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종교란은 천주교,개신교,불교 빛사랑으로 분류가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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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불꽃을 읽고
1987년도에 재판으로 발행 된 ‘시베리아의 불꽃’이란 책을 읽었다.
요즈음 무딘 내 믿음에 도전을 받기 위해 책장에 꽂혀있던 작은 책자
하나를 집어 든 것이다.
아놀드 로제씨는 1929년에 출생한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그의 선조가 200년쯤 전에 독일에서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의한 러시아 혁명 때까지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로제씨가 태어 난 다음 해,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전도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종신형 이라는 판결을 받고, 따뜻한 남쪽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극한의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 되었다.
시베리아 이송은 완만한 사형 집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온난한 지방의 생활에 익숙한 자를 극한의 땅에 보내어, 절대 부족인 식량
으로 굶주림과 추위로 죽게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조롱하며 말했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시베리아에서 과연 너희를 도와주는지 아닌 지 보자.
그러나.... 너희들이 살아서 시베리아로부터 나올 수가 없다. 그 땅이 너희들의 묘지가 되는 거야.”
시베리아 종신형이 언도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고 매우 침착하셨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사랑하는 아내여, 놀라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순종합시다.”
시베리아에도, 또 같이 그 곳에 가는 사람들 중에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제씨의 부모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경을 시베리아로 가지고 가셨다.
당시 많은 성경이 몰수 되었고, 엄중한 검사로 성경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안쪽에 작은 포켓용 성경을 한 장 한 장 찢어 기웠다.
당국자들이 신체검사를 해도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서 성경을 가져가게 되었다.
시베리아 여행은, 화물 열차의 철창 안에 넣어져서 한 달 이상이나 걸려, 입고 있던 옷도
너덜너덜 했다. 그들에게는 입고 있는 옷 외에 그 어떤 것도 가지도록 허락이 되지 않았다.
시베리아에 도착하자, 그의 아버지는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기도 하셨다.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이 여기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당신이 놀라운 추위를 만드셨다는 것을, 이 시베리아를 만드셨다는 것을.
하나님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십시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기도를 마쳤을 때,
아버지의뺨을 따라 흐르던 눈물이 얼음이 되어 있었다.
시베리아 수용소는 판자로 둘러친 집으로, 겨울에는 영하 65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
그의 형제는 15명이었다.
그들은 잠을 잘 때 덮을 이불도, 따뜻한 방도 없었다.
죄수용의 허술한 오두막 안에서 짚을 깔고, 짚을 덮고 잤다.
그 추운 밤마다, 그의 양친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한 쪽에서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반대편에 어머니가,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아이들 위에
양 손을 펴서 일심으로 기도하셨는데, 부모님의 머리는 입김이 얼어붙어 새하얗게 되고,
어머니의 흘리신 눈물이 그 뺨에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이외에 의뢰해야 할 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늘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가족은 한 사람도 동사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주, 혼자 한적한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
어머니도 자주 혼자 기도할 장소를 찾아가서 기도하셨다.
그들이 기도를 끝낸 후, 지면은 언제나 눈물로 젖어 있었다.
그들 가족은 그 가혹한 시베리아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27년
동안이나 복역했다.
그는 40세까지는 배부른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15살 까지는 세상에
단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들은 부모의 기도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동사도, 굶어 죽지도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당국의 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박해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믿어, 아버지를 따라 지하교회의 지도자로서 선교 활동에 앞장섰다.
그는 여러 번 KGB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었다.
고문으로 그는 등을 똑바로 펴고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의 27년간이 끝나고, 수용소로부터 해방되어 렛도란드 지방의 리-가라는 읍에
옮겨 살다가, 1972년, 그는 서독 정부가 다액의 금액을 소련 정부에 지불하여,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의 어머니도 92세의 고령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이런 탈출자들은 극히 일부이고, 로제씨의 아버지도 순교하셨다.
스탈린과 레닌 시대의, 10년간에 3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체포되어,
그중 2만 8천명이 순교했다.
하나님은 2천 명을 탈출시켜, 그들이 어떠한 박해를 견디고 최후까지 믿음에 서서
순교했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광대한 나라 소련,
그리스도인으로 체포 된 자들은 몇 천 킬로나 떨어진 수용소로 이동되어,
가족과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교제를 끊어 놓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지 않고, 형무소에서 순교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의 잔학한 박해를 받았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동판 위에 세워 발바닥을 태우기도 하고, 이것을 몇 천의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을 주기 위해 행하였으며, 달구어진 철봉으로 가슴을 찔러 태우기도 하고,
눈을 찌르고, 귀를 잘라내고, 혀를 뽑아서 죽이기도 했다.
소녀인 한 자매는 10년을 지하에서 성경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하였고, 결국은 암에 걸려 순교했다.
또 한 분은 고문으로 죽어가면서, 가족들에게 자기를 고문한 자들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라 하고, 또 그들은 위해 기도하라는 유언을 하고 죽었다.
두 분의 젊은 그리스도인이, 극악 범 들이 갇히는 지하 형무소에 넣어졌다.
그 감방에는 죄수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곳 이었다.
그들은 감방에 들어서자 두 손을 들고 기도했다. 그때 극악 범의 두목 격인
죄수가 칼로 기도하는 사람을 찌르려고 손을 높이 쳐들고 내려치려고 하는데,
그 손이 공중에 붙들려졌다. 그들의 기도가 끝나자, 두목은 다른 죄수 11명을 꿇어앉히고,
누가 그의 손을 붙들었는가 하고 호통을 쳤다.
두 사람은 간증 할 기회를 얻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하여 말했다.
8시간 쯤 후에, 간수들은 젊은이들이 흉악범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보러왔다가,
극악범 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돌아갔다.
겨울, 한 밤에 숲속 호수에 가서 얼음을 깨고 침례를 받기도 했다.
침례를 주는 자나, 받은 자나 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로제씨도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고 한다.
추운 밤에 침례 받는 장소에 잠복한 경찰들을 피해, 다른 곳에 있는 호수에서 침례를 행했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안 경찰들은 하나님의 어떤 강력한 손길을 느끼고, 50명의 경찰 중,
30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책은, 로제씨가 자유의 나라 독일에서 평화의 사절로 세계 각 국에 다니며,
공산치하의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자들을 간증한 것으로,
1986년 일본 집회에서 간증한 것을 우리나라에 번역, 책을 펴 낸 것이다.
그 당시에 소련이 붕괴하리라고 믿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련 당국자들은 이런 박해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심한 박해 하에서 참된 자유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 승리의 모습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승리했으며,
소련의 교회는 살아있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로제씨가 탈출하고, 20년도 채 못되어
1991년 소련은 완전히 해체되고 독립 국가 연합이 탄생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시126:5,6 )
그 땅에 뿌려진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는다.
어찌 2만 8천명만 순교했겠는가?
벌써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역사하고 계시고, 몇 천, 몇 만 배로 갚아 주실 것이다.
1987년도에 재판으로 발행 된 ‘시베리아의 불꽃’이란 책을 읽었다.
요즈음 무딘 내 믿음에 도전을 받기 위해 책장에 꽂혀있던 작은 책자
하나를 집어 든 것이다.
아놀드 로제씨는 1929년에 출생한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그의 선조가 200년쯤 전에 독일에서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의한 러시아 혁명 때까지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로제씨가 태어 난 다음 해,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도의 전도자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종신형 이라는 판결을 받고, 따뜻한 남쪽의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극한의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 되었다.
시베리아 이송은 완만한 사형 집행이나 마찬가지였다.
온난한 지방의 생활에 익숙한 자를 극한의 땅에 보내어, 절대 부족인 식량
으로 굶주림과 추위로 죽게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조롱하며 말했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시베리아에서 과연 너희를 도와주는지 아닌 지 보자.
그러나.... 너희들이 살아서 시베리아로부터 나올 수가 없다. 그 땅이 너희들의 묘지가 되는 거야.”
시베리아 종신형이 언도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당황하지 않고 매우 침착하셨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사랑하는 아내여, 놀라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잘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조용히 순종합시다.”
시베리아에도, 또 같이 그 곳에 가는 사람들 중에도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로제씨의 부모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경을 시베리아로 가지고 가셨다.
당시 많은 성경이 몰수 되었고, 엄중한 검사로 성경을 가지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의 안쪽에 작은 포켓용 성경을 한 장 한 장 찢어 기웠다.
당국자들이 신체검사를 해도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서 성경을 가져가게 되었다.
시베리아 여행은, 화물 열차의 철창 안에 넣어져서 한 달 이상이나 걸려, 입고 있던 옷도
너덜너덜 했다. 그들에게는 입고 있는 옷 외에 그 어떤 것도 가지도록 허락이 되지 않았다.
시베리아에 도착하자, 그의 아버지는 그 장소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기도 하셨다.
“사랑하는 하나님, 당신이 여기 계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들은 참으로 몰랐습니다.
당신이 놀라운 추위를 만드셨다는 것을, 이 시베리아를 만드셨다는 것을.
하나님 당신의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십시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기도를 마쳤을 때,
아버지의뺨을 따라 흐르던 눈물이 얼음이 되어 있었다.
시베리아 수용소는 판자로 둘러친 집으로, 겨울에는 영하 65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
그의 형제는 15명이었다.
그들은 잠을 잘 때 덮을 이불도, 따뜻한 방도 없었다.
죄수용의 허술한 오두막 안에서 짚을 깔고, 짚을 덮고 잤다.
그 추운 밤마다, 그의 양친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한 쪽에서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반대편에 어머니가,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아이들 위에
양 손을 펴서 일심으로 기도하셨는데, 부모님의 머리는 입김이 얼어붙어 새하얗게 되고,
어머니의 흘리신 눈물이 그 뺨에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이외에 의뢰해야 할 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늘 기도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가족은 한 사람도 동사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주, 혼자 한적한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
어머니도 자주 혼자 기도할 장소를 찾아가서 기도하셨다.
그들이 기도를 끝낸 후, 지면은 언제나 눈물로 젖어 있었다.
그들 가족은 그 가혹한 시베리아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27년
동안이나 복역했다.
그는 40세까지는 배부른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15살 까지는 세상에
단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들은 부모의 기도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상상을 불허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그들은 동사도, 굶어 죽지도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
당국의 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러한 박해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믿어, 아버지를 따라 지하교회의 지도자로서 선교 활동에 앞장섰다.
그는 여러 번 KGB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하고, 투옥되었다.
고문으로 그는 등을 똑바로 펴고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의 27년간이 끝나고, 수용소로부터 해방되어 렛도란드 지방의 리-가라는 읍에
옮겨 살다가, 1972년, 그는 서독 정부가 다액의 금액을 소련 정부에 지불하여,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의 어머니도 92세의 고령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이런 탈출자들은 극히 일부이고, 로제씨의 아버지도 순교하셨다.
스탈린과 레닌 시대의, 10년간에 3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체포되어,
그중 2만 8천명이 순교했다.
하나님은 2천 명을 탈출시켜, 그들이 어떠한 박해를 견디고 최후까지 믿음에 서서
순교했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광대한 나라 소련,
그리스도인으로 체포 된 자들은 몇 천 킬로나 떨어진 수용소로 이동되어,
가족과 다른 그리스도인과의 교제를 끊어 놓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지 않고, 형무소에서 순교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의 잔학한 박해를 받았다.
새빨갛게 달구어진 동판 위에 세워 발바닥을 태우기도 하고, 이것을 몇 천의 사람들 앞에서
두려움을 주기 위해 행하였으며, 달구어진 철봉으로 가슴을 찔러 태우기도 하고,
눈을 찌르고, 귀를 잘라내고, 혀를 뽑아서 죽이기도 했다.
소녀인 한 자매는 10년을 지하에서 성경을 인쇄하는 일을 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하였고, 결국은 암에 걸려 순교했다.
또 한 분은 고문으로 죽어가면서, 가족들에게 자기를 고문한 자들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라 하고, 또 그들은 위해 기도하라는 유언을 하고 죽었다.
두 분의 젊은 그리스도인이, 극악 범 들이 갇히는 지하 형무소에 넣어졌다.
그 감방에는 죄수들끼리 싸우고 죽이고 하는 그런 무서운 곳 이었다.
그들은 감방에 들어서자 두 손을 들고 기도했다. 그때 극악 범의 두목 격인
죄수가 칼로 기도하는 사람을 찌르려고 손을 높이 쳐들고 내려치려고 하는데,
그 손이 공중에 붙들려졌다. 그들의 기도가 끝나자, 두목은 다른 죄수 11명을 꿇어앉히고,
누가 그의 손을 붙들었는가 하고 호통을 쳤다.
두 사람은 간증 할 기회를 얻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하여 말했다.
8시간 쯤 후에, 간수들은 젊은이들이 흉악범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라고 보러왔다가,
극악범 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돌아갔다.
겨울, 한 밤에 숲속 호수에 가서 얼음을 깨고 침례를 받기도 했다.
침례를 주는 자나, 받은 자나 한 사람도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로제씨도 5천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다고 한다.
추운 밤에 침례 받는 장소에 잠복한 경찰들을 피해, 다른 곳에 있는 호수에서 침례를 행했다.
다음날 그 사실을 안 경찰들은 하나님의 어떤 강력한 손길을 느끼고, 50명의 경찰 중,
30명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책은, 로제씨가 자유의 나라 독일에서 평화의 사절로 세계 각 국에 다니며,
공산치하의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자들을 간증한 것으로,
1986년 일본 집회에서 간증한 것을 우리나라에 번역, 책을 펴 낸 것이다.
그 당시에 소련이 붕괴하리라고 믿은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련 당국자들은 이런 박해로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심한 박해 하에서 참된 자유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있는 승리의 모습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승리했으며,
소련의 교회는 살아있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로제씨가 탈출하고, 20년도 채 못되어
1991년 소련은 완전히 해체되고 독립 국가 연합이 탄생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시126:5,6 )
그 땅에 뿌려진 순교의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는다.
어찌 2만 8천명만 순교했겠는가?
벌써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역사하고 계시고, 몇 천, 몇 만 배로 갚아 주실 것이다.
2006.02.16 14:01:53 (*.204.129.40)
† 그래서 이 세대에서 진정한 주님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믿음의 길을,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더 기도로 무장해야겠습니다. †
아~멘
한마디도 버릴 것 없는 은혜의 말씀 감사 감사합니다. 언~니
자주 뵈어요. 이곳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믿음의 길을,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더 기도로 무장해야겠습니다. †
아~멘
한마디도 버릴 것 없는 은혜의 말씀 감사 감사합니다. 언~니
자주 뵈어요. 이곳에서....
2006.02.16 19:43:56 (*.180.83.6)
이수인 선배님!
로제씨 가족의 이야기가 눈물의 물결되어
내 영혼에 가득히 흐릅니다.
저들이 받았던 핍박과 고난의
아주 작은 일부도 받지 않고 있는 나의 편안한 삶이
글을 읽은 후에
많이, 아주 많이 저려옵니다.
"15살까지 단것이 있는 줄 몰랐다,
40세까지 배부른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주께 순종하는 길에서
가끔 마음으로 기쁘게 하지 못했던 것이
가슴을 찌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이랬거나 저랬거나 오늘 내디딘 또 한걸음이
천국과 한 걸음 가까운 곳으로
나를 옮겨준 것입니다.
그 분!
그 분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의 삶이
늘 천국일 수 있게 하신
높으신 그 분을 찬양합니다.
로제씨 가족의 이야기가 눈물의 물결되어
내 영혼에 가득히 흐릅니다.
저들이 받았던 핍박과 고난의
아주 작은 일부도 받지 않고 있는 나의 편안한 삶이
글을 읽은 후에
많이, 아주 많이 저려옵니다.
"15살까지 단것이 있는 줄 몰랐다,
40세까지 배부른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주께 순종하는 길에서
가끔 마음으로 기쁘게 하지 못했던 것이
가슴을 찌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이랬거나 저랬거나 오늘 내디딘 또 한걸음이
천국과 한 걸음 가까운 곳으로
나를 옮겨준 것입니다.
그 분!
그 분과 함께 하는 하루 하루의 삶이
늘 천국일 수 있게 하신
높으신 그 분을 찬양합니다.
2006.02.17 12:32:38 (*.161.68.205)
연희 후배~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셨지요?
늘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름다와요.
'시베리아의 불꽃' 이 책의 1부 첫장에 있는 시를 옮겨 봅니다.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눈물흘리는 밤이 있으리라.
그러나 낮이 반드시 오리니
즐거운 새 아침을 여시고
슬픔의 눈물을 거두어 가시리라.
저 새 날이 동트는 것을 바라 볼 때
인생의 가장 힘겨운 수고가 보람있을 듯
내 영혼아 잠잠하고 기다릴지어다.
큰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그동안 주안에서 평안하셨지요?
늘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름다와요.
'시베리아의 불꽃' 이 책의 1부 첫장에 있는 시를 옮겨 봅니다.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눈물흘리는 밤이 있으리라.
그러나 낮이 반드시 오리니
즐거운 새 아침을 여시고
슬픔의 눈물을 거두어 가시리라.
저 새 날이 동트는 것을 바라 볼 때
인생의 가장 힘겨운 수고가 보람있을 듯
내 영혼아 잠잠하고 기다릴지어다.
큰 기쁨은 아침에 오나니.
2006.02.17 12:57:34 (*.161.68.205)
미경 후배~
나는 그 책을 읽을 때, 미경 후배 생각도 했지요.
미경 후배는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탄자니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게지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종치 못해 늘 부끄럽답니다.
그러나 주께서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또 새로 힘을 주시고 붙잡아 주시니 감사 할 뿐입니다.
이 책의 2부에 있는, 시를 미경 후배에게 드리고 싶군요.
외로운 길
그가 나를 지친 무리중에서 택하여
내 갈 길을 외로운 길로 만드셨으니
내 마음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심으시고
경배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읍니다.
안락한 생활을 약속치 않으시고
날마다 광명한 날이 되리라 말씀 안하시고
그 길은 길지 않으리라 말씀없었으나
늘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 미경 후배 생각도 했지요.
미경 후배는 생명의 위협을 무릎쓰고
탄자니아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게지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종치 못해 늘 부끄럽답니다.
그러나 주께서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또 새로 힘을 주시고 붙잡아 주시니 감사 할 뿐입니다.
이 책의 2부에 있는, 시를 미경 후배에게 드리고 싶군요.
외로운 길
그가 나를 지친 무리중에서 택하여
내 갈 길을 외로운 길로 만드셨으니
내 마음 속에 아름다운 노래를 심으시고
경배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읍니다.
안락한 생활을 약속치 않으시고
날마다 광명한 날이 되리라 말씀 안하시고
그 길은 길지 않으리라 말씀없었으나
늘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2006.03.06 19:43:42 (*.180.83.6)
눈물 나네요.
늘 내 마음 속에 노래를 심으시는 그 분..
경배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는 주님..
그 분을 찬양하는 녹음을 하고 왔습니다.
선배님께는 하나 드리고 싶네요.
늘 내 마음 속에 노래를 심으시는 그 분..
경배하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시는 주님..
그 분을 찬양하는 녹음을 하고 왔습니다.
선배님께는 하나 드리고 싶네요.
2006.03.08 19:52:06 (*.180.83.6)
지금 시댁이 있는 뉴질랜드에서 안식년 중입니다.
시어머님 노환으로 호출을 받아 왔는데
일년을 다 있지는 못할 듯,,
8월에는 다시 탄자니아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월에 병원 진단차 한국에 갔었는데
8월에 다시 한번 검진을 해야 하구요.
그래서 잠시 한국에 들렀다 가게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아프리카에서 그 곳 정서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한국의 분위기와 맞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노래를 심으시는 그 분
이라는 글귀가 깊이 오면서
그 귀한 시를 제게 알려 주신 선배님께
그냥 뭔가 감사드리고 싶어서요.. ^^
저는 찬양을 하고 그냥 돌아 왔는데
아마 도우미들이 작업을 해서 3월 말 쯤 나올 것 같아요.
늘 주님 때문에 행복하셔요. ^^
시어머님 노환으로 호출을 받아 왔는데
일년을 다 있지는 못할 듯,,
8월에는 다시 탄자니아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1월에 병원 진단차 한국에 갔었는데
8월에 다시 한번 검진을 해야 하구요.
그래서 잠시 한국에 들렀다 가게 될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아프리카에서 그 곳 정서로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한국의 분위기와 맞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노래를 심으시는 그 분
이라는 글귀가 깊이 오면서
그 귀한 시를 제게 알려 주신 선배님께
그냥 뭔가 감사드리고 싶어서요.. ^^
저는 찬양을 하고 그냥 돌아 왔는데
아마 도우미들이 작업을 해서 3월 말 쯤 나올 것 같아요.
늘 주님 때문에 행복하셔요. ^^
지금도 세계의 곳곳에서,
핍박 속에서도
아름답게 믿음의 꽃을 피우는 자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물질 문명의 풍요 속에 살고 있으며,
매스콤과 거기에다 인터넷까지 더하여 보는 것, 듣는 것....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믿음으로
보는 것, 듣느 것, 말하는 것, 또 생각까지도
절제하고, 인내하고, 덮어버릴 것은 덮어버려야하는 어려움때문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는 바울 사도와 같이, 날마다 '나'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내 좋아하는 것을 절제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십자가의 길, 또 순교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대에서 진정한 주님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믿음의 길을,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더 기도로 무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