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하니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민22:1~4

********************************************************************************************************

모압 왕 발락이 죄악에 관영한 아모리인들을 심판한 여호와의 군대가

여리고성이 맞은 편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진을 치자 두렴과 번민에 휩싸입니다


애굽 왕 바로도 모압 왕처럼 이스라엘의 강성함에 위협을 느낀 왕이였습니다

왕이 위협을 느낀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지만 세상 왕들은 누구라도 그러합니다


오직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떠한 세력이나 

어떠한 능력에도 위협과 두렴과 공포를 느끼지 않고 자유할 수 있는 것은 그 분 만이 죽음을 초월한 

영생이며, 진리이며,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새롭고 산 길을 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 곧 예수를 나의 왕 우리의 왕으로 섬기는 백성들이라면 

당연히 그분으로 인해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강성해지는 이스라엘에게 위협을 느낀 애굽 왕 바로는 모든 신민들에게 남아를 하수에 던져 죽이라 명합니다

이러한 기괴한 탄압속에 드디여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 때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죽이는 바로 왕과 그의 말들과 마병들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을 탄압하는 기괴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온갖 거짓정보와 안보를 위협하는 불투명한 세력들일까요?


세상은 보잘 것 없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찾아와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께 얼마나 무심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어 있는 것만 같았던 여호와의 언약에 

움이 돋고 순이 자라며 꽃이 피며 열매를 맺게 된 것을 보게 되면 

공포에 떨면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애려하는 패턴은 변하질 않는 걸 봅니다

반기독교적인 패턴이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 패턴은 여전한 걸 봅니다


우리 생각에 그 열매를 보면 여호와가 어떤 분이실까 궁금해하며 믿을 것 같은데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반기독교적인 프레임을 짜기에 세상은 참으로 분주합니다


모압 왕이 이스라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여호와를 알려하기보담은 바로 왕의 전철을 답습하는 것을 보면 그러합니다


다른게 있다면 바로 왕이 자신의 왕권을 사용했다면 

모압 왕은 한 단계 진보한 종교적인 영매의 힘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그 때로부터 약 삼 천 사 백년이 지난 오늘날도 여전합니다

오늘날은 오랜 세월 축적된 모든 인본주의적인 지식들과 이념들을 총동원하여 

기독교를 대적하는 프레임을 짜기에 분주합니다

예전보다 얼마나 더 교묘하게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호소하며 진보했는지 모릅니다

 

우린 모세가 아무리 죄악이 관영한 아모리 족이라 할지라도 평화의 사신을 먼저 

보냈다는 것을 늘 기억한다면 심판의 도구 이전에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해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대적일지라도 막상 그 대적을 우리에게 붙히기 전까지는 평화와 복을 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형제와 대적을 분별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단은 우리로하여금 아군과 적군을 분별치 못하도록 혼란한 방법을 쓰기 때문입니다

 

미디안 장로들과 모압 장로들이 모압 왕의 명으로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가서 전하는 말 중에 아브람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과 흡사한 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그대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22:6 후반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축복과 저주는 아브람에게 있는게 아니라 여호와께 있는 것입니다

단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음으로 아브람을 축복과 저주의 통로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때론 나 자신도 내가 기도해서 응답받았다는 즐거움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잊는 순간이 있습니다

기도는 어디까지나 그분으로 인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비천한 한 인간이 주님께서 초대해주신 아버지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과 동역자라는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상태속에서 지속적으로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세상을 살아가는 담력도 생기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과 성도가 우리라는 한 울로 살아가는 벅찬 즐거움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발락은 복채를 가지고 온 그들에게 이 밤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이르시는대로 

대답해주겠으니 여기서 유숙하라합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사 말씀으로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십니

이에 발람이 자초지종 하나님께 답하자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발람은 아침에 일어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들을 돌려보냅니다

발람은 그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 그들은 복 받은 자들이라는 말씀은 꿀꺽 삼켜버립니다


그러자 발락 왕이 이번에는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며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며 무엇이든

말하는 것은 다 시행하겠다 합니다 ㅠ ㅠ 


이 때 발람은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는 멋진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실로 발람 자신의 품격을 대변하는 말이런지, 아닐런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우리 역시 말은 멋지게 폼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스스로 만족할만큼 멋진 말들은 얼마든지 배우고 익혀서 구사해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은 더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지혜와 지식이 주는 말들은 차고 넘칩니다

그러나 정녕 그 사람이 그 말 그대로인가? 시간을 두고 사건을 두고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발람은 두 번째 사절단에게도 이 밤에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 보리라며 집에 유숙케합니다

금방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장담하던 

그의 입에서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 보겠다 하십니다 


그분이 뭘 더하시길 바라기에 발람은 그리 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임하여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말대로 더하십니다

이럴 때 있었나요? 

뭔가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를 끌어 들여 하고 싶은 순간들은 없었나요?


아침에 발람이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선 것을 나귀가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이 나귀를 첫 번째로 때립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죄우에는 담이 있으니 


여호와의 사자를 본 나귀는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자 발람이 두 번째로 때립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데 없는 좁은 곳에 서니 


나귀가 그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자 발람이 노하여 세번째로 때립니다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고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 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발람이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느니라"

그러자 나귀가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립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길 네 길이 내 앞에서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다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발람의 멋진 말에 속지 않으시고 그 심령을 꿰뚫고 계셨던 것입니다

세 번이나 나귀가 자기를 보고 돌이켜 피하지 아니였더라면 발람은 벌써 죽었고 나귀는 살렸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발람이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기뻐하지 아니하면 돌아가겠다합니다

기뻐하지 않는게 너무나 확실한데 여기서도 발람은 미적미적거립니다

고백보다는 이럴 땐 말대신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판국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사람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운명체로 

하나님의 의중을 살펴가며 자신의 결단과 의지를 확고하게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렇질 못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런 그에게 그래 돌아가라 하겠습니까?

엎드려 절받기 아닙니까?


아버지!

살아있는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로 인해

두렴과 번민에 가득 찬 세상의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성령으로 충만케하사 살아있는 십자가의 군대가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