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막13:1~4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는 땅으로 
만들리라"예6:8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마태23:37~38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장차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황폐해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누19:41~44).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우셨으나 그 눈물은 썩어 냄새나는 시체가 무덤에서부터 살아나 곧 걸어 나오는 부활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직전 고도로 흥분된 환희의 눈물이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우시며 하신 말씀을 들었을테고 어쩜 기원전 586년에 함락된 예루살렘과 파괴된 솔로몬 성전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만일 기억해내지 못했다면 오늘의 우리들은 반드시 예레미야 성경을 통해서라도 기억해내야 합니다.

곧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하여 재앙과 저주란 사망의 악순환 싸이클을 박살내게 만드는 복음으로 귀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끊임없는 긴장감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다시 또 멸망할 거라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가슴은 아무리 예수와 동행하고 있을지라도 철렁했을 것입니다. 

지금 본인들이 그토록 열망하며 꿈꾸던 모든 문화,경제,사회,종교,학문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성에 왔는데 이 성이 파괴된다니 과연 자신들의 운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 주는?

예루살렘 성은 그렇다치고 이스라엘 만 백성이 우러러 받드는 이 하나님의 집인 웅장한 성전은 어찌 될 것인가?(헤롯 성전은 64년에 완공되어 70년에 파괴)

결국 제자 중 하나가 성전의 어떠함을 질문하게 되고 예수께서는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답하십니다.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예수님의 이 질문은 눈으로만 보던 큰 건물을 귀로 들음으로서 눈.귀를 다 겸하여 보게 만드는 강력한 주님의 입기운을 느끼게 만듭니다.

주님의 입기운은 좌우로 날이 선 예리한 검인지라 우리들의 관절,골수,폐부 속을 뚫고 들어 와 그 뜻한 바를 아루기까지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생의 자랑과 내 육체의 정욕과 내 세상의 안목에 너무나 만족스러워 주와 함께 영구히 살고픈 "큰 건물"이라 확신했는데 주는 너희들이 지은 곳에서 못산다는 말씀입니다

곧,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부서뜨림을 당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눈으로 보는 말씀이 아니라 귀로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곧 그리스도(말씀)입니다.
왜 믿음은 봄에서 난다고 하지 않았을까?묵상해 볼만합니다.

성경은 
기름부으심을 입은 왕
기름부으심을 입은 제사장
기름부으심을 입은 선지자,곧 메시야를 상고하라고 주신 책입니다.

놀라운 것은 메시야(태초의 말씀)를 들음으로 생기는 믿음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후에도 없을 혼돈과 어둠의 깊음을 능히 이기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이 믿음,메시야라는 것을 우리속에서 확증시켜준다는 것입니다.

막13장 4절 이후의 때와 징조에 관한 말씀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의 질문에 관한 답으로 때보다는 징조를 더 많이 말씀해주십니다.

이는 그 때와 그 날에 집착하여 평범한 일상속에 깃드인 이미 왔으나 아직은 미완성인 하나님 나라에 맹인과 귀먹어리와 절둑거리며 살지 않기를 아버지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에 사람의 미혹에 주의하며 복음을 위한 증언 시 스스로의 지혜를 삼가서 오직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도구로 살 것과 하늘 문이신 주님의 문지기로서 맡겨 주신 일에 깨어 활동할 때 우린 실로 내 마음 문을 두드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지게 됩니다.

말씀은 내 사는 동안에 육화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그 때 그 날 그 한순간에 육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최후의 그 날에 우리는 말씀이 육화되어 체질화된 내 몸이 드뎌 변화산에서 변형된 주님처럼 영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와의 전쟁-
언약으로 태어난 자들(민족)과 육체로 난 자들 (민족)간의 전쟁-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으로 인한 내란 등은
지극히 영적인 것들이지만 이 또한 우리들이 육체를 입고 사는 날 동안에 평생 치러야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육체를 보존해주도록 태양과 물과 공기와 음식과 집 터를 공급해주는 자연계의 질서가 도와주지 않을 때 우린 한 순간에 다 몰살 될 수도 있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외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종교적인 근본주의나 어둠에 편승된 통치와 행정 관원들에 의해서도 무고히 죽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총체적인 난리와 전쟁과 환란과 핍박들이 다 그 때를 향하여 가고 있는 징조로 말씀하시며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이런 날들이 겨울에 닥치지 않도록 기도하라하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천지는 사라져도 내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씀은 절대적인 위로가 되고도 남음이 있어 영원한 위로가 되고도 남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내게 여전히 남아 있는 말씀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말씀들이 결국은 내 속에서 육체가 되어 오신 예수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을 몇 퍼센트 믿습니까?

예수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부서뜨림을 당하리라는 당신 말씀에 제자들은 이제 저항하거나 토를 달지 않는 걸 봅니다.

이제 제자들은 당신 육체는 스스로 말씀하시는게 아니라 스스로 삼가사 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도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였을까요?

성전이신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무너지되 물과 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과 헤롯 성전의 무너짐이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연관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전이신 당신 몸의 부서짐과 상괸없는 자들은 영원히 형벌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무너뜨려야만 되는 것이 화려한 큰 건물로서의 성전이라면 더이상 연연케 마소서.
어쩜 그 화려한 성전의 파괴가 조국의 위태로움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될지라도 더이상 당신 말씀에 저항치 않게 하소서.

차라리 배드로외 3명의 제자들처럼 조용히 묻게 하소서.
하여 겨울에 이런 일이 일어 나지 않도록 당신 마음으로 기도케하시고 천지가 사라져도 영원히 남는 당신 말씀안에 거하게 하소서.

평화에 관한 일,즉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가 저희 눈에 숨기움을 당하지 않도록 여호와께 부르짖게 하옵소서.
이 부르짖음이 있는 한 사랑하는 나의 조국은 겨울에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아멘!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누19:41~42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