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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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와서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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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니라 하시니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막12:10~17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편118:22~23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행4:11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4~8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나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라"사28: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모퉁잇돌,기촛돌)로 삼아 신령한 집을 지어야만 하는 인생 건축가들 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온 포로 귀환자들은 시련의 과정을 거쳐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습니다.그리고 일 년에 3번씩 성전으로 올라갈 때마다 저들은 시편 118편을 찬양했습니다

강대국 바벨론에서 70년을 살아보니 주변의 열국들에 비해 조국 유다가 얼마나 작고 초라하고 볼 품 없는 나라인지 알고도 남게 됩니다. 

그렇게 초라하게 버려진 것 같은 자신들을 택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토록 하신 것이 놀랍고 신기하여 시편 118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말씀을 인용하사 궁극적으로 자신이 머릿돌이심을 증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함께 증거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건축가(지도자)들에 의해 버림 당해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려내 머릿돌로 세우십니다

또한 예수님 곁에서 보고 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행4장)

예수님의 증인은 이렇듯이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사 당신 곁에 두시고 당신을 보고 듣고 알고 깨닫고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포도원 세를 받으려 온 종들과 아들을 죽인 농부들을 그 주인이 와서 진멸하고 포도원도 빼앗기게 될거라는 예수님의 비유가 자신들을 겨냥한 것임을 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이젠 예수님을 빌라도 권세에 넘기려는 궤계를 씁니다

곧 바리새인과 헤롯당을 예수님께 보내어 말의 올무에 빠트릴 수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들도 예수는 참되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는 이유를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음에도 저들은 그 안목으로 예수를 메시야로 믿으려하지 않았다는게 참으로 슬픕니다.

이미 저들은 여호와께서 세계 열국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만 상관하시며 당신의 분깃으로 삼으셨다는걸 까막히 잊은 자들처럼 그 품을 멀리 떠나 저들 스스로 살 도모를 세우느라 대단히 영민, 영악해져 있었습니다.

저들을 보면서 비둘기 같이 순결하나 뱀처럼 지혜롭길 당부하셨던 예수님 마음을 좀 더 알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외식과 위선에 빠져 있는 저들이 예수의 참되심과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는 근본적인 이유를 밝힐 수 있다는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막12:14

제가 참 닮고 싶은 예수님이십니다
아니 이런 분의 생명이 저와 한 몸되어 살고 계신다는게 믿기지 않습니다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려면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아야하고 진리로 봐야한다는걸 저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예수의 외모인 나사렛 태생과 이력에 걸려 넘어지는 중이라는걸 자각할만한 부드럽고 연하고 낮은 마음은 없었음을 보며 아무리 율법에 해박할지라도 그 율법이 주는 지식의 교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을 외모로 봅니다. 태생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내 주는 사람을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 봅니다.
예수는 사람의 계명이나 지식으로서의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지 않고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과 농부 이야기에서 포도원 세란 말씀은 어디까지나 비유인데도 저들의 질문을 보면 포도원 세란 말을 진짜 포도원 세로 이해한 것 같습니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까?" 

질문하는 저들에게서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외모로 드러난 잘 다듬어진 화술이 아닌 진리로써 본 외식이였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선 저들에게 외관으로 볼 수 있는 데나리온 하나로 답해 줍니다.
만일에 저들의 질문이 실로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정직한 갈등과 고뇌였다면 예수님의 답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이다"삼하22:27 시편18:26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도다"나훔1:11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성전세로 받는 두로의 은전을 익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쩜 지금 질문을 던지고 있는 바리새인의 주머니에는 그것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전에서 뒤엎은 상들이 바로 돈 바꾸는 상들이였습니다. 저들은 반 세겔 성전세를 받을 때 두로의 은전만을 허용했습니다.

앞 면에는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 얼굴이,뒷면에는 독수리 문양이 있었으며 거기엔 거룩하고 침범할 수 없는 두로의 신이라는 글귀가 있었습니다.

반 세겔은 은 6g으로 당시 두로의 은전이 정확히 6g이였습니다.이에 저들은 단 한번도 우상숭배로 드린 적이 없고 세속적으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돈을 성전세로 받는다 했으니 진리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외식뿐이지 않습니까? 

명한대로 가져 온 데나리온 하나를 보이시며 이 글 이 형상이 누구 것이냐 질문하니 가이사의 것이라고 답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신대로 저는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글귀가 있는 자라는 것을 늘 기억케하소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이나 사건을 외모로 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인 진리로써 분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방법을 추구하며 살다가 교회 와선 외식하는 제 모습은 없는지 성령께서 책망해 주시길 구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이사의 가치관으로 세우려는 오류를 범치 않게 하시고 오히려 가이사란 엄청난 외모에 굴하지 않고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야 할 당신의 본분에 천착하게 하옵소서.

용기도 담력도 저항도 없이 오직 생존에 허덕이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