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시간 중간에
친구가 일러준 그 분의 전화번호를 들고 나는 한참동안 망설였다.
아니 감히 떨려서 걸지 못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몇 번 번호를 입력 시키고도 전화를 걸지 못하다가
용기를 내어 전화하니 이외로 반가이 맞으며 선듯 만날 약속에 응해 주셨다.
오늘 오후에 학교 연구실로 오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로 하는 것에는 내가 약간 유리하다.
어쨌든 이 약속을 받아 냄으로써 나의 1단계는 성공한 셈이다.

내 생일이 가까워 올 때인 가을 어느 날.
모 방송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그 친구는 청소년 드라마 작가인 한 교수의 원고를 받으려고
계속 섭외 중이었는데 번번이 거절을 당한다는 것이다.
방송국 사람들을 그 곳에 보내기도 했는데
그 작가의 마음이 어디에 정했는지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고 난감해 했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가면 그 작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한 번 시도해 보라고 하면서 만약 그 일을 성사 시키면
올해의 내 생일 선물은 최고의 멋진 선물이 될 것이라고 한껏 기대하게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괜히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친구를 더 난감하게 만들지나 않을까 해서 였다.
입안에 침이 마르고 마음이 너무 침착해 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극도로 긴장했다는 증거이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지 뭐. 그 친구도 성사되리라 기대는 안 할거야.”

차창을 통해 내다 본  황금빛 가을 풍경이
수천수만의 걸작품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찬송을 불렀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내 알 듯 하도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교수님의 연구실은 정갈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를 정중하고 반갑게 맞아 주는 그 분의 눈빛은 약간 의외라고 말하는 듯했다.

의례적인 손님 대접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을 주시더니
벽하나가 다 창문인 곳으로 가서 가을 들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황금빛 가을 들녘이 보이지요?
저 절경을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라고 보고 제목을 하나 붙여 보세요.
내 원고를 받아 갈 만한 사람인가 내가 알아봐야 하잖아요.”

그 때 나는 마음속으로 잠깐 묵도를 했다.
“주님! 저 위대한 주님의 작품에 제목을 달아주세요.”
그 때 그 날 새벽에 묵상한 하나님의 말씀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예레미야 애가 3:22,23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성실! 입니다.”
그 교수님은 뜻밖의 대답인 듯한 표정으로
왜 “성실”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저 들녘에 오곡백과가 무르익게 된 것은  
먼저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있었습니다.
주께서 새벽마다 이슬로 땅을 적시시고
때를 맞추어 비를 내리시고
하늘의 햇빛을 따갑게 달구시고
바람의 길을 잡아주시고
온갖 나비와 벌을 움직이게 하셨으니
그 일을 매일 성실함으로 행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사람의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땅을 경작하고, 씨를 뿌리고, 흙을 북돋우고
시절을 따라 땀 흘리며 열심히 일한 농부의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저 아름다움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신의 성실함과 사람의 성실함이 동역한 성실함의 조화입니다.”

이 대답 이상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 분은 자신이 써놓은 원고의 전량을 나에게 혼쾌이 건네주었다.

나는 내 생애 가장 귀한 생일 선물을 받았는데
그것은 주님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성실함을 지키신다는 믿음이었다.
한 해 살고 없어지는 들풀 하나에도 그렇게 성실함을 다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의 자녀된 나의 삶을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지키고 보호 하시겠느냐는 확신이었다.
주님이 나의 삶을 성실로 지키신다면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만나는 나의 일상의 생활마다
더욱 진지하고 성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주의 성실하심이 내 삶에 들어와 있는 것을 깨달은 나는
어떤 시련과 문제가 다가와도 두렵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며칠 후 나는 그 수고에 대한 적지 않은 사례금도 받았다.
그래서 아이들의 밀려 있던 학비도 내고
커다란 생일 케익도 사서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신 생일 선물에 따라온 또 하나의 보너스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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