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여름 방학을 했다.
구역 예배를 드리러 성도님의 집을 방문했다.
이 가정은 결손 가정이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가출을 했고 얼마 후 이혼을 했다.
그래서 아들 하나 딸 하나가 할머니 손에 키워지고 있다.
요즈음 이런 결손 가정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예전의 결손 가정은 주로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았는데
요즈음은 거의 엄마 없이 아빠와 살고 있다.
이 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 자리를 맡아서
죽기까지 목숨 걸고 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내는 일이다.
내가 그 집에 도착한 시간은 1시경이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그 분의 손녀딸은 이미 영어 학원, 피아노 학원을 다녀왔고
냉장고에서 쥬스 한 컵을 꺼내 먹고는 컴퓨터 학원을 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7가지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가기 싫다고 매 시간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또 손주들이 왜 이렇게 많은 학원을 다녀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보내야만 한다는 할머니도 애처로웠다.
그 시간을 다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로서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학원 보내면서 엄청난 교육비를 자식을 위해 쓰는 것으로
그의 아빠가 혹시 엄마 없는 자식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대신하려는 의도가 있을까봐 염려가 되었다.

나는 나의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방학 숙제를 하고, 곤충 채집, 식물 채집을 하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뛰어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나에게 성경을 쓰고 암송하게 했다.
평소에는 하루 성경 3절을 외우게 했는데
방학 기간에는 하루에 성경 한 장을 공부하게 했다.
그 때는 어머니의 처사가 부당하게 생각되었다.
그 시간에 내가 다른 것을 배우거나 공부를 하면 더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이 될텐데
어머니는 여름 방학만 되면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기도와 성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인생을 인도하는 밝은 등불을
준비 해 주신 것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가르침은 내 인생의 어려운 굽이마다, 내가 실망하고 좌절하여 쓰러질 때마다
주님의 확실한 음성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시 걷게 하게 하는 나의 빛이요 나의 힘이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이미 그것은 나의 습관적인 일상이 되었다.
내가 인일여고 다닐 때는 매일 새벽 기도를 학교 동산에서 드렸다.
그네가 매어져 있는 그 곳이 우리들의 새벽기도 장소였다.
친구들 5-8명이 매일 아침 6시에 그 곳에 모여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 후에
도서실로 바로 가서 같이 공부를 하고 수업시간에 맞추어 각자의 교실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40분은 20분은 점심을 먹고 20분은 학교 옥상에 모여 낮 예배를 드렸다.
저녁 6시 정도에는 학교 벤치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도서실이나 각자의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하교 하였다.

인일여고 여름 방학 때는 부평에 있는  협성원 이라는 곳에 성경공부를 가르치러 갔었다.
그 곳은 창녀들을 모아놓은 곳 이었다.
창녀들이 성병에 걸렸을 때 그 곳에 집단 수용 당한다.
그들을 강제 수용하는 명분은 성병을 치료하는 기간동안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는
생산 기술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물론 양재, 미용, 타자, 요리, 나염...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명분뿐이고 사회의 악이 되는 그들을 집단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성병환자이고 교도소를 방불 하는 열악한 환경의 집단 수용소는
없던 병도 만들 정도이니 강제 수용된 그들은 틈만 나면 도망을 친다.
그러나 도망을 치면 거의 다 다시 잡혀온다.
다시 잡혀 오면 심한 매를 맞는다.
그들의 숙소는 철조망으로 몇 겹씩 둘러져 있고
산을 타고 도망하면 길로 통하는 어귀마다
이미 나가 있는 감시원들에게 붙잡히게 되어있다.
한마디로 창녀의 형무소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한 방에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성경공부를 받는다.
나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더 어린아이도 있었다.
13살짜리도 있었다. 20살이 넘으면 그들은 할머니라고 부른다.
그 곳의 불문율은 성경 말씀이외에 다른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다른 말을 하게 되면 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다른 말로는 그들을 지도해 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사귐을 갖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편지를 주고받는다든지 그들의 부탁을 듣고 물건을 사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갈 때마다
성병에 관한 연고제라든지 피부 연고제를 사가지고 들어갔었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초등학교 국어책을 가지고 가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은 감시원의 눈을 피해 내 성경책 갈피에
자기들이 아끼는 머리핀을 넣어 주기도 하고
꽃잎을 말려 넣어 주기도 했다.
누구에겐가 써 놓은 편지를 붙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하루는 나를 무척 따르는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도망치다가 잡혀 와서 심하게 매를 맞고 있었다.
나의 여름방학은 그들이 불쌍해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인생의 낭떠러지 까지 떠밀려온 이들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다짐으로 굳어져 갔다.

나는 내 아들들이 여름방학을 하면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방법을 고스란히 전수해서 쓰게 되었다.
매일 두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게 한 것이다.
그것이 내 인생의 얼마나 밝은 빛이요 등불이었는지 내가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들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방학기간동안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데 보내더니
고등학교 때는 다른 사람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방학을 보내는 것이다.
성경은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로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였는가?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신명기 6장 6-9

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는 아들들에게 공부해야 하는 분량과 시간 배정을  
성경, 영어, 국어, 수학, 기타과목으로 정하여 주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만 하면
그 다음부터의 자녀 교육은 그들에게 이미 습득된 성경 말씀이
저절로 자녀들을 양육시켜 나간다.
그 때는 이미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는 자녀의 모습만 보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큰 애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도 결혼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에 목숨 걸고 가르칠 거예요.
거기에 자녀의 삶의 성공과 가치가 다 달려 있어요.
어려서 읽은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이 내 삶을 인도하고 있어요.
요즈음 학생들이 보이지 않아요. 전부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요.
부모님들이 성경을 영어만큼만 중요하게 여기면 얼마나 훌륭한 자녀가 될텐데
그것을 알아차리는 부모가 없으니 아이들만 불쌍해요.”

아들은 요즈음 생산직 직업 청소년들을 찾아 성경을 가르치고 온다.
그들에게 줄 여러 가지 선물과 물건을 준비하고
몹시 더운 날은 아이스크림 사줄 돈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가르칠 성경 공부 교안 작성을 밤늦게 까지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먼 후일 아들을 꼭 닮은 손자가 맞을
여름방학을 20년 미리 보는 듯하다.
성경을 영어 과목  만큼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동일한 분량과 시간을
가르치면 자녀의 인생은 밝은 빛의 인도를 받아
강하고 견고하며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은 자녀의 성경공부 최적의 기회로 활용되는 기간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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