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감정의 계좌를 기록합니다.
좋은 말 따뜻한 눈길을 주고 받았을 때는 감정계좌가 플러스가 되고 환영받지 못하거나 기 분 나쁜 느낌을 받았을 때는 감정계좌는 자동적으로 마이너스로 내려갑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친정과 시댁식구들, 이웃, 목회자와 성도들 모두는 다 각각 자기만 알고 있는 계좌와 거래실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후하고 넓어서 남이 조금만 잘 해줘도 계좌에 높은 지수를 기록할 것이고 타인의 불친절에 대하여도 관대한 지수를 기록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를 끼치는 사람에게 고리채수준의 나쁜 감정을 기록하여 보복할 기회를 찾고 상대적으로 고마워 해야 할 일은 낮은 이율로 표시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가족은 이율이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낮을 수도 있습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은 사람은 부모가 좀 서운하게 해도 그동안 쌓인 높은 플러스 지수를 크게 손상시키지 않을 것이고 형제 사이는 결혼 후에도 좋게 발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안정한 가정에서 신뢰 할 수 없는 부모 밑에 자란 사람은 윗사람에 대한 불신수치가 높기 때문에 가족간에, 심지어 교회에서 까지 항상 의혹과 반항적인 태도를 견지하여 쉽게 넘어갈 일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비화시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게도 계좌의 수치를 높게 기록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마이너스인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사람에 대하여는 높은 이율의 감정지수가 복리로 증가하여 설사 그 사람이 제게 좀 해가 되는 행동을 하여도 여전히 축복하는 마음을 유지하게 되는데 반해서, 뒤에서 비방하고 폄하하는 사람에 대하여는 계속 거래를 끊고 싶을 만큼 마이너스지수를 기록합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니 상대방도 그러 하겠지요
그동안 오랫동안 좋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한 성도를 통하여 계좌의 기록수치가 일시에 날아가 버릴 만큼 마음 아픈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그동안의 신뢰를 바탕으로 일상적 관계는 회복되었지만 마음속의 계좌는 텅 비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계좌의 수치만큼이나 든든한 정이 쌓여 있어서 늘 마음이 푸근하였는데 한순간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다시 그 만큼의 수치를 쌓으려면 살아온 날보다 더 많은 날이 필요할 것만 같고 어쩌면 다시는 그런 신뢰관계는 갖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가득 아픔을 가지고 한밤중에 성전에 올라 갔을 때 언제나 처럼 저를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우주 만큼 큰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몸이 떨렸습니다.  주님의 내게 대한 계좌 수치는 얼마나 될까?  당연히 신용불량, 파산, 구제불능이 마땅할 것이나  분명한 것은 우리 주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고 나는 뻔뻔스럽게 그 사실을 믿고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찾는 나의 작은 신음에도 큰 사랑으로 응답하시고[히11:6] 회개하고 고백한 죄는 기억도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요일1:9] 몇 번을 파산해도 나는 늘 우수고객이고 나쁜 거래실적은 다 파기된다는 것입니다.
  오! 주님, 제 게도 주님 같은 평가기준을 주시옵소서 나쁜 구좌는 다 털어버리고 좋은 구좌만 남겨주시옵소서 저의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 잔고는 늘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