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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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 그 진노를 불처럼 쏟으시니 그를 인하여 바위들이 깨어지는도다 여호   와는 선하시며 환란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를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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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   하여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14절)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  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15절)"나훔1:1~15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누11:32

나훔은 백 여년 전에 요나가 전하는 하나님의 경고(사십일 후면 니느웨성이 멸망함)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를 향해 다시 또 경고합니다.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는 여호와를 요나가 원망하자 그에게 주신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의 가슴을 촉촉히 두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거늘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요나4:10~11

이렇게까지 여호와께서 니느웨를 사랑했거늘 니느웨는 여호와의 사랑을 만휼히 여깁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해주십니다.

질투하시며,보복하시며(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진노하시는(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여호와라고 선포해주십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나훔은 요나처럼 니느웨로 가서 전한게 아니라 유다에게 니느눼의 경고를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앗수르의 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관영했다는 걸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나훔3:19

이로써 우리도 이삭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회개의 기회를 놓친 에서처럼.여호와의 긍휼을 크게 체험하였음에도 회개의 길에서 떠난 니느웨처럼 마음을 완악하게 버려두면 안 될 것입니다.

나아가 니느웨를 향한 묵시를 나훔을 통해 들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아 기원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앗수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양육하시는 채찍과 징계의 막대기로 쓴 나라입니다. (이사야 10:9~19)
그러나 앗수르는 그러한 여호와의 깊은 뜻을 모른 채 말할 수 없이 교만했습니다. 특히 히스기왕 당시 여호와를 대적한 결과 하룻 밤에 산헤립 왕의 앗수르 군사 18만명이 진멸 당하게 됩니다

그 후 나훔서 말씀대로 기원전 612년에 앗수르는 바벨론의 니느웨 함락으로 다시는 재난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망하여 없어집니다.(나훔1:14)
망하는 것도 말씀대로 였다는 것에 눈이 열리면 화도 복으로 변합니다.

우리들이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것은 힘써서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 비록 지금은 다 몰라도 이후에는 잘 알게 되어 종내는 다윗이 읊은 시편23편처럼 되어 갑니다.

나훔서에서 놀라운 것은 이런 엄청난 심판과 진노도 복음을 가로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소식,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서 있음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여호와께서 정하신 모든 절기들의 실체가 되셔서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서원을 다 행하신 결과입니다. (나훔1:15)

앗수르처럼 도무지 용서 받을 수 없는 진노와 저주의 경고장 속에 우리가 에워쌓임을 당했을지라도 산 위에서 화평의 소식을 외치는 자의 아름다운 발을 쳐다보면 새롭고 산 길이 열립니다.

우린 무엇을 아름답다 하십니까?
성경에선 오직 선하신 분이 하나님 한 분뿐이듯 아름다운 분도 예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특히 뱀의 머리를 십자가로 산산조각 해체시키신 아름다운 발은 오직 주님 발뿐입니다.(창3:16)

우리들 발은 다 각기 제 길들을 갔을뿐입니다.
정한 때보다 조금 늦거나 조금 빠른 행보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후회와 차질과 안타까움만 남길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듯 가장 적합한 때가 차서 오신 아름다우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발을 가지신 예수께서는 당신과 제자들이 상관있다는 것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는 행위와 새 언약인 당신의 살과 피에 참여시키는 성만찬으로 가르쳐 주십니다.

사단의 머리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 와 아버지가 나를 보내심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대로 제자들은 주님의 아름다운 발을 전하는 자들이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복음(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을 전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가 나와 함께 하심이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기 때문입니다.
환란 날에 피할 수 있는 산성이 되신 여호와의 선하심을 찬송하나이다. 아멘!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디모데후서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