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기 전에 유월절 먹기를 갈망하고 갈망하셨습니다.(누22:15)
왜냐면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해 약속하신 새 언약을 당신 몸으로 성취시킬 날을 오랫동안 숙원해오셨기 때문입니다 

드뎌 예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드시며 당신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에 참여케 하심으로서 묵시 세계속에 있던 새 언약을 역사의 현장이 되게 하셨으며 이 역사를 기념하라 명하십니다 (막14:24)

이스라엘이 해 마다 절기가 돌아 오면 유월절 그 밤을 기억하며 유월절 저녁 식사가 끝나면 찬송하며 성전으로 올라가듯이 예수께서도 만찬 후 제자들과 찬미하며 밤에 감람산으로 가십니다.(막14:26) 
.
.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곧 온 공회가 모여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기니 빌라도가 묻습니다.(막15:1~2)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
"네 말이 옳도다! " 

찬송이란 이름인 유다인의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 기름 부으심을 입은 예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고 답하십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이53:2)"

빌라도 앞에 결박 당하신 몸으로 서있는 나사렛 사람 예수님께 왕다운 풍채와 흠모할 만한 것이 있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보기엔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상은 예수님만큼 충만한 왕재를 지니고 탄생하신 분은 없으신데 말입니다.

다만 사람인 우리들 눈에 철저히 가려져있었다는 것입니다.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와 자랑과 교만함이 어떠하면 이토록 철저히 당신의 왕됨을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노력에 의해 알지 못하도록 정하셨을까요?

저도 사람이지만 굳이 다른 사람 볼 필요도 없이 정말 못믿을게 저란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예수 안에서는 얼마든지 그리스도의 왕되심이 믿어져 말씀에 "예"가 되니 이는 오직 새 생명 속에서만 역사하시는 아버지 믿음 때문입니다.

세상의 안목과 이생의 자랑과 육신의 정욕으로 가득찬 야망과 꿈과 지식의 비늘들이 총총히 수건처럼 마음을 덮고 있으니 어찌 하늘 왕을 볼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열방 위 덮개와 민족의 가리개를 치워주시지 않으면 우린 그 왕이 나를 어떻게 섬겨주었는지 여전히 절둑거리며 소경과 귀먹거리로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할뿐입니다(이사야25:6~8)

개인적으로 예수 당시 산헤드린공회원들과 유다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희미하게나마 느꼈을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건 비록 그림자일지언정 그들에겐 율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로 모세(율법)의 자리에 앉으셔야 할 유다인의 왕 그리스도이시지만 포도원 농부의 비유처럼 이스라엘 포도원의 농부들인 산헤드린 공회는 포도원 주인이 보낸 포도원 상속자인 하나님 아들을 죽입니다

이런 불의한 현상에 저항하여 혁명적인 선언을 선포하시고 선언하신 바대로 성취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로 완성된 중보사역은 더이상 아버지와 우리 사이에 다른 중보자(농부)들이 필요 없다는 것을 선포해 주심으로 우리로 아버지의 손 길을 직접 체험토록 해주신 것입니다.

더이상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을 통해서 포도원을 경영하시지 않고 친히 하나님 아버지께서 경영하시겠다는 의지적인 뜻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농부되심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려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요15:1~3

농부이신 예수님의 아버지께 우리가 맡겨지려면 필히 참포도나무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만합니다.
어떻게 붙어 있을까요?
부활 후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가 곧 너희 아버지라 선포해주심으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결렬되었던 부자관계가 다시 소생된 환희를 영원히 맛보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산헤드린공회가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무리들을 충동하여 빌라도 손에 죽게 만든 현상은 이스라엘에게 순전하고 흠없는 유월절 떡(예수 그리스도)을 먹이지 않고 외식과 위선과 부활이 없다는 잘못된 교훈의 누룩 섞인 떡을 먹인 결과입니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도 종교시스템속에서 악순환됨에 우린 순전한 누룩없는 유월절 산 떡을 먹음으로서 탈출됩니다.

이렇게 탈출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세력이나 권력자들 앞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그리스도되심과 왕되심으로부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왕 같은 제사장됨에서 물러 서지 않게 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그리스도되심과 왕되심을 가장 많이 친히 증거하시며 보여준 현장이 바로 십자가로 가는 수난의 현장이였다는 걸 기억한다면 우리의 왕 같은 제사장됨을 가장 많이 나타내야 할 때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로 가는 지름길이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이였다면 죄많은 우리들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율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저들이 예수님께 던졌던 "네가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네가 유다인의 왕이냐?"는 동일한 질문은 아니지만 우리도 그와 유사한 송사의 다양한 질문이 오가는 카테고리속으로 끌려가게 되여있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현저하게 증거해주는 것입니다 

꼭 누가 아니더라도 우리 안과 밖에서 행사하는 전 남편격인 율법 세력이 우리를 여러가지로 송사,고발하여 마치 들끓는 무리들에게 에워쌓인 양 온갖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순간에 주눅 들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율법의 기를 세워서도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용서 받은 죄인답게 거룩한 기름 부음을 입은 우리 속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하여금 일하도록 그리스도께 순복해야 합니다.

나를 송사 고발하는 내 친척 이웃 친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정결케하는 산 제사를 드리는 산 제물이 되어야만 합니다
일목조연하게 맞대응 하면 할 수록 율법세력의 카테고리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갑니다.

이 때는 오직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과 왕이신 그리스도께만 "예"하며 숱한 주변의 고소와 송사가 난무하는 말들에 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요.

나사렛 예수가 그들의 송사에 조목조목 해명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서 침묵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수록 침묵할 것이나 그 그리스도의 영에 잠겨있지 못할수록 널 뛰듯 뛸 것입니다.

예수 따라 가면 우리 안에 기름 부음 입은 왕 같은 제사장이 일으킴을 받아 십자가 사역에 동참하게 되여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 예수께 의해 먹게 된 찢기운 살과 피가 바로 그걸 말함이 아닙니까?

나를 찌르며 힘들게 하며 괴롭게 하는 친척 이웃 성도 형제들을 놓고 심지여 사역자들을 놓고도 그리스도의 피와 물로 섬기게 되여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 유난히 불법과 마약과 불의와 탐욕과 살인과 저주가 활동하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들의 사역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오시게 된 성령의 기름부음,곧 왕 같은 제사장됨은 선한 일,좋은 일,복음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력,외모,가문,정욕,직업,돈 등에 떠내려갑니다.

우린 빌라도가 묻는 말에 당당하게 옳도다라고 답하시던 예수님을 묵상하면 세상의 그 어떤 화려함이나 성공이나 경력이나 권력이나 권세자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는 진리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만일이란 가정법을예수님께 적용해 볼까 합니다.
만일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이나 직업이나 학력이나 외모에 비중을 두셨다면 과연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고 묻는 말에 "네 말이 옳도다." 라고 답할 수 있었을까요? 

뿐만아니라 빌라도에게 끌려 오기 직전 대제사장들이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을 때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담대하게 선포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정의한 왕은 뭇사람 끝에서 섬기는 왕이요,진리의 왕이요,평화의 왕이요,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피를 흘리는 왕입니다.

때문에 그는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발한다며 무슨 말 좀 해보라며 안달하는,마치 자신이 얼마든지 너를 살릴 수 있다는 빌라도를 초월하여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막15:4~5)

예수님께서는 두루마리책에 기록된 것을 십자가사건을 통해 다 이루십니다. 할렐루야!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도살장에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53:7

매 맞고 침뱉음을 당하며 악인들과 함께 범죄인 취급당하시며 그 옷을 제비 뽑으며 지나가는 자들이 머리를 흔들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모욕하며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는 이 모든 일이 성경대로 이루어짐은 바로 나사렛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아버지!
누가 뭐라해도
당신께서 내게 주신 성령의 기름부음을
가장 환영하며
가장 귀히 여기며
가장 으뜸으로 모심으로
선악개념과 사람들 눈에 보기 좋은대로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이 세상의 부귀영화에
휘둘리지 않게 하소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아버지를 예배하며 
사람들을 섬길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