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4장은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모압에서 발람의 고향까지는 640키로나 떨어져 있습니다

 

신명기 31장 16절에서 모세는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발람이 모세를 찾아

가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된 발람이 모세를 찾아 가 자신에게 주신 예언을 전해주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발람이 모세를 찾아 갔다면 그는 이스라엘 진영을 가까이에서 보며 관찰하는가운데 

마법과 술수로는 어찌 할 수 없으나(묵시,예언의 말씀) 현실속에서 실제로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손 쉬운 방법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본 발람은 어떠했을까요? 

이스라엘을 축복한 댓가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까요? 


발람이 자기를 찾아 왔던 미디안 장로들과 모압 귀족을 다시 찾아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또한 발락 왕이 발람을 다시 또 만날 수 있었으리라는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파괴시킬 수 있는 계책을 그들에게 건네주는 일은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성경도 발람은 불의의 삯을 좇아간 거짓 선지자라고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게 진노하시니라" 민25:1~3  


발람은 세 번이나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예언한 결과 어떠한 마법과 술사로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여호와를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발람은 전능자 여호와는 어찌 할 수 없으나 이스라엘은 어찌 할 수 있다는 꾀를 찾아내게 됩니다

곧 이스라엘로하여금 다른 신들에게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겠지만 육체를 유혹하는 미인계와 

푸짐한 대접을 써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게 만드는 것이였는데 이에 이스라엘이 넘어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시는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다면 여호와의 사랑이 진실이라면 우리가 변하는데 아무런 행동도 없다면 그 사랑이 어찌 진짜이겠습니까?

그래서 여호와의 사랑은 진노와 투기와 질투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새겨지지 않으면 평생을 방황합니다


때문에 이것에 확실한 자들은 여호와께 당신은 날 끔찍이 사랑한다면서 왜 좀 잘 살게 해주지시, 

좀 높은 자리 주시지, 좀 편하게 해주시지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를 평생 사랑하는 방법으로 주님께서 사도바울에게 사단의 가시를 주신 것에 비하면 내 불편함이나 

내 고역이나 내 아픔등등은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모압의 한 여자도 아니고 여러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한 백성들은 

결국 발람의 꾀대로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게 되어 바알브올에게 종속됩니다 

허물과 반역보다 더욱 더 여호와의 사랑의 정수를 터트리는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은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을 배반하지는 않으나 

일상속으로 스며드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다 영화나 드라마나 그외 음란한 영상이나 

예술등을 통해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만듭니다

성령을 탄식케만듭니다

그래서 힘써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바울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언제가 묵상에도 썼지만 하루에 당신은 몇 번 하나님께 드리십니까?

하나님께서 힘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드려질 정도로 성화된 자가 지상에 있을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민25:4


우리는 누구를 잔인하다 말하려합니까? 

아직도 목매어 달라는 여호와를 잔인타하렵니까? 

용서의 하나님이시라며 그걸 용서못하신단말인가?

여호와의 사랑은 질투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진노가 사그라들기전까지는 그 불타는 사랑의 질투를 멈출 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시므온의 족장 시므이)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고스비)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의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 만 사천명이었더라" 민25:5~9


음행과 우상숭배와 염병으로 아직도 한참 더 살며 성도의 죽음을 존귀한 죽음으로 완성시켜야 할 생명들이 

살해당하는 슬픔과 회개로 온 회중이 회막문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인데도 버젓이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그의 막(침실)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한 자손을 보며 

우리는 왜 음행과 우상숭배가 무서운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땅의 지체인 육체를 따라가는 길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와서 멈추게 해주지 않는다면 육체의 정욕을 끌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을 멈추게 한 자가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비느하스입니다

비느하스가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의 막으로 들어가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죽음을 애도하며 회개하는데고 그치지 않던 염병이 뚝 그칩니다 


이는 주께서 우리를 가슴에 안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허리 깊숙히 창에 찔리는 십자가 사건을 묵상하게 만듭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박히시고 

허리 깊숙히 찔리신 것을 받으사 그를 통해 만인 제사장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기념할 때마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나는 더이상 육체를 위해 살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러할 때 여호와께서는 대적을 박해하며 치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명대로 실제로 미디안과 전쟁할 때 이스라엘 중 한 사람도 죽은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용감하게 행동하는 자로 살 수 있는 길은 여호와를 뜨겁게 사랑하는 길외에는 없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기에 여호와의 질투심으로 음란과 우상숭배로 놀아나는 세상을 박해하며 

칠 수 있는 열정이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브올의 일과 미디안 족장의 딸 곧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한 그들의

 자매 고스비의 사건으로 너희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민25: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