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의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 십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해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하라"민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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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이 년 육개월은 물리적인 시간으로 보면 결코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느 때까지 참아야 되느냐?"고 모세에게 항변하시듯 호소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그 시간이 몇 백 년 아니라 몇 천 년처럼 느껴지신 것 같습니다 

때문에 "내가 어느 때까지 참아야 되느냐?"는 말씀을 묵상하려니 

여호와가 신이라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그 분을 마음의 존재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신으로만 생각한다면 인간들 사는 세상에서도 어지간한 사람들이라면 

겨우 일 년 반 참은 걸 가지고 내가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며 생색을 내지 않을 것이니 하는 말입니다

 

때론 인간들도 자기 마음으로 보고 느끼며 생각하는 시간을 카운트할 때 자신의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감정 표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물리적인 시간을 깨트려 더하거나 빼는데 자유롭다는 것을 우린 인정합니다


가데스 바란의 사십 일 정탐 사건을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는 하루를 일 년으로 셈하사 사 십년으로 

계산하시는가 하면 인간의 구속사를 표현하실 땐 오늘과 내일과 그 다음 날이란 "삼 일 길"로 압축하여 계산하시기도 합니다


성경을 계속 묵상하다보면 여호와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능력과 힘을 지닌 전능자라는 생각에서 아하! 그 분도 사람처럼 

마음을 지니신 분이로구나를 아는만큼 그 분의 마음으로 우리들의 시선도 조금씩 조끔씩 이동 되어져 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그 분이시야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하시기를 열망하시는 마음의 존재로 역사하고 계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 분의 능력보담은 그 분의 마음을 구하게 되는 것은 진짜 그 분을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깊은 밤에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도 말씀이 곧 그분의 생각과 뜻이 깃드인 그분의 마음을 문자에 담아 기록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마음과 소통되어진다면 그 분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 오신 것입니다.
또한 그 분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 오셨다는 것은 내 마음도 그 분 마음에 들어가 

그 분과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그러합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요14:20

모세를 통해 바로의 종으로 매여 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광야에서 일 년반 동안이나 

여호와의 기적을 경험하며 살았다면 적어도 우리같은 노예들을 당신의 군대로 삼으신 여호와는 정말 어떤 분일까?

어떤 분이시길래 우릴 이토록 간섭하시며 귀히 여기시는 것일까? 라며 마음으로 좀 의아해하며 알고픈 생각이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시내산에서 주신 모든 말씀을 소중히 품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비단 옷에 멋진 집에 삼 시 세끼 다양한 음식은 아닐지라도 

광야에도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들과 달빛이며 어느 무대보다 더 멋진 불기둥아래 그 힘든 

애굽의 노역으로부터 벗어나 정말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이야기하거나 뛰놀아도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나와 물을 대주시는 여호와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어찌 애굽(바로왕의 종)이 더 낫다며 원망을 할 수 있을까요?


잠언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함은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증거해줍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만물보다 심히 더 부패해지는 것이 바로 사람 마음입니다.

"내가 싫어하면 어떻해 되는지를 알리라"


우리가 여호와를 마음으로 알려 하지 않고 기사와 이적과 표적으로만 알려한다면 

그분의 마음도 우리를 싫어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의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한 말씀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마음이 싫어져서 결국 열 정탐군들은 재앙으로 죽게 되고 

여호와의 군대로 계수된 20세 이상의 모든 자들이 죽기까지 광야 사십년을 유랑하게 됩니다

수학상으로 계산하면 정탐 40일이니 징벌의 날들도 정확히 40일이면 족하실 터인데 사 십년이라니요?

그러나 여기에 영적인 뜻이 있으니 그것은 가나안(하늘나라)은 내(육체, 자아, 혼)가 죽기전에는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암튼 세상 사람들도 떠난 마음 돌이키기가 힘들다하거늘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도 그런 마음이 계시다는게 너무나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광야에서 사 십년 유리하면서 남편이 죽거나 아버지가 죽을 때 부인과 자녀들의 통곡소리가 들리고

또한 아직도 정정한 아들들이 죽어 나갈 때 부모들의 통곡 소리속에서 그들은 과연 무슨 상념에 젖었을까요?

여호와의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게 이렇듯이 날마다 썩어질 시체와 함께 사는 것임을 깨달았을까요? 

여호와의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게 죽음과 함께 사는 것임을 깨달았을까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열 번이나 시험했는데 이는 그들이 도무지 여호와를 마음으로 알려하지 않은 결과일 것입니다

누구라도 자기 마음이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게 불편합니다.
하물며 사람 심령을 꿰뚫어 보시는 여호와는 어떠하실까요?

몸은 어쩔수 없이 같이 있다 해도 마음은 함께 하지 않는 상태를 어쩜 인간은 신보다 더 잘 견디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독 인간은 하나님에겐 없는 위선과 외식이 가능하니깐요.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지으신 자요, 우리 마음의 근원이시요, 우리 마음의 시조이시요, 

우리 마음의 원형이신 분이시니 오죽이나 불통을 견디시기가 힘드셨으면 "내가 어느 때까지 참아야 되냐"고 하셨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속으로 꽁쳐 두시지 않으시고 당신의 마음을 모세를 통해 들춰내 주셨다는게 

이 한 밤을 한없이 숙연하게 만드는 기분입니다
그분의 겸손하심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린 여호와를 신이라는 이유로 그의 마음에 수없이 돌을 던진 자들이라는걸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분명 그 분은 신이십니다
그러하듯 그 분은 마음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보다 훨씬 강하시기도 하지만 어쩜 우리보다 무한히 맑고 더 투명하여 

우리보다 더 여릴 수도 있는 마음이시라고 한다면 이런 내게 감히 여호와를 어찌 그리 말할 수 있느냐며 이단 취급할까요?


아버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죄악으로 관영한 아말렉과 가나안이 40년을 더 죄의 세력에 묶여 살게 됨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의 군사로 깨어 있지 못하면 우리들가운데 심판 받아야 할 !

죄의 세력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는 걸 일깨우사 당신으로 쉬지 못하도록 우리로 항상 기도케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