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
어릴 때 오랫만에 외갓집에 가면 할머니는 늘 “고맙다, 이렇게 잘 커 주니 고맙다 ”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통과하였을 때와 대학교에 합격을 했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도 할머니는 고맙다, 고맙다 하시고 남편에게도 “고맙네, 자네 정말 고맙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땐 어린 소견에 할머니는 나를 보면 반갑다고 해야지 내가 해드린 것도 없는데 왜 고맙다고 하실까? 하는 의문이 있었고 간혹 그 말이 경우에 합당치 않다는 생각도 들곤 하였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한 것은 조금 나이가 든 후의 일입니다.
첫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중 문득 나같이 연약한 사람을 엄마라고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아기가 너무 고맙고 아기의 존재가 감사하였습니다.
나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아기, 오히려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그 아기가 내게 주는 신뢰가 너무도 고마워서 눈물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개척교회를 하면서는 그저 지나가다가 한 번 들러 주는 사람의 발 뒤꿈치도 고맙게 생각되었고 불편하고 작은 개척교회에 와서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따라주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살며시 와서 뒤에서 껴안으며 ‘사모님~’하는 집사님들과 양손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만들며 사랑을 보내는 학생들, 하루일과를 매일 매일 문자로 알려주며 기도를 부탁하는 청년들, 살갑게 표현은 못해도 멀리서 신뢰의 눈길을 보내주는 권사님들을 생각하면 예수님 안에서 한 공동체를 이루는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받는 것 없어도 존재자체가 고마운 사람. 그 사람의 삶을 생각만 해도 흐믓한 사람.
기도 해주고 싶고 기도 부탁하고 싶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은 물질적 유익을 주고 받는 데서 오는 감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가치인 것입니다.
평생 누워 지내는 정박아라 할지라도 남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를 줌으로써, 또 그를 사랑하는 가족에게 기도와 성숙의 기회를 줌으로써 가족의 대속자로서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도 미련하고 철없는 우리를 고마운 존재로 보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2004-10-15 01:56:16 / 220.93.6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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