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막 12:35~37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마태 22:41~43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편 110:1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이나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 히1:8~9


열 두 살 때 부모 따라 성전에 가셨던 예수께서는 선생들 중에 앉으사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여 듣는 자로하여금 다 그 지혜와 대답에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이 십 여년이 지난 예수께서 제자들이 아닌 바리새인들에게 질문을 던지시는데 그리스도에 관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라는 말에 "주는 그리스도이시나이다" 라고 베드로가 고백하자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란 그리스도의 일을 선포하신 것과 연결되는 질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그리스도에 관하여 명백히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 며칠 후면 십자가에서 죽기 때문에 당신의 그리스도됨을 친히 증거하실 필요가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이 그렇게까지 성경에 골몰하며 필사하고 가르치나 그리스도를 여전히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하니 시편 110편1절을 가지고 친히 풀어주십니다


당신께서 성경을 가지고 당신의 그리스도되심을 풀어주셨기에 우리 역시 당신께서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계심을 확증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확증이 쌓이지 못하면 비 바람 창수가 터질 때 다 무너집니다


자신은 결코 다윗의 자손으로서의 아들들가운데 한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약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지만 하나님 유일한 아들로서 기름부음 입은 대제사장 그리스도로가 되어 자기 일, 곧 세상 죄를 지고 죽음으로서 죽은 자들가운데서 부활하사 만인의 주 그리스도 예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종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의 기름을 받은 이후부터 성령에 감동되어 살았던 왕입니다

허나 밧세바와의 간음 이후 그는 왕의 기름부음 곧 성령이 소멸될까? 성령을 거두시지 말기를, 다시 회복시키시기를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한 왕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어느 누구 하나 밧세바와 간음한 사실도 우리아를 죽인 사실도 없다는 듯이 살아갑니다

눈물로 침상은 커녕 자기 가슴 적시는 일조차 희귀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영혼을 적시는 말씀이 희귀한 현상속에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면 알수록 육체의 눈물은 씻겨질 것이지만 영혼의 눈물을 생수처럼 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가련한 인생들이 살아가는 이생을 살면서 어찌 영혼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 당시 엄정한 바리새인 훈련을 통과하여 서기관, 곧 율법학자들이 된 자들에게 눈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그런즉 바리새인들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눈물이 있었다면 율법 조항을 613개로 늘렸겠습니까?

그러니 이처럼 엄격한 율법세력 아래 있는 백성들의 억눌림이 어떠하겠습니까?

백성들이 언제들 "그리스도에 관한여"란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있었을까요?

아마 저들은 그리스도마저 다윗 왕통으로 오신다며 그리스도의 왕손됨의 특권속에 저들의 특권의식을 고양시켰음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도 누누이 말씀하신바 그대로 뭇사람들의 끝에 서지 않는 이상 하늘나라는 들어갈 수 없으며 그리스도는 그런 나라의 왕이요 주이니 그 왕 그 주됨을 승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을 떼어주신 섬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 아무리 신분 계급으로 차별화시키고자 하지만 저들도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어야하는 죄인들이요, 그리스도를 주라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다면 너희는 도대체 무엇이냐? 라는 말입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의 딸이 작년에 남편을 먼저 하나님 나라로 떠나보냈는데 남편이 간 지 3개만에 13년동안 키우던 개가 죽었다합니다

보통 개들도 자기 주인이 죽으면 삼 개월 안에 죽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짐승도 그러하거늘 우리도 우리 주 그리스도의 어떠함에 따라 우리도 어떠해진다는 것을 절절히 인식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죄의 삯인 저주와 사망을 대신 짊어지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사하심의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순간 순간마다 그가 예수를 자신의 혈통이라며 자신을 떠받드는 아들로 섬기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하여 질문한 것은 바로 다윗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밝힘으로서 너희가 그토록 다윗 다윗 왕국을 기다린다면 너희도 응당 다윗이 되어야 할 것 아니냐?며 일침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래 너희 말대로 메시야(그리스도)가 와서 메시야(그리스도) 왕국을 세운다치자 그럼 너희는 응당 메시야(그리스도)를 주라 부르면서도 내내 기빠하고 즐거워하던 다윗처럼 자신들의 죄악된 심령을 토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 아니냐? 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주의 때 볼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다 모리아산에서 자기보다 더 자기인 아들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물이 되어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하였듯이 너희들도 아브라함처럼 죽을 자리에서 건져주는 나를 보고 기뻐해야 할 것 아니냐(요8:56)?와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백성들은 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즐겁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의 표정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길래 그토록 즐겁게 들었을까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서 즐거웠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그리스도에게 동류들보다 승한 즐거움의 기름을 부으셨기에 그 그리스도를 듣는 들음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귓가에 부어지고 마음에 스며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즐거움들이 범람하는지 모릅니다

인간들의 지혜와 지식도 과학못지 않게 축적되어가니 지혜와 지식으로 창조된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나 책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등등...

허나 정작으로 즐거움의 본질인 그리스도를 들음으로 즐거워하는 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아버지!

깊은 밤 함께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