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처음부터 매 절마다 하기에는 꼬박 일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에

요절만 추려서 강해설교를 하시기로 했답니다,

이 조수길목사님꼐서는 평소에 늘 하시는 말씀이,,,설교 후 성도들에게서

아! 아무개 목사 설교가 참 좋더라,라는 평을 듣는다면 나의 설교는 실패작이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높임을 받고 드러나,

각 성도들의 마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심어져 기억되어

그들의 삶에 기쁨과 평안으로 성령 충만함의 꽃이 피는 축복된 삶이 되기를,,,,,,,,,,,,,,,,

 

?조수길목사님이 그의 목회의 길에 모델로 삼는 바올로부터의 담대함을 얻는 말씀들:

 (고전2:1-5)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떄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떄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겨 하였노라

 목회자의 목회취지: 주님이 오신것은 나를 회개시켜 구원하러 오신것이 아니라

이전에 사탄에게 내어준바 된 이 땅을(창6:3)(에베2장2절)

다시 하나님의 나라=Kingdom Nation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나라=Kingdom Nation은 주님이 직접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

하려 계획하셨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것이 주님의 쓰임을 받는 사람을 찿으신다

그리하여 그 방법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회개와 믿음이 있는 자에게 죄를 사해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믿음과 회개로 깨끗게하사 주님이 이룩하시려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Nation의

일군으로 그들을 쓰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일에 쓰임받고 동참하는 자가 되려는,

즉 구원받은 자가 되려는 것이 믿는자의 길이다 

즉 우리 믿음의 궁국적인 목표이다.

 목회자가 인도하시는 성경을 읽는 방법

성경은 구약 신약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은 두손을 마주해 깍지를 낌과 같이

구약은 신약에 장차 오실 우리의 주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오심을 예언하기위해

                               이스라엘사람들을 들어 이루신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역사

신약은 우리의 주요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그의 공생애를 통해서

                               구약에 예언된 성경을 이루어 내시고 그 성경말씀에 예언된 그대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그를 통해 보여주시며 구원의 산 길을 열어신

                               그의 행적과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를 증거하고 전파하던 제가들의

                               성령으로 감동되어 쓴 순교와 행적과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증거들을 쓴 기록,

                               

(요계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터이요

(요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사도행전 강해설교                             ?둘째날

 

사도행전 2장:1-13   --<통화=Communication 기적>--

 

우리 일상 생활에서; 친구와 친구사이에 또는 한 가정에서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대화의 결핍이라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부부싸움을 할때 문제를 드러내 놓고 싸우 것과 침묵으로 대항하려는

두 방법중에 어떤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상담학에서는 부부사이에 문제가 제기되였을때 침묵하는 보다는

차라리 싸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싸움은 서로 불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나쁘지만

그러나 여기에는 그나마 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침묵은 그나마 모든 대화를 단절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침묵이 나쁜가? 침묵이라해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때는 침묵이 요구되는 때도 있습니다.

자기 성찰을 위한 침묵이나, 영혼의 평안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침묵은 그대로 귀중한 것입니다.

또는 현대의 바쁜 생활 속에서 침묵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갈등이나 부부 싸움속에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약을 올리기 위한 침묵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교제에 독약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속에서 대화를 두절하고 수는 없습니다.

침묵만으로 살수 없는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의 대화 속에는 의미를 상실한 대화들 뿐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대화를 하려면 공통분모가 있어야 입니다.

공통분모란 동등한 가치관(common value) 갖을

비로서 대화속에서 마음과 마음(이심전심) 전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속에서

평화와 회락과 행복을 느낄 있는데 오늘의 비극은 서로가 상대적인 가치관속에서

서로만을 주장하는 대화를 나누기에 우리의 공동체 (가정, 사회, 교회)

여지 없이 무너지는 모양새를 자주 보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Common Value 대적 가치관은 주님안에서의 성령체험이라고 기술함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대화에는 두가지로 크게 생각할 수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피상적인 대화; 즉, 그저 Information 나누는 정도의 대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부부 사이에 이런 정도의 대화, 무슨 Bill 냈습니까?하는 정도의 대화.

이것은 정작 대화를 하며 사는 부부라고 말할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대화란 지식과 정보가 얽힌 자기 내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정직한 교류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Bill 대해서 대화 때라도 여보! 이번 Bill 때문에 당신 얼마나 걱정이 많았소

그래 Bill들은 어떻게 해결되 가는 것입니까?” 한다면

그 대화는 얼마나 서로를 사랑으로 위로하는 값진 대화가 됩니까? 

 

그러나 우리의 문화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 보인다는 ,

이것은 약한 사람이나 비겁자의 생활상이라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진실이라기 보다 연극을 꾸미는 생활이 되고 만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우리의 대화가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벽을 쌓는 것으 변질되 말았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의미없는 말들을 토해내면 서로서로는 상처를 깊숙히 심어주는 살인자가 되고 말것입니다.

이는 가정에서나 공동체에서나 더 나가서 사희로 펴져가는

인류 역사의 비극을 이루어 가는 길이였습니다.

 

비극은 성서적으로 볼때 에덴 동산에 죄가 들어오므써 대화의 단절이 시작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본바와 같이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오자 마자

가인과 아벨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증오가 시작됨을 보았습니다.

더우기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을 쌓은 그들은 하나님을 능가하려는 그들의 오만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민족과 민족이 분열되고 말과 말이 분열되므로

서로 대화가 차단되는 비극을 성경 역사에서 접했습니다.

이후로 우리의 대화는 제한되고 두절되는 현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본문은

우리의 역사상에 나타난 대화의 놀라운 증언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절되었던 대화가 다시 소통하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라면 기적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방언을 터트렸다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방언이 나옵니다.

그런데 방언은 오늘날 어느 교회집단이나 성도가 중얼거리는 방언과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는 오늘 소위 신령한 사람들이 하는 방언과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왜냐하면 2장에 나타난 방언은 구체적인 언어를 갖은 방언이였다는 것을 상기 시켜드립니다.

방언은 외국언어들 이였습니다.

오순절날에는 적어도 14개의 주위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방언을 자기 나라말로 듣고 말을 하게 되는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8절이하에서 보면; 자기들이 사는 나라의 말로 들었다고 전합니다.

오늘 말하는 방언은 오늘의 본문에서 나온 방언이 아니라

고전 14장에서 기술한 방언을 말하는 것이지요.

고전 14장의언은 기도방언이라고도 말하지요.

 

그러나 오늘의 본문의 방언은 분명한 언어의 방언이였습니다.

방언에는 자기가 한번도 배운적이  없는 언어로 설교를 있었을 뿐아니라

듣는 사람도 상대방의 설교를 각각 자기의 고유 언어로 들을 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언어로 말하고 다른 언어로 듣는 기적 이것이 바로 대화의 기적이 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이 기적의 상징인 표상이 일어남을 봅니다.

성령님이 오실때 불이 혀처럼 갈라 졌다고 기술합니다.

기적 대화의 상징이 아닐 없습니다.

많은 성서 학자들은 이를 말하길 이는 바로 바벨탑의 비극을 극복한 상징이다.”

이 기적은 그때까지 언어와 문화로 막혔던 장벽을 뛰어 넘어

서로 서로 대화를 나눌 있는 융합의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벨탑의 이전과 같이 서로 통할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주님을 하여 한 성령안에서 서로 사랑할 있게 되었고,

통할 수가 있고, 이해할 있고, 더욱이 우리는 함께 힘을 모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동상이몽이 아니라 한 성령안에서 같은 꿈을 꿀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일할 있게 되었습니다.

 

한걸음 나가서 기적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11절에서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화의 초점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고,

우리를 변화 시키고, 우리의 신의를 명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그들은 입술을 모으고 마음을 모아서 함께 말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것이 대화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생긴 공동체는 이제 하나님을 증언하는 커단란 공동체요,

그리고 하나님의대한 역사를 위해서 힘을 모으는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뭉쳐진 공동체가 된것입니다

.

우리의 자그마한 자존심이나 이권에 의한 조잡한 , 한 집단의 차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보다 역사를 일구기  위한,

한 목적을 위한 이권없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오순절 이후 다같이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Kingdom Dream, 하나님나라를 위한 꿈이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확장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사람들 사이에 임하는

평화와 질서와 기쁨이 이르는 주님의 사람들의 모습,

주님의 나라는 소리없이 지상에 복음과 함께 영광스럽게 확장되어 갈것입니다.

 

그들은 위대한 Kingdom Dream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오순절의 기적의 사건으로 인해 흩어졌던 우리는 한 성령안에서 한 목표를 갖게 되였습니다.

 

기적은 어떻게 가능할 있었습니까

 4절에서, 이 기적은 성령의 충만으로만 이루어질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저마다 자존심이 강하고 꿈이 다르고 할때 기적은 오히려 파괴적으로해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교희가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가정이나동체에 질서가 없기 때문이고 높은 사람도 없고

자유분방한 가정이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뛰어 넘어 하나가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오직 성령의 충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로 잡혀야만 됩니다.

 

그때 비로서 모두가 목표를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할 있습니다.

1 4,5절에서 이미 주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세기의 전도의 비밀은 그들은 성령 충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도구는 성령이였습니다. 힘으로 없는 것이 전도입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 충만한 몸을 하나님께 도구로 놓으면 하나님이 스스로 전도하실 것입니다.

 

기적이 시작 될수 있었던 동기는 1절에서 있습니다,

“” 이들은 우선 한곳에 모였습니다.

1 14절에서 보면 이들은 마음을 항상 같이 했습니다.

이들은 목표를 갖이고 장소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15절이하에서 이들도 장소에 모여 말씀보고 함께 기도에 힘썼을 때

기적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이들은 기적을 체험하게 되였습니다 

지금도 형제 자매님들의 가정이나 공동체가 비틀거리고 있다면

상대적 가치관속에서 자기만을 위한 독주의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의 모두를 이끄시는 성령님 안에서 절대적인 가치관(성령님) 갖을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는데 아낌 없이 쓰실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