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인일동문 여러분,

제가 이 모교홈피에 들어온지 꽤 오래 된것같읍니다.

참으로 동문들과 즐거웠던 보람된 날들이였읍니다.

홈피에 들어올떄는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나이로, 마음으로 많이 까불어?도 보았지요

그 오랜세월동안 동떨어져 가슴에만 울키고 살아온 그리움, 외로움으로 뭉친 응어리가 만이 풀수 있었지요..

 

저희는 이민목회로, 어려울수 밖에 없었던 고된 유학생활을 통해

학생비자로 영주권도 없이 애들까지 있으면서 훌타임으로 공부하고

훞타임으로 일하며 지낸 힘든 세월들이 있었읍니다,

 

그 1970년 당시,  정부가  문교부 유학생 시험을 합격하면 $200.00불만을 지참허용하여 내보냈고,

나머지는 현지에가서 재주껏 살아남아야?하던 그런시절,,,,

또 시골의 전통적 집안에서 종손, 장남으로 결코 벗겨질수 없는 물질적뿐만 아니라

정신적갈등까지 감당해 나가야했던 그 유학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읍니다,

정신적으로 강팍하기가 이를데없었고, 도무지 시간의 여유라곤 없었읍니다.

 

한 딸은 공부에 방해될까봐 두고 왔는데 또 애기가 생겼으니

(이 딸은 8살이 되어서야 저희에게 안겼읍니다. 그러나 서로가 서먹함은 나중에도 많은 어려움을 주었답니다)

그때 심정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세상이 끝날것같은 막막함.

또 살아남을 방편을 위해서 둘이 같이 공부하며 살림하며 육아하며,

저이는 훌타임학생에 훝타임직장에서 밤일하고 30마일 경인간의 거리를 개스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탈줄도 모르는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에 한번씩 꼭 그시간이면 오는 비를 흠뻑 맞으며

통학을 했으니 집에 오면 두통이 말도 못하게 심했지만 

잠도 자야하고 숙제와 리포트작성, 시험준비,,,,등등,,,

또 삶에서는 오직 근검과 절약과 인내와 침묵으로 점철됬던 지난날들이였읍니다,

 

그런 어려움이 가정으로까지 침투해 들어오는 삭막함속에서

맨주먹으로 모든것을 버티는 강한 의지의 청년이던 우리 이이도 결국은 두손을 들 날이 왔답니다.

아무리 착한 마누라도 아무리해도 감사나 칭찬은커녕 일방적요구만을 하는 시부모님들에 시달려

도저히 못살겠다고 보따리를 몇번 싸야했고,

많은 형제들에게 반부모 노릇까지 하며 살아야했던 우리 이이에게 지쳐버린 날이 왔지요.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그거 다 마음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자우상이다,

내주먹과 내의지로 이루어내는거지! 라는 강철같이 고집센,

부러지면 부러졌지 굽어지지는 않는다는 평을 가진 고집퉁이 공학도에게,

자기 스스로 두손을 드는 날이 왔답니다.

 

세월이 어언 한 십년이 지나고, 힘들게  도전한 비행기회사의 엔지니어직업도,,,

세금공제 혜택이 많으니 어쩌니하여 우연히, 직장과 병행하려 시작한 개인사업을

막상 메네져를 두고 하니 영판 아닌데 그렇다고 발을 뺴지도 못하니 아예 직장을 접기로 하여

저는 그떄부터 그 힘든 개인사업에 꽁꽁 묵여 노예생활을 해 왔고,

 

우리 이이는 미국방에 관한 컨설팅직업이 되어 텍사스에 있는 벨헬리캅터로 되어가는데,

그때 내막적으로는 결혼생활이 그 강팍한 완벽주의 성격과 구식적인 시부모님의 요구가 너무 힘이들어

이젠 더 이상 못 살겠노라고 선언까지 한 지경이었답니다.

 

그러자니 아내를 붙잡기 위해서 우리 이이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나도 인제는 그 뭐 하나님인가 뭔가가 있다는데  그 곳에 가면 교회를 찿아

자기를 다스려줄 그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보겠노라고,,,,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지요,,,그리하여 용서하며 다시 노력해보자는 식으로 떠나게 됬답니다.

 

그 곳에 가서 제가 미리 연락한 전도팀의 인도로 율러스침례교회(미남침례교단에서 제일 큰 교회)로

인도되어 복음을 듣는 순간 소름끼치듯 뜨거운 전율을, 꺠달음을 느끼며,,,

집에와서 회개의 눈물로 무릎꿇고 밤새도록 펑펑 울었다는군요,,

 

한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였지요.

 

그 후로 매일 집으로 장거리 전화를 걸어 몇시간씩 성경을 통해 주님을 만난 기쁨을 나누었답니다.

그러므로 나의 어릴때부터 카토릭집안에서 자란 막연한 믿음도 안개걷히듯 정립이 되어가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동행의 기쁨을 나누며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됬답니다.

 

실컷 울고나서 부운 눈으로 바라보니 창밖의 세상이 온통 핑크색으로 보이며

그 마음에 강같이 흐르는 평안과 기쁨,,,가족을 떨어져 혼자 있건만 항상 주님안에 있다는 충만감으로

외롭지도 않고 기쁘게 성경공부하며 믿음생활을 하다가

그 무지 좋은 직업도 그만두고 집으로 향해 돌아왔읍니다.

 

딸들과 마중나가서 맞이한 그이는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한채 마치 갓 털나온 애기양같이 

핑크색 홍조를 띈 얼굴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는 아내를 꼭 끌어안고난후 딸들을 꼭 끌어안고 내손을 잡아 자기 겨드랑에 꼬옥 끼고 집으로 오셨죠..

 

그 이후도 결혼생활이라는게 어디 단번에 쉬워지겠어요?

그 썽질이 어디 가겠어요?

그런들 이제는 나도 저이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공통분모가 둘사이에 생긴것이

서로를 용납하게 되고 이이도 즉시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돌이키는,,,,,,,,,,,,,

 

다시말해 내년이면 결혼 4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우리사이에 주님이 중재해주시며 동행해 주심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이끌어주심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지금은 아주 평화로운 안식속에서 말년을 주님과 함꼐 지내고 있읍니다,

예쁜 두 딸들과 듬직한 사위들과 두 손자와 두 손녀딸들과,,

매순간을 감사하며 기쁨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듭니다.

 

집으로 돌아온 이이는 자기가 어려움으로 못다한 공학박사과정을 끝내겠다고

다시 학교로,,,그동안 환경이 허락을 안하니 공부를 매번 바꾸어야하는 바람에

You name it! 안한 공부가 없어요, 물리학, 응용수학, 콤퓨터싸이언스, 기계공학, 재료공학등등,,,

 

그러다가 이번에는 신 공학으로 Advanced Composite을 여직까지 쌓아온 비행기회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료공학으로 하려 입문했는데,,,세상복이 없는 이이는 또 매번 어드바이져를 잘못만나

이란어드바이져가 소수점밑 5자리까지 오차를 줄여내라는 통에 아무리 아무리 해도 통과를 안 시키니

결국은 아! 이게 나를 통한 주님의 뜻이 아니구나!라는 핑계로 막판에서 내팽겨쳐 버렸답니다.

 

그후 이이로서는 싫어해서 도저히 불가능했던 한국교회에서 열심히 부부가 봉사하다가.

어느날 교회가 복음을 가르치기보다는 너무 사회성에 치우치는것을 보고 신학교를 가기로 결심,

57살에 영어권의 GoldenGate Baptist Theology  Seminary에 가셔서  60에 MDV졸업 안수받으시고,

63살에 다시 영어권의 목회학박사과정을 들어가 66살에 끝내고야 만 끈질긴 집념의 사나이.

(GoldenGate Baptist Theology Seminary는 오직 성경을 성경으로라는, 즉 성경해석이 변질되지않게,

세상과 타협하지않고 순수복음으로 전해지기를 추구하는,,,교단의 신학교)

 

그리하여 그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세상의 정욕으로 묶여 노예생활하던 나를 자유케 하시어

영원의 길로 구원해주신 나의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기쁨에 헌신하는 여생을 맹세하고

내가 여직까지 주신 축복으로 삼시세끼를 먹고살수있는 이상,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절대 보수를 안 받겠다는 일념으로

목회에 입문하셔 오늘날까지 세상눈치 안보고 바오르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본받으며,,,오늘까지,,,

 

언제나 강해설교만 고집하시지만, 미리 다음 과제를 연구묵상하여

책을 다 써서 매어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성경에서 성경으로 해석을 도와주며 세상말로 미화시키지 않는 귀한 설교를 해오셨답니다.

 

공학도이기에 성경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성경을 세상적인 눈으로 보지않고

하나님의 안복에서 보며 그 뜻을 헤아리는 특별한 은사가 있으십니다.

 

이이의 지난 생에서는 자신을 과학적 논리적 지식이 하나님을 못 보게끔 교만했으나

이제는 그 모든 지식이 하나님/성경안에서 굴복하는 것, 즉 과학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일부의

비밀을 인간이 찿아가는 것임을,,,,,,,,,,,,,,,,,,,,,,,,,,

 

그렇다고 세상적 댓가를 기대하지도 않고,,,

다시말해 그토록 수북히 쌓인 책도 출판도 거부하시는,,,

그것마져도 나를 나타내려는 나의 정욕의 소산이라고,,,

 

그동안 그토록 고집세고 어려웠던 일념적인 남편의 성격을 주님이 들어서 쓰시는구나,,,,

바오르처럼,,,순수복음을 위해서,,,라고 꺠달은 날이 있었지요.

그것은 저로하여금 다른 어려움을 이기고 기쁨으로 동행하는 원동력이 되었죠.

 

세상적으로 보기에 성공한 큰 교회의 기존장로정치와 결탁타협하기 싫은 성격이시라

큰 교회목회자도 거부하시고 구태여 개척교회만을 해 오심은

자기 소신껏 설교를 하실수 있다는것,,,내 혀가 거짖증거를 안함을 모토로,,,

 

얼마나 고지식하신지, 우리 십일조 내고도 교단에서 우리에게 개스값하라 주는 돈마져도

도로 교회에 드리고 자비로 60마일 왕복-120마일을 봉사음식을 몽땅 해 가시고가서

설교를 하고 오시는,,,,그만큼 순수복음을 위해서,,,,

그리고도 절대 교회재정에 관여를 안하는 독특한 성격,,목회를 하려면 돈에 꺠끗해야,,,라는,,,

 

피아노 반주자를 구할수 없는 개척교회의 상황을 이미 아는지라,

그 어려운 사업속에서도 이이 신학교 가 있는동안 선생님을 집으로 초빙하여

기초부터 배워 피아노반주를 해 낸 저의 노력도  하나의 이적?

직장-전화받는 고객서비스직업 틈틈이 미리 받은 설교문을 번역하여 미국남편들을 위한 통역도 하며

또 틈틈히 장봐다가 다음주일날 해갈 음식준비,,,,

 

순수복음을 위해서 무척이나 지역교회로부터 배척과 냉대와

우리의 목회가 못 일어나도록 방해도 받았으나 굽히지 않고 지나온 세월,,,

이번에 이 지역사회에 놀라운 일이 생겨서 목회자들이 다 같이 만나는 일이 생기고

이번에는 사모들까지 만나는 자리가 그 우리가 떠났던 교회주관으로 열렸는데,,

여전도회가 얼마나 정성껏 음식도 장만하여 환영을 해 주든지,,,

 

한 여권사님은 이 지역의 목회자들이 연합화목하기를 바라는 기도를 지난 2년간 해왔노라고,,,

어느분은 목사님내외가 어떤 목회를 하시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고힜어요.

힘내세요,,,라며 격려도 해 주었지요.

너무도 좋은 사랑이 넘치는 모임이였어요.

 

이것은 다시말해 이 조그만 한인지역사회에서 일어난 기적이였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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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꽃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곧 주위사람들 그 불에 몸 녹이듯이,,,

주님의 사랑 이같이 한번 경험하면 그의 사랑 모두에게 전하고 싶으리,,,,

 

아래의 찬양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잡힌바 된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꼐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꼐서 사신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위해 산 것이라.

 

이 귀한 복음의 말씀을 사랑하는 인일동문들과 나누려는 순수한 바램입니다,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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