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강해설교를 막상 시작해보니 윤리나 교리가 특별히 있지를 않고 ??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행한 행전이라

너무 긴 6개월을 소비하기에는 너무 길어 갈라디아서로 방향을 바꾸셨답니다,,?

함꼐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읽기전에 시작/원점으로 돌아가시어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가장 중요한것은 같은 성경적 단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성경 전체를 좌우한다는 겁니다.

즉,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의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뜻하시는 바를 좀더 바로 헤아릴수 있는가? 하는 마음과,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의 감정과 이권에 따라 해석함으로서 어마어마한 죄를 저지를뿐만 아니라

특히 내가 가르치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케하는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에서 제 일계명은 우리가 다 아는바와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제 이계명은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허나 오늘날의 우상에 대한  정의는

                                                               꼭 어떤 상을 만들어놓고 절하는 것뿐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직 한분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배제한

                                                                어떤 말과 행동,,또 나로 하여금 예수님과 나의 사이를 헷갈리게 하는

                                                                모든것이라고 정의가 됩니다. 그럴떄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위치에서 나의 말로 인하여 수많은 성도들을 실족케 한다면 나 자신이

                                                                어마어마한 우상숭배의 본체가 될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올바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될 막중한 책임이 있읍니다.

                                                               

                                                                예수님만 성경을 들어 증거하기도 시간이 모자른데 왜 세상의

                                                                갖은 달콤한 말로 마치 원맨쇼 코메디같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앙꼬없는 찐빵같은 설교들이 난무하는 현실은 누구의 책임인지요?

                                                                

그러기에는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들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세상:::::::성경은 우리가 사는 즉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패역한 우리를

                 사탄에게 내어주시고 떠나신 사탄의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세상은 죄악세상이라고 합니다.

                 (창6: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엡2:2)-그떄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좆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철학::::::(골2: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 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철학이 인간에게는 가장 고상한 지식이나 하나님의 안목에서는 역시 이미

                 하나님이 떠나가신 죄악세상에서의 지식이기에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는 우리가 보기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기준을 교회에 나가는 사람과 안 나가는 사람의 세상적 기준이 아니고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 태어난 사람과 아직도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마음이 육에 머무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진정한 자유는 (갈5:19.20,21)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의 하지 말아야 할 육체의 정욕을 

                 죄인인 우리의 힘으로 할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성령의 힘으로써만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같이 이행할수 있는 능력을 받음입니다.  

                

<<<갈라디아서 강해설교>>> ? ?첫째 날?

 갈 1:1-10 서론

 

갈라디아서는 자유(?내가 할것은 하고 안 할것은 안 할수있는 능력)의 서신으로 잘 알려진 책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규명하는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갈라디아서를 일으켜 하는 말입니다.

이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비로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읍니다.

이 책에 쓰여져 있는 참된 복음을 알때 우리는 진짜 복음을 알 수 있읍니다.

여기에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위대한 선언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잘못된 거짓복음과 참복음이 선포됩니다.

진실로 이 서신속에 담겨있는 위대한 진리를 묵상하느라면 비로서 영혼들이 꺠어져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원하느냐는 당신들의 영적지위와 참으로 중요한 연관을 가지고 있읍니다.

거짖복음 즉 세상적인 이야기만이 훌륭한 메세지라고 생각하는 성도는 아직도 세상적인 사람이요,

이 참진리에 내 마음을 다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젖어드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사람은 세상것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종용하고 싶은것은 이 책을 통하여 여러분의 가슴속에 참된 진리의 불이 붙어서

참 진리와 거짓진리를구별할 줄 알며 참 진리가 아닌 말에는 좀 꿀과 같이 달콤하다 해도

단호히 거절할줄 아는 참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또한 '나'의 신앙의 길이 옳바른 길을 가는가?를 점검해 보려면 또한 자신을 이 책에 비춰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말하길 만약에 이 갈라디아서가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유태교의 한 분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며

아니면 인류사상의 한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 갈라디아서 떄문에 기독교는 참으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으로 존재 할 수가 있었고,

복음은 참 복음으로 존재할 수가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성학자들도 참 많읍니다.

이 서신에서 가장 위대한 선포의 하나는 진정한 자유는

참 진리의 자각 또는 진실한 꺠달음에서 온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시지요?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And you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그런데 여기서 진리가 누구인지 아세요?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진리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이 진리를 철학적인 의미로 착각하시면 평생을 착각속에 사실 것입니다.

이 진리를 제일 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책이 바로 이 갈라디아서란 말입니다.

 

이제 바울이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기로 하겠읍니다. 

전 시간에 말씀들인 바와 같이 사도바올은 세번 전도여행을 했는데 

제 일차 여행떄 약 주후 47년경 남방 갈라디아 지방(니고니온, 루스트라, 디베, 안티옥 등등)에

교회를 설립했읍니다. 

지금 터키의 중부에 자리잡고 있었던 이 갈라디아의 크기는

약 75마일 넓이에서 길이가 200마일 정도의 나라였읍니다.

 

일차때는 바나바와 요한 마가와 함께 시작아였으나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에루살렝으로 돌아가고 

바나바와 같이 교회를 세웠읍니다,

그리고 AD49년경 이차 여행때는 역으로 디베, 루스트라, 니고니온과 안티옥을 거쳐 전도여행을 했읍니다. 

그래서 바울과 갈라디아는 영적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이 밀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차 순회를 하는 동안 바울은 이곳에 거짓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목격했읍니다.

이떄는 일차 전도여행과 한 2,3년 후였는데 이곳에 만연히 퍼지는 이단운동이 일어남을 보고

바울은 견딜수 없는 마음에 이 서신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였읍니다.

 

그래서 이 서신은 이차 여행을 마치고 안디옥교회에 돌아와서 자기가 보고 느낀 갈라디아의 이단운동을 

바로 잡고 올바른 참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 서신이 쓰여집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쓰게 된 동기를 종합해보면 한 세 가지가 있읍니다?>

 

1) 이 거짓된 진리로부터 참된 복음으로 갈라디아 성도들을 되돌아 서도록 하기 위해서(진정한 복음의 회복),

    이들이 이단적으로 들어갔던 것은 구원을 받는데는 예수님도 필요하지만 할례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할례를 강조하기 시작했읍니다. 

    

    지금도 구약이 구원의 첩경이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읍니까?

    그러나 구원은 무엇을 함으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어진다는 것을 꼭 아셔야 합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잘 나가고 헌금 잘 하고 좋은 일 잘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주의자임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도덕과 복음을 혼동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덕은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자신입니다.

 

다른 예로 사행15장을 보십시오

 

2)  이 거짓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예수님을 앞에 내 세우지만 밤낮 율법만 가르칩니다.

     지금도 교회가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고 세상 이야기만 한다면

     우리는 교회를 가야할 아무 이유가 없읍니다. 학교에서 집에서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다 그것인데 

     왜 교회에 가서 우리가 이행할수 없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또 듣읍니까?

     우리는 이미 이 율법을 꺠뜨린 범법자임을 그 누구도 다 잘 알고 있읍니다(롬3:10 )

   

     하나님이 '하라' 한 법은 하지 않았고 '하지말라'한 법은 이미 다 해 버렸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을 이행할수 없는 자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셔서

     그 분을 통하여 이 모두를 이루게 하셨다는 것을 꺠달으려 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송가 338장을 부르며 예수님앞에 나올 떄 기독교는 시작됨을 아십시오.

 

     또한 이들은 이 율법을 복음화하기 위해서 바울사도을 중상모략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들은 사도바올은 진짜 사도가 아니다라고 사도의 권위를 들고 모략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래서 사도바올이 이 서신에서 자기의 사도직은 인간으로부터 받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는 자기의 소명을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이 서신을 쓰게 된 배경중의 하나입니다.

 

3)  새로운 기독교와 과거의 유대교의 다른점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이 서신을 썼읍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구약을 들어 율법을 가르치고 천명한다면

     이 기독교는 구 유대교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읍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목적>

 

?이 목적은 위에서 말한 배경에서 거의 말씀들였읍니다만 더 간략히 말씀들이면

1) 사도권의 변호입이다---자기의 사도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말하는 사람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한 그 사람의 말은 무의미 합니다.

                                   (1장과 2장에서)그래서 여기에는 사도바올의 역사가 쓰여졌읍니다.

2)  복음의 재천명입니댜--처음 전도여행때 가르쳤던 그 복음을 다시 확인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이것은 교리적인 목적을 위해서입니다(3장과 4장에서)

3) 율법에서 자유한 삶이 도대체 무엇이냐?---율법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었다면

                                   자유의 본질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를 기술합니다(5장과 6장에서)

                                   그래서 이것은 윤리적인 목적이라고 말할수 있읍니다.

                                   이것이 뒤 바뀌지 않는 바울서신의 형식임을 늘 염두에 두고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교리와 윤리를 다시 정의하자면 교리란 무엇을 믿어야하는가이고

윤리란 생활을 말하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느냐가 즉 윤리입니다.

꼭 알아두어야 할것은 교리인 생활지침서가 없이 올바른 윤리는 이행 될수 없음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교회란 곳에 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교리를 배우러 오는 곳입니다.

그리고 집에 가면 배운 교리를 실천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어떻게 가르칩니까? 교리도 없이 무엇을 해라 그리하면 만복이 온다고

유혹하지 않읍닏까? 참 큰 문제입니다.

 

기록한 연대: 약 AD 50년 전후라고 추측함

장소: 안티악 교회(mission mind church)

누가 누구에게: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성도들에게 썼음

 

내용

<참복음과 거짓복음>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1장 1절부터 10절까지 대의를 생각해보면,

여기서 첫쨰로 복음과 다른 복음을 다룹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복음이란 성경에 나타난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준 그것밖에는 없다

고 확실하게 다짐하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다른 복음의 정체를 파 헤칩니다.

 

1절에서 자기의 사도된 사도적 권위에 대해서 변론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기의 권위를 옹호하는가 하면

                    a) 하나님의 소명으로

                    b) 허나님이 준 사역을 이행하므로

                    c) 그가 전한 메시지로

                    d) 그의 사역의 진리 즉 특질로서 변론을 전개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안수도 받고 특수한 학교도 가고 해서 교회의 직책을 맞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바울도 인간적인 절차를 안티옥 교회를 통해서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름이 없이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며 할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절에서 무엇을 전했던가를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전합니다.

 

3절에서 인사하기를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은혜는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하고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평강을 받읍니다.

           그래서 은혜와 평강의 순서는 바뀔수가 없읍니다. 

           구원을 받은 자만이 마음에 평강이 있음을 믿으십시오(Peace with God, then we have the peace

                                              of  God).

           진실한 평화란 세상이 말하는 평화와는 전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읍니다.

           평화란 말은 원어로 보면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의 상태를 세가지 떄로 표시됨을 봅니다.

           로마서 5장6절, 8절, 10절을 보면 잘 나타나 있읍니다,

           이 모든 떄가 하나님과 화해하는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재하게 됩니다.

4절에서 부터 이제 사도 바울은 다시 복음을 천거합니다.

           "그리스도꼐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의 복음잉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심까지도, '이 악한 세대'란 뜻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악한 흐름과 악한 풍조속에 파묻혀있는데 이것으로부터 건지시려고(구원)

           자기몸을 드리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서론적으로 논리를 펴간 사도바울은 6절과 7절에서 진심으로 하고픈 염려의 말을 합니다.

 

6절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좆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교회에 나가십니까?

            하나님 믿고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아니면 율법을 배우려고?

            이렇게 예수님을 제외한 다른 어떤것을 위해서 믿는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고

            바울은 강력히 여기서 피력합니다.

 

            이 은혜라는 것을 여러분은 정말 절실히 느씨십니까?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나에게 거져 주신 선물'?

            그런데 이 은혜란 좋은 것만 주신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을 읽어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은혜는 구원뿐만 아니라 고난도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고난도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신다는 사실을 꺠닫고 나면 

            이 은혜란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실떄는 그 고난을 이길수 있는 능력을 꼭 주십니다.

 

7절에서  복음이란 단 하나다. 다른 복음이란 없다라고 강조합니다. 

다른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너희를 요란케(헤깔리게)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구원뿐만 아니라 고난도 이길수 있는 힘을 주시는 이 참 복음을 두고 다른 복음을 쫒는다니 

사도바울은 말할수 없이 괴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다음 절에서 경고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8절에서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찬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절에서  또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간곡히 사도바울은 두번을 되룰이 합니다. 이것은 아주 강조하는 뜻에서 거듭 반복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면 복음적 삶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이냐?

또한 어떻게 하면 이 진정한 의미의 복음을 이행하며 누리며 살수 있는가를

사도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점짐적으로 전개 해 나갑니다.

 

10절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꼐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였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 사람들을 사랑했던 바울은 이렇게 격렬한 어조로 훈계할수 밖에 없었음은

그들을 너무 사랑했기에 다른 복음으로부터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을 너무 강조한다. 무어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는가? 

그러나 잘 알아 두시기 바랍니다.

자연인은 세상이야기를 해야 재미 있읍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은 하늘나라의 이야기라야 힘을 받읍니다.

만약 제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면 오늘 나의 믿음을 한번 점검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을 체험해 본 경험이 있는지........

 

저의 목회의 소명은 단 한가지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 참 복음을 알기 원한다면 그를 위하여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나의 소명이요. 

또 한분이라도 진실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여 따를수 있는 제자가 탄생한다면

그것은 제가 받는 가장 기쁜 보수일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