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릇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질러댔다.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그의 분노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토해졌고
이를 만류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할 지경이었다.
이 날의 난동은 내 책을 모 TV 방송국에서 화제의 책으로 선정하고
김소엽 권사님과 인터뷰하는 것을 녹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그 프로그램 여기자가 새벽에 노숙자의 모습을 취재 나왔는데
자신의 얼굴이 찍혔다고 오해하여 분노한 것이다.
기자는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카메라를 빼앗으려 달려드는
그 노숙자에게 겁에 질려 숨었다.
기자는 노숙자 급식 장면이 방송으로 나가면 우리 사역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른 새벽에 나온 것이었는데 일이 난처하게 된 것이다.

아침을 배식하던 자리는 금방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자원 봉사자 우리 모두는 새파랗게 겁에 질려 이 사태를 수습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 때 김 목사님은 침착하게 아침 급식을 그대로 진행하게 했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그들이 난동을 부릴수록 더욱 겸손하게 인내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난동을 부리고 있는 노숙자를 기꺼이 상대해 주었다.
노숙자에게 온갖 더러운 욕설을 묵묵히 받고 있는 목사님의 얼굴을 보았다.
말 한 마디 들레지 않고 묵묵히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같았던 예수님의 얼굴이
겹쳐져왔다.      

우리는 왜 그들의 어리석은 난동에 대응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들의 가슴에도 할 말은 많다.

“너희들의 봉사는  우리 노숙자들을 팔아 후원자들에게 돈을 받아 챙기는 장삿속이다.”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 500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마련하기 위해
애간장이 다 타는 우리들의 심정을 그렇게 짓밟는 그들의 당당한 태도는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다.

“왜 빨리 배식을 못하냐? 그까짓 밥 한 그릇 주면서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려면
다 집어치워라.
봉사자들의 태도가 친절하지 못하다. 그 따위로 하려면 그만 둬라.”

자원 봉사자 중에 유명한 테너 가수인 금 집사님은 그의 난동을 한 시간 이상 몸으로
지켜냈다. 항상 봉사하는 얼굴이 밝았던 그 집사님은 어두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노숙자를 섬기는 일이 가장 험하고 힘든 봉사인 것 같아요.
다른 봉사는 일하고 나면 감사하다는 칭찬을 듣는데 이 일은 일할 수록
욕설과 괴로움을 당하는 봉사이니 말예요.
저는 새벽 추위에 감기라도 오면 치명적이고
마음의 평정이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앞으로 이 어려운 봉사를
계속해야 할지 갈등이 오네요.”

발로 걷어 찬 국통에 다리를 다쳐 부어 오른 유춘애 집사님의 얼굴도
마음이 부서지고 있는 얼굴이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나의 가슴에서도 수없이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교회 일만 잘 하면 됐지 노숙자 봉사 안한다고 너에게 누가 질책 하겠어?
그만 해도 괜찮아.
너는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 한거야.
우리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저 무례한 자들에게 더 이상 사랑을 줄 필요가 없어.
사랑이나 은혜도 받을 만한 사람에게 주어야지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먹이고 나면 장사속이라고 매도하고
밤새워 만들어 가지고 나온 음식이 맛없다고 투정하고
집안 식구들도 받아 주지 않는 술주정을 다 받아 줘야 하고
고맙다는 말은 고사하고
멱살을 잡히고 매까지 맞아야 하는 봉사는 나는 더 이상 못해.
그동안 새벽에 어떻게 나왔지?
그것은 분명 내 힘이 아니었어.”
만 가지 생각이 오고 가는 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들이 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조차 모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상대의 사랑을 폭언과 폭력으로 받을 정도로 저들은 아프고 병든 자들입니다.
저들은 환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끝까지 사랑으로, 인내로, 그들을 겸손하게 섬기면
그들도 다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진실인가 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튿날 새벽.
테너 가수 금집사님도 다리를 다친 유집사님도 안경이 깨진 새중앙 교회 청년도...
거리 선교회 자원 봉사자 전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도착했다.
얼굴은 밝고 목소리는 사랑에 가득 찬 낭랑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달라진 것은 노숙자들의 태도였다.
“어제 젊은 놈에게 멱살 잡히고 그 욕설을 다 참아내는 당신들을 보니
당신들은 진짜야! 당신들은 가짜가 아니고 진짜야!”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노숙자들은 “감사합니다”를 연발했고
나에게는  핸드 크림을, 유집사님에게는 껌 한통을 선물했다.
“당신들의 사랑은 가짜가 아니고 진짜야!”
그 이후 내 가슴에 온종일 들려오는 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