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를 보며

우리 집 베란다, 그 앞은 골프장이다.
집 앞, 잔디에 연이은 골프장에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등의 침엽수가
십여 그루 있어서 숲을 이루고 있다.
손질해주지 않아도 모양 좋게 죽죽 뻗어 올라간 우람한 침엽수들,
높이가 족히 삼십 미터나 되는, 이 나무들로 하여 문만 열면 상쾌하다.

소나무는 우리에게 친숙한 나무여서 그런지,
집 앞의 나무 중에 소나무가 가장 마음에 든다.
나무의 몸통이 시원하게 뻗어 올라가 있고
양옆으로 난 가지는 하늘로 향해 팔을 펼치고 있다.
이 소나무 잎은 다른 소나무들 보다 이파리가 길고, 색깔은 약간 연하다.
그래서 부드러워 보인다.
바람 부는 날은 소나무 잎이 살랑살랑 춤을 춘다.
사그락 사그락 이파리 부비는 소리도 참 정겹다.
또 소나무 특유의 싱그러운 향기가 날라 온다.

해가 비치는 겨울 오전에는,
소나무 이파리 사이로 잘게 부서져 쏟아지는
금빛 햇살의 눈부심을 보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차례, 창의 유리를 통해서, 또 베란다로 나가서
때론 잔디로 내려가서 이 소나무와 눈 맞춤한다.

‘ 나는 굳건하게 서 있는 네 모습이 좋아.
늘 변함없이 푸른 모습으로 거기 있어주어 고마워.
나도 늘 푸른 네 모습을 닮기 원해.
늘 푸른 네 모습과, 네게서 나오는 은은한 향기는,
보는 이에게 기쁨을 선사하지.
하늘 향해 두 팔 벌려 살랑거리는 모습은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이야.
법궤를 가져올 때, 춤추던 다윗의 모습이 이 같았을 거야. ‘

가을에는 소나무 잎도 낙엽 되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잎이 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가 떨어져 쌓인다.
낙엽이 진 소나무 잎을 경상도에서는 갈비라고 불렀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은 베란다에까지
갈색의 바늘모양 이파리가 날라 온다.
나무 밑에도 갈비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봄에는 소나무 갈비를 비집고 바이올렛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거름이 잘 되어서인지 꽃잎은 크고,
색깔은, 보라, 붉은 자주, 하늘색, 흰색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피는 짙은 보라색의 작은 바이올렛 꽃,
그 앙증맞게 작은 꽃과 꽃의 색깔은 나를 매혹시키고도 남았다.
골프장에서 매일 잔디를 깎지만,
이 꽃들이 피어 있을 동안은 꽃 주변 잔디를 깎지 않는 것을
6년 동안 살면서 보아왔다.

소나무의 갈비를 보면,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때는 아궁이에 장작을 때고 살던 시절이었다,
겨울이면 우리 동네의 아래 동네에,
양지 바른 쪽에 갈비를 어른 키만큼 커다랗게 뭉쳐서 세워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아저씨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담벼락에 지게를 걸쳐 놓은 채,
흰 바지저고리에 검정색 또는 회색의 조끼를 입은 그들은
팔 장을 낀 채로 서성거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 소나무 갈비는 불쏘시개로 사용하기도 하고,
밥할 때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궁이에 갈비를 땔 때, 나는 그것이 참 재미있어 보였다.
끝이 까맣게 그슬린 나무 막대기를 손에 잡고 아궁이 앞에 앉아서,
나무 막대기로 갈비를 조금씩 밀어 넣으면,
환한 노란 빛의 불꽃이 활활 타 올랐다.
바싹 마른 갈비는 그을음이 없고 불이 쉽게 붙는데,
불꽃은 어찌 그리도 아름답든지,
어린 내 눈에도 갈비가 탈 때의 불꽃이 아름다워
한참씩 들여다보고 있던 생각이 난다.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분다.
유리 창밖의 소나무는, 센 바람에도 끄떡없이 든든하게 버티고 서있다.
여전히 양팔을 하늘로 향해 뻗치고,
몸을 흔들며 온 마음을 다해 찬양하는 듯하다.

‘ 나무를 통해서도 깨닫게 하시는 주님!
저도 저 나무같이 늘 푸른 마음으로 살며,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