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일곱쨰 날 -?목회자 조수길
4:1-7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녀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성숙 되어가다가
어느 조건에 의해서 퇴보의 길을 걷는 믿음의 상태를 말씀 해 주고 있읍니다.
지금 당신들의 믿음은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이 말씀을 통해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의 말씀 중에는 '율법 아래' 란 말씀이 참 많이 등장함을 봅니다.
2절에서는 율법을 '청지기'에 비교했는가 하면 3절에서는 이 율법을 '초등학문'이라고 표현했읍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율법 아래' 라는 말이 번복됨을 볼 수 있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어린 아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옛 로마시대에는 종의 신분의 사람이 시민권을 갖은자 보다 약 6배나 많은 인구이였는데
그 당시 신분이 높은 시민권자들은 자기의 자식들이 성년이 되는 시기까지
가정교사 밑에서 교육 되어지고 자라게 했읍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가정교사가 어데서 채용되었는가 하면
종의 신분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골라 자식을 가르치는 직분을 맡게 시켰읍니다.
그러니까 높은 신분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성년이 될 떄까지는 종의 밑에서 자라면서
종보다 낮은 취급을 받으면서 자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이 자녀는 성년식을 갖는 순간부터 자기를 가르쳤던 종의 주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유대나라에서는 12살이 되면 성년식을 하고, 로마에서는 16살이 되면 성년식을 했다고 합니다.
이찌하든 이 성년식이 있기 전까지는 정식 아들로 등록되지 않았읍니다.
즉 이 성년식이란 자기 아들을 정식 아들로 인정하고 상속권을 부여하는 모든 권한을 그들에게 줍니다.
그래서 여기서 비교되는 율법과 은혜는 이 당시 이 문화를 비교로 말씀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율법은 초등학문 즉 종이였는데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이 이 율법 아래 태어나서 율법의 종 노릇하다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비로서 우리는 이제 자라서 성년식을 갖게 됨으로
모든 사람이 이 율법의 구속에서 은혜아래 놓여짐으로,,,
성년이 되어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아들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다시는 율법아래 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배우지 않아도
이 율법은 자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12살 이전까지는 자기 인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살 수 없었지만,
성년이 됨으로 자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더 큰 의미가 있다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다는데 있읍니다.
그래서 여기 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 니라" 라고
너희들이 아들이였지만 종보다 나을 것이 없는 자식이였는데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자(성년식을 갖춘자)는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자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그래서 1절의 말씀이 나오신 것입니다.
1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라고
하신 말씀을 그 당시 그들의 문화에 연관시켜 읽으실 떄 비로서 참 뜻을 알 수 있읍니다.
2절 "그 아버지의 정한 떄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또한 이 당시 종들은 주인의 청지기 노릇하는 사람들도 있었읍니다.청지기란 주인의 절대 신임을 받고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지키는 종을 말합니다.
이 후견인이나 청지기나 몽학선생은 다 종에서 뽑았읍니다.
다시 한번 이 율법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믿는 자들의
몽학선생이요, 후겸인이요, 청지기와 같은 것이였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을 전 시간에 배웠지요,
두 가지로 말씀해 봅시다.
첫쨰는 우리의 죄를 깨우쳐주고
둘쨰는 그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 하신다고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죄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또한 안다해도 그 자신들로는 이 죄를 해결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꺠우쳐주고
메시야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임을 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메시야로 우리에게 오셨읍니다.
그런데도 이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율법아래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해서 참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이며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수도 있읍니다,
나는 율법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쁜 일 아니하고 선하게 살면 천당 가는 것 아니냐고.,,,
그것이 바로 그분의 양심의 율법이지요.
또한 율법아래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선하게 살수 없는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로마서 2장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몇가지 율법에 대한 촛점을 말합니다.
첫쨰는 1-3절까지 아들이면서도 아들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종과 같이 사는 비극을 말씀하고 있으며
이 은혜의 시대에 왜 이 비극적인 종의 길을 다시 택하려 하는가?
갈4:1: 내가 다시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느 종과 다름이 없어서
4:2: 그 이버지의 정한 떄까지 후젼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떄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4: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이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종은 항상 주인의 불같은 호령에 떨면서 삶니다.
우리도 아직도 이 율법아래 있다면 하나님의 심판 아래 무서워 떨면서 살 수 밖에 없읍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그 분을 믿고 하나님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종의 위치에서 당당한 아들의 위치로 승격한 것입니다.
둘째로 4절에서 "떄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떄가 차면 어떻게 된다구요?
12살이 되면 종 선생님으로 부터 배울 것을 다 배우고 자유인이 되지요.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정정당당하게 쓸수 있는 법적인 상속자의 권리를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과거에 율법아래 종 노릇하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풍부한 모든것을 우리도 이제는 상속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2살이 되었다해도 정신적으로 박약하거나 신체상으로 너무 빈약한 사람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없었읍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사람이 행함을 들고 사람들을 정죄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했다해도
정신박약자나 신체적 불구자들과 같이 율법 아래 있고 자유를 얻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자란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즐기면서 삶니다.
여기서 '떄가 차매' 란 하나님이 다시 인간 구원의 역사를 설계하셨던 그 떄가 찼다는 말씀입니다.
5절에서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겨 하심이라"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셨는가?
첫쨰로 그 분은 우리를 속량하셨읍니다.
속량이란 뜻은 댓가를 치르고 풀어주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사탄에게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들여 자유인으로 놓아 주셨읍니다.
한 예를 들어보면 노예시장에서 인신매매가 시작되었읍니다.
어떤 한 사람이 아주 비싼 댓가를 치르고 노예 하나를 사서 시장을 빠져나와서 노예에게 선언하길
너는 이제부터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선포하며 놓아 주었읍니다.
이것이 바로 속량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노에는 자유는 되었지만 직업도 없고 갈 곳도 없는 거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노예에게 자유를 주어 망망한 세상으로 내 쫒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생애까지도 책임을 지어 주셨읍니다.
이 거지를 왕 중에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데리고 가서 양자로 삼게하여
거지가 왕자가 되는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이 노예는 자유의 거지 신세가 되었던 것을 하나님의 아들이란 명분을 얻어 주셨읍니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노예가 바로 나 라는 것을 꺠달는 전율을 느끼십니까?
예수님이 율법 아래 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우리를 만나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읍니다.
만약 하나님이 거룩하게만 오셨드라면 우리가 그 분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요?
6절에서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노예에서 풀려난 거지, 그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담대함이 없읍니다.
생각 해 보세요.
거지가 왕 앞에서 왕이 '너는 이제부터내 아들이야'라고 말씀했다고 해서
그 거지가 당장 왕을 감히 아버지하고 말이 나오겠읍니까?
오래 동안 새 아버지인 왕 앞에서는 똑바로 서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지는 자기 꼬라지를 생각하면 어찌 임금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겠읍니까?
거지는 아버지하고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있는 능력이 없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새 거지왕자인 우리에게 자기를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아들 즉 아들 즉 예수님의 영을 우리마음 속에 심어 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그에겐 하나님의 영이 있음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은 삶이 예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도 꺠닫고 하나님 자녀답게 실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잠시 종과 하나님의 아들의 차이점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아들 종
1, 현세와 영생에 대한 안목이 넓다. 1, 현세와 영생에 대한 안목이 없다.
삶에 대한 안목을 갖고 미래를 설계한다. 현재만이 전부인양 물질적/세상적 삶을 산다.
.
2, 자유가 있다. 2, 두려움 속에서 산다.
주인의 눈치만 보면서 불안 속에 산다.
3, 세상 것에 눈을 돌릴 필요 없이 범사에 감사하며 3, 시기, 질투 속에서 살며 모함을 일 삼는다.
기쁨이 충만한 당당한 삶을 산다. 항상 뭔가 불안하며 시기, 질투 속에서 살며
왜냐하면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았으니까 모함을 일삼는다.
물론 수없이 찿아 볼수 있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서로 시기 질투 헐 뜯으며 삶니까?
그것은 다 헛것임을 아십시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자유인이 된후 자기 스스로 예수님의 종이 되길 선택했읍니다.
자유의 종과 얽매인 종은 질적으로 다름을 아십시오.
오늘날 목사님들이 주님의 종, 주님의 종 하는 종은 엄격히 말해서 이 자유의 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 유대 나라 시대에는 어느 종도 7년이 되면 풀어 주는 안식년의 절기 행사가 있었읍니다.
자유가 된 종은 주인의 은공이 너무 감사해서 영구한 종이 될 것을 자처 했읍니다.
이 종에게는 귀를 뚫던가 문신을 넣어 영구 종이 된 흔적을 갖읍니다.
그 떈 이 종은 주인의 율법아래 사는 것이 나이라 은혜 아래 살면서 자유를 즐기며 주인에게 헌신 합니다.
이 속에는 서로 신임하는 사랑으로 이루어지기 떄문에 서로의 신뢰가 지극했읍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주님의 종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온 종이라야 합니다.
7절을 읽고 끝내겠읍니다.
7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모든 좋은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나를 다스려 주실 분/왕)과
구세주(죄에서 나를 구원하시어 영생으로 이끌어 주실 자)로 영접함으로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었읍니다. 아멘
?순영언니이,,,무척 노력하시는군요,,,하하하하
이런 강해설교는 사실은 성경책을 앞에 놓고 구절구절 그 해석을 찿아 내려가야 하지요,.
전체의 뜻은 모든 것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것,
지금 시대는 많은 설교들이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촛점을 맞추는데,,,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좋다해도 하나님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하실 그 자리에 설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율법도 아니고 교회의식이나 전통도 아니고
참 복음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아는 것,
왜 그것이 그리도 어려운지,,,,
믿음이란 나의 자존심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서 일어나는 나 자신속의 싸움?이라면???
진정한 믿음은 나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로 모셔
그를 나를 다스려 주실 주님과 나를 영생으로 구원해 주실 구세주/구원자 라는 것을 믿고
나의 모든 사고판단을 주님꼐 촛점을 맞추는것,,,
그러나 우리의 자존심을 내 중심에서 뺴 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기적이랍니다.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는 거지요,.,,
내가 잘나서 이 만큼 살아온 줄 알았던 나의 인생에...
어느 날 벼락치듯 가슴을 울리며 오는 꺠달음으로 뜨거운 눈믈의 복받침과 함꼐 나의 무릎이 꿇어지는 날,,,
나의 오만의 회개와 함꼐.....그떄부터 내 안에 우선 순위가 바뀌어지는 거지요,,
그리고 나면 오는 그 평안과 넘치는 기쁨,,,그 비밀을 알게 되지요,
그떄부터 주님은 나의 삶을 주관해 주시고,,,
이 세상의 많은 마음의 짐을/ 세상의 고통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며 동행해 주시죠.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려운 저 밑바닥의 고통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축복이라 일컬음은 부유속에서는 역쉬 내가 내 삶의 주인이기 떄문에
꺠달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적기 떄문이지요,
영생을 믿는 우리의 믿음은 이 생이 그 영원에 비해서는 하나의 점과 같음을 아는고로,,,
그것을 추구하며 그 결과는 나의 삶에 무한한 평안과 기쁨이 임한다는것,,,
에고오,,,말 많다아,,,,하하하하하
순영언니이,,,사랑해요오,,,
순자야~~목사님께서 풀어 쓰신 갈라디아서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쓰신 해설이 많은 위로가 되누나!
맞어!!
우리는 종의 신분이 아니라 하느님의 상속받은 자녀가 되었지
요즘 내가 추구하는 삶은 바로 이것이란다.
세상 것에 눈을 돌릴 필요 없이 범사에 감사하며
기쁨이 충만한 당당한 삶을 산다.
좋은 글 잘읽었다.
고맙다.
나의 사랑하는 칭구 미선아,,,고맙다아,,,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냥 감상적인 것이 아니고
그가 누구인지? 왜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는지?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관계는 도대체 어떵건지?등
정확히 논리적으로 알떄 나에게 능력이 생기며
예수님과의 바른 교제가 성립이 되지,,,
두 부부가 평생 살아도 서로의 인격의 교제가 없이
에고오 저 웬수와 산다능것과 비슷한 맥락,,
더 깊은 예수님과의 교제가 있을라믄 정확히 아는 것이 힘이 아니긋니??/하하하하
바라기는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왕이면 성경책을 놓고 열심히 해 보렴...
우리 이 조목사님으로 말할것 같으면 평생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거함에 무보수로
천만금을 주어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바꿀 수 없는 그런 간절함으로 쓰시는 것이란다,
세상 사람을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증거를 하기 위해서,,,
이 갈라디아서는 일명 '사랑의 헌장'이라고 하지,,,
이 갈라디아서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어마어마하게 변질되었을거라는거지,,,
저 위에 순영언니에게 쓴 글도 읽어보고 하며 우리 같이 믿음생활을 해 나가자꾸나,,
내가 이것을 쳐서 올리는 것도 그럼으로 나의 믿음도 새롭게 정립이 되고 자라기 떄문이지,,,,
???순자야!!!!
좋은 말씀 고마워.
열심히 읽었지만 충분히 이해는 못한거 같아.
여러번 읽어야 되겠다.
한가지 머리에 남는 것은 아들을 종 중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을 골라서
가르치게 했다는 것이 새롭다.
그런데 순자가 갈라디아의 강해 설교를 할때는
너무 엄숙하고 경건해서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신앙심 없는 나는 순자의 글이라 이해할려고 열심히 읽는데
언젠가는 깨우칠 날이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