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사람과 만나고 돌아왔다.

목회를 하면서 셀수도 없이 떠나 보내야 하는 그들 옆에서 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죽음과 대화를 한다. 떠나는 자들은 요동도 없이 제대로 감겨지지도 않는 실눈을 뜨고 입은 반쯤 벌려 죽음을 마셔 들이려는 준비를 하고 기척도 없이 누워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게 펄펄 뛰어 다니며 천년 만년 이리 저리 자신이 호령 할 수 있을 줄 착각했던 몸뚱아리를 자신도 모르는 어느 컴컴한 방 한구석에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른 엉뚱하고 스산한 기운의 무의식 속에서 다른 이들의 임종과 다름없이 불규칙한 숨쉬기를 하고 있다. 무의식의 본인은 우리들의 기도 소리를 듣고는 있는 것인지? 끊임 없이 흐르는 눈물로 슬픔을 감당 해야 하는 그의 가족들이 옆에서 이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호스피스(HOSPICE, 말기 환자를 위한 병원)~ 그곳은 죽음의 터널에 들어가기 직전에 머무르는 저승에 이르기 위한 대기실이다. 이곳에 들어와 방 한편에 조용하고 적막한 침대에 뉘어져 있다면 어느 누구도 제 발로 걸어 나가기 힘든 곳, 생의 마지막 힘겨운 숨을 헐떡이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이 집합하는 저승 대기실이다.

대로 변에 위치한 호스피스 건물 앞 잘 가꾸어진 정원 한편에 차를 세우고 내릴 때마다 잠시 가정집이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분위기가 너무 아늑하고 깔끔한 조금 큰 저택이라는 느낌 외에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그 집의 대문 가까이 다가서서 대문을 잡아 당기려면 현관문은 꼼짝도 안한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문옆 구석에 붙어 있는 단추 알만한 카메라 렌즈가 방문자를 확인한 후에 문은 자동으로 열리는 것이다.

열린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보통 가정집과 흡사한 거실의 품위 있는 가구들의 배치가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늘 그곳에는 몇명의 사람들이 침묵으로 앉아 무표정한 얼굴들로 누구와도 눈을 안 마주치려 고개들을 푹 숙이고 앉아있다. 분명 그들은 가족이나 친지의 마지막을 응접실에 나와 서성이며 초조함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ㅁ자로 지어져있는 건물의 내부에 일렬로 배치 되어 있는 방에서는 사람의 소리라고는 들어 볼 수도 없이 적막감이 감돈다. 분명 방마다 사람이 침대에 누어 있으련만 몸을 돌리거나 잦은 기침을 하거나 아픈 신음 소리 조차 없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그리고 끼니 때가 되어도 그들에게는 음식도 배달되지 않는다.

ㅁ자의 복도를 적막 가운데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따라 들어가다 보면 나이 많은 할머니 둘이 우리들을 안내하려고 인사를 한다. 그들의 행동과 목소리는 아주 나직한 톤이 되어 우리들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게 만든다.

빈 공간인 ㅁ자 안쪽으로는 하늘이 열린채 아름다운 정원수와 꽃들이 따스한 햇살을 맘껏 받으며 모두의 가라 앉아 있는 맘을 어루만져 주려는 듯 새들의 지저귐과 함께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정원을 아무 생각없이 내다 보고 있으려니 나의 발 밑에 무언가 있는 기척에 놀라 내려다 보니 고양이 한마리가 배를 깔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내 등뒤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 할머니에게 ~얘는 누구에요?~ 하고 조용히 물으니 그 할머니는 위 쪽에 붙어 있는 종이를 보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을 따라 눈을 위로 들어 보니 벽 위에 종이 한장이 붙어 있었는데 그 종이속에는 ~내 이름은 Grace. 나는 이집 정원에 살고 있는 Queen 이랍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하얀색의 길고 깔끔한 몸 바탕에 새까만 털이 군데군데 둥근 모양의 무늬를 놓고 있었는데 희안하게도 머리부분에서 꼭 멋쟁이 모델들이 한쪽 눈의 일부를 긴 앞머리로 살짝 가려서 멋을 내는 모습처럼 고고하고 도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의 누워있는 자태는 분명 평범한 동네 고양이와는 달랐다. 그 고양이는 크레오파트라가 긴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뉘인 것 같은 여왕의 자세였다. 나는 남편에게 ~여보, 얘좀 봐요. 너무 신기하다.~ 하니까 남편이 조용한 한마디로 ~그러니까 Queen 이지.~ 하는 것이었다.

그 죽음의 분위기 속에서 그 고양이는 살아 있는 생명의 귀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여왕 고양이는 그곳 분위기를 알고 있는 것인지 야옹 소리도 안내고 그곳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의 짙은 잿빛 색갈의 눈동자는 우리 방문객들의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살피며 비스 듬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그곳의 방에는 병원이나 양로원과는 달리 복잡한 의료기구나 시설도 없었다. 이미 그들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우리가 그날 찾아간 ‘팀’이라는 이름의 중년 남자 교인은 몇 시간이라는 시한부의 종말을 맞기 위해 온 가족과 친지들에게 둘러 싸인채 임종 예배를 받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팀의 침상 가까이 모여 들어 그에게 흐느끼며 이야기를 하고 또 각자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좀 떨어진 뒷편에서 그들 가족의 애절한 사연들을 들으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끼며 서 있을 수밖에 어떤 위로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목회를 하면서 셀 수도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맞을 때마다 그들 옆에서 늘 비슷한 생각을 하며 그들 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팀은 교회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교인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온 힘을 다해 열심을 내며 살았으리라.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걷는 동안 그는 측량 할 수 없는 우주의 주인에 관해 관심을 가져 본적은 있었는지? 그가 몸과 정신이 온전했던 때에 주위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었는지? 그의 옆에서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그는 자기가 바라는 최고의 목표를 바라보고 열심히 질주를 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유리 벽에 부딪혀 결국은 이리 많지도 않은 나이에 호스피스에 누워 죽음의 대문이 열리기를 태어 날 때와 똑같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종착역에 다다른 그는 몸뚱이를 얌전하게 저항 없이 남에게 맡긴 채 아무리 속으로 의식이 남아 있다 해도 눈 한번 손가락 한번 신호를 보내지 못한 채 이제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이 계시는 영의 세계, 그 새로운 나라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과연 그는 짧은 생애를 숨 가쁘게 뜀박질 하면서 어떤 길을 달려 온 것일까? 그리고 곧 열릴 죽음의 문 뒤에서 그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한 그의 옆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죽음의 대문 안으로 막 한발 들여 놓은 그의 온기가 느껴지는 손을 꼭 잡고 있다가 5분도 채 안되어 식어 버린 그의 손을 놓으며 이미 하늘문으로 들어선 그를 배웅하는 일 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이 아무 쓸모 없는 나 같은 인간을 사모라는 이름으로 세워 주신 이유 중에 하나가 셀 수도 없는 많은 교인들이 숨이 끊어지는 순간 애처러움에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볼에 뽀뽀도 해주고 손도 잡아주는 마지막 동행자가 되어 미지의 두렵고 외로운 길로 들어서는 그들의 위로가 되라고 세우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나이 어렸을 때 그리도 무섭고 으시시 하던 죽음이 이제는 신앙 안에서 무섭지도 낮설지도 않다. 그러나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그들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야 한계가 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도 내세의 하늘 나라의 기쁨도 이러저러 하다고 말로 위로하지 못하는 반푼이 처럼 그냥 그들 옆에서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교인 중에 ‘헬렌 폭스’라는 여자 교인이 있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그 교회에 부임을하고 몇일 후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헬렌이며 우리 교인이라 소개를 했다. 그녀는 교인들 중에 목사의 심방이 필요한 사람들을 알려 주려고 전화를 했다고 하며 통화를 마쳤다.

주일 날 우리가 교회에 갔을때 헬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아는 교인에게 헬렌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다. 우리의 질문을 받은 교인은 ~헬렌은 교회를 못 와요.~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져서 왜 그러냐고 반문을 했다. 우리의 질문을 받은 교인은 엉뚱한 답변으로 ~심방을 한번 가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답변이 심상치를 않아서 그 다음날 우리 부부는 헬렌의 집을 주소를 보고 찾아 갔다. 그녀의 집은 교회에서 별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우리 부부가 차를 그녀의 집 드라이브 웨이에 파킹을 하고 집의 분위기를 둘러 보니 단층 벽돌집에 잔디도 잘 손질이 되어 있고 그 동네의 다른 집들과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부부는 일단 차에서 내려 정문 쪽으로 걸어가 도어 벨을 찾으려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문을 살짝 밀어 보니 열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단은 미리 전화도 해 놓았으니 문 안으로 들어서며 큰 소리로 ~헬렌~ 하고 불렀다.

내 말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쪽 어디에선가 ~이리 들어 오세요~ 하는 것이 었다. 그 소리를 듣고 안도감에 리빙룸을 끼고 복도를 걸어 가며 집안 분위기를 살펴보니 집안에는 응접세트나 등같은 큰 가구를 빼고는 자잘한 살림 살이는 찾아 볼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의 온기라고는 없이 썰렁했다. 부엌의 분위기도 집의 크기와는 안 맞게 그릇 몇개가 전부였다. 복도 끝을 기웃거리며 그녀의 방을 찾으니 집 앞 정원쪽으로 위치한 방에서 그녀가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 부부를 맞아 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을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 밀고 들여다 보다가 나는 하마터면 ~어머!~ 하며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녀의 방안의 풍경은 정말 상상외의 정경이었다.

그녀는 비스듬히 뉘어 있는 병원용 의자에 앉아서 조그만 이불로 몸의 하반신을 덮고 앉은 채 고개도 못 돌리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 부부에게 방으로 들어 오라며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었다.

그녀의 의자 주위에는 온갖 물건들이 진열이 되어 있었는데 그녀와 가까이 위치해 있는 탁자에 있는 물건들에는 모두 끈이 묶여 있어서 그녀의 손가락 가까이에 그녀가 사용하기 쉽게 위치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돌아 볼 수 있는 벽에는 온통 가족들의 사진이 벽을 도배를 하고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며 놀라움에 숙연해져 있는 우리 부부에게 헬렌은 아주 명랑하게 우리의 근황을 물어왔다. 그녀가 만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우리 부부의 굳어 있는 입술을 자연스럽게 풀어 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은 류마치스라고 했다. 나는 류마치스가 그리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그녀를 보고 처음 알았다.

그녀의 몸은 모두 퇴행을 해서 전신을 움직이지를 못했다. 사지가 뒤틀린 중에 겨우 손가락 몇개를 움직일 수가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투병을 했길래 이 상태까지 이르른 것일까? 그런 처절한 모습으로 그녀는 하루 종일 비스듬히 누운 상태에서 몇개의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교인들에게 일일이 안부 전화를 하며 연락망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점심 때 쯤에 도우미 아줌마가 와서 목욕도 시키고 점심도 준비 해주고 돌아가면 혼자 하루 종일 누워서 적막감 속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혼자 치열한 외로움의 싸움을 하고 있을 망정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양로원은 안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몇 안되는 자식들은 모두 멀리 살고 있지만 가끔씩 그녀를 들러 본다는 것이었다.

헬렌의 방의 창문은 보통 일반 창문과는 다르게 천장 바로 밑쪽에 벽을 따라 길게 나 있었다. 방안에서 바깥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외부로 부터의 위험을 줄이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높은 하늘과 창 가까이 버티고 있는 나이 많은 고목의 맨 위 가지의 잎사귀 뿐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리 갇혀 지내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평온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력은 놀랄만큼 총명했다. 그녀는 우리 교인들의 가정사를 모두 꾀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그러한 분위기는 어떠한 경지에 이르러야 나오는것인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녀는 나에게 자기를 보러올 때엔 먹을 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자기는 음식 뒷처리 때문에 많이 먹지도 못하고 또 가려 먹어야 한다며 수고를 하지 말라는 귀뜸을 잊지 않고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헬렌을 심방하고 돌아오면서 그녀는 하루 하루를 죽음을 기다리며 어느 때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식사도 하루에 아주 적은 양으로 한끼면 족하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한 한 시간의 대화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모든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오직 오늘 하루의 생명의 연장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눈을 뜨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그날의 일기에 따라 변화 되는 하늘을 보며 그녀가 갈 나라를 우러러 보며 살고 있다는 것이 전해져 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도 한정된 몇가지 물품 뿐이었다. 그녀에게 속한 방안의 물건들은 작은 텔레비젼, 비데오, 전화기, 손님용 작은 소파, 잠도 누워 잘 수가 없으니 의료용 의자에 작은 조각 이불 그리고 손가락 가까이 늘어 놓은 사탕 초코렛들, 이것들이 그녀가 숨이 끊어 질 때까지 소유하며 다룰 수 있는 전 재산이었다.

그녀에겐 화장품도 외출복도 보석도 질 좋은 스테이크를 썰 나이프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 육신이 멀쩡한 우리들이 엄청나게 지니고 다녀야 하는 이사짐 속의 오만가지 잡동사니가 그녀에게는 모두 버려야 하는 쓰레기로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이었다.

그녀의 너무도 또랑또랑한 정신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건강한 시절에 지녔던 모든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멀어져 자기의 집 방 한칸을 ~천국 가는 대기실~로 정하고 하나님 만날 날을 기다리며 끝없이 높고 거대한 우주 밖 하늘에 소망을 둔채 그녀의 행복한 마음의 평화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미소로 우리들을 위로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작은 위로는 듣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각오를 주고 또 그녀의 명랑한 목소리는 듣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며 그녀의 미소는 하늘 나라 천사의 평안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누워 있는 작은 공간의 방은 사망을 기다리는 곳이 아니고 자신의 신앙 안에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들려 가기를 기쁨으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녀와 가까이 교제를 하면서 하나님이 나에게는 얼마나 셀 수도 없는 많은 감사할 것들을 주셨는지 참으로 찡한 눈물의 감사와 회개가 엇갈리는 것이었다. ~주여 이 죄인이 오늘 하루도 숨쉬는 순간 순간을 감사드리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전도서 1: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