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넘게 신학대학원 입학을 위해 끈질긴 인내와 노력으로 겨우 들어갈 자격을 얻은 남편은 어느날 등록을 하기 위해서 학교로 향했다.

그날 남편이 등록 창구에 도착을 했을 때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었다고 한다.

남편은 등록금을 써주기 위한 체크 북을 손에 쥔채 젊은 학생들 틈에 끼어 서서히 창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신이 점점 창구 쪽으로 가까이 가게 되자 그의 머리속에는 우리 가족의 전 재산으로 남아 있던 은행의 잔고가 떠올랐다고 한다.

등록금을 내고 난 후에 남겨질 금액이 그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5명의 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슴이 조여오는 불안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그 대열에서 빠져 나와 문 가까이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잠시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학교는 남편과 다른 교단에 속해 있는 학교이기 때문에 남편은 장학금 혜택도 전혀 받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엄청 비싼 학비를 아무 도움없이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그의 머리속은 이런 저런 사정들의 동영상이 순식간에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이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들어 보니 줄이 다시 길게 늘어져서 사람들로 북적 거리고 있었다. 남편은 자신도 모르게 또 맨 끝으로 가서 다시 줄을 섰다.

다시 창구에서 가까워지는 순간 그는 또 다시 그 대열에서 빠져나와 어정어정 불안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또 다시 고민에 빠져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세번째 대열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에 성경 말씀이 그의 머리를 치더라는 것이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75)

예전에 남편이 불신자였을 때 우연히 성경 말씀을 읽다가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 당시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은혜를 받아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며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통회하며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다.

그가 마음의 결정을 못하고 서성이고 있을때 갑자기 그때의 그 말씀이 떠 오르고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며 남편은 갈등 하고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미련없이 등록금을 써서 내고 돌아 왔다고 했다.

남편의 길고 긴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우리 가족은 더욱 더 없는 살림과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남편은 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조금이라도 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어떤 일이건 마다않고 뛰어 다녔다. 그가 방학 동안에 한 일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별의별 종류가 다 있었다. 여자들 생리대 만드는 공장, 플라스틱 케이스 만드는 공장 등 참으로 다양했다.

그 중에 무더운 한여름에 한 손에는 쇠 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플라스틱 사출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큰 케이스를 다음 것이 나오기 전에 완성시켜 내는 일은 정말 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한 여름 뜨거운 기계 앞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결과는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 둘 때, 회사측에서는 남편에게 승진 시켜주고 돈도 많이 줄테니 그냥 다닐 수 없겠느냐고 붙들었다고 했다.

어느 해에는 자동차 세일즈맨도 했다. 그가 들어간 회사는 ‘폭스바겐’과 ‘수바루’를 파는 딜러였다.

내가 보기에 세일즈맨 직업은 남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의 성격은 누구와 살갑게 자세한 대화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말을 해도 간결하게 요점만 말하고 길게 표현하는 것을 성격상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손님을 상대로 자동차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한다는 일은 나로선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일을 하기 시작한지 한달 가까이 되어 오던 어느날 저녁에 남편이 일하는 사무실의 총지배인이 전화를 걸어 나를 찾는 것이었다.

무심결에 전화를 받은 나에게 그는 뜻밖에 상상치도 못한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미세스 리, 축하합니다. 당신 남편이 우리 딜러에서 차를 제일 많이 팔아서 “세일즈맨 오브 더 먼스”(Salesman of the month)가 되었습니다.~~ 라며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흥분된 소식을 전해 들은 후에도 뭐가 뭔지 정신이 얼떨떨 하며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날 저녁 남편은 회사에서 특별히 주는 체크를 한장 들고 돌아 왔다.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자꾸 질문을 하는 나에게 남편은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가 일하는 직장에는 많은 세일즈맨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경력이 수십년씩 되는 노련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손님들이 파킹랏에 차를 세우고 내릴 때 자기 사무실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가 차를 살 사람과 안살사람을 노련하게 구분을 한 후에 그들을 맞으러 나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한 노-하우가 없으니 무조건 손님이 나타나기만 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뛰어 나가서 시원치 않은 발음이지만 친절하게 끝까지 함께 안내를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결과가 노련한 세일즈맨들의 눈에는 허술하게 보이던 손님이 생각지도 않게 남편의 진실한 행동에 마음이 끌려 자기 차뿐만이 아니고 가족들 차까지 산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것이 몇 건 겹치다 보니 놀랍게도 그곳에서 차를 제일 많이 판 세일즈맨이 된 것이었다. 남편은 그러한 놀라운 결과를 분명 하나님이 보내주신 손님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해의 방학 동안에 일한 수입은 학비를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놀라웁게도 우리 가족은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고, 지닌 것이 없는 중에도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생활을 유지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저녁 시간에 느닷없이 찐 감자를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세끼 식사 외에는 별로 무엇을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찐 감자 타령인지… 나는 “애 섰어요? 왜 갑자기 무슨 감자가 먹고 싶어요?” 하며 그의 이야기를 퉁명스럽게 받아 넘겼다. 예산에 없는 지출은 아예 안하려고 애쓰던 시절이었다.

조금 있다가 남편은 밖에서 무슨 기척이 난 것 같다고 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갔던 남편이 나를 급히 부르는 것이었다. ~~여보, 여보, 이리 좀 와 봐요.~~ 그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래서 문으로 뛰어 나간 나에게 남편은 큰 자루를 하나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아이다호 감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내 눈 앞에 놓여진 감자는 그 사이즈가 얼마나 크고 실한지 보통 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식구가 한달을 매일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나는 내 눈앞의 그 감자의 실체에 놀램보다도 좀 전에 남편의 찐 감자 타령에 퉁박을 주었던 순간이 떠 오르면서 눈앞에 일어난 사건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놀랍기만 한 것이었다.

나의 머리 속에서는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남편의 말을 들으시고 불쌍해서 “내 아들아!” 하시면서 하늘로부터 던져 주신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때에 누군가가 몰래 어려운 전도사의 궁색한 살림을 생각해서 놓고 간 것인지? 머리 속이 욍욍 회전을 해도 어디에도 실마리를 풀 답은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이웃들과 감자를 모두 연결해 보았지만 감자와 관련이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너무도 궁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출처도 모르는 아이다호 감자를 찜통에 쩌서 포삭포삭 감자 속이 뽀얗게 결이 져서 뽀게지는, 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 나는 감자를 온 식구가 둘러 앉아 껍질을 벗기고 소금에 찍어 물김치를 곁들여 정말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설겆이를 하고 있으려니까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었다.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은 우리가 가끔씩 도움을 주고 있는 최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홀로 살아 가고 있었는데 생활력이 얼마나 강한지 직장을 3곳을 다닐 때도 있었다.

그녀의 원래 직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텔레콤 회사에서 주중에 낮일을 하고 저녁에는 부페 식당에서 부엌 일을 하고, 또 주말에는 골프장의 스낵바에서 일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돈을 버는지 평소에 그녀를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그녀의 정신력과 생활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강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오는 모든 서류는 무조건 우리에게 들고 와서 도움을 청하는 처지였다.

우리가 그녀와 이웃이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몇년 전에 우리 부부가 모두 직장에서 감원 당했을 때, 그 아주머니가 나와 남편을 자기가 일하는 골프장 스넥바에 파트 타임 일을 소개 해줬는데, 그 당시 남편이 토요일 낮 시간에 그 아주머니와 한 팀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후에 그 아주머니는 그녀의 모든 일들을 기쁜 마음으로 봐주는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그녀와 같이 일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일을 자기는 힘들다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나의 남편만 부려 먹었다는 것이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자신이 해야 할 일까지 심하게 시키는데도 아무 불평이나 얼굴을 찡그리는 일 없이 고분고분하게 일을 해주는 남편을 솔직히 좀 우습게 생각하고 막 부려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최 아줌마는 그리 막 대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심중을 밝혔다. 그 후부터 그 아줌마는 우리 가족에게 깍듯이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다. 늘 바쁜 시간에 쫒기는 그녀가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서 전날 밤의 감자 자루는 자기가 갖다 놓은 것이라 밝히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일하는 미국 부페 식당에서는 구운 감자를 쓸 때 싸이즈가 아주 크거나 작으면 모두 골라서 버린다는 것이었다. 늘 그렇게 버리던 감자였는데 그날 저녁에는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 자기가 집에 가지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가지고 가도 좋다고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집 앞에다가 내려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통화를 하면서 우리 부부의 대화 속에 오고 가던 감자가 기적의 순간처럼 놀라운 타이밍을 맞추어 우리 집 앞에 최 아주머니의 손에 의해 놓여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보통 때 그녀가 감자 한 자루를 들고 우리를 찾아 왔다면 고마운 마음은 들었어도 그리 찐한 은혜의 감격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 그리도 때를 잘 맞춰서 감동의 이벤트를 절묘하게 감독을 하시는지, 궁색함에 기가 죽어 있던 우리들에게 생각지도 않은 작은 일로 심령속에 큰 기쁨과 희망을 주시는 것이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가난한 과부의 손길을 통해 연명할 수 있었던 것 같이 성경 속의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로 찾아 오신 것이었다.

그 작은 사건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루하루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한고비 한고비 넘겨가는 우리 가족에게 든든한 분이 늘 우리들의 등 뒤에 서 계시다는 확신을 더해 주었다.

나의 심령 속에서 은혜의 찬송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다가와 손 내미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아멘. 아멘. 할랠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