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선교에서 오는 날로 다시 3박4일간 예수 전도단 각 대학 리더 수련회에 참석한 아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강원도의 한 기도원에 간 김에 남편은 딸이 보고 싶어 하는 바다를 보여 주고 저에게도 쉼을 주고 싶어서 무조건 북동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스멀스멀 내리고 평창의 산골짜기마다 예쁜 팬숀들이 유럽식 등불을 환하게 켜고 길손들을 유혹하는데 아들은 하루 밤 묶는데 십 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그 돈이면 캄보디아인들 일년치 생활비’라며 우리의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
한 밤중에 강릉의 바닷가에 도착하여 온 가족이 목욕하고 자는데 이만사천 원밖에 들지 않는다는 아들의 제안대로 최신 개장한 찜질방에 투숙하게 되었는데 밤새 틀어놓은 대형 T.V에 청소년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 특히 생전 처음 가본 찜질방의 생소함에 남편은 밤새 거의 잠을 못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일찍 일어나 찜질방을 탈출하여 동해 바다만이 간직한 원초적 자연 그대로의 파도를 보면서 철야기도 시간을 맞추기에는 무리한 일정임에도 굳이 예수원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도시나 시골이나 우후죽순처럼 번창하여 티셔츠에 반바지 하나면 머리 둘 곳이나 발 둘 곳 구별 없이 남녀노소 아무렇게나 질펀하게 대자로 누울 수 있는 값싸고 편리한 찜질방에서 벌어지는 예절파괴, 격식파괴의 천박한 문화의 조류[트렌드]에서 자신을 씻어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한적한 곳에 자리한 시골집에서 초당두부를 먹고 예수원에 도착한 때는 중보기도 시간이 막 끝나고 노동시간이 시작되는 두 시가 넘은 때였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길을 걸어걸어 세상의 짐을 하나하나 버리면서 올라오던 길이 이제는 예수원 앞마당까지 차를 댈 수 있게 되고 숙소도 많이 지어져서 처음의 고적하던 수도원의 정취는 많이 감소했어도 예수원은 여전히 혼란한 세상을 위한 대속의 기도의 향기가 은은히 전달되는 아름다운 성소입니다.
6.25가 끝난 직후 황폐화된 한국의 땅과 영혼들을 안타까와 하면서 강원도 황지에 기도와 노동의 집을 손수 지으시고 화가이신 제인 사모님과 평생을 흙에서 일하시면서 한국의 영혼과 세계의 선교사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집을 이루신 대천덕신부님[성공회,김성수주교님도 배재동창]]의 뜻은 신부님이 소천하신 지금도 아름답게 이어져 심령이 갈급한 사람, 세상에서 상처 입은 사람, 목회지로 나가기 전에 더욱 자신을 가다듬고 싶은 신학생들이 찾는 지성소로 남아 있습니다.
남편이 소천하신 후에도 한국에 남아 기도의 남은 분량을 채우시는 제인사모님의 소박한 방에 뜻밖의 초대를 받고 들어가서 담소하는 중에 아들은 늘 가지고 다니는 팬플릇으로 즉석연주를 하였는데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찬송가 204장을 존경의 뜻으로 무릎을 꿇고 연주하여 사모님의 안수기도를 받는 특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아들은 무릎을 자주 꿇는 덕에 특별한 은혜를 체험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르신대도 우리가 전혀 말씀드리지 않은 앞으로의 군입대와 아들이 앞으로 할 선교사역의 일까지 세세히 기도해주셔서 영혼이 맑은 사모님의 통찰력에 놀랍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들꽃조차 섭리에 순종하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수원 입구에 세워진 대신부님의 추모비를 지나오며 추모비에 새겨져 있는, 평생 그 분이 주장해오신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레위기25:23]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물욕과 이기심에 찌들어 왜 사는지도 생각해 볼 시간 없이 자신의 존재조차 잃어버리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신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흔적을 보여주신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적지도자의 경건하고 소박한 삶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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