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고 과격한 이유



    언젠가 어떤 책에서
    “폭음과 폭식은 훈련되지 않은 거지습성에서 온다”는
    내용을 읽고 크게 공감한 일이 있다.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는 굉장히 창피하면서도  
    또한 내심으로는 상당히 기뻐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절제’라는 것이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나 자신을 절제하지 못해 딴에는 노력하고 단식도 하며
    기도도 하지만 얼마가 지나면 그 중독증세가 다시 도져서
    음식이나 음주뿐만 아니라 말이나 감정표현, 또는 행동에
    있어서도 자주 지나쳐서 여러 사람에게 애를 먹여 왔었다.

    되돌아볼 때
    나의 청소년 시절은 참으로 배가 자주 고팠던 시기였다.
    사변 후에 한참 동안 누구나 그랬지만
    우리 집은 동생의 병으로 인해서 이중의 곤란을 겪어야 했다.
    한창 성장기에 필요한 칼로리는 많은데 충당이 되질 못하니
    학교에서 남의 도시락을 훔쳐 먹기도 했고
    어쩌다 먹을 것이 생기면 위장을 채울 수 있는 데까지
    잔뜩 먹어 버리는 치사스런 습성이 생기기도 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섬마을 선생으로 자원했을 때도
    굶주렸던 욕구를 제대로 채우지 못해, 먹고 마시는 일이
    더욱더 무질서하게 되었다.
    봉급의 대부분은 집으로 송금해야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취식량마저도 부족했던 나는
    고구마나 공짜술로 자주 끼니를 때웠으며,
    동네에 잔칫집이 있다 하면 몽땅 먹고 와서는
    굶을 수 있는 데까지 굶고 했으니
    자연히 습성이 미련하고 지저분하게 되었다.

    군대생활에서도 먹는 것이 늘 고달파서 짠밥통을 자주 뒤졌으며
    보초를 설 때는 취사부 창고에 들어가서 두부를 훔쳐 먹기도 했다.
    제대를 하고 복직을 하고 나서는 다시 또 위장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먹을 수 있는 데까지 먹었으며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시곤 했다.
    어떤 날은 친구와 둘이서 막걸리 말 두 되를 한자리에서 마시고는
    양조장 주인을 깜작 놀라게 하기도 했다.

    나 같은 인생이 사제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다.
    그런데 그 먹고 마시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해서 마셨다 하면 인사불성이요
    먹었다 하면 과식이니, 그 때문에 감정도 행동도 절제가 되지 못해
    하느님과 신자들 앞에 송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잘못된 습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것은 암보다 더 지독한 것이며 병명을 알면 다행이나
    모르면 평생 고치지를 못하니 불행히도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

    태양이 떴다고 누구나 다 태양을 보는 것은 아니며
    눈이 있다고 누구나 다 밝은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니다.  
    새 마음이 없고, 새 결심이 없으며, 새로운 성찰이 없으면
    그는 늘 참혹한 굴 속에서 몸부림쳐야만 한다.

    “주님, 음식의 절제를 주옵소서.”


강 길 웅 /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