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베디아 교회는 사우스케롤라이나와 조지아 경계선에 위치한 동네에 있다. 강 하나 사이로 동쪽은 벨베디아고 서쪽은 어거스타라는 동네이다. 어거스타는 타이거우드가 참석하는 메스터스 골프게임으로 유명한 동네이다. 옛날에는 사바나 강줄기를 따라서 벨베디아라는 동네쪽으로 상선들이 정착하고 짐을 풀 수 있는 선착장이 있어서 벨베디아가 흥청대며 북적대고 번화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조지아쪽에서 많은 노동력과 공사비를 투입해서 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어거스타쪽으로 운하를 만들게 되었다. 자연히 조지아 쪽이 발전하게 되고 벨베디아 쪽으로 목화를 배로 나르던 선착장이 폐쇠되니 주요 수입원이 없어지고 흥하던 동네는 쇠하고 대신 바로 강 건너쪽인 어거스타에는 강 주변으로 섬유를 짜는 직물 공장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주민들의 주요 산업이 폐쇠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의 직장을 찾아 이주를 하고 남은 가족들 중에는 그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면서 다시 정착을 한 사람들이 가족을 거느리고 그곳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벨베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한 대가 살아가면서 자식들은 이미 장성을 해서 모두 제 갈길들을 찾아 나가고 대부분 칠십 팔십 구십대의 노인네들이 많은 교회였다. 그곳은 가족들이 잘 어울려 살며 대 가족 제도를 잘 이루어가는 가정들이 많은 동네였다. 또한 그 동네의 특이한 점은 장수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끔씩 나오는 백세를 넘긴 할아버지는 얼마나 정정하고 기억력이 좋은지 우리 부부에게 그 동네의 역사와 개 개인의 이름을 놀랄 정도로 전해 주는 것이었다. 어느날은 자기가 식구들과 아주 먼 옛날에 켐핑을 가서 낚시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그 총명함이 나를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의 벽에는 부시 대통령이 100세를 넘은 그에게 명예 군인의 표창을 하면서 찍은 백악관에서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었다.

어느때 나에게 농담을 건네는 100세를 넘은 할아버지의 마음은 늙은이가 아닌 젋은 청년의 애띤 맘으로 전해져왔다. 나는 예전에는 노인네들을 보면서 맘도 겉 모습과 같이 노쇠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인생의 낙을 모두 포기한 산송장 정도로 의미와 희망이 없는 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맘 조차도 이미 땅에 묻힐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고 아예 단정을 짓고 보았다. 그런데 내 나이 50을 넘기고 목회를 하면서 많은 노인네들과 접하면서 그들에게도 사랑과 순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우리 교인중에 70을 넘어 80으로 가까이 가고있는 루이스라는 아주 멋쟁이 할머니가 있었다. 그 루이스는 머틀과 펄이라는 할머니와 단짝이었는데 세명 모두 과부 할머니들이다. 머틀 할머니는 70을 갓넘긴 셋중 제일 어린 할머니이고 펄은 93세로 제일 나이가 많았다.

우리가 그 교회 부임한 첫번째 주일날 저녁에 루이스할머니가 사택으로 전화를 해서 자기들이 펄네 집에 모여있으니 우리한테 그리로 찾아 오라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펄 할머니 집으로 찾아 갔다.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펄 할머니 집은 집 밖의 잔디도 아주 깔끔하게 손질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차를 파킹하고 차에서 내려 문을 두드리니 루이스가 문을 열어주며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우리를 식탁으로 안내를 했다. 머틀 할머니는 이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우리를 반겼다. 조금 있으니 부엌에서 나오는 펄 할머니는 쟁반에 자신이 우리를 위해 손수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을 사람 수에 맞춰 들고 나왔다. 그녀는 풍채가 얼마나 좋은지 90이 넘은 노인네라고는 믿어지지를 않았다. 허리도 굽지도 않고 말도 또박또박하니 그녀에게서는 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나이를 듣고 놀라는 우리에게 루이스와 머틀 할머니는 깔깔 대면서 더욱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었다. 집 밖의 잔디도 아직은 펄 할머니가 론 모어(풀깎는 기계)를 끌고 다니며 깎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년 전에는 집 앞에 오래된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있었는데 펄 할머니가 그 무겁고 위험한 전기톱을 윙윙거리며 엄청나게 큰 고목 나무를 베어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스토리는 기네스북에 오를 이야기꺼리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그리 억센 행동을 하는 그들의 마음은 아주 인정이 많고 정직하고 진실했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루이스 할머니는 늘 우리 부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자신의 뛰어난 요리솜씨를 보여 주었다. 우리가 초대되는 날에는 꼭 함께하는 교인들이 있었는데 우리 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다.

그의 이름은 바트였는데 독신의 중년 남자였다. 사람들 말로는 예전에 이혼 경력이 한번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얼굴도 잘 생기고 풍채도 좋고, 과묵하면서 성가에 대해서는 꽤 실력이 있는 지휘자였다. 그 지휘자는 그의 엄마와 같이 교회를 나오고 있었는데 그녀도 아들과 함께 성가대원으로 열심히 교회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루이스 할머니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가서 맛있게 먹고 시간을 보내고 돌아 올 때는 루이스 할머니는 늘 잊지 않고 남은 음식을 우리와 지휘자인 바트에게 꼭 싸서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집안 분위기는 노인네의 집 분위기라고는 말할 수 없는 신선하고 세련된 살림과 장식들이었다. 그녀의 말로는 몇년 전에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녀가 남편과 살던 집이 너무 커서 새로 지은 아담한 집으로 옮겨 왔다고 했는데 현재 집도 꽤 넓은 평수인데 혼자 살고 있었다. 루이스 할머니의 집안에는 늘 상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베어있고 살림살이가 오래된 골동품 풍이 아닌 은은한 파스텔 색조의 분위기로 젊은 기분이 감도는 것이었다.

 

루이스와 머틀 그리고 펄 할머니와 같이 지휘자를 자주 만나 식사를 하며 서로 가까이 친하게 지내던 어느날 바트가 담임목사인 남편에게 상담을 요청 해온 것이었다. 그가 만나자는 시간에 맞춰서 남편은 교회로 나갔다. 그날 저녁 그를 만나고 돌아온 남편은 어두운 얼굴 표정을 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전해준 말은 놀랍게도 우리와 친하게 만나던 지휘자 바트가 갑자기 교회를 떠나겠다고  믿어지지 않는 심경을 털어놨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우리 부부는 무슨 일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진짜 떠나는 이유를 밝히지 않는 지휘자의 심중을 추측할 길이 없었다.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 것은 혹시 그가 동양인 목사와의 관계를 불편해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무의식중에 목사에게 무슨 오해가 있는 것은 아닌지? 밤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우리 부부는 밤잠까지 설치고 있었다.

 

실력이 있는 그가 교회를 아무 이유없이 떠난다고 한다면 교인 중에는 그일로 실족하는 교인들도 생길 것이 뻔한 일이었다. 바트의 영향력은 걱정이 될만큼 신임도와 친분이 교인들간에 깊었다. 그래서 우리는 궁리궁리 끝에 이왕 교회가 시끄로워 질거라면 이유라도 확실히 알아 보자고 결론을 지었다.

그리 결정을 본 남편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를 만나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바트! 혹시 나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 떠나는 것이라면 그리 할 필요가 없으니 생각 해볼 시간을 줄 수 있을까?” 하고 말을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의 고민을 듣고 있던 그는 무겁게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아주 힘들게 열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이유가 흘러 나온 것이었다.

조용하게 입을 연 그는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루이스 할머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조심조심 이야기를 풀어 놨는데 루이스 할머니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자기가 정확하게 듣고 있는 것인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는 것이었다. 지휘자는 40대인 아들뻘이고 루이스 할머니는 70후반의 80이 가까운 나이니 믿어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처음에는 루이스 할머니의 자신에 대한 관심을 그냥 고맙게 생각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 평범하게 넘기기에는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루이스 할머니가 하기 시작을 했는데, 늦은 밤에 루이스 할머니는 그녀의  집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지휘자 집을 찾아서 느닷없이 파이를 구워 들고 오고, 또 어느날은 그의 집 밖에 와서 서성이며 우물 쭈물하고 있는 것을 지휘자가 몇번을 창문으로 내다 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찾아 와서 무엇을 전해주고 가는 그녀의 행동이 언제부터인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도 지휘자는 자신이 혹시 경솔한 판단과 오해는 안한 것인지 많은 시간을 두고 보며 괴로와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루이스 할머니의 행동은 좀 과한 행동으로 까지 변해서 젊은 지휘자에게 계속 접근과 속내를 표현해 왔다는것이었다. 그런 황당한 상황에서 자신이 내린 결론은 자기가 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지휘자의 속내를 전해 들은 남편과 나는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이러한 지휘자의 심중이 소문이 날 경우에는 온 교회가 발칵 뒤집히고 또 루이스 할머니까지 교회를 못 나올 처지가 될건 뻔한 이야기였다. 루이스 할머니는 벨베디아교회 동네에서 새댁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살아온 동네의 역사에 한부분을 차지하는 존경받는 조용하고 신앙 좋은 정많은 미인 할머니인데 정말 믿을 수 없는 스켄들을 만드신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고민 끝에 루이스 할머니의 친구인 머틀 할머니와 의논을 하며 더 자세한 사정을 다른 편에서 들어보는 기회를 갖기 위해 찾아 갔다. 우리가 머틀 할머니에게 찾아가자 그녀는 벌써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심방을 왔는지 눈치 빠르게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날 머틀 할머니와 나눈 대화는 자신의 친구가 지휘자를 좋아했네 안했네 하는 진위의 가림 보다는 어떻게 이 일을 조용하게 수습하느냐에 대해 할머니는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휘자가 자신이 떠나는 이유에 대해 입만 안열고 떠나준다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재 노인네들 몇명뿐이니 우리는 떠나는 사람보다 이곳에서 한 식구로 살아갈 루이스를 위해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휘자는 교인들에게 그가 더 많은 사례비를 주는 교회로 떠났다 하면 교인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을 것이고 다만 모든 사실을 아는 우리 몇명이 입을 굳게 다물어 준다면 모든 일의 결말은 아무 일없이 덮여질 것이다~~ 라고 그녀는 우리 부부에게 오랜  인생 여정의 실전에서나 나올듯한 목회의 한 수를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머틀의 계획 대로 몇주 후에 지휘자는 마지막 성가의 지휘를 하고 사임을 했다. 그 날 예배의 분위기는 이미 교인들 사이에 지휘자 모르게 퍼진 돈 많이 주는 곳을 찾아가는 실망스런 지휘자의 모습에 교인들은 이미 냉정해져서 미련없이 떠나 보내는 눈치였다. 

그날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왠 낯익은 차가 우리 차를 졸졸 따라 오길래 백 미러로 보니 놀랍게도 루이스 할머니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멀찌기서 운전을 하며 뒤따라 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모른 척하고 조금 빨리 달려 그 차를 시야에서 멀리 보내고 달려왔다. 머틀 할머니와의 결론을 생각하며 이미 지휘자가 떠난 마당에 루이스 할머니의 스켄들은 매듭이 지어졌고 다시 이야기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놀랍게도 루이스 할머니의 일은 누구의 입 밖에도 거론 되는 일 없이 아주 깔끔하게 처리가 되었다. 루이스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의 노후에 이미 모두 소멸 되었다고 생각했던 감성의 고목에서 사랑의 뜨거운 불씨가 새싹의 순을 틔어 고개든 노후의 짝사랑에 대해 어찌 삭혔는지는 궁금하지만 교인 몇명의 그녀를 사랑하는 굳은 방어가 그녀의 신앙생활을 앞으로도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인도해 주었다.

그러한 할머니들의 신앙의 지혜는 놀라울 정도로 뿌리가 깊고 심오한 경지였다. 그런 노련함 속에서도 그들에게도 풋사랑이 숨겨져 있어 언제고 대상만 생기면 젊은이 못지 않게 뜨겁고 열렬 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노인은 몸이 노쇠할 뿐이지 맘은 늘 그대로 새순같은 여린 감성과 뜨거운 정열은 늘 노련함 뒤에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많은 미국 생활을 배우며 목회를 하다가 우리가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90이 넘은 펄 할머니는 나를 자기 집으로 불렀다. 그녀는 나를 자기 침실로 손을 꼭 잡은채 데리고 들어가서는 몇일을 잠도 안 자고 수 놓은 십자수 수건 2장을 건네 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레이스 어디를 가든 나를 생각해다오 그리고 너희 집에 귀한 손님이 올 때에 이 수건을 화장실에 걸어 놓으렴. 내가 몇일 밤을 걸려 만든거야. 그리고 네가 다음에 이곳에 들릴 때에는 내가 살아 있을려나 모르겠구나~~ 펄 할머니와 나는 한참을 서로 손을 잡고 껴 안은채 눈물을 그렁이며 떨어 질줄을 몰랐다.

할머니가 손수 조금 떨리는 손으로 수를 놓은 십자수 수건은 볼 때 마다 늘 그녀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나의 장식장에 소중하게 진열이 되어 있다.

신앙 안에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맺어진 사랑에는 국경이나 인종이나 피부색이 다 필요 없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끊을 수 없는 진한 영적인 사랑임을 잔잔한 감동 속에 다시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