면 국경을 초월해서 

    다른 민족도 형제간의 느낌을 느끼게 됩니다.

    그 누구에게도 벽이 없이 한 예수님 안에서 형제자매의 의식을 갖읍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려면 우리가 말을 해서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만 전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복음이 하나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좋은 복음을 방관하며 세상의 달콤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쌓아 놓은 공로를 망쳐버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인간을 참으로 자유케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은 복음외에 아무것도 없읍니다.


    넷째로 29절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의 유업을, 즉 영생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모든 유업을 우리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함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3:15-29 율법과 은혜의 언약?



3::15-29 율법과 은혜의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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